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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답게, 탈코르셋

고3 학생들과 ‘외모’ ‘여성성’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며 (서윤)



2018년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단어 중 하나로 ‘탈코르셋’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주변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탈코르셋 열풍에서 노브라를 기본값으로 하고,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삭발을 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화장품은 고대 유물처럼 굳은지 오래였다.


많은 여성들이 숏컷을 하고, 치마를 버리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서 지인들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대학가와 아르바이트 사업장에서 화장하지 않고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여성들의 ‘꾸미기 파업’은 겉으로 직접적이고 확연한 변화로 나타났지만 개인이 선뜻 면접장에서, 출근할 때, 격식 있는 자리에서 꾸미기를 포기하고 내려놓기는 힘들어 보였다.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외치며 가장 많이 벗어 던진 코르셋은 화장과 다이어트가 양대 산맥을 이루지만 현대판 코르셋은 얼마나 세세한지, 발 각질 제거와 속눈썹 펌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지경이다. 그런데 이 코르셋은 학생다움에선 허락되지 않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는 여성다움으로 묘사되어 요구되고, 스스로도 당연스레 욕망하게 되는 무언가다.


탈코르셋 운동의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지금의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학생 신분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속해있는 불꽃페미액션과 여성환경연대가 함께 “외모왜뭐?” 프로젝트(외모지상주의와 몸에 대한 억압적인 시선에 문제 제기하며 10대들과 대안을 찾아가는 활동)를 진행하면서, 탈코르셋을 주제로 강연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게 된 거다.


현재 이들은 수능을 끝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난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 붐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들의 모습이,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기대되었다. 사회 전반에 깔린 ‘꾸미기 노동’ 속에서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가 이들 사이에서도 이슈일지 궁금했다.


강의 교안을 만들 때부터 과연 코르셋과 투쟁 중인 나의 이야기가 10대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세심하게 고민했는데, 수업을 진행해 보니 실시간으로 학생들과 교감하는 그 과정이 정말 설렜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여성들을 만났다.


▶ 고3 여학생들과 만나 탈코르셋에 관한 강연 중인 불꽃페미액션 회원. ⓒ불꽃페미액션 제공


학교 안에서 보는 탈코르셋


강의의 주된 내용은 과거 코르셋의 정의부터, 중국의 전족을 지나 차근차근 현대판 코르셋인 꾸미기 노동의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이 현상을 자신의 일상과 밀접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소녀다움, 학생다움, 여자다움으로 요구되는 코르셋도 다뤘다.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고 모두 집중해줘서 눈물 날 만큼 고마웠다. 수능 끝나고 뭔가에 집중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걸 알기에 열심히 준비하길 잘했다 싶었다.


한 반에 탈코르셋 운동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는 되었다. 그 학생들이 ‘노브라가 얼마나 편한데!’, ‘헐, 저런 것까진 생각 못했는데 대박이다’, ‘우리 어차피 지금도 화장 안하고 있잖아!’라고 말하며 반 분위기를 이끌어줬다.


수업만으론 집중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코르셋을 스스로 생각해서 포스트잇에 적고 차례대로 하나씩 쓰레기통에 버리는 워크숍을 준비했다. 사회적 억압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학우들끼리 조를 짜주니, 활동 시간 동안 다양한 문장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치마, 안 입어?”, “입 가리고 웃어라”, “미스코리아 해라”, “뚱뚱한데 왜 짧은 걸 입지?”, “미용 산업에 착취당하고 있는 것 같다, 돈이 많이 든다”, “여자라서 요리를 배워야 하고 내가 주부가 돼야 할 것 같다”, “경력단절”, “인간적으로 틴트는 발라라”, “왜 이리 산만해? 얌전히 좀 있어” 등. 지금껏 참아왔던 울분이 친구들의 ‘맞아 맞아’ 호응에 맞춰 터져 나왔다.


▶ 탈코르셋에 관한 강연 중. ⓒ불꽃페미액션 제공


학생들이 꼽은 가장 벗기 어려운 코르셋은?


어느 정도 성토가 끝나 보일 때쯤, 조별로 썼던 코르셋 중에서 자신이 버릴 수 있을 만한 것부터 하나씩 버리는 활동을 이어갔다. 초반에는 ‘경력단절’, ‘요리’, ‘산만하게 행동하지 않기’,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는 하면 안 돼’ 등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금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것을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벗어버리기 어려운 코르셋 딱 한 개를 제외하고 다 버린 후, 왜 그것이 마지막까지 남았는지 이유를 반 전체에 공유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들은 대개 ‘살 빼야 돼’, ‘여리여리해야 돼’, ‘그래도 브래지어는 하고 나가야지’, ‘여자만 제모’, ‘여자는 피부가 생명이지’ 등 그 나이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들이었다. 조별 의견이기에 개개인의 의견은 다를 수는 있지만, 역시 자신의 삶과 가장 밀접한 것에 저항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한 번의 강의로 변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다들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 듯해서 내심 다행이었다.


좀 더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어서 현재 내가 노브라 상태임을 알렸다. “저는 지금 브라를 입지 않았어요. 근데 여러분, 제가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죠? 겨울은 노브라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다들 한 번 해봐요!” 학생들은 처음엔 놀라더니 본인들도 겨울엔 안할 때도 있다며 노브라의 편함을 널리널리 알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코르셋은 소중하고 너무 가치 있는 것이라서 버리지 못한 게 아니라, 그만큼 버리기 어려운 사회구조적인 상황이 있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벗어던질 수 있게 될 거라는 결론으로 수업을 마무리 지을 즈음 질문이 들어왔다.


