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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대한 나의 언어는 욕설이었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밥의 발견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왜! 내가 다 큰 남자의 밥을 해줘야 하지?

 

‘사막이다. 끝없는 열사의 사막,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휩싼다. 목이 마르다. 물, 물, 물… 가야만 한다. 걸을 수가 없다. 모래 구덩이에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코브라가 도사리고 있다. 으아악~ 간신히 방향을 튼다. 이번엔 해골이다. 아아악~! 온몸은 땀에 절고, 목은 타들어간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

 

한 남자가 부엌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이다.

 

▶ <반쪽이의 육아일기>(1992). 부엌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으려는 한국 남성들을 풍자한 작품.

 

거의 이십여 년 전쯤이었나.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할 수 없으나 내 기억 속의 ‘반쪽이’ 만화다. 만화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나올 지경까지 웃어야 그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 만화는 남자들이 부엌으로 갈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감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반쪽이 만화를 간신히 찾아냈다. <반쪽이의 육아일기>(1992) 내 기억과 실제의 만화는 달랐다. 기억의 변조라니!)

 

“아니, 해 둔 반찬 하나 못 꺼내 먹나?”

“다 해놓은 밥 그냥 차려만 먹으면 되는데 그걸 안 해.”

 

여자들이 이해할 수 없어하는 남자들의 행태다. 내 웃음은 이해와 공감에서 터져 나온 거였다. 그 저항감은 다름 아닌 바로 내 것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허(虛)를 찔린 사람처럼 웃고 또 웃었다.

 

내가 밥을 하려고 할 때 느끼는 게 바로 그런 저항감이었다. 나는 ‘밥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지쳤다. 그러니 밥을 하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 일 톤 트럭의 무게로 등에 달라붙어 있는 밥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기어갔다.

 

숱한 밥하기의 기억더미를 아무리 뒤져도 즐겁게 한 밥의 기억이 없다. 자취할 때든, 결혼을 해서 밥을 할 때든, 이혼하고 아이와 먹을 밥을 할 때든… 언제나 밥하기는 내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할 수 없어 하거나, 최상의 형태가 의무였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있다. 일에 지치고 돌아와 다시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이 무슨 밥하기가 즐거울까. 허구한 날 해야 하는 밥, 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지워진 의무가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밥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런 일반론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난 밥하는 것을 거의 증오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밥이어도, 어쩌다 하는 밥이어도, 방학에 하는 밥이어도, 언제나 밥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재혼해야지.”

 

이혼하고 사는 내게 가끔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었다. 재혼을 하겠다는 마음 같은 건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같이 살아볼 수는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밥이 떠오르면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를 위해 삼시 세끼 밥을 해야 한다면 난 결코 그를 사랑할 수 없을 거였다. “왜?”라는 저항이 분노에 차서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왜, 내가 다 큰 남자의 밥을 해줘야 하지?” 있지도 않은 남자를 향해 얼굴이 벌게지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밥하기’

 

내가 생애 처음으로, 밥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시작하면서 들여다 본 건 밥하는 일에 대한 지나친 저항이었다. 무슨 철 천지 원수 대하듯 밥하기를 대하는 내 심리적 기저가 무엇일까.

 

밥하기를 몹시 싫어하는 게 엄마 영향이라는 것만 막연히 알았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집안일이 일방적으로 여자들의 일로 규정된 사회에서, 더구나 그 일이 낮고 천한 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집안일을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허구 헌 날 해도 빛도 안 나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니 그 일 자체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일을 평등하게 나눌 수 있을까, 사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했다.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일을 낮고 천한 일, 무가치한 일, 여자들의 ‘자기실현’의 발목을 잡는 일로 규정하고 있었다. 누군가 해야만 하지만 가능한 안하면 좋은 일이 그 일이었다.

 

▶ 밥하러 가기. 반쪽이 그림을 패러디해서 내가 그린 것.  ⓒ김혜련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쁘죠.”

“내가 한 밥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람이 있죠, 뿌듯해요.”

 

여자들이 밥하는 일의 보람이나 기쁨을 이야기하면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그 여자들이 가부장제에 세뇌되어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자기최면이거나. 내게 없는 경험이니 타인의 경험을 의심하고 제 멋대로 왜곡했다.(쓰면서 매우 부끄럽다.)

