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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의식을 하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마을 사람들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동네에 떡을 돌리다

 

“어이구, 이게 웬 떡이여! 아, 저기 보령댁네 집 사서 이사 온 새댁이구만~”

 

이사하고 떡을 해서 동네에 돌렸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새댁이, 새댁이”하며 반기셔서 기분이 우쭐해졌다.(알고 보니 할머니들은 육십이 넘은 사람한테도 ‘새댁이’라고 불렀다.)

 

“저 아래 낡은 집 고치고 들어온…”

“아, 그러시구먼. 폐가 같은 집을 아담하게 잘 고쳤더군요. 집이 하도 황량해 그 길로 잘 안다녔는데, 요즘은 일부러 그 길로 다녀요. 들어와 차 한 잔 해요.”

 

비구니 스님 절에서는 집을 잘 고쳤다고 찬사도 들었다. 이제 나도 이 마을의 주민이 된 것이다.


▶ 양피못 언덕에 있는 산수당(山水堂)    ⓒ 김혜련

 

남산 마을은 일종의 집성촌이다. 조선조 때부터 임씨들이 모여 살았다. 서출지엔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조선 현종 때 임적이 지은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남쪽 양피못 언덕에는 그의 아우가 지은 산수당(山水堂)도 있다. 아직도 주된 마을 구성원은 임씨들이다.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고 할머니들이 많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나처럼 이 마을이 좋아서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스님과 수행자들도 꽤 있다. 신라시대 땐 이 마을에 수십 개도 넘는 절이 있었다 하니, 스님들의 로망이 이 마을에 절을 짓는 것이기도 하겠다. 주말에 와서 별장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뭐하세요? 남편은, 애들은요?”

 

처음 마을에 드나들 때 사람들이 물었다. “뭐하세요?” “남편은, 애들은요?” 별 생각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닿는 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마을에 터를 잡을 마음을 내고 나니 그렇게 무성의한 대답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람들이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야 했다.

 

처음 만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묻는 말이 “뭐 하냐?”와 “남편은?”이었다. 그 질문에 할 말이 없어 어정쩡했다. ‘남편 없는데요’, ‘그냥 살아요’,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해요’, ‘내 먹을 건 내가 기르려고요’, ‘지구에 폐나 안 끼치며 살려고요…’ 내 안에서 어정쩡거리며 올라오는 말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말이 없었다. 사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분명했다. 나의 사회적 역할, 지위나 신분에 대한 질문이었다. 저 사람이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식별하는 기본 질문이 그런 것 같았다.

 

“예술하시나요?”

“집에서 노는 분 같지는 않고… 차 하시는 분이신가?”

 

경주엔 워낙 예술가들도 많고 차(茶道)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말이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어떤 직업도 없고, 누군가의 아내도 아니고, 특정하게 하는 일도 없는 나는 사회적으로 정체불명의 인간이었다. “정체를 밝혀라!”는 주문 앞에 “몰라… 없어.” 이러고 있는 꼴이었다.


▶ 마을 골목.   ⓒ 김혜련

 

이런 일이 낯설다는 것을 닥치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의외로 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비로소 내가 누린 어떤 혜택들이 보였다. 너무도 당연해서 보이지도 않았던 사회적 역할이나 소속감이라는 것 말이다.

 

직장 잃은 남자들이 왜 모든 것을 다 잃은 양 홈리스가 되는지, 은퇴 후 남자들이 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실업자나 ‘백수’가 겪을 그 정체성 없는 시간들이 이해될 듯했다.

 

이혼을 두려워하는 많은 여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혼이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 되는 사회에서 이혼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잃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교사가 되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 십여 년 직업을, 그것도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내 삶의 양지(陽地)가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겠다고, 삶의 허기를 끝내겠다고, 직업을 그만 두고 입산(入山)을 한 것이 혜택 받은 삶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보였다. 학교를 그만둘 때 동료들이 하던 말 “직장 그만두면 서러운 일 많을 거야, 대우가 다를 걸.” 그 다른 대우가 서럽지는 않았으나 낯설었다.

