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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의 양심이 파헤친 사법의 ‘부정의’

다큐멘터리 <두 명의 사형수> 감독 가마타 레이코



가마타 레이코 씨(30세)는 일본 도카이(東海)텔레비전 방송국 기자로, 다큐멘터리 <두 명의 사형수>를 만든 감독이다. 다큐멘터리는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의 심문 과정과 재판부의 오심 논란이 계속되었던 두 개의 살인사건 피의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강도살인방화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66년의 일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하카마다 이와오 씨의 이름을 따라 ‘하카마다 사건’이라고 불렸다. 또 하나의 사건은 1962년 미에현 나바리시의 ‘독포도주 사건’으로, 오쿠니시 마사루 씨가 피의자로 지명되었다. 두 사건 다 가마타 레이코 씨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가마타 씨는 왜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반세기가 흘렀지만, 식지 않은 기자들의 열정


▶ 도카이TV 방송국 기자 가카타 레이코(30세)  ⓒ페민


가마타 씨는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나 자랐고, 글쓰기를 좋아해 도쿄에서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학생 시절부터 행정기관의 재정 문제에 관심이 있어 졸업 논문은 홋카이도 유바리시의 재정 파탄을 다뤘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고, 알게 된 것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문 기자를 지망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08년에 도카이텔레비전에 입사한다. 이 방송국에서 여성이 기자로 채용된 것은 8년 만의 일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하카마다 씨는 본인이 일하던 전무집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검찰 심문 과정에서 자신의 자백이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몇 번이고 재심을 청구한 끝에, 수감된 지 47년이나 시간이 흐른 2014년 3월에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되었다. 석방은 되었지만 검찰은 즉시 항소했고, 재심은 시작되지 않았다.

 

한편 주민센터 모임에서 독극물이 든 포도주를 마신 주민 다섯 명이 사망한 나바리 사건에서 피의자 오쿠니시 씨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자백의 강요성이 인정되지 않아 유죄 판결이 났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홉 차례에 걸쳐 재심을 청구했고 여론도 이를 지지했지만, 끝내 재심은 이뤄지지 않은 채 54년의 수감생활 끝에 2015년 10월 옥사했다. 당시 나이는 89세였다.

 

도카이텔레비전은 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사건의 경과를 쫓으며 검찰과 사법부의 행보에 문제를 제기했다. 가도와키 야스로 감독의 <증언-수사보도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사이토 준이치 감독의 <약속-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사형수의 생애> 등 걸작으로 꼽히는 다큐멘터리를 몇 편이나 만들어낸 방송국이다. 사법기자로 배속된 가마타 씨도 투병 중인 오쿠니시 씨가 수용되어있던 하치오지 의료형무소를 취재차 오가게 되었다.

 

2014년, 사형수 오쿠니시 씨와 하카마다 씨를 다룬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방송국 선배인 사이토 씨는 입사 6년 차인 가마타 씨를 후속 취재기자로 점 찍었다.

 

“가마타 씨가 일하는 모습에서 나바리 사건을 마주할 수 있는 진지함을 느꼈습니다. 오쿠니시 씨 당사자를 취재할 수 없어서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을 취재하는데, 그들도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어요. 이를 이겨낼 끈기가 그녀에게는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일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은 가마타 씨밖에 없었어요.”

 

선배 언론인 사이토 씨는 “부당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의 의지를 젊은 가마타 씨가 이어받았다. “나바리 사건은 보도부 선배들의 열정이 담긴 굉장히 묵직한 바통이었기 때문에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피의자가 죽을 때까지 결론을 내지 않겠다는 사법부

 

가마타 레이코 씨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는 것에 대해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옆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나도 용의자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저 스스로도 갖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분들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두 명의 사형수>에서 오쿠니시 씨의 옥사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이어지는 나레이션은 “담장 안에서 반세기. 사법은 이것을 노렸던 걸까”이다. 여기에 가마타 씨의 분노가 응축되어 있다.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사법은 사람의 생명을 경시합니다. 법원도, 검찰도 시간을 무한정으로 쓰며 끝없이 심리하죠. 게다가 한번 사법부가 결정을 내리면 그 판례를 뒤집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재심의 문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사람의 목숨은 유한한 것입니다. 하카마다 씨는 ‘더 이상 그를 구치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는 의견에 따라 석방되었음에도, 검찰은 즉시 항고했죠. 하카마다 씨가 죽을 때까지 결론을 내놓지 않겠다는 태도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사람의 삶을 짓밟는 사법의 불합리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결백을 믿고 그를 돌봐온 누나와 동생, 새 증거를 찾아내어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가 이치에 맞지 않음을 입증해온 변호인단의 열정도 드러난다.

 

“국가라는 커다란 조직에 저항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두 분을 둘러싼 사람들에게는 누명을 벗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습니다.”

 

47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소한 하카마다 씨는 구금 후유증으로 인해 한동안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조차 어려웠다. 가마타 씨도 “면회 사절. 오지 마세요”라고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하카마다 씨가 좋아하는 장기나 복싱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신뢰 관계가 싹 텄다. 결국 장기는 가마타 씨의 취미가 되었다.

 

“사건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하카마다 씨도 오쿠니시 씨도 평범한 할아버지로 손자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 거예요.”

 

두 사람에게서 항상 ‘보통 사람’의 모습을 보는 가마타 씨의 시선은 유연하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가마타 레이코] 1985년 아이치현 나고야시 출생. 2008년 도카이텔레비전 방송국에 입사, 경찰/사법 담당 기자를 거쳐 2015년에 첫 다큐멘터리 작품 <두 명의 사형수>를 제작했다. 나고야 재개발 문제와 보육원 대기아동 이슈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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