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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살려서 ‘헌집 고치기’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수리하기①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헌집을 고치는 일은 손바느질 같은 거예요

 

집을 고칠 사람을 찾아야했다. 새 집을 지을 목수들은 많지만 낡은 집을 고칠 사람이 누굴까? 몇 사람을 찾아 집을 보여주었더니 다들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마침 동네에 낡은 집을 원형 그대로 살려 잘 고쳐 놓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을 고친 목수를 소개 받았다. 처음 일을 하던 분은 동네 목수였는데 얼마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중에 일을 맡았던 사람을 소개받았다.

 

▶ 공사 중의 집. 시멘트로 임시방편 덧붙인 것들을 걷어낸 집.   ⓒ 김혜련

 

공사 내역과 원칙을 의논했다. 전체적으로 집의 원형을 건드리지 않기. 원형을 파괴한 것들은 철거하기. 망가진 원형은 복원하기. 꼭 필요한 편리 시설은 새롭게 만들기.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붙여 놓은 시멘트 창고들과 무너진 시멘트 블록 담, 시멘트 마루, 마당에 덮인 시멘트는 철거 대상이었다. 원형대로 복원할 것은 부러지고 무너진 서까래들과 페인트와 니스 칠이 되어 있는 기둥들, 방의 천정 등이었다.

 

부러진 서까래는 새로운 나무로 교체하고, 페인트가 덧칠해진 기둥은 페인트를 벗겨내야 했다. 방의 천정은 기존에 쳐 놓은 낮은 방장을 걷어내고 서까래와 대들보를 그냥 드러내기로 했다. 시멘트 마루 대신 나무 마루, 블록 담 대신 흙돌담을 쌓고, 없는 대문을 만들어야 했다. 편리를 위해 새롭게 만들 것은 입식 부엌과 실내 화장실이었다.

 

소개받은 목수는 이미 낡은 집을 고친 경험이 있으니 일이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집을 고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는 번번이 좌절감을 느꼈고, 때때로 바보가 된 듯 했다. 그는 자기가 일하던 방식을 고수하려 했고,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아, 마루가 이 정도 크기는 돼야 뭐라도 할 수 있지!”

“통유리로 하면 전망도 좋고 좋지, 여름에야 에어컨 돌리면 되고!”

 

내가 원하는 게 집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에어컨은 들여놓지 않을 거니 통풍이 잘 되도록 해달라는 말도, 그에겐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깔봄’도 작용해서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 페인트를 벗겨낸 나무. 오래된 나무 특유의 은은한 갈색으로 빛난다.   ⓒ 김혜련

 

“아이고, 원래 그래. 그 사람들 자기 고집대로 하지, 말 안 들어.”

“집 한 번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 오십 넘어 집 두 번 지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겠어?”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위로가 됐다.

 

“이런 헌집을 고치는 일은 손바느질 같은 거예요. 한 땀, 한 땀 하는 거지. 새집 짓는 거야 재봉틀로 들들 박는 것처럼 쉽지, 쉬워.”

 

그렇게 애를 먹이다가도 목수는 가끔씩 이런 명언(?)을 해서 즐겁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낡은 옛집을 고치는 일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었다. 기계로 편리하게 짓는 현대식 건물과는 달랐다. 느리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대들보와 서까래…집의 숨은 역사가 드러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철거 작업이었다. 시멘트로 온통 덧댄 창고들을 철거하고 마당에서 시멘트를 걷어냈다. 집은 원형 그대로의 작고 소박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1평짜리 안채와 4.5평의 별채 건물이 원래의 제 모습을 드러냈다. 두터운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무 기둥들에서 페인트를 벗겨 냈다. 그러자 오래된 나무 특유의 살결이 햇빛 속에 드러났다. 원래의 나뭇결들이 살아난 연한 갈색의 나무는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 부엌 서까래. 그을음이 가득 낀 부엌 천정의 서까래들     ⓒ 김혜련

 

부엌의 그을음 낀 서까래를 닦는 작업은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고된 일이었다. 거친 그을음이 걷히자 오랜 시간 연기에 배인 나무의 검은 살결이 중생대의 거대한 동물의 등뼈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드러났다. 나무는 그을음이 배이면 잘 썩지 않는단다.

 

“하이고, 한 되빡은 되겠네~”

 

안방과 건넌방의 천정에 쳐 놓은 낮은 방장을 걷어내니 천정에서 쥐똥이 우수수 떨어졌다. 서까래가 드러나자 이 집의 숨은 역사도 드러났다.

 

서까래는 가늘었다. 게다가 구불구불했다. 동네 산에서 자란 잡목들을 가지고 서까래를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가는 서까래는 기와지붕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이 집의 원형은 초가(草家)였던 것이다! 소위 ‘촌집’으로 불리는 시멘트 기와를 덮은 집들은 원래 초가였던 것을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지붕 개량 사업 때 가벼운 시멘트 기와로 갈아 덮은 것이었다.

