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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마을에서 집을 만나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대문도 없는 낡은 집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1.

 

매일 남산마을에 갔다. 마을길을 따라 산책하고 동네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비어있는 집이나 팔려고 내놓은 집이 있는지 물었다. 가끔 ‘염불사’에 가서 아무도 없는 법당 옆의 다실(茶室)에 홀로 앉아도 있었다. 돌조각의 아름다운 보살상 앞에서 그 보살처럼 앉아도 보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맞고 돌아왔다. 마을의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며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남의 집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문도 없는 낡은 집을 보았다. 주인을 불러도 사람이 없는 듯 했다. 발이 그냥 저절로 걸어 들어가졌다. 마당에 잠시 가만히 서 있다 나왔다. 집에 가서 누웠는데 낮에 보았던 그 집이 눈앞에 가득 찼다.


▶ 남산이 바라보이는 작고 낡은 집. 대문도 없고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담은 무너지고 있었다. ⓒ 김혜련

 

다음 날 다시 갔다. 칠십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팔려고 내놓은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임자가 아직 없네.”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러구려~”

 

할머니는 심드렁했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대부분의 시골집들이 그렇듯 기역자로 위치한 두 채의 집이었다. 뒤뜰로 가보니 본채의 작은 방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어머나~ 아궁이가 있네. 불 땔 수 있어요?”

“이제는 때진 않지! 우리 소 기를 땐 그 가마솥에다 소여물을 끓였지.”

 

그러고 보니 본채와 사랑채 사이엔 “세상에나~ 우물도 있다!” 들여다보니 제법 깊었다. 나는 귀중한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햇살에 아룽거렸다.

 

집을 둘러보고 있는 데 뭐랄까,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다. 낡고 험한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전형적인 민가 규모의 작은 집은 가난하지만 품격을 지닌 사람처럼, 남루했지만 제 격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낮은 남산과 어울리게 나지막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 마을에 더러 있는 크고 높은 골기와 집들과 달리 이곳의 자연과 어울리는 집이었다.

 

▶ 별채 옆 깊이가 5미터쯤 되는 우물, 물이 마르지 않고 살아있다!   ⓒ 김혜련

 

그렇지만 집의 전체 모습은 말할 수 없이 퇴락했고 황량함 그 자체였다. 대문도 없고,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담은 여기저기 무너지고, 지붕은 내려앉고, 처마 부분의 서까래는 거의 다 부러지고,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고, 덕지덕지 덧대어 놓은 작은 창고인지 뭔지 모를 것들… 게다가 마당 안엔 커다란 시멘트 창고까지 있었다.

 

집 내부 또한 그랬다. 천정은 머리가 닿을 듯 낮고 어두웠다. 부엌은 을씨년스럽고 여기저기 곰팡이가 올라와 있었다. 사랑채는 창고처럼 황량하게 헐어 있고, 뒤에 붙어있는 시멘트 블록 건물은 도무지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집에 끌렸다. 가슴 깊이 어떤 안도감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2.

 

“이 험한 집을 사서 어쩌려고 그래요?”

 

당장이라도 그 집을 계약하고 싶었지만 먼저 그동안 안면이 생긴 몇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줬다. 그들은 하나같이 반대했다. “너무 낡아서 고칠 수도 없다”, “고친다 하더라도 비용이 엄청날 거다”, “차라리 집을 새로 지어라.” 늘 현실감이 부족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참고하는 게 잘 하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슴이 좀 쓰리지만 잊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은 가슴에 더 깊이 다가왔다.

 

나는 시멘트로 온통 때워진, 거의 폐가(廢家)인 집에 왜 그리 끌렸을까? 첫 만남의 순간, 그 깊은 울림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원형적 그리움을 불러내는 그 무엇이었다. 거의 직관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절실한 그리움.

 

▶ 불을 땔 수 있는 살아있는 아궁이. 왼쪽 옆에는 조그만한 눈꼽재기 창이 있다.   ⓒ 김혜련

 

불을 때는 아궁이와 여전히 살아있는 우물, 부엌 천정의 그을음 낀 서까래,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짚 섞인 진흙들, 정결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뒤뜰의 작은 텃밭. 그 옆에 겨우 살아 남아있는 흙돌담…

 

그것들은 집의 근원적 흔적이었다. 궁핍한 삶이 필요에 따라 덧붙여 놓은 시멘트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집의 원형이었다. 삶의 희로애락을 다 받아들인 눈빛 같이 묵묵히 빛나는.

