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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고쳐살기, 언니들이 간다!
<이 언니의 귀촌> 해남 미세마을 공동체에서(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집주인이 되다

 

수돗가 담벼락 너머로 건너다보이는 집이 있었다. 까만 지붕에 툇마루가 있고 꽤 널따란 마당에는 햇볕이 환하게 드는 집. 작은 비닐하우스와 창고가 딸려있고 뒤안에는 장독대와 나즈막한 돌담. 대나무 숲이 있어 바람이 불면 쏴아~하는 파도소리가 인다.

 

그 집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계셨다. 딴소리지만,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이라는 책에서 갈파했듯이 여성 삶의 기본 값은 싱글이다. 참고로 우리 동네 할머니들 일곱 분 중 여섯 분이 싱글. 여자들아, 싱글로 사는 시간이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남자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찍 간다.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

 

아무튼 오래되어 보이지만 짱짱하게 서 있는 저런 집에 살면서 마당에는 고추를 널고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면 꽤 괜찮은 풍경이겠군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추에 차라니 좀 이상한 듯도…

 

그러다 덜컥, 그 집 주인이 되었다. 올해 2월에 벌어진 일이다.

 

▲  벽돌 공사 중인 우리 집. 널따란 마당에 햇볕이 환하게 든다.    © 치자 
 

아저씨는 오지 않아

 

우리 집은 매우매우 상태가 양호한 집이었지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집주인이 되자 이것저것 손을 대보고 싶어졌다. 단열공사도 좀 했으면 싶고, 부엌도 좀 시원하게, 욕실도 좀 깔끔하게, 창문도 좀 바꾸고, 마루도 좀, 지붕도 좀….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능한 집주인인 우리는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도 몰랐다. (형광등은 갈아 끼울 수 있다.)

 

나무를 자르고 시멘트를 비비고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이고 칠을 하고…. 구상대로라면 이 모든 것들을 다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삼십 평생 늘 세입자로 살아왔기에 집을 뜯어고친다는 건 엄두도 못 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이런 일들을 내가 할 일,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여기지 않았었다. 그럼 이런 일은 누가 하나? ‘아저씨를 부르면 되잖아’가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골에 오니 아저씨를 부르는 것도 쉽지 않더라. 일단 아저씨를 내키는 대로 부를 경제적 여력이 없다. (이건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젠장!) 둘째로, 부를 아저씨가 없다. SOS를 외치며 슬리퍼 바람으로 뛰어나가 봤자 뒷산에 메아리만 울릴 뿐, 받아줄 아저씨는 없다. 우리 동네에서 기술력 있는 아저씨들이 계신 읍내까지는 차로 20분. 큰 맘 먹고 산 넘고 물 건너 읍내로 가지만 아저씨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저기 뭐가 고장 나서 그러는데요, 그런 거 고쳐주는 집이 어디 있을까요?”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응, 그란께, 장 있는데 알지라우? 그짝으로 내려가면서 왼쪽이등가? 찬찬히 살피보면 어디 있어.” 이런 식의 답변, 그러니까 오일장이 열리는 근처 어딘가에 상호도 모르고 정확한 위치도 모르지만 있기는 있다는 식의 답을 들을 뿐이다.

 

그래, 그래도 있긴 있구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오일장 근처로 내려가면서 두리번거리다보면 유레카! **설비, **공업사 같은 간판을 단, 아저씨들이 있을 법한 가게가 보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가게 문을 밀어보기 전에는. 왜냐? 문이 닫혀있기 일쑤이므로.

 

아저씨들은 대체 한낮에 가게를 비우고 어디에 가 계시는 건가? 설마, 좀 기다리면 오겠지. 가만, 안에 인기척이 나는 것 같은데? 그러나 문은 결코 열리지 않고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시인 황지우도 알고 보면 해남에서 타일집 아저씨를 기다리다가 가슴이 애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썼는지도 모른다. 주저앉을 것 같은 실망감을 간신히 이겨내고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따오는 것으로 그날의 외출은 끝나기 마련.

