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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니스 조플린과 미셀 엔데게오첼로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렇듯 인간 또한 본질적으로는 자신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 같아요. 태어날 때 붙여지는 이름부터, 살면서 늘어나는 정체성의 이름들까지…. 누군가 직업이나 학력, 출신지역을 묻기도 전에 제게는 다양한 차원에서 비롯되는 많은 이름들이 주어져 있지요. 아니 어쩌면 이름 자체보다는 거기에 담겨있는 내용들이 미리 앞서서 저를 규정하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여자 혹은 남자이지만, 백인 혹은 아시아인이지만, 어떤 계급 출신, 어디 사람이지만 그게 내 전부를 설명하는 건 아니라고, 일상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호소하잖아요.
낯선 집단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이해한다는 건,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유용한 면이 있지만 더 큰 오해를 만들 때도 많고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예술가들의 자기표현도 세상이 붙여준 이름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인 거 같아요.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 재니스 조플린
명백한 의미에서 거의 1세대 여성 록스타라고 불릴 수 있을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은 알려져 있다시피 사이키델릭 블루스록 싱어였지요. 블루스는 음악적으로 셔플리듬(shuffle rhythm) 위에 주로 세가지 코드의 배열이 반복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타리스트에 의해 주도가 되요.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곡 구조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짙은 슬픔―역사적으로는 흑인의 것이었던 애환―이 깔려있어서 역설적인 해방감을 주고요. 물론 요새는 블루스의 곡 구조만 차용한 밝은 분위기의 음악들도 많지만 말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니스 조플린의 곡 “Ball and Chain”은 아마 누가 들어도 아픔에 못 이겨 우는 듯한 그녀 목소리가 제일 먼저 감각될 거예요. 기타리스트의 연주도 좋지만 그녀 목소리는 영혼의 농도처럼 강렬해요. 사실 그녀 목소리는 지금의 관점에서도 상당히 기괴한 측에 속하지요. 거의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마음을 헤집어놓으니까요.
그녀가 ‘의식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저는 그런 그녀의 음반과 거기에 관련된 글들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여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비트족이었어요. 지금 입장에서 보면 손질도 하지 않은 머리를 마냥 기르고, 지나치게 소박하거나 이국적인 옷을 겹쳐 입는 것이 과연 전통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1960년대였잖아요.
이상적으로는 전쟁(폭력)에 반대하고 자연(평화)에 관심을 쏟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구체적 측면에서는 미국사회 내에서 시민권운동과 인종의 문제가 불거졌던 시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적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해지던 시기기도 했고요.
이런 소란한 상황 속에서 록음악계의 이슈를 모은 재니스 조플린의 등장은 어딘지 의미심장합니다. 마이라 프리드만이 쓴 재니스 조플린 평전에는 이렇게 씌어있어요. “귀에 거슬리는 쉰소리는 놀라운 배음을 만든다.” 그리고 “기술적인 특이함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 호소가 청중을 압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리에 전율을 느낀다”고도 했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세대 의식과 성별 의식의 교차
그녀의 목소리 연주는 당시 부르주아적 전통에 반대되는 (아카데믹한 음악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성을 지녔어요. 그리고 귀엽거나 섹시한, 성스럽거나 지적인 스타일로 한정된 여성보컬의 규범성을 자유롭게 하는 사건이었고요.
편협한 사람들이 (기존 통념에)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여성들을 통칭할 때 다소 부정적인 어감으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듯이, 남다른 성적취향에 히피이며 여성이었던 이 범상치 않은 록뮤지션의 존재감은 분명 페미니즘을 상기시키는 무엇이었을 거예요.
물론 직접적인 정치행동의 차원에서는 재니스 조플린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없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Journal of Texas Music History”의 한 칼럼이 주장하듯이 재니스 조플린과 같은 인물들은 이데올로기의 대표자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삶의 모델이 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그 어떤 저명한 페미니즘 저서나 정치가보다도 즉각적이며 지속적인 영향을 발휘하니까요.
태어나서 자라난 텍사스에서 문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음악하는 히피가 된 그녀. 하지만 당시 히피운동은 여성주의적 한계가 있었고, 기성문화와의 결별을 선언한 공간에서조차 동등하지 않은 ‘성 역할’은 여전했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남자 같은’ 여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음악하기’에서도 왠지 자유와 구속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녀를 세대의식의 대변자로만 볼 수는 없어요. 블루스가 단지 핍박 받아온 인종(주로 흑인남성)이나 무산자들만이 아니라, 일방적인 호명을 거부했던 다양한 여성들의 음악이기도 한 것처럼, 그녀는 매번 다르게 반복되는 성별주의를 경험했을 ‘여성’이니까요.