 

그 흔적들이 나를 흔들었다. 광산촌의 어린 시절부터 오십 너머까지 황량한 내면에서 끊임없이 갈망해왔던, 원형적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다. 무르익은 시간의 퇴적층이 시멘트 더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남루 속에 드러난 원숙한 흔적들을 보았던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건 집의 앉음새였다. 집은 땅에서 돋아난 듯 나직했다. ‘하늘’의 집이 아니라 ‘땅’의 집이었다. 남산이 길게 내려온 자락에 피어난 듯, 내려앉은 듯, 깃든 집이었다. 말하자면 겸손한 집이었다.

 

‘겸손함’이라니! 나는 삶의 공허를 넘어서기 위해 평생 ‘저 너머’를 향한 삶의 초월을 추구했다. 그것은 불안과 오만이 뒤섞인 몸짓이었다. 어디에도 깃들지 못하는 끝없는 추구라는 면에서는 ‘불안’이었고, 이 땅위에서의 구체적 일상을 부정한 면에서는 ‘오만’이었다. 그러나 그 초월에의 갈망은 시간의 퇴적이 이루어내는 원숙한 굳건함과 삶에 대한 어떤 겸허함에 이르고자 하는 무의식적 갈망이 아니었을까.

 

▶ 처마의 부러지고 떨어져 나간 서까래와 진흙들.  ⓒ 김혜련


3. 

 

집이 그리웠다. 잊자고 하던 집을 다시 찾았다. 봄볕이 가득 들어와 있는 집은 고즈넉했다. 다시 보아도 집은 편안했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듯 집을 그리워하며 드나들었다. 이른 아침과 한낮, 비오는 저녁과 달 뜬 밤, 여러 날, 여러 시간에 집을 찾았다.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은 여기다. 새 집을 짓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집만 한 게 또 어디 있으랴. 안되겠다. 타지에 살지만 집을 제대로 봐줄 만한 사람을 모셔 와야겠다.’

 

그마저 반대하면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만한 자리 만나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집은 고치면 되겠고, 집의 규모도 괜찮고, 무엇보다 남산이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위치네요.”

 

뒤돌아볼 것도 없었다. 계약을 했다.


▶ 뒤뜰에 있는 텃밭. 채소들이 봄빛에 반짝인다. 백년쯤 된 흙돌담이 뒤에 서 있다.   ⓒ 김혜련

 

4.

 

“아파트로 가야지.”

 

집을 팔고 어디로 가시냐는 내 물음에 할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이 집으로 시집을 왔다’는 할머니에게 집은 자신의 평생이었을 것이다. 집과 할머니는 한 몸이었을 게다. 여러 자식들이 자라고 꽤 오래전에 이 둥지를 떠났을 것이다. 할머니의 육신은 쇠잔해지고 더 이상 아이들이 살지 않는 집도 할머니 몸처럼 쇠잔해졌을 게다.

 

집은 세월과 함께 무르익지 못하고 순간순간 편의를 위해 시멘트로 땜질됐다. 결국 할머니의 몸을 더 이상 평안하게 담아줄 수 없을 정도로 퇴락해버렸다. 삶의 짙은 원형적 모습을 여기저기 흐릿하게 드러낸 채… 할머니는 자신과 한 몸이었을 이 오랜 집에서 쫓겨나 ‘아파트’에 갇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집을 다시 살려야 한다. 이 집에 다시 생기(生氣)가 돌게 할 것이다. 그 생기는 젊은 날의 혈기어린 생기가 아니다. 희로애락을 겪어낸 시간의 두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생기일 것이다.’

 

집을 고칠 방향이 분명해졌다. 시간의 퇴적층을 그대로 드러내고 유지할 것, 최소한의 개조로 편안함을 더할 것. 집의 ‘겸손함’을 그대로 유지할 것.

 

그것은 남산자락이라는 유구하고 아름다운 삶의 “장소에 대한 예의”(이일훈, <모형 속을 걷다>)이고 이 겸손한 집에 평생의 흔적을 새겨 넣은 주인 할머니의 삶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 집에 깃들어 살게 될, 무시하고 학대해온 내 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집을 다시 살려낸다는, 가슴 설레는 창조적인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혜련/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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