 

그런 점에서 아저씨를 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유부녀들이 좀 부러울 때가 있다. 물론 그 아저씨가 어젯밤 술을 이빠이 마시고 방구석에 누워있지 않다는 경우에 한해.

 

불편한 대로 살거나, 직접 고치거나

 

마지막으로, 이곳의 문화가 나를 좀 주저하게 만든다. 좀 불편한 대로 맘에 안 드는 대로 그냥 뭉개고 사는 스타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내가 한다는 DIY 스타일. 이 두 가지 도도한 흐름이 이곳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대체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하시며 그냥 참고 사신다면, 대부분의 귀농인들은 DIY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태적인 집짓기는 기본이요 화덕, 난로, 직조, 대장간 일까지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 주고 사람 부른다고 하면 ‘뭘 이런 걸로 사람을 부르냐’면서 직접 하라고 퉁박을 주는 것이다. 배워서 못할 건 없다. 보일러도, 용접도 알고 보면 쉽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분들의 지론. ‘그렇게 쉽고 간단하면 직접 좀 해주시지’ 하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오지만…
 

▲  결국 우리 손으로! 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치자 
 

나도 관심은 많았다. 잘 지은 흙집 사진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이런 집 하나… 흠, 생각했지만 그 언젠가가 이렇게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본 것은 많아 눈은 높지만 할 줄 아는 건 암것도 없는 나와, 왕년에 인테리어기능사 자격증도 따고 관련 직종에서 밥 좀 먹어봤지만 이제는 다 아련한 옛일이라며 미소 짓는 ‘혤짱’이 말 그대로 첫 삽을 떠야 했다. 나는 사실 꼼꼼하고 성실한 혤짱을 믿었고 혤짱은 나를 좀 믿었을까? 아마 무쇠팔 무쇠다리에서 나오는 내 힘을 좀 믿었겠지.

 

언니들이여, 연장을 들고 모여라!

 

제일 먼저 한 건, 방 하나를 구들방으로 개조하는 일이었다. 이걸 놓고도 말이 많았다. 방의 위치를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아궁이 위치, 아궁이에 솥을 걸 것인가 말 것인가 등등. 그러나 내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한 건 ‘구들방이 따뜻해서 좋기는 한데 땔감은 누가 해다 주나? 땔나무 해 줄 남자가 없으면 차라리 기름 값 좀 쓰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주변의 걱정이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할머니들이 전기장판으로만 겨울을 나시는 게 구들방이 없어서가 아니다. 땔나무 할 기력이 없고 기름보일러 타는 게 아까우니까 만만한 전기장판이 사랑받는 거다.

 

고민은 또 있었다. 보일러방을 구들방으로 ‘어떻게’ 고칠 것인가? ‘누가’ 고칠 것인가? 이 누가와 어떻게에 몇 안 되는 이름들을 넣었다 뺐다 하며 전전반측하기를 며칠째, 마침내 우리는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언니들을 모아서 같이 배우면서 해보자고. 그래서 기획한 것이 <언니집 프로젝트>. 언니들이여, 게으른 남편과 퉁명스런 아저씨들에게 더이상 기대지 말고 연장을 들고 모이자고 선동한 끝에 열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거기에 미세마을 여성주민 네 명을 더해 총 열네 명의 여인들이 3박 4일간 미장과 구들방 만들기를 실습했다.

 

정말 여자들끼리만 다 했냐고? 아니다. 강사와 조교 자격으로 온 친절하고 부지런한 남성 동지들의 도움이 있었다. 언니들끼리만 했건 남자들이 좀 끼었건 그게 대수랴. 중요한 건 우리가 직접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적정기술(그 기술이 사용되는 지역의 환경과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 워크숍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수도 적지만, 무엇보다 실습하는 동안 여성에게는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웬만한 노가다 일을 군대에서건 어디서건 한번 씩은 해본 남자들은 쉽게 연장을 잡고 나서지만 이 모든 게 낯선 언니들은 주춤거리다가 결국엔 뒤로 빠지게 된다고.

