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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수집가’가 되어 걷는 완월동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주간 불현듯” 프로젝트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작년에는 이리저리 길 위를 다니며 노래를 불렀지만, 올해는 생애 첫 독립과 함께 부산 산동네에 콕 박혀서 통 외부로 나가지 않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행사의 계절 가을이 찾아오자 부산 안에서 작은 행사들(독서축제 강연의 오프닝이라든지 환경단체의 20주년 행사라든지, 진짜 마을축제도 있었다)을 돌아다니며 “안녕하세요, 동네가수 이내입니다”하는 인사를 자주한다. 그러니까 ‘길 위의 음악가’라는 이름이 요즘은 ‘동네가수’로 슬쩍 바꿔치기 되었다고 할까. 

 

▲  5월부터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활동비를 지급받으며 파견예술인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 이내 
  

성매매집결지 완월동의 좁고 오래된 길을 걸으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올해 5월부터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파견예술인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크다. 5개월동안 나는 부산에 있는 여성인권단체 <살림>에 파견되어 기관에 맞는 프로젝트를 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다.

 

고정 수입이 생기자 ‘아, 돈이 떨어지려고 하네, 어디 공연을 잡아보지?’하는 마음을 확실히 덜 가지게 되었다. ‘움직이는 만큼 돈이 된다’고 생각했던 작년의 마음을 조금 덜 품게 되었다. 삶이 조금 단조로워 진 것도 같아 아쉬움마저 생길 지경이지만, 덕분에 시작하게 된 “주간 불현듯” 프로젝트로 꾸준한 걸음을 배우고 있기도 하다.

 

완월동이라는 지역이 부산에 백 년도 넘게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모르고 있을 때는 없던 곳이었는데, 알게 되니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해서 그 차이가 매번 놀랍다. “주간 불현듯”(facebook.com/weeklysuddenly)은 부산에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을 걸으며 나눈 대화를 작은 출판물 형태로 매주 발간하는 프로젝트다.

 

나는 ‘이야기 수집가’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열두 명의 사람들과 그곳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A3 사이즈의 색지에 모아 담아두었다. 뜨내기 같은 삶을 살아온 내가 12주 연속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대견해하기도 한다. 스무 번의 발간을 목표로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 “주간 불현듯”은 성매매집결지 완월동을 걸으며 나눈 대화를 작은 출판물 형태로 매주 발간하는 프로젝트다. ©이내 
  

사실 여기에는 나의 개인적인 대견함에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담론이 분명하게 있다. 성매매 문제는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고 정치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며 역사적인 맥락부터 우리 사회의 성담론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친구들과 완월동 데이트

 

시작은 단순했다. <살림>의 간담회를 통해 완월동 이야기를 들었다. 전혀 모르던 곳이었으므로 한 번 가서 보고 싶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고, 혼자 가기 머쓱한 곳이 분명했으니, 우린 함께 가기로 약속을 잡은 것이다.

 

그 친구와는 예전에도 서로의 대화를 녹음해서 기록해 둔 적이 있었다. 세월이 좀 지나도 그 대화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고 느끼고 있던 터라, 처음 완월동을 걸으며 우리가 나누는 쓸데없는 혹은 목적 없는 대화를 무작정 녹음해두었다. 그러고 보니 부산을 떠나있던 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들 목록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완월동 데이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흔쾌히 동행을 해주었고, 녹음 분량이 몇 개 쌓이게 되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약속인 ‘일주일에 한번’ 형식을 갖추어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만들어보자 하게 된 것이다. 

 

▲  나로 하여금 ‘불편함’을 안고도 계속해서 걷고 이야기하게 해주는 어떤 마음들, 생각들이 있다.   ©이내 
  

‘이게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는 질문이 매 순간 찾아왔다. 그저 걷는 것과 그저 이야기하는 것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일까. 이건 내가 세상을 살아나가며 지칠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걷는 것’과 ‘이야기하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으로는 먹고 살 수도, 세상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이 더해지고 나에게 완월동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졌다. 그곳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었고, 좁고 오래된 길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나와 내 동료들의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그 위에 포개어졌다.

 

‘불편함’을 안고 계속 걷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힘

 

길 위를 전보다 덜 떠돌고 있지만 여전히 우연과 운명을 믿는 길 위에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지금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모양으로 만나게 된 이들이었고, 또 디자인 작업을 꾸준히 맡아주는 든든한 친구도 우연히 만난 인연이다. 무엇보다 매주 기다리며 읽어주는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라기보다는 내 곁의 사람들이고, “주간 불현듯”을 비치해 둘 수 있게 해주는 장소들도 그간 공연을 다니며 사귄 곳들이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노출되어야 하지 않겠어?”, “좀 더 관련된 사람들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담겨야 하지 않겠어?” 하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내 곁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아 좀 주관적이면 어때, 쓸데없는 이야기는 왜 안돼?” 투덜대면서도 균형을 잡아보려고 조금씩 더 애를 쓰고 있다.
 

▲ 대화의 한 문장을 뽑아 만든 “주간 불현듯” 뒷면  ©이내 
 

‘불편함’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거 참 좋은 기획이네요” 라고 말할 때 “나는 기획한 게 아닌데” 하고 입술을 삐쭉하게 되는 내 안의 불편함. 아무리 가까이 가려 해도 완월동에서 나는 관찰자, 구경꾼 밖에 되지 못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 그리고 ‘남성’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나의 편견까지….

 

하지만 매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여분의 시간을 슬쩍 건드리는 어떤 마음들은 이런 생각들보다 힘이 세서 나로 하여금 ‘불편함’을 안고도 계속해서 걷고 이야기하게 해 준다.

 

덧) “주간 불현듯”의 뒷면은 우리의 대화에서 나온 한 문장을 나의 디자이너가 뽑아서 포스터처럼 커다랗게 만들어준다. 집에 붙여놓고 보게 되는 그 문장들에서 나는 또 어떤 힘을 발견한다.  이내(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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