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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사건 항소심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차혜령 변호사 인터뷰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해, 검찰은 1월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오는 2월 1일에 법원의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의구심을 표하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항소심 결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전례 없는 판결 분석팀을 구성해, 9명의 변호사가 1심 판결을 분석하고 의견을 종합한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1심 판결은) 사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 차혜령 변호사를 만났다. 차혜령 변호사는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으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고 있다.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판결 평석 -위력 판단 등 판결의 전반적 문제점”을 정리해 발표했다.


차혜령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법조인으로서 보는 1심 판결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항소심 재판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 안희정 사건 1심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는 차혜령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 ⓒ일다(박주연 기자)


①‘위력 행사 여부’ 판단의 오류: 무형의 힘도 위력이다


1심 판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위력의 행사 여부 판단의 오류’다.


차혜령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가 피고인의 수행비서 및 정무비서로 근무하던 동안에는 업무상 수직적, 권력적 관계로 인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위, 직책, 영향력 등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에 있어서의 위력이 피고인에게 존재하였다고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피고인에게 정치적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거나, 피고인이 평소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피해자를 비롯한 도청 소속 공무원을 하대하는 등의 위력의 존재감이나 그 지위(직책)을 남용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며 위력의 행사 사실을 부정했다고 이야기했다.


즉, 업무상 관계로 인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었지만, 그 위력이 행사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이에 대해 차 변호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추측해보자면 ‘위력’을 ‘행사되는 힘’, 즉 일종의 ‘폭행’이나 ‘협박’처럼 생각한 것 같다.”


“OO을 행사한다는 건, 힘을 사용하고 쓴다는 거다. 재판부가 위력이라는 걸 ‘형태가 있는 힘’으로 생각하고 그게 행사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니까 도지사이자 업무 감독자라는 권력을 ‘행사했다’는 게 범행 시에 보여야 한다는 건데 그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도, 다른 하급심 판례에서도 위력이든 위력 간음죄에서 ‘유무형의 힘을 불문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1심 재판부 말대로 위력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무형력은 도대체 어떻게 행사되는 거냐?’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니까 재판부는 도지사가 수행비서에게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거다’라는 식의 말을 했어야만 ‘위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한다는 얘기일까? 기자의 질문에 대해 차혜령 변호사는 “재판부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불이익을 고지하겠다거나 ‘이 판에선 발도 못 붙일 줄 알아라’ 이런 식의 말을 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힘을 쓴 것으로 판단한다면, 사실 그건 협박이다. 불이익 또는 해악을 고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발도 못 불일 줄 알아라’, ‘도청에서 넌 이제 끝이야’ 등의 말을 했을 경우, 피고인에겐 그럴 권한이 있고 바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해악의 고지’이다. 그렇게 본다면 ‘폭행.협박’이 행해졌으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아니라, 사건은 그냥 ‘강간’이 된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와 같은 무형적 위력은 별도의 ‘위력 행사 행위’가 없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추행 또는 간음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위나 권세는 그 존재 자체로서 영향력을 가지며, 상대방으로서는 행위자가 그와 같은 지위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굳이 자신의 지위나 권세를 확인시키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주장은 “연예기획사 대표인 피고인이 연예기획사에 고용된 가수인 피해자를 추행한 사건(의정부지방법원 2017년 1월 24일 선고), 대사관 대사에 의한 간음 및 추행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18년 9월 12일 선고)을 봤을 때, 피고인이 위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사하였는지 여부를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 “즉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별된 개념으로 인식하거나 이를 분설하여 독립적인 구성 요건 요소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②피고의 진술이 번복됐음에도 피해자보다 더 신뢰한 근거는? “없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보다 피고인의 진술을 일방적으로 신뢰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피고인의 진술에서 모순 지점이 보여도 무시하고, 근거가 없는 진술조차 신뢰했다는 것.