 

서까래 사이사이 드러난, 떨어져 나간 흙들을 다시 황토로 발랐다. 부엌과 방 천정의 나무들이 밝은 황토 사이로 드러난 모습은 아름다웠다. 검고 육중한 배를 드러낸 대들보와 가늘고 굽은 서까래들이 길고 오랜 시간을 드러냈다. 그 나무들이 산에서 자랐을 시간과 목재가 되어 이 집에서 지냈을 시간이 층층이 배인 나무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 서까래와 종도리. 가로로 긴 나무가 종도리인데, 이 집이 세워진 년도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 김혜련

 

거친 세월 속에 백년을 살아남은 ‘생존자’

 

집의 가장 큰 비밀은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나무에 낀 오래된 때를 조심스럽게 닦아내자 종도리(한옥 지붕구조에서 들보에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둘러 얹혀서 연직하중 또는 수평하중을 받는 가로재 중 하나)에 흐릿하게 드러나는 게 있었다. 상량식(上梁式,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릴 때 고사를 지내는 의식) 때 쓴 글자였다. 바로 이 집이 지어진 해와 날이 적힌 글자였다. ‘一千九百十…’ 마지막 해의 글자는 흐릿해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 집은 1910년대에 지어진 것이었다.

 

“내가 이 집으로 시집왔지, 아마 백년은 넘었을 게야.”

할머니의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백년, 백년이라니….

 

오십 여년 살아오면서 기억나는 것만으로 서른 번이 넘게 이사를 했다. 어린 시절 직업 없이 떠돌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광산촌을 떠돌아 다녔고, 대학 간 이후로는 기숙사나 친구 자취방, 입주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기저기 떠돌았다. 결혼 후 전셋집을 옮기고 또 옮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혼 후 친구들의 집에, 변두리 전세 집으로 전전했다.

 

부박한 떠돌이의 삶이 백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앞에 초라하게 비쳐졌다. 오십 여년을 살면서 수십 번의 이사를 하며 떠돌았던 나. ‘새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에서)가 삶을 지배한 시대를 살아온 나. 집이 ‘삶의 터’가 아니라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시간을 건너온 나. 오래된 마을이나 집을 무너뜨리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나….

 

집에 대한 경외심으로 저절로 옷깃이 여며졌다. 백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집.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시골의 집들이 마구잡이로 뜯기고 슬레이트집으로 바뀌던 시절, 그 거친 세월 속에 살아남은 집. 집은 ‘생존자’였다. 전쟁 같은 시간을 건너오면서 여기저기 덧붙이고 흉하게 일그러졌지만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집이 다시 보였다. 험한 세월을 살아낸 존귀한 존재. 가슴이 서늘해졌다!

 

▶ 벽에서 나온 문.  공사 중에 안방과 건넌방 사이 벽에서 마술처럼 문이 나왔다.  ⓒ 김혜련

 

백 살 마녀가 또 무슨 마술을 부리려나

 

집은 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존재답게 품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집을 고치는 일이 마치 유적을 발굴하는 것 같았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벽에서 마술처럼 문이 하나 나왔다. 그것도 아름다운 띠살문.

 

“식구가 느니 방이 작아, 그래서 대청마루를 방으로 만들었지, 그래서 안방이 커졌어.”

 

할머니는 원래 방 두 개 사이에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식구가 늘면서 마루를 방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마루와 건넌방 사이에 있었던 문이었다. 오랜 세월 여러 겹의 벽지가 발리고 또 발려서 두꺼운 벽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퇴적층처럼 뜯어도 뜯어도 계속 나오는 벽지를 다 걷어내고 문을 닦아서 제 자리에 달아 놓으니 처음 그대로인듯 딱 들어맞았다. 벽 대신 두 방 사이에 문이 생겼다. 무거운 벽이 문이 되자 집의 표정은 훨씬 밝아졌다.

 

건넌방엔 거의 방바닥에 붙어 있는 낮은 창이 있었다. 가로세로 각각 30-20센티쯤 되는 아주 작은 창이었다. 한옥에 관한 책에서 찾으니 일명 ‘눈꼽재기 창’이었다. 오래 된 집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귀엽고 장난스런 창이다. 누가 왔는지 그 창에 눈을 대고 보는 창이라 눈꼽재기 창이란다. 창의 이름이 사랑스러워서 자꾸 불러봤다.

 

“눈꼽재기 창아, 눈꼽재기 창아~”


▶ 눈꼽재기창. 방바닥과 거의 붙은 듯 낮게 달려있는 조그마한 창이다. 빛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 김혜련

 

창은 대답이라도 하는 듯 스며드는 빛에 은은히 빛났다. 이 집엔 아궁이와 연결되어 있으니 그 창으로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서 방으로 들여 주었으리라. 따뜻한 아랫목에서 ‘헤헤’거리며 삶의 아늑함으로 뒹굴었을, 애호박 같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아이들… 그 땐 집도 왁자지껄 즐거웠겠다.

 

“여기도 아궁이가 있었지. 여그던가…”

내가 처음 이 집을 둘러보면서 ‘아궁이’에 감탄하자 별채에도 아궁이가 있었다며 위치를 알려주신 할머니의 말을 기억해냈다. 알려준 위치를 파내니 정말 아궁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을 때보니 불길이 아주 잘 들었다.

 

“백년 먹은 마녀 같아, 정말 마녀 맞아, 또 무슨 마술을 부리려나…”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마녀의 의식이라도 되는 듯 집을 빙글빙글 돌며 즐거워했다.  ▣ 김혜련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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