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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조사하라

국가배상청구, 진상조사 특별법 등 제도적 해결방안 논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피해를 밝히고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되어 왔다. 1999년 <한겨레21>의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보도를 시작으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시작된 지 이제 거의 20년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2016년 9월 창립된 <한베평화재단>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우리 세대에서 베트남에 사죄하지 않으면 안돼요 http://ildaro.com/7451)


▶ 한베평화재단이 제작한 1968 꽝남대학살 구글 지도. 노란 동그라미 표시가 된 곳은 2004년 <나와우리> 지원으로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퐁니·퐁넛 위령비가 세워진 곳 ⓒ한베평화재단 kovietpeace.org


그리고 지난 11월, 서울고등법원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태스크포스(TF)가 국정원을 상대로 낸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원심에 이어 민변 측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퐁니, 퐁넛 학살 사건’(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 퐁넛 마을에서 청룡부대 1대대 1중대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약 74명에 대한 학살) 관련 자료가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흐름에 맞춰, 본격적으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13일(목)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의 제도적 해결방안>(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 화우공익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국가배상청구 및 특별법 제정 등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피해자가 한국 법원에 국가배상소송 제기한다면?


“베트남전쟁 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국내 법원에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쟁점”들을 검토한 박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먼저 국가배상법에 대해 설명했다.


“국가배상법 2조 1항,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 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박 변호사는 “우리 판례는 ‘법령 위반’에 관해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 뿐만 아니라 인권 존중, 권력남용 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 등을 위반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며, “고로 군인이 민간인을 집단 살상한 행위는 인권 존중, 공서양속 등에 위반돼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임으로,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된다고 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소멸시효’다. “국가배상 청구권은 3년의 단기 소멸시효(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기산)와 5년의 장기 소멸시효(불법 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기산)가 적용되며, 소멸시효는 단기나 장기 중 어느 것이라도 먼저 도래하면 완성된다”는 점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은 1960~1970년대에 발생하였음으로 5년의 장기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이 명백”하다.


하지만 박진석 변호사는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할 수 있는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바로 고엽제 소송과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나라 군인들이 고엽제로 인해 입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그것이 고엽제가 원인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지냈던 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에도 구 미쓰비시의 불법 행위가 행해진 후 1965년 한일 간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던 점 등.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걸 고려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미군 기지촌 ‘위안부’ 소송(서울고등법원 2018년 2월 28일 국가 책임 일부 인정 판결)에서 국가의 중대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까지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 올해 6월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베트남 평화기행을 떠난 산마을 고등학교 학생들은 하미학살 생존자 쯔엉티투 할머니(80)와 만났다. 쯔엉티투 씨는 당시 7살 딸과 4살 아들을 비롯해 가족과 친척 12명을 잃었고, 수류탄 파편에 오른발을 잃고 다리와 엉덩이 등에도 부상을 입었다. ⓒ한베평화재단 kovietpeace.org


국가배상 책임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은 ‘상호보증’(국가 간에 등가等價를 교환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것, 국가배상법 제7조는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 상호보증을 적용함)이다. 박 변호사는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베트남 국내법 상 외국인의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요건이 우리나라의 국가배상 청구권의 발생 요건과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나 역시 “상호보증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볼 때, 과연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같은 반인도적인 국가범죄에 대해서까지 상호보증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하며, 논쟁해 볼 여지가 분명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법 만들어 민간인 피해 진상 조사해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언급한 바는 있지만, 정부 차원의 조사 자체가 없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한국군에 의해 9천여 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꾸준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20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 시민사회 활동에서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으며, 서울고등법원은 정부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후 관련된 여러 정보공개 청구 및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더더욱 정부 차원의 조사 작업을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현재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기초 조사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진상조사 특별법’을 입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피해국인 베트남이 배제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조사의 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으나, 조사기구의 위원을 민간 전문가로 하고 단계적이고 순차적인 조사(1단계 조사 이후의 결과를 바탕으로 베트남 정부가 참여를 할 경우 2,3단계 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임을 명확하게 한다면, 비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법의 목표는 지난 20여 년간 공론화되어 왔으나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 없는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들에 대해, 한국 정부의 공적 기구가 어떤 사건들이 주장되고 있는지 일별하고, 각 사건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며 그 진위를 밝히는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임재성 변호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조사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을 이렇게 정리했다.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 위원장 1인, 상임위원 1인을 포함한 7명의 ‘민간인’ 위원으로 구성, 위원회 활동 기간과 조사 기간을 3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종합보고서 작성으로 그 내용은 1.사건의 진상 2.사건 관련 피해자의 피해 상황 3.사건의 발생원인 4.사건에 대한 관계자 및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는 것.”


▶ 1966년 11월 26일 베트남 꽝응아이성의 하떠이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주민 20명이 희생되었다. 올해 하떠이학살 52주기 위령제가 열릴 때 한국에서 보낸 8개의 조화가 위령비 앞에 놓였다. ⓒ한베평화재단 kovietpeace.org


가해자 vs 피해자 구도를 넘어선 ‘역사적 정의’


이번 세미나에서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 진실을 규명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국가배상청구 소송에 관한 논의들이 거론되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각 구성원이 가져야 할 ‘인식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전쟁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비추어 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발표한 노용석 교수(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는 “우리가 이중적 관계 속에서 살면서 피해와 가해의 양면성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미국의 전쟁범죄에 동원된) 피해자, 혹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가해자 어느 한 쪽의 위치로만 설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강성현 교수(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는 “무엇을 목적으로 진실 규명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다면, 그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후 베트남 쪽에서 개별 소송이 이어질 때, 누군가는 승소하겠지만 진실 규명 수준 등 여러 조건의 차이에 따라 패소하거나 아예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죽음 등의 피해를 둘러싸고 ‘인정’의 위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처럼 “법적 진실로 회수되지 않는 역사적/구조적 진실 규명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며, “가해와 피해의 양면성, 가해와 피해의 ‘연속성’의 문제를 어떻게 역사적/구조적 진실 규명의 영역으로 가지고 올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조사위원회”에 대해서 강성현 교수는 “역사적 진실 규명 모델이 아니라, 진실 화해나 진실 정의 모델로 구상하는 건 어떤지”에 대한 의견을 냈다. “학살 사건을 일으킨 군인들은 가해자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 의해 동원된 피해자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베트남전 한국군인 가해와 베트남 지역에서의 민간인 피해로 범위를 좁힐 것이 아니라 진실 규명의 대상과 범위를 더 확장시킬 수 없을지”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김창록 교수(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진실 규명이 선행되어야 함으로 조사위원회 특별법 제정 등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대한민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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