“근데 여자들도 꾸미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냥 내가 원해서 화장하고 싶은 걸 수도 있지 않나요?”


나도 한때 깊게 생각해 봤던 주제였다. 무슨 말을 하는 게 도움이 될지 잠시 고민했다. 사실 현재 화장을 완전 파업하는 탈코르셋 흐름이 있기 전에는, 온라인 상에서 ‘화장은 본인 만족’이라는 말이 주류였다. ‘하늘 아래 같은 핑크색은 없다’는 글과 함께 화장품 숍에서 파는 다양한 이름의 다양한 핑크색의 립스틱 사진을 게시한다든지, ‘내가 눈 화장을 4개의 아이섀도우로 화장한 것을 모두 갈색으로 퉁 치는 남자들을 위해 화장을 한 게 아니다’라는 글도 본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반응도 남자를 위해 화장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는 류의 댓글이 주를 이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꾸밀 자유는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을 때야 비로소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나도 화장을 하고 싶을 때가 있고, 남자를 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여성이 겪게 되는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출근할 때나, 면접을 볼 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화장을 안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 비로소 화장할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워크숍을 마친 후 만족도 설문조사 중에서 ⓒ불꽃페미액션 제공


더 많은 소녀들이 탈코르셋에 도전할 수 있길!


수업이 끝나고도 이 질문이 머리에 맴돌아 덧붙이고 싶었던 말들에 대해 고민했다. 수업 시간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매일 마주하는 ‘외모’는 페미니즘을 접한 10~30대 여성들에게 가장 친밀하고도 어려운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대학 새내기 시절 나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기숙사 밖에 나가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더라도, 수업에 늦었더라도, 선크림과 틴트가 모든 것보다 최우선 순위였다. “머리 염색하는 건 대학 가서 해라”, “꾸미는 건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지금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는 말들로 19년을 참아온 나에게 복숭아 빛 화장과 나풀거리며 여리여리한 원피스는 20대가 된 나의 정체성을 대표하게 되었다.


‘여성’이란 단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여겨지는 것은 20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비장애 여성의 이미지(외모)이다. 아마 이 시기가 유일하게 여성이 ‘여성’으로 권력이 있다고 오해받는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아’로 길러진 과거나, 경제활동을 하며 유리천장과 경력단절의 벽을 절감하게 되는 시기에 비해서, 또 ‘아줌마’ ‘기혼여성’ ‘노인여성’의 위치에 비해서는 그나마 여성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여자’라는 이유로 주목 받고 호감을 사는 이 시기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는 건, 영유아들이 눈앞의 마시멜로우를 먹지 않고 참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듯했다.


학생들과 함께 한 활동을 보아도 자신과 가장 밀접한 코르셋들은 대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엔 다소 버겁고 어려운 것이다. 사회구조적인 압력과, 사회적으로 형성된 ‘꾸미고 싶은’ 나의 욕망, 20대 여성상의 이미지에 속할 때 얻게 되는 부산물까지 온갖 것이 뒤섞여 작동하고 있는 일상의 여성혐오를 해체하고 대안을 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Always #LikeAGirl 영상 중에서 (출처: youtube.com/watch?v=XjJQBjWYDTs)


그런데 강의 평가 설문지를 읽으며 해결의 실마리가 얼핏 떠오르는 것 같았다. 많은 학생들이 강의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강의 자료인 Always #LikeAGirl 광고를 꼽았다. 그 광고에서는 성인 여성과 남성에게 소녀처럼 뛰어보라는 지시를 주자, 그들은 스테레오 타입에 맞춰 과장스럽게 몸을 좌우로 흔들며 뛰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실제 소녀들에게 했을 때, 그녀들은 힘껏 달렸다.


소녀에게 ‘소녀처럼 뛰라’는 말은 ‘전속력으로 달리라’는 말처럼 들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소녀들에게 소녀답다는 말의 의미를 돌려줘야 한다. 소녀라면 뭐든 할 수 있고, 뭘 택하든 소녀답지 않은 행동은 없다는 언어를 소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성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태권도, 진성으로 소리 지르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짧은 머리 스타일 하기 등을 소녀라면 시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해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분홍색을 좋아하거나, 섬세하고 부드럽거나,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소녀답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 여자답다, 소녀답다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에 일부러 발화하여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 여성들에게 용기를 내도록 돕는 일은 중요하다는 얘기다. 꽃꽂이를 한 사진보다는 못을 박거나 근육을 키우는 모습에 ‘여성답다’, ‘대장부’라고 댓글 달아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허락되지 않는 길을 가는 이에게, 역할모델이 부재한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지지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 학생들을 다시 만난다면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은 소녀다운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치마를 입는 것도, 힘을 쓰는 것도, 발레를 즐기는 것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도, 모두 너답고 그게 소녀답다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다.


특히 지금까지 억압받고, 그래서 좀처럼 해볼 수 없었던 일을 시작해 보려는 소녀들에겐 더 큰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내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마지막까지 쓰레기통에 버리기 어려웠던 코르셋들을 소녀답게 자신이 원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벗어던지길 응원하고 지지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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