 

<언니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 중엔 기술과 경험이 있는 언니들이 몇 분 계셨지만, 그래도 생초보라는 이름으로 대동단결, 모두 다 거침없이 이것도 같이하고 저것도 같이하며 우리는 자신감을 키웠다.

 

해남에서 직접 집을 지은 언니들을 만나 집 구경도 하고 집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반응이 뜨거웠다. 우락부락 힘이 센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닌 평범한 언니들이 자기 손으로 흙, 나무, 돌과 씨름해가면서 지은 집. 돈, 기술 이런 게 아니라 오랜 상상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끈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만들었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는 언니들이 많았다. 마음은 몰라도 몸 하나는 편했던 세입자 시절을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던 나도 집 짓는 것보다 고쳐서 사는 게 백번 낫다는 언니 말에 큰 위안을 얻었다.

 

기계, 몰라서 안 쓰는 게 아니다

 

▲ 몸을 써서 일을 할 때 욕심은 줄고 만족감은 커진다.  © 치자 
 

공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8월 한 달 동안은 집 외벽을 빙 둘러서 벽돌을 쌓았다. 전문가들이 오면 사흘이면 끝난다는데, 못줄 치고 벽돌 쌓으면 줄이 반듯하게 올라갈 텐데… 구경 온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말을 하는지. 여자 둘이 하는 일이 엉성하고 답답해보여서 그랬을 거다.

 

어느 날이었다. 100미터도 더 떨어진 데서부터 낑낑거리며 수레로 벽돌을 스무 장씩 서른 장씩 실어 나르는 우리를 보시고 평소 우리를 짠하게 여기시는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자네들도 그러지 말고 트랙터 배워서 트랙터로 벽돌 옮겨. 트랙터에 실으면 한두 번이면 저거 다 옮기는데,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

 

그러자 혤짱이 대답했다.

“자꾸 기계를 쓰면 그게 편하니까 기계 없이는 일 안 하려고 하잖아요. 수레로 하는 것도 그렇게 힘 안 들어요. 저희는 그냥 수레로 나를게요.”

네네, 트랙터 배우면 좋겠죠.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영혼 없는 대답을 중얼거리던 나는 혤짱의 말이 너무 신선하고 마음에 들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기심(機心)이라는 말이 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다. 농부는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날라 밭에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공은 물 푸는 기계(두레박)을 쓰면 손쉽게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텐데 왜 그걸 안 쓰냐며 혀를 찬다. 그러자 농부가 대답하기를,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가슴속에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했소. 내가 두레박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우리가 책을 뒤지고 주변에 물어가며 어설프게 해내는 일들. 전문가, 아저씨를 부르면 금세 매끈하게 끝날 일일 테다. 그렇지만 우리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재료를 쓰면 더 나을 텐데, 이런 방식으로 하면 더 멋질 텐데… 한없이 생기는 욕심과 불만도 아저씨들에게 부려볼 수 있다. 돈을 치르면 되니까. 그렇지만 그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 있을까.

 

시골에 내려와서 자급자족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경험상 자급도 어렵지만 자족은 더 어렵더라. 자급하니까 자족하게 되는 건지(자연스러운 결과) 자급하면 할 수 없이 자족해야 하는 건지(당위적으로) 모호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자기 몸을 써서 일을 할 때 욕심은 줄어들고 만족감은 커진다는 거다. 역시 있으면 편하다는 것들 없이 몸으로 때우려니까 힘들어서 그러는 것?!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굽이치는 이 벽에 도가 깃들지, 한숨과 원망이 깃들지는 우리 둘의 숙제다. 어쨌든 누가 또 우리를 걱정해주면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안 쓰는 거라고 말해줘야겠다. 그게 뻥인지 아닌지는 우리 얼굴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나는 또 벽돌 쌓으러 가야겠다~  치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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