기성세대의 폭력적인 문명을 거부했던 당시의 반문화운동이 삶의 태도에 있어 다분히 쾌락중심적이었고, 그 운동의 중심세력 또한 백인중산계급 자녀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것을 무력한 유토피아주의나 약물중독으로만 읽어낸다면 다른 한편에서 소용돌이 쳤던 페미니즘적 투쟁, 성적 구별에 대한 의문들은 삭제되어버립니다.
그래요, 그 쾌락은 중독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재니스 조플린도 다르지 않았기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어간 것이겠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여성의 쾌락을 죄악시하는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반기이기도 했어요. 결국 그 결과가 남성문화에 대한 모방적 행위로 석연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해도 말이죠.
흑인음악의 독특한 좌표, 미셀 엔데게오첼로
어찌 보면 사람들은 은연중에, 하나의 이름 안에 동일한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셀 엔데게오첼로(Me'shell Ndegeocello)의 음악이나 행보를 접해보면, ‘페미니스트적인’ 이름 안에도 다양한 차이들이 있음을 느끼게 돼요.
미셀 엔데게오첼로는 1990년대에 주류 음악계에 등장한 뛰어난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녀는 매 앨범마다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힙합적이고 재지(jazzy)하며 펑키(funky)한 사운드와 밀접하다는 정도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르를 의식하지 않아요. 리듬앤블루스적인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에는 록음악이나 여타 범주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고요.
영화 <상실의 시대>(Lost And Delirious, 2001)에 삽입된 “Beautiful”처럼 소울풀(soulful)한 음악의 그윽함도 그녀의 느낌이고, 무게 있고 예리한 베이스 연주를 비롯 리듬파트와 랩이 강조되는 앨범 [Cookie: The Anthropological Mixtape](2002)의 섹슈얼하면서도 냉소적인 이미지도 그녀의 것이에요.
그러고 보면 자기 음악이 특정 장르로 지칭되는 데에 반발하는 자존심 강한 뮤지션들처럼 그녀 또한 경계를 거부하는 음악가일지도 몰라요. 그것이 단순히 자유로움을 위해서든 특권적인 독자성을 위해서이든 말이죠.
메시지 자체보다는 지금 마음속에 담긴 말들을 이야기하는 듯한 보컬스타일, 사랑을 노래하는 팝음악 풍의 노래마저 독특하게 만드는 편곡법, 그리고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밝힌 문화인사.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당당히 알리면서도 그 어떤 이름도 거부하는 사람이지요. 미루어보건대 그녀 역시 스스로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거예요.
여성적 층위의 다양성, 그 음악적 양상
그녀는 어느 땐 흑인여성으로, 어느 땐 ‘남자 같은’ 여성연주자로, 또 어느 땐 양성애자로 미디어에 노출됩니다.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들은 일반(백인)남성의 시선을 통과하는 범위에서만 허락된 섹슈얼리티라는 점에서, 현시대 흑인여성의 사회적 처지와 유사한 지점이 있어요.
물론 지난 세기 내내 발전되어온 평등한 시민권을 위한 운동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흑인들의 집단적 체험을 가시화하고, 힙합음악과 같은 자기규정적인 문화들의 확산에 토대를 마련했지요. 하지만 계속되는 남성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상업적인 관점으로 흑인여성, 특히 그들의 성적 특성을 왜곡하고 있어요. 이는 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알려진 대로 제3세대 페미니즘은 벨 훅스(Bell Hooks)와 같은 흑인페미니스트들의 도전에 의해, 백인부르주아페미니즘이 주창하는 ‘전 지구적 자매애’가 개별 여성의 계급과 인종 등의 다양한 차이들을 무시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뮤지션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녀를 단순히 여성으로만, 흑인으로만, 양성애자로만, (어느 정도 성공한) 뮤지션으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의 폭을 가지고 있지요.
그녀를 단순히 여성으로만 대했을 때에 우리는 그녀가 왜 그토록 강력한 테크닉적 힘을 가진 ‘남성적’ 뮤지션으로 이미지화 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그녀를 흑인뮤지션으로만 대했을 때에는 그녀가 왜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낯설게 만드는 분위기를 뿜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고요.
그렇다면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미셀 엔데게오첼로의 커밍아웃과 음악적 행위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그 두 가지가 동일한 의도를 갖진 않겠지만, 적어도 일종의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요.
