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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과서 논란, 어디까지 왔나

35년에 걸친 보수정권의 교과서 개입과 반대운동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특징인 일본의 이쿠호샤(育鵬社), 지유샤(自由社) 역사 및 공민 교과서(정치, 사회, 경제 일반)가 작년 오사카시 중학교에서 새롭게 채택되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이시카와현, 에히메현 등에서도 이 교과서가 채택된 바 있다. 그 배경에는 이를 부추기는 일본정치인들의 압력이 있다.

 

일본 정계의 교과서 개입과 이에 저항해 온 일본 시민사회의 운동을 살펴보기 위해, 류큐대학 명예교수 다카시마 노부요시 씨의 기고를 싣는다. 다카시마 씨는 현재 집필 교과서의 검정 결과와 관련해 재판을 진행 중이다. [편집자 주]

 

1980년부터 시작된 정치인들의 교과서 개입

 

일본에서 역사교과서에 대해 정치 개입이 시작된 것은 1980년에 처음으로 치러진 중의원·참의원 동시 선거가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선거 기간 중에 오히라 마사요시 수상이 급사한 데 따른 동정표 등으로 인해 보수당인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 자민당의 매파(강경 보수파)와 문교족(교육정책에 영향력이 있는 의원 일군)이 일제히 교과서 검정에 참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도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통과했던 마루키 이리, 마루키 도시 부부의 <원폭도>(부분)가 1981년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단계에서 삭제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며 문제가 되었습니다. <원폭도>와 마찬가지로 반핵, 평화를 호소하는 내용에 대해 ‘지나치다’며 변경한 사례들이 드러났고, 언론이 일제히 이를 보도했습니다.

 

1982년에는 교과서 내용 중에서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고쳐 쓰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이는 외교 문제로도 발전했고 일본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았지만, 자민당 문교족 의원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부성에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1997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교과서 관련 의원모임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이하 교과서 의원모임)이 탄생합니다. 핵심 멤버는 아베 신조 현재 수상과 故 나카가와 쇼이치 전 중의원이 있고, 요시이에 히로유키 현 문부과학성 부대신이 뒤를 이어 공공연하게 문부성에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 이쿠호샤·지유샤 역사 및 공민 교과서 표지. 그리고 위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아베 신조 수상, 나카가와 소이치 전 중의원의원, 요시이에 히로유키 문부과학성 부대신.  ⓒ 페민 제공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출현

 

교과서 의원모임이 설립된 같은 해 1997년에 대학교수인 후지오카 노부카츠 씨와 니시오 간지 씨에 의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도 발족했습니다. 이들은 전쟁과 침략을 반성하는 종래의 역사교과서를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산케이신문사, 후소샤(扶桑社)와 함께 교과서 편찬을 추진해 2001년에 <새로운 역사교과서>, <새로운 공민교과서>를 발행,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새역모의 교과서는 황국사관(皇國史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 역사관)과 아시아 침략에 대한 무반성, 인권과 평화에 대한 감각 결여 등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채택률은 극히 낮았습니다.

 

그 후 새역모는 내부 분열을 거쳐 후지오카, 니시오 그룹이 이끄는 새역모는 지유샤에서 교과서를 발행했습니다. 또 새역모에서 이탈한 야기 히데츠구 씨 등의 일본회의계(아베 수상을 비롯해 국회의원, 기업가,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일본 최대의 우파 보수조직. 정치 외에도 각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 사람들은 이쿠호샤에서 교과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의원모임과 자민당 보수파의 부추김으로 이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지만, 각 지역에서 폭넓은 반대운동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년 지유샤의 역사교과서는 겨우 567부만이 발행되었고, 10% 이상 점유를 목표로 하는 이쿠호샤 교과서는 7만5천238권이 발행되어 점유율은 6.3%입니다. 그리고 오사카시가 작년에 새롭게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지방교육행정법을 개정해 교과서 채택 방침 등에 수장(首長)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교육감이 권한을 갖는 구조를 만드는 등 가장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이쿠호샤 교과서를 전력 지원하고 있는 것에 반해, 채택률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수정주의(歷史修正主義,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기존 시각을 재해석하는 역사학의 한 분야. 일본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의 경우, 제국주의 침략을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등 국가주의 역사관을 뜻함) 교과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반대운동의 성과일 것입니다.

 

한편,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번에 신규로 검정을 통과한 마나비샤의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5천704부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교과서는 전현직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집필한 것으로 학생들 눈높이에서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자율적으로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유명 국공사립학교가 채택한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술했음에도 검정을 통과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교과서 채택의 투명성을 위한 ‘공개 청구’ 운동

 

교과서 채택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교과서 채택을 위한 심의회 등의 회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이 중요합니다. 시민들도, 언론도 계속해서 교과서 문제에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발언을 할 때, 방청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갖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보 공개 요구가 종종 거부당하고 있지만, 고액 수당을 받으며 교육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것은 이미 교육위원으로서 자질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의사록을 공개하는 것과 방청을 허락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듬어지고 정리된 것이 의사록입니다. 방청이 불가할 경우, 회의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도록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교육위원회 회의 공개 여부는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요코하마시의 경우 지역사회의 반복적인 요구에 따라 녹음 기록의 복사본을 제공한 바 있습니다.

 

보수 정권은 왜 교과서를 노릴까?

 

원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는 학교별로 채택해 구입했지만, 1962년 제정된 ‘교과서 무상법’과 1963년에 제정된 ‘무상조치법’에 의해 국가가 구입해 학생들이게 지급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학교별로 교과서가 다르면 경비 계산이 번잡하다는 이유 등으로 교과서를 무상 공급하는 대신 학교별 채택 권한을 없애고, 각 지자체 교육위원회에 채택 권한이 있다고 ‘지방교육행정법’ 규정을 확대 해석한 것입니다.

 

하지만 교과서는 원래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교육의 전문가인 현장 교사들이 골라 학교별로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교과서 채택에 대해 1996년 행정개혁위원회는 ‘규제 완화 추진에 관한 의견’(교육 분야)을 통해 ‘학교 채택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회답했습니다. 1997년에 이를 각의 결정했지만, 보수적인 정세 속에서 2009년 무렵엔 이 회답 자체가 무시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자민당 매파(강경 보수파)는 왜 사회과 교과서의 편향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을까요? 학교는 헌법 이념이 아이들에게 전파되는 현장입니다. 주권 의식이 전국 방방곡곡에 정착되면 성가신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민당의 정치인들이 역사와 사회과 교과서에 주목한 것입니다.

 

1980년부터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행해지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의 술수는 안타깝게도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와 더불어 ‘힘 앞에는 굴복하라’는 인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때 위기감을 갖게 됩니다. 아베 정권이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그러나, 작년 아베 정권이 추진한 ‘전쟁법안’에 대해 반대하며 실즈(SEALDs,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 같은 청년들이 등장함으로써 자민당은 예상은 무너졌습니다.

 

현재 자민당의 보수파 문교족들은 아베의 2차 집권기 하에서 교과서 문제를 소생시켰고, 헌법9조(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조항으로, 국제적 무력 행사를 영구 포기하며 전항을 위한 전력을 보유하지 않기로 선언)를 개정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아베의 노선을 계속 허용해야 할까요? 일본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라도 풀뿌리 차원의 반대운동을 펼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카시마 노부요시 글/ 고주영 번역/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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