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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 준 선물

[지구화 시대 ‘이주’의 감수성] 낯설고 새로운 질문하기



여행, 출장, 이주노동, 어학연수, 유학, 국제결혼, 이민 등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은 이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다>는 지구화 시대를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주’의 감수성을 들어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고향이 어디에요?” 정체성 고민이 시작되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시절에 한 한국인 유학생이 나한테 던진 질문 한마디 때문이었던것 같다.

 

“고향이 어디에요? 중국 고향 말고 한반도 고향말이에요.”

 

중국에서 태어나 스무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 그제서야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아버지 측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북한의 평안북도 출신, 어머니 측의 외증조할머니의 고향은 한국의 전주 부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반도와 연결시킨 나의 ‘민족’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 유학을 온 ‘한국인 동포’가 100여년 전 증조모부들이 중국에 정착하여 조선족 4세대가 된 나에게, 태어나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질문을 해주었기 때문에 시작된 고민이었다.

 

이후 중국의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유학으로 한국에 와서는 새로운 질문들을 받게 되었다. 외국인이냐, 동포냐, 다문화가족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성국회의원의 비율은 왜 이렇게 적냐고, 민족의 개념은 왜 국민의 개념과 같게 쓰이는가 하고.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조선족’이라는 신분

 

▲  한국에 온 지 8년차인 조선족 동포, 이해응씨 


이방인은 낯설다. 낯설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같은 ‘민족’에 대한 감정이 짙지만, 처음 만난 ‘낯선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나 ‘낯섦’이 새로운 질문을 가져오고 그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갖게 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새로운 질문은 서로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 성장의 기회를 부여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가깝게 하기도 한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2001년이었고 재외동포법이 제정된 지 2년차 되던 해였다. 교환연구원 신분으로 연구비와 생활보조금을 받고 안정적인 연구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이라는 신분은 결코 환영받거나 자랑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위장결혼’을 한 사람, 식당 이모, 가정부, 건설노동자로서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교포’라는 이미지로 덮여있었다. 특히 한국에선 ‘연변족’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조선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팽배했다.

 

그에 따라 나는 “유학공부하러 왔어요”, “중국에서 왔어요”, “고향은 연변이 아니라 집안시예요”라는 방어적인 대답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건 말건, 나의 지도교수조차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그 외의 지역에 사는 조선족을 구분할 수 있었을 정도로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은 그냥 집단적인 하나의 정체성일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한 개인의 존재감이 항상 상대방과의 연결 속에서 구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상대방의 시선에 따라 나 자신이 소극적으로 좀 더 나은 이미지로 이곳에 정착되기를 바라며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중심이 필요했다. 당사자로서의 주체성이 필요했다. 인간의 존재 자체는 항상 상대방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만, 주류 집단과 소수 집단 간의 관계는 늘 주류 집단의 시선 속에 소수 집단이 놓이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로 인해 소수 집단은 늘 주류 집단의 질문에 답해야 하지만, 역으로 주류 집단은 소수 집단의 관점을 잘 알지 못하며 이들의 질문을 잘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소수자의 위치에서는 중심과 주변의 사회 구조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유학공부를 하며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인 내 인식론의 변화이다. 여성학을 전공한 것은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질문들이 곧 연구 주제가 되었고, 논문이 되었고, 나를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게끔 이끌었다.

 

학생들에게 국적과 시민권에 대해 물었더니…

 

나에게는 ‘질문을 받는 사람’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를 보다 더 잘 알아야 하고 더 많은 한국사람을 만나야 했다. 또 한국에 온 많은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재외동포법에 조선족 동포와 고려인 동포는 왜 배제가 되었는지? 왜 지금까지 전면 시행하지 못하는지? 다문화가족의 정의가 왜 국적 중심으로 되는 건지? 나는 어느 정도의 시민권을 가져야 하는 건지? 등 나의 질문은 끊기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나는 늘 한국인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의 서울에서 15년 동안 살아왔고, 그렇지만 현재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선생님은 서울시민인가요?”라고. 그러면 90% 이상의 학생들이 “아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 이유는 ‘국적’과 ‘세금’ 때문이다.