미셀은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악기연주의 압도적인 전문성과 자유분방한 힙합문화를 절묘하게 섞었어요. 그런 그녀의 음악을 접할 때 저는 상투성 안에 일종의 파동이 이는 걸 느껴요. 하나의 의미로 채워진 공간에 다른 분위기를 불어넣는 그것은 단지 남성적 영역 안에 여성적 의미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정체성의 구역 자체를 모호하게 하는 복잡한 이미지를 가져옵니다.
그녀를 세대와 인종, 성별의 차원에서 다룬 한 논문은 그녀의 음악이 배제되고 삭제된 흑인레즈비언문화에 ‘사운드트랙을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뮤지션을 좋아하진 않아요. 오히려 호감은 새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 새로움이 어떤 상황에서 펼쳐지느냐에 달려있을 때가 많지요.
분명 그녀는 우리 시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페미니스트의 전형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가 아티스트모델로서 매력적인 건, 흑인음악의 현재진행형 속에서 독특한 성격을 작동시키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힙합은 멋진 장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폭력성과 관계 있는 장르이기도 하잖아요. 헌데 저는 미셀이 가져온 힙합의 색채를 느끼면서, 한 이름을 가진 음악들이 각각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녀의 작업들은 힙합이 지닌 부정적인 정체성 앞에서 그 이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유롭게 경험 혹은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듯합니다.
그녀의 음악행위는 무엇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에 집중할 때에야 우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말해주는 듯해요. 그리고 그럼으로써만이 정체성―그것이 음악성이든, 계급성이든 간에―들의 닮음과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결국 그녀의 장르를 가로지르는 음악스타일은 거기에 스며드는 관계망을 이해하면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음악적 자유의 교감
이번 글에서 재니스 조플린과 미셀 엔데게오첼로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 자신의 음악을 이름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삼았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죠.
이를 재니스는 보컬리스트였고, 미셀은 전체 곡을 관할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니 당연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중음악은 작곡가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각 분야의 공동작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둘의 차이는 필연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재니스는 당시 주목받은 사이키델릭 록밴드들과의 음악적 유사성 안에서 목소리를 냈지요. 그 목소리는 일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침잠효과를 발휘했지만, 동시에 바로 거기에서부터 여성이라는 굳은 의미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표현이 시작되었어요. 그런가하면 미셀 엔데게오첼로는 흑인음악에 대한 보편적 시선을 벗어나는 이질성을 추구했지요. 물론 재니스의 목소리 연주도 그 시대 보편 코드를 넘어섰지만, 전체 곡 자체가 비슷한 분파에 비해 혁신적이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음악행위에 문화적 맥락의 다리를 놓음으로써, 스스로가 가진 정체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유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유는 무언가를 거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모델로 나아가는 실천을 포함하고 있어서 더욱 호소력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제게 이 뮤지션들이 이토록 흥미로운 건, 일차적으로는 그녀들이 모호하면서도 모순된 정체성의 상황들을 음악적으로 들려줬기 때문이지만, 보다 넓은 차원에서는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여러 가지 이름역할들에 정해진 특성들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흔히 그러하듯 저 역시도 소외된 감정을 공유할 모델을 사는동안 늘 필요로 해왔으니까요. 성지혜▣ 일다는 어떤 곳?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 Janis Joplin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여자 혹은 남자이지만, 백인 혹은 아시아인이지만, 어떤 계급 출신, 어디 사람이지만 그게 내 전부를 설명하는 건 아니라고, 일상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호소하잖아요.
낯선 집단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이해한다는 건,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유용한 면이 있지만 더 큰 오해를 만들 때도 많고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예술가들의 자기표현도 세상이 붙여준 이름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인 거 같아요.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 재니스 조플린
명백한 의미에서 거의 1세대 여성 록스타라고 불릴 수 있을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은 알려져 있다시피 사이키델릭 블루스록 싱어였지요. 블루스는 음악적으로 셔플리듬(shuffle rhythm) 위에 주로 세가지 코드의 배열이 반복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타리스트에 의해 주도가 되요.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곡 구조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짙은 슬픔―역사적으로는 흑인의 것이었던 애환―이 깔려있어서 역설적인 해방감을 주고요. 물론 요새는 블루스의 곡 구조만 차용한 밝은 분위기의 음악들도 많지만 말이에요.
사이키델릭 블루스록 싱어 재니스 조플린
그녀가 ‘의식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저는 그런 그녀의 음반과 거기에 관련된 글들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여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비트족이었어요. 지금 입장에서 보면 손질도 하지 않은 머리를 마냥 기르고, 지나치게 소박하거나 이국적인 옷을 겹쳐 입는 것이 과연 전통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1960년대였잖아요.