안희정 전 지사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며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인정하고 도지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차혜령 변호사는 “피고인이 밝힌 첫 번째 입장 표명이 번복되었음에도 재판부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건 중대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이 자신의 주장대로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다면 ‘우리의 관계가,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의 대상인지’ 피해자에게 질문했다는 점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달랐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판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 안희정 성폭력사건 1심 판결을 중심으로> 토론회 자료집 중에서


네 번의 간음 행위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달랐지만, “피고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를 먼저 부른 것은 항상 피고인이었으며, 피해자는 단 한 번도 먼저 적극적으로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새벽 두시에 담배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24시간 대기 업무를 하는 수행비서와, 그 명령을 할 수 있는 도지사의 불균형한 관계가 담배를 전하는 순간 자유로운 성적자기결정권을 지닌 ‘정상’적 성인 남녀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나,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에 있어 피고인의 진술을 더 신뢰한 것은 무슨 근거로 판단한 것일까?


차혜령 변호사는 “전 재판부 판단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근거를 찾기 어려우니 ‘비합리적’,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든지 상급자의 요구와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하급자, 즉 업무관계에서 상대방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요구를 100% 관철할 수 있는 사람과 성관계에서는 대등한 위치에서 합의했다는 것이 1심의 판단인데, 그런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찾기가 어렵다.”


③재판부가 말한 ‘경험칙’은 여성시민에게도 객관적인가


피해자의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피고인의 번복된 진술은 신뢰한 1심 재판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지 감수성’을 이야기했다.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성인지 감수성’ 관점을 유지하여야 함으로, 일견 피해자가 보인 범행 전후의 언행에 통념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의 모순이나 비합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느끼거나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곤경이나 수치심 혹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안희정 성폭력사건 1심 판결을 중심으로> 토론회 현장 ⓒ일다(박주연 기자)


14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통념적 관점에 어긋난 피해자의 언행에 대해 납득할 만한 특수한 사정 내지 예외적 사정이 존재하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 것 같은데, 그건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는 것.


재판부는 ‘왜 정조를 지키지 않았냐’는 등의 “남성중심적 사회, 성차별적인 사고가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따르면서”, “피해자의 언행이 ‘통념에 어긋난다’는 판단 아래, 그 어긋남을 정당화할 만한 특수한 사정이 있는지 판단하면서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동원”하는 논리를 펼쳤다는 지적이다. 이호중 교수는 그건 통념을 따르는 것이지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사고가 아니며, “성인지 감수성은 통념에 대한 도전이자 해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판부가 ‘경험칙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진술한 부분에서도, “경험칙, ‘사회통념’을 기반으로 하여 구성된 그 경험칙이 과연 정말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④‘처벌할 법이 없다’는 재판부의 책임 회피에 대하여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비동의간음죄’를 언급하며 입법에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협박이나 위력의 행사와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할 것인지의 문제,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며, 비동의간음죄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을 무죄로 판결한다는 의미를 내비친 점이다.


차혜령 변호사는 “이 사건은 비동의간음죄와 상관이 없다. 재판부가 ‘피해자가 합의했다, 동의했다’는 피고인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입법정책적 문제이고 사회 전반의 성인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며 발을 뺐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재판부가 사건을 제대로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는 ‘젠더 리터러시’(Gender literacy, 젠더를 이해하는 능력)가 있는지 여부라는 지적이다.


▶ 작년 12월 1일(토)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6차 집회 <결국엔 바꾼다. #미투가 해낸다>  ⓒ일다(박주연 기자)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가 만들어진 의미는 ‘강자의 지위에 있는 자가 약자의 지위에 있는 부녀의 정조를 농락하는 소행에 대하여 그(것이) 강간이 아닌 이상 아무런 처벌 규칙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형벌 법규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를 처벌키 위함’이라는 설명(조선법제편찬위원회 <형법 기초요강> 및 엄상섭 <형법요강해설>, 14일 토론회 자료집 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법을 만든 이들은 ‘강자의 지위’가 가진 영향력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코자 했다. 하지만 ‘강자의 지위’에 맞서기란 어려운 일이었을까. 법이 만들어진 취지와 달리 거의 사용되지 않아 “고소했다 하더라도 불기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고소된 사건이 드물어 분석할 판례조차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미투(Me too) 운동으로 드러난 여성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지위와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이 자행되었고, 피해자들이 침묵해야 했다는 것,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함께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많은 이들이 2월 1일에 열릴 항소심 선고에서, 1심 판결의 문제점들이 말끔히 해소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회복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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