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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금지된 소설을 읽다…문학으로 저항하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2. 19. 14:05

아자르 나피쉬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문학의 위상은 시대마다 다르다. 문학만이 그럴까? 모든 예술 분야들은 특정 시대에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왕성하게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이어서 다른 영역에 그 주도권을 넘긴다. 아마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의 영역은 확장되니, 한 시대와 호흡하는 데 적절한 예술양식 역시 변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금의 경우, 문학은 영상 분야에 비해 날카롭게 현실을 조망하거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뒤쳐진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자조적인 질문 속에 갇힐 필요는 없다. 세계 그 어딘가에서 문학으로 세상을 읽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영문학을 전공한 이란의 여성교수 아자르 나피쉬가 쓴 <금지된 소설에 대한 회고-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자조적인 질문에 원칙적이고도 힘있는 대답을 제공한다.

그녀는 격동의 이란 정치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이란은 20세기 초반부터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왕조와 이를 반대하는 민족주의 세력 및 이슬람주의 간 갈등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결국 1979년 이란의 팔라비 국왕은 국외로 추방되고 근본주의자이자 ‘반미의 화신’으로 유명한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신정통치를 하게 된다.

호메이니가 추진한,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를 향한 종교 혁명은 이란인 육만 명 이상을 희생시켰으며,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가차없이 체포, 처벌됐다. 또한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된 이라크와의 전쟁은 이란 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이슬람 원리주의는 단 하나의 ‘올바른’ 이데올로기로서 여타 사상을 배제하고 탄압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혁명 이후 이십여 년에 걸쳐 테헤란 거리는 전투지역으로 변했다. 규율에 순종하지 않는 여성들은 마구잡이로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란의 급변한 정치사는 혁명 이전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기억의 단절과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원리주의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좌절을 안겨주었다.

문학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 같은 억압적인 분위기에 아자르가 몸담은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여학생들은 강의시간에 늦어서 층계를 뛰어올라갔다거나 복도에서 웃었다거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고 해서 처벌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아자르는 문학작품을 현실의 복사판으로 바라보고 일면적인 잣대만을 들이대는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힘겹게 문학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턱수염을 기르지 않는다거나 이성과 악수를 한다거나 공적인 모임에서 손뼉을 친다거나 휘파람을 부는 행위도 서구적이어서 퇴폐적이라고 간주되었으며,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문화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꾸민 음모의 일부였다.” 아자르는 <위대한 개츠비>가 간통과 물질주의를 전파하는 소설이 아니라, 부로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한 남자의 좌절을 그린 소설임을 알리기 위해 <위대한 개츠비>를 피고로 설정하여 모의재판을 열기도 했다.

서구 문학작품들의 판금 조치, 날마다 행해지는 시위로 인한 휴강, 원리주의자 교수, 학생과의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교수 생활은 결국 약 2년 만에 끝난다. 대학을 그만둔 후 그녀는 자신이 만난 소수의 여학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독서모임을 꾸린다. 독서모임 자리에서 그녀들은 차도르를 벗고 머리카락을 내보이면서, 실로 인간으로 살기 위한 자유지대를 만들었다.

일상과 전쟁이 구분되지 않는, 실로 절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문학은 자신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 때문에 독서모임에 채택된 텍스트들은 ‘고전’의 무거운 벽을 깨고 이란 사람들의 현실로 내려왔다.

<롤리타>는 중년 남성을 매혹하는 ‘사악한’ 소녀(일명 롤리타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를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 남자 험버트에 의해 과거가 전유된 불행한 소녀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험버트의 시선으로 그려진 롤리타를 통해 독자들은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으며, 단지 그녀가 비극적인 역사를 살아왔음을 희미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독서모임 여성들은 이란의 현실에 빗대 롤리타의 과거가 험버트에게 보잘것없듯, 한때 자유로웠던 이란의 과거는 새롭게 종교적 과거를 되살리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는 하찮을 것이라고 논한다. 또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남성에 비해 결혼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란 여성들의 삶을 읽어내는 텍스트로 재배치된다.

고전만이 현실로 내려와 현실과 얽힌 것이 아니다. 토론을 하는 여성들 역시 서로 얽히면서 변화를 거친다. 이질적인 배경 때문에 처음에는 서먹했던 독서모임 여성들은 억압적인 현실에서 유리된, ‘마법의 공간’ 같은 독서 모임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비밀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친해진다.

아자르는 회고록에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들과 그녀들의 대화를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각각의 인물들이 골고루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민주적인 텍스트를 완성해냈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문학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문학의 효용성에 효과적으로 답하는 책이자, 급변하는 정치사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균형있는 스케치이기도 하다.
일다김윤은미

[필자의 다른 글] 자신을 찾아나선 미국의 흑인여성문학 / 김윤은미 2006/07/11/

댓글
  • 프로필사진 girl 제인 오스틴도 테헤란의 여성독자들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문학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들 이야기.. 가슴 뭉클해지고.. 작가들이 부럽네요.
    2009.02.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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