이상적으로는 전쟁(폭력)에 반대하고 자연(평화)에 관심을 쏟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구체적 측면에서는 미국사회 내에서 시민권운동과 인종의 문제가 불거졌던 시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적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해지던 시기기도 했고요.
이런 소란한 상황 속에서 록음악계의 이슈를 모은 재니스 조플린의 등장은 어딘지 의미심장합니다. 마이라 프리드만이 쓴 재니스 조플린 평전에는 이렇게 씌어있어요. “귀에 거슬리는 쉰소리는 놀라운 배음을 만든다.” 그리고 “기술적인 특이함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 호소가 청중을 압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리에 전율을 느낀다”고도 했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세대 의식과 성별 의식의 교차
재니스 조플린의 삶을 기록한 외서
편협한 사람들이 (기존 통념에)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여성들을 통칭할 때 다소 부정적인 어감으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듯이, 남다른 성적취향에 히피이며 여성이었던 이 범상치 않은 록뮤지션의 존재감은 분명 페미니즘을 상기시키는 무엇이었을 거예요.
물론 직접적인 정치행동의 차원에서는 재니스 조플린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없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Journal of Texas Music History”의 한 칼럼이 주장하듯이 재니스 조플린과 같은 인물들은 이데올로기의 대표자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삶의 모델이 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그 어떤 저명한 페미니즘 저서나 정치가보다도 즉각적이며 지속적인 영향을 발휘하니까요.
태어나서 자라난 텍사스에서 문화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음악하는 히피가 된 그녀. 하지만 당시 히피운동은 여성주의적 한계가 있었고, 기성문화와의 결별을 선언한 공간에서조차 동등하지 않은 ‘성 역할’은 여전했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남자 같은’ 여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음악하기’에서도 왠지 자유와 구속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녀를 세대의식의 대변자로만 볼 수는 없어요. 블루스가 단지 핍박 받아온 인종(주로 흑인남성)이나 무산자들만이 아니라, 일방적인 호명을 거부했던 다양한 여성들의 음악이기도 한 것처럼, 그녀는 매번 다르게 반복되는 성별주의를 경험했을 ‘여성’이니까요.
기성세대의 폭력적인 문명을 거부했던 당시의 반문화운동이 삶의 태도에 있어 다분히 쾌락중심적이었고, 그 운동의 중심세력 또한 백인중산계급 자녀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것을 무력한 유토피아주의나 약물중독으로만 읽어낸다면 다른 한편에서 소용돌이 쳤던 페미니즘적 투쟁, 성적 구별에 대한 의문들은 삭제되어버립니다.
그래요, 그 쾌락은 중독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재니스 조플린도 다르지 않았기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어간 것이겠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여성의 쾌락을 죄악시하는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반기이기도 했어요. 결국 그 결과가 남성문화에 대한 모방적 행위로 석연치 않은 흔적을 남겼다 해도 말이죠.
흑인음악의 독특한 좌표, 미셀 엔데게오첼로
미셀 엔데게오첼로 "Comfort Woman" 2003
미셀 엔데게오첼로는 1990년대에 주류 음악계에 등장한 뛰어난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녀는 매 앨범마다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힙합적이고 재지(jazzy)하며 펑키(funky)한 사운드와 밀접하다는 정도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르를 의식하지 않아요. 리듬앤블루스적인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에는 록음악이나 여타 범주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고요.
영화 <상실의 시대>(Lost And Delirious, 2001)에 삽입된 “Beautiful”처럼 소울풀(soulful)한 음악의 그윽함도 그녀의 느낌이고, 무게 있고 예리한 베이스 연주를 비롯 리듬파트와 랩이 강조되는 앨범 [Cookie: The Anthropological Mixtape](2002)의 섹슈얼하면서도 냉소적인 이미지도 그녀의 것이에요.
그러고 보면 자기 음악이 특정 장르로 지칭되는 데에 반발하는 자존심 강한 뮤지션들처럼 그녀 또한 경계를 거부하는 음악가일지도 몰라요. 그것이 단순히 자유로움을 위해서든 특권적인 독자성을 위해서이든 말이죠.
메시지 자체보다는 지금 마음속에 담긴 말들을 이야기하는 듯한 보컬스타일, 사랑을 노래하는 팝음악 풍의 노래마저 독특하게 만드는 편곡법, 그리고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밝힌 문화인사.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당당히 알리면서도 그 어떤 이름도 거부하는 사람이지요. 미루어보건대 그녀 역시 스스로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거예요.