 

나는 일에 지친 날 아들에게 밥을 해 준 뒤에는 어김없이 ‘복수’를 했다. 아들이 TV라도 보고 있으면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얼마나 힘들여 해 준 밥인데 그걸 먹고 딴 짓을 하다니…’ 이런 나를 알기에 대충 자장면이나 시켜먹고 아이에게 느긋하게 대하는 게 상책이었다.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밥 먹기’

 

그러고 보니 나는 ‘밥하기’ 이전에 ‘밥 먹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게 밥은 할 수 없어서 먹는 생존의 차원이었다.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먹어야 하지만 가능한 안하면 좋을 일이 그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까지 알 약 하나 삼키면 배가 불러지는 그런 약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그런 약을 발명하면 대박이 날 텐데, 왜 아무도 개발을 안 하지? 마음속으로 동동거렸다. 내겐 밥 먹는 일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서’ 같은 게 도통 없었다.

 

“식구들과 밥 먹을 때요!”

 

교실에서 제자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었을 때 아이들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가?’ 심드렁했다.

 

“엄마가 파전 좋아하는데, 혼자 먹으려니 걸리네…”

 

가까운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같이 먹었으면 하고 바랄 때, 난 그 감정이 뭔지 잘 몰랐다. 그저 ‘뭐 그런가보다’ 했다. 이런 나를 한 친구는 ‘냉혹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밥=목숨=엄마=따뜻함’ 정서에 끼지 못한 삶

 

▶ 또하나의 문화 9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밥하기’에 대한 지나친 저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밥의 역사를 들춰 봐야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을 최초의 맛으로 기억한다. 처음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기억은 오히려 선명해지고 향수는 깊어만 간다.” -허영만의 <식객>(食客)

 

많은 사람들은 밥과 엄마를 등치시킨다. 밥과 엄마처럼 강하게 연결되는 게 또 있을까? 거의 모든 이에게 원초적인 그리움의 밥으로 떠오르는 건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이다. 중년 남자들이 어울리지 않게 눈 가장자리가 축축해질 때도 밥과 엄마 이야기를 할 때이다. 엄마가 해 준 밥에 대한 공통적 정서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공통정서이기도 한 듯하다.

 

그 공통정서에 끼이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밥=목숨=엄마=원초적 따뜻함’으로 연결되는 정서의 고리 밖에 서있는 사람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에 결코 공감할 자신의 경험이 없기에 부끄러워하거나 초라해하는 사람들. 또는 욕설 같은 것이 터져 나오는 사람들… 그러나 자기 언어가 없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경험들,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삶들.

 

나는 밥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안의 욕설들을 쏟아 내야 다음으로 나갈 것 같다.

 

“지긋지긋한 김씨 씨갈머리들…”

 

아침부터 먼 산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던 엄마는 초승달이 떠오를 때까지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또 하나의 문화’에서 무크지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1992)가 나온 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와 싸우고 나면 하루 종일 먼 산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던 엄마… 그리고 내게 있어 ‘몸으로 글쓰기’란, 욕으로 쓰는 글이 될 거라는 말을 했다. 내 안에 쌓인 욕들을 몇 권쯤 써야 제대로 된 언어가 올라올 것 같다고.

 

영화 소모임에서 <아들과 딸>(1992년 10월~1993년 5월까지 총 64부작으로 MBC에서 방영된 김희애,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남아선호가 심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드라마를 분석하는 자리였다. 드라마에서 ‘후남이’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너무 억지스럽다고,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냐고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 드라마가 너무도 생생하다고, 바로 내 이야기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침묵 속에 가라앉게도 했다.

 

밥에 대한 나의 언어는 ‘조또’, ‘씨바’…

 

<딴지일보>(1998년 창간) 초기 김어준이 딴지일보에서 자주 쓰이는 몇 가지 어휘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조또- ‘매우’ ‘아주’ ‘굉장히’ 등의 평상적인 단어로는 그 정도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경우 혹은 상황이 하도 기가 막히고 답답하여 ‘도대체’ ‘대관절’ 정도로는 그 심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경우 뒤에 나오는 동사나 형용사를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부사.

 

씨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 혹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에 남아있을 경우 전체 글의 종결구 또는 여흥구로 쓰이며 때로는 ‘조또’와 함께 부사로 활용되기도 하는 의성어.

 

그 시절, 그 정의에 공감하며 깔깔 웃었다.

 

‘밥’이 그렇듯, 내게 ‘밥에 대한 언어’들은 말이 되기에는 너무도 직접적인 어떤 것이다. 다만 속 끓는 울음이나 침 뱉듯 튀어나오는 ‘씨발’ 같은 욕설이나 뭐, 그런 몸으로나 표현될 수 있는 무엇이다. 나는 밥에 대해 ‘조또’, ‘씨바’ 해야만 하는 응어리가 있는 것이다.  김혜련  -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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