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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국가관계 넘어 확장되는 ‘위안부’ 운동
세계곳곳 분쟁과 전쟁 속 성폭력 피해여성들과 연대
“현재 콩고에는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제 남편과 농장에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저희를 둘러쌌습니다. 그들은 남편을 죽이고 저를 숲으로 끌고 가서 강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당시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마치 세상밖에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 정대협 창립 25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 심포지엄 <전시하 여성폭력에 도전하는 국제 여성행동>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콩고의 사피 춘구라 바하티씨. (가운데) © 일다
사피 춘구라 바하티(Safi Chungura Bahati)씨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51세 여성이다. 그녀는 2012년 10월 다섯 명의 남성(M23 반군)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는 이제 두 살이 되었다. 사피 춘구라씨는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쫓겨나 여덟 명의 자녀들과 함께 피신했다.
“마을에서 남편의 가족들이 저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콩고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모르는 사람에 강간을 당하는 것이 금기시돼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인이 찍혔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동체가 제가 떠나길 요구했습니다.”
콩고, “반군들은 성폭력을 전쟁무기로 여긴다”
사피 춘구라씨는 지난 달 13일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창립 25주년을 기념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시하 여성폭력에 도전하는 국제 여성행동>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 사피 춘구라씨는 이 자리에 함께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참가자들로부터 큰 응원의 박수를 받았다.
함께 방한한 콩고의 미디어단체 레메드(REMED. Reseau Des Medias Pour Le Developpement) 소속 활동가인 무네나 왐밤보 텔레쇼어씨는 “콩고 동부와 북키부 주는 각종 무장단체들의 봉기와 이를 해체시키려는 정부의 군사 작전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군이 작전을 펼칠 때마다 민간인,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반군의 폭력과 인권유린이 급격히 늘어나는데, 콩고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북키부 주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확인된 사람만 5천932명에 달한다.
▲ 나비기금이 창설된 후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콩고의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이다. © 정대협 제공
이 지역 여성들은 반군에 강간을 당하거나 납치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일하는 농장조차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이로 인해 극심한 빈곤 상황에 놓여있다. 또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남편에게 파혼을 당하는 등 사회적 낙인에 시달리고 있다.
무네나 왐밤보씨는 “콩고 동부 지역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성폭력을 일반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전쟁무기(Arme de guerre)로 여기고 있다”고 말하며,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콩고와 베트남의 폭력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나비기금’
전시 성폭력 피해자이며 공동체로부터도 쫓겨난 사피 춘구라씨는 현재 비영리단체 우시리카(USHIRIKA)의 지원을 받고 있다. 우시리카는 콩고 북키부 주 지역에서 폭력 피해여성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 서로의 아픈 경험을 나누고 어려움을 극복해가고자 만들었다. 구성원은 남편과 가족,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대부분이며, HIV에 감염된 여성들도 있다.
우시리카는 여성들에게 임시 대피처를 제공하고 주거, 의료, 자녀들을 위한 교육 지원도 한다. 정대협은 작년부터 우시리카에 ‘나비기금’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비기금은 201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면 전액 전쟁 피해여성을 돕는 데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만들어진 기금이다. 일본 정부로부터 책임 있는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에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의 기부로 기금을 모아 운영된다.
▲ 나비기금이 지원하는 콩고의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모임 <우시리카> 여성들과 아이들 © 정대협 제공
나비기금이 콩고에 이어 두 번째로 손 내민 곳은 베트남이다. 작년 3월부터 베트남전쟁(1964~1973)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정대협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범죄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피해자들과 교류하고 있다. 안선미 정대협 평화팀장은 “해외에서 일본사람들을 만나면, 한국도 파병해서 그런 범죄(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냐고 묻는다”고 말하며, “당연히 정대협이 마주하고 책임을 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을 만나면 ‘한국 사람을 대표해서 내가 사과한다, 내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세요.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들하고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베트남 현지에 가서 피해여성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계속 사례를 발굴하고 나비기금 지원도 늘려가고 있습니다.”
분쟁 속 여성들에게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
정대협이 창립 25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서 전시 성폭력 근절을 향한 운동을 계속 펼쳐나가겠다”는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방향은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있으면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할머니들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정대협 측은 밝히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중동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내전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지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안선미 평화팀장은 “가끔씩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제는 국민들이 지겨워 한다는 말을 듣거나,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고 청산되지 않으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시 성폭력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위안부’는 지리학적으로도 아시아 태평양에 걸친 보편적인 문제에요. 문제의 근원은 ‘전쟁에서 일어난 여성 폭력’이죠. 할머니들도 문제 해결이 안 돼서 지금 고통 받고 계신데, 콩고나 시리아 등에서 할머니들이 당한 일을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여성들이 여전히 있어요. 전쟁에서 일어나는 여성 폭력, 그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대협은 12월 초 베트남으로 “나비기금과 함께 하는 나비평화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화기행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진행된 것으로, 베트남 전쟁이 남긴 상흔을 마주하며 나비기금을 전달받고 있는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과 만나 교류하였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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