여성적 층위의 다양성, 그 음악적 양상
Me'Shell NdegeOcello "Bitter" 1999
물론 지난 세기 내내 발전되어온 평등한 시민권을 위한 운동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흑인들의 집단적 체험을 가시화하고, 힙합음악과 같은 자기규정적인 문화들의 확산에 토대를 마련했지요. 하지만 계속되는 남성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상업적인 관점으로 흑인여성, 특히 그들의 성적 특성을 왜곡하고 있어요. 이는 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알려진 대로 제3세대 페미니즘은 벨 훅스(Bell Hooks)와 같은 흑인페미니스트들의 도전에 의해, 백인부르주아페미니즘이 주창하는 ‘전 지구적 자매애’가 개별 여성의 계급과 인종 등의 다양한 차이들을 무시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뮤지션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녀를 단순히 여성으로만, 흑인으로만, 양성애자로만, (어느 정도 성공한) 뮤지션으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의 폭을 가지고 있지요.
그녀를 단순히 여성으로만 대했을 때에 우리는 그녀가 왜 그토록 강력한 테크닉적 힘을 가진 ‘남성적’ 뮤지션으로 이미지화 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그녀를 흑인뮤지션으로만 대했을 때에는 그녀가 왜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낯설게 만드는 분위기를 뿜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고요.
그렇다면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미셀 엔데게오첼로의 커밍아웃과 음악적 행위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그 두 가지가 동일한 의도를 갖진 않겠지만, 적어도 일종의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요.
미셀은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악기연주의 압도적인 전문성과 자유분방한 힙합문화를 절묘하게 섞었어요. 그런 그녀의 음악을 접할 때 저는 상투성 안에 일종의 파동이 이는 걸 느껴요. 하나의 의미로 채워진 공간에 다른 분위기를 불어넣는 그것은 단지 남성적 영역 안에 여성적 의미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정체성의 구역 자체를 모호하게 하는 복잡한 이미지를 가져옵니다.
그녀를 세대와 인종, 성별의 차원에서 다룬 한 논문은 그녀의 음악이 배제되고 삭제된 흑인레즈비언문화에 ‘사운드트랙을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뮤지션을 좋아하진 않아요. 오히려 호감은 새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 새로움이 어떤 상황에서 펼쳐지느냐에 달려있을 때가 많지요.
분명 그녀는 우리 시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페미니스트의 전형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가 아티스트모델로서 매력적인 건, 흑인음악의 현재진행형 속에서 독특한 성격을 작동시키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힙합은 멋진 장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폭력성과 관계 있는 장르이기도 하잖아요. 헌데 저는 미셀이 가져온 힙합의 색채를 느끼면서, 한 이름을 가진 음악들이 각각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녀의 작업들은 힙합이 지닌 부정적인 정체성 앞에서 그 이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유롭게 경험 혹은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듯합니다.
그녀의 음악행위는 무엇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에 집중할 때에야 우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말해주는 듯해요. 그리고 그럼으로써만이 정체성―그것이 음악성이든, 계급성이든 간에―들의 닮음과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결국 그녀의 장르를 가로지르는 음악스타일은 거기에 스며드는 관계망을 이해하면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음악적 자유의 교감
미셀 엔데게오첼로 "Peace Beyond Passion" 1996
이를 재니스는 보컬리스트였고, 미셀은 전체 곡을 관할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니 당연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중음악은 작곡가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각 분야의 공동작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둘의 차이는 필연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재니스는 당시 주목받은 사이키델릭 록밴드들과의 음악적 유사성 안에서 목소리를 냈지요. 그 목소리는 일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침잠효과를 발휘했지만, 동시에 바로 거기에서부터 여성이라는 굳은 의미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표현이 시작되었어요. 그런가하면 미셀 엔데게오첼로는 흑인음악에 대한 보편적 시선을 벗어나는 이질성을 추구했지요. 물론 재니스의 목소리 연주도 그 시대 보편 코드를 넘어섰지만, 전체 곡 자체가 비슷한 분파에 비해 혁신적이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음악행위에 문화적 맥락의 다리를 놓음으로써, 스스로가 가진 정체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유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유는 무언가를 거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모델로 나아가는 실천을 포함하고 있어서 더욱 호소력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제게 이 뮤지션들이 이토록 흥미로운 건, 일차적으로는 그녀들이 모호하면서도 모순된 정체성의 상황들을 음악적으로 들려줬기 때문이지만, 보다 넓은 차원에서는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여러 가지 이름역할들에 정해진 특성들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흔히 그러하듯 저 역시도 소외된 감정을 공유할 모델을 사는동안 늘 필요로 해왔으니까요. 성지혜▣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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