 

어쩌면 단순히 사회적 역할이 없어서가 아닐지도 몰랐다. 나 자신 아무런 정체성도 없어져 버린 게 그 질문들을 낯설게 느끼게 하는 건지 몰랐다. 마치 오랜 시간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니 세상이 너무 변해서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수년 간 산에서 수행의 세계에 있다 내려온 나는 세상이 낯설고 어리벙벙한 상태였다.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는데 나를 밝히라고 하니 입이 잘 안 떨어져 ‘어버버 어버버’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저 상식적인 물음 앞에 불심검문에 걸린 사람처럼 당황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교사하다가 명퇴했어요, 대학 다니는 아들이 있구요.”

이 정도의 이력이면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일 거였다. 나 혼자 끙끙거렸을 뿐.


▶ 집들이 음식 준비. ⓒ 김혜련

 

이제 나는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이사 떡을 돌리고, 그동안 알게 된 몇몇 지인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집에 대한 헌사’가 저절로 나왔다. 집들이 의식 때 집과 사람들을 향해 낭송했다.

 

남산 집에 부치는 글

 

1.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네 모습은 헐고, 상처 나고, 때 묻고, 덧대고, 험상궂고... 한 마디로 ‘너덜너덜’에 ‘덕지덕지’였지.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는 널 보고 지나쳤다가 다시 와서 보고 하길 얼마나 했나. 비록 네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데가 있었어. 남산을 배경으로 한 반듯한 터에 아담한 뒤뜰, 낮고 정겨운 처마, 소박한 우물, 아직 살아있는 장작불 아궁이, 재래식 변소…. 백년은 넘었다는 주인 할머니의 말대로 넌 백년을 넘은 세월을 견디어오느라 지쳐보였어.

 

처음엔 사랑스러웠겠다. 초가삼간, 말 그대로 오막살이 초가집. 대청마루를 사이에 둔 방 두 칸에 부엌 하나. 대한민국의 험난하고 척박한 역사가 네게도 그대로 남아 새마을 운동 지붕 개량으로 초가지붕은 시멘트 기와로 바뀌고, 한 때 정겹고 소박한 우리 물건들 죄다 버리고 플라스틱, 나일론 좋다고 바꾸던 시절 네 아름다운 흙돌담은 시멘트 블록으로 바뀌어져 뒤뜰에만 그 흔적 남아 있었지. 장작불 아궁이는 기름보일러로, 마당은 시멘트로 뒤덮이고, 게다가 시멘트 창고까지 들어서서 넌 처음의 모습 찾을 길 없이 황폐해졌어.

 

2.

그런데 말이다. 왠지 모르게 네게 자꾸 눈길이 가졌어. 어쩌면 넌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몰라. 네가 백여 년의 쓰린 세월을 견뎌왔듯 오십 여 년 삶의 쓰라림을 건너와 이제 평화롭게 깃들 공간 하나 찾는 내게 넌 또 다른 나였을지도 몰라. 네 원래의 어질고 허전한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곧 나 자신에 대해 그러한 것 같았어.

 

겹겹이 쌓인 세월의 먼지와 흉물스러움을 털어내고 본디 네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나 자신의 허황되고 과장된 욕망들을 털어내고 본디 좀 ‘어리버리’ 모자란 듯 어진 내 천성을 되찾는 일이었는지도 몰라. 비록 제 모습을 그대로 찾아내지 못했고, 어쩔 수 없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젖은 내가 널 또다시 이리저리 왜곡시켰지만 넌 제법 따뜻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네.

 

오랜 세월의 방황 끝에 외로운 영혼이 깃들 쉼터. 네가 지닌 고요와 평화 속에 깃들어서 난 좀 더 따뜻해지고 넉넉해져서 더욱 근원에 가까이 다가선다네.

 

3.

네가 무엇을 창조해낼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지상 낙원을 찾는 외로운 영혼들이 길을 가다가 문득 와 깃들지 않을까. 낙원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오래 방황하다 지친 영혼이 문득 깨달아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정직한 문을 발견하는 곳.

 

천년 넘은 터에 백년이 된 집. 속임 없는 삶의 깊은 쌓임에서 오는 고요와 평화가 있는 곳.

아, 너는 그런 곳이구나! (2009년 11월, 집들이 하는 날 쓴 글)


▶ 집들이를 하다. ⓒ 김혜련

 

이사 떡도 돌리고 집들이 의식도 하고 났으니 이제 이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일만 남았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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