 

중국에 가서 특강을 하게 된 기회를 얻었을 때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중국의 이 도시에서 15년을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베이징시 시민인가요?”라고. 중국인 학생들의 대답은 공통적으로 “아니다”였다. 그 이유도 ‘국적’과 ‘세금’ 때문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역사적 배경과 경험의 차이는 뚜렷하지만, 이주민들의 시민권에 대한 생각은 놀랄만큼 일치한다.


▲  2015년 서울여대 여성연구소 연수회에서 특강 중인 필자, 이해응(여성학 박사)

 

작년 7월부터 서울시 외국인명예부시장으로 위촉을 받아 서울시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나로 하여금 가슴 뛰게 하는 시책들이 있었다. 2012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 제2조 2항에는 “시민이라 함은 시에 주소 또는 거소를 둔 사람, 체류하고 있는 사람, 시에 소재하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적혀있다. 나는 “체류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이와 비슷한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된 곳들이 있지만 서울시가 가장 포괄적인 것 같다.

 

한국 태생이 아닌 사람들, 혹은 한국 국적이 아닌 이주민들, 한국 국적이지만 완전한 한국인 시민권이 결여된 이주민 출신 모두가 이 조항을 근거로 귀속성을 가질 수 있고, 시민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이주민들도 많지 않다. 이 조례는 나에게 서울시에 대한 확실한 애착을 갖게 했고, 강한 책임을 갖도록 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게 했다.

 

질문을 하는 능력에는 질문을 공유하는 의무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은 한국 국적이 아니지만 소비를 할 때 똑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낸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똑같은 기준으로 소득세를 낸다. 그 외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한국에 체류하는 비용을 낸다. 탈세나 범죄에 저촉된 일이 발각되면 즉각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이러한 사실을 공유할 때, 내가 국적과 세금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던 대학생들 중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학생들 수가 많아진다.

 

이주민의 경험은 사회에 지혜와 상상력을 준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통’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질문보다 훨씬 더 포용력을 가지는 내용과 형식이 있어야 한다. 지난 해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생각나무BB센터의 ‘다문화시민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하고 진행했다. 강의안에 이주민에 대한 통념이나 편견을 깨기 위한 질문과 답변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10회가 넘는 워크숍을 통해 전략을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는 ‘소통’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나 통념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과 해석보다는 수강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을 택했다. 한국이 가진 우수한 면과 한국 사회에서는 낯설 수 있는 이주민의 본국과 한국에서의 교차경험 속에서 각자의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특강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   나는 외국인이자 동포이고 반(半)다문화가족이기도 하며 여성이고 서울시민이기도 하다.  © 이해응

 

이주민이 자라난 국가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소수민족으로서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상상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다문화적 이해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원되고, 백인 소수자가 왜 역차별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양측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주민들의 위치와 감정들, 한국인들의 역차별 담론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올해는 ‘별별시민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그 특강을 이어가고 있는데, ‘시민’의 개념에 대해 서로에게 또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진행 중이다.

 

내 몸에 부착된 정체성 “복잡하지만 다 챙겨야 돼”

 

전 세계 3.2%에 해당되는 2억이 넘는 인구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1년 이상 살고 있고, 갈수록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다. 어디를 머물든 그곳의 지역적 시공간이 나의 귀속성이 될 수 있고, 나의 책임과 권리를 질문할 수 있는 그런 인식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국이 외부에서 오는 이방인에 대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 갔을 때 요구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7년이란 시간을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살았다. 이제 8년차 외국국적동포신고증을 갖고 살고 있다. 한국에 귀화신청을 한 상태여서 한국 국적 시민으로 살아갈 미래가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동포이기도 하고, 반(半)다문화가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고, 서울시민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정체성들이 몸에 부착되면서 융합되기도 하고 또 분열적이기도 하지만, 내 정체성들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화교 신분으로 3세대인 분이 한 말씀이 생각난다.

 

“여행사를 운영하다보면 중국도 챙겨야죠, 대만도 챙겨야죠, 내가 태어나서 자란 한국도 챙겨야죠. 복잡하지만 다 챙겨야 되요.”

 

나의 몸에 통합되어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그것은 모두 ‘챙겨야 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에너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향이 집안시이지만, 연변 태생의 남편을 만났고, 한국에서 태어난 중국 국적의 아이와 함께 산다. 복합적인 정체성들을 어떻게 하면 융합된 긍정적인 에너지로 잘 이끌어갈 지에 대한 고민이 최근 나의 질문이다.  이해응(서울시외국인명예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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