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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원래 그래?>(모리오카 마사히로 작, 김효진 역, 리좀)는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일반적인 가설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아래 깔린 마음의 구조를 분석한다.
지은이 모리오카 교수는 이 작업을 위해 ‘나’를 주어로 삼아서,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섹슈얼리티는 개인의 내밀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빼놓고서 일반화하는 작업은 무의미하다.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남성이 여성에게 휘두르는 성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경향을 가진 남자들의 마음이 무엇이며, 남성의 공격성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는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느끼지 못하는 남자’의 패배감
남성은 일반적으로 성욕이 강하고, 공격적이라고 여겨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 남성을 옹호할 때 흔히 나오는 주장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달리 해석한다. 여성에게 공격적인 남성 섹슈얼리티의 핵심에는 자폐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남성들 가운데는 ‘남성불감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남성불감증’은 지은이가 만든 신조어로, 남성들이 사정을 끝낸 뒤에 느끼는 허무감과 패배감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사정에 대해 “배설하는 한 순간의 쾌감을 거쳐 손바닥을 뒤집듯이 허탈감과 공허감과 패배감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남성이 사정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킨제이는 남성의 사정과 오르가즘을 동일시하며, 사정 이후에 닥치는 심리적인 허무감을 무시한 바 있다. 그래서 성매매 업소에 다녀온 경험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남성들은 상대방 여성이 어땠는가 대해 떠들 뿐 정작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느끼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 속에는 패배감이 있다고 본다. 성인 비디오와 영화에서 여성이 비현실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렇다고 애써 믿으면서 상처를 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 자폐적인 섹슈얼리티
지은이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남성들의 성 풍속도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페미니즘에서는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학대와 증오를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이러한 설명을 지지한다. 포르노를 이용해서 자위를 하는 남성에게는 ‘여자를 상처 입히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포르노는 “남자가 생각하는 대로 여자를 조종하고, 끝내 억지로라도 여자를 느끼게 해서 ‘사실은 너도 느끼고 싶었지’라고 잘라 말하고,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겨버린다.” 여기에는 일종의 자학적인 쾌감까지 포함된다. 남성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여성을 괴롭히면서 실제로는 느끼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간접적으로 괴롭히고 벌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에게 공격적인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자폐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되고, 실제로는 벌을 내리는 남성과 벌을 받는 남성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기분은 누구에게나 숨어있는 악이므로, 여성학대적인 포르노를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게 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롤리타콤플렉스, 미소녀아이돌, 교복 페티쉬의 망상
교복을 입은 소녀에 대한 페티쉬 또한 비슷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기에, 보다 크고 초월적인 쾌감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교복을 입은 소녀를 보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구도는 극히 위험한 마음을 배경에 깔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구조다. 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교복을 입은 소녀를 보면서 느끼는 아련한 향수에는, 마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주입식 교육처럼 상대방 소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남성들의 롤리타 콤플렉스나 미소녀 아이돌에 대한 집착도 비슷하다. 유념해야 할 사실은 롤리타 콤플렉스 남성으로부터 성적인 피해를 당하는 소녀가 많다는 것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나 미소녀 아이돌 모두, 소녀가 초경을 맞이하여 2차 성징에 들어서는 연령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소녀 아이돌 제작자들은 건강한 여자아이의 이미지 뒤편에 성적인 유혹의 이미지를 슬쩍 묻어놓는다. 그래서 미소녀 사진집을 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낀 남성들은 스스로 어떤 경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즉 건강한 소녀를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말았다는 데서 ‘두근거림’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도 소녀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에는 스스로 경계를 넘었다고 생각하는 남성과 ‘두근거림’을 느낀 남성이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지은이는 이 모든 설명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성불감증’의 문제는 자신의 성적인 경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딘가에 더 굉장한 쾌감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므로, 여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적 경험, 사정 이후에 닥쳐오는 허무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비틀린 대인관계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업은 체험을 서술한 모든 저작이 가진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리고 이미 페미니즘에서 여러 차례 지적해 온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여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또한 한국에도 여성학대적인 성 풍조가 범람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 분석한 현상들이 일본적인 것이라고 꼬리표를 붙이고는 한국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만한, 가치 있는 작업이다. 일다▣ 김윤은미
[필자의 다른 글] “남성들이여, 관계맺기를 배우자” / 김윤은미 | 2005/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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