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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계절의 제주를 살다
<이 언니의 귀촌> 제주에서의 독거생활(상)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옛 것이 남아날 틈이 없고, 세월의 흔적이 쌓여가기 보단 ‘재개발’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레 늙어갈 수조차 없는 거대도시. 그렇다. 그곳 서울이 나의 고향이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은 곳이지만, 그조차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조금씩 그리워지는 곳.

 

그곳에서 이곳 제주로 떠나온 지도 어느덧 5년. 스무 계절의 시간을 이곳, 제주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2,3년 주기로 있었던 자잘한 ‘이사’와 달리, 이곳으로의 이동은 일종의 ‘이주’였고 ‘이탈’이었다. 거기엔 내 자발적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학을 전공한 친구의 논문 속에서 30대 중후반의 비혼 여성인 ‘나’는 경쟁에서 밀려 취업,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로 분류되었고 도시로부터 ‘탈출’과 ‘탈락’ 모두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고 조금은 허탈하고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되었건 좁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는 도시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흙을 만지고, 해와 바람에 둘러싸여 자연의 시간에 따라, 계절의 흐름에 기대어 살고 싶어 그곳에서 이곳으로 떠나왔다.
 

▲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온 지도 어느덧 5년. 스무 계절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 라봉 
 

친구들과 함께 산 두 해

 

제주에서 한번 살아본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모인 친구들과 낯선 제주 동쪽 시골생활이 시작됐다. 무가지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빌린 오래된 시골집은 허술한 단열 덕에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덥고 습해 눅눅해진 낡은 벽지 위로 검푸른 곰팡이가 피어났다. 이웃의 버려진 자투리 밭들을 빌려 우리만의 농사를 짓기 위해 애를 써보기도 했지만, 주된 생활비는 남의 밭과 비닐하우스에서 일해 번 돈으로 충당했다.

 

돌이켜보니 자급자족을 꿈꾸며 원체 소비하지 않는 생활을 했었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 옷들은 얻어 입거나 주로 집앞 쓰레기 분리 수거통 곁에 있는 의류함에서 주워 입고, 자전거를 타고 밭에 가고, 무거운 수확물도 자전거로 낑낑대며 몇 번을 집과 밭을 오가며 겨우겨우 옮겼다. 먼 거리를 가야할 땐 주로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한번은 집에서 40km 넘게 떨어진 서귀포 강정마을에 갈 때 열 번도 넘게 남의 차를 얻어 타며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친구가 된 이도 있고, 잠시 공유한 타인의 차 안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재밌는 일이었다.

 

물론 너무 춥거나 더울 땐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이 일종의 놀이이기도 했던 그때. 반농반어(半農半漁), 농사와 물질을 함께하며 살고 싶어서 간 제주이기도 해서 일종의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해녀학교’도 다녔다. 아는 분의 알바 주선으로 마라도에 있는 작은 절에 일주일 간 머물며 레지던시로 온 몇몇 작가들의 끼니를 준비하는 일을 맡아 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만난 농사짓는 언니들과 함께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며 어울려 장구도 배우고, 밭일하는 틈틈이 오름도 오르고 한라산도 가고, 월 회원권을 끊어 놓은 실내 수영장 드나들듯 여름엔 동네 앞바다에서 수영도 실컷 했다.

 

하지만 일할 때는 물론 쉴 때조차도 늘 함께라는 건, 서로 모두 애를 많이 써야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점점 관계의 조율에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과 쌓여가는 피로감에 서로가 서로에게 반짝이던 마음들이 조금씩 옅어져 갔고 2년여의 공동생활은 하나둘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 떠나며 슬그머니 끝이 났다.

 

공동생활은 하나둘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 떠나며 2년쯤 후엔 슬그머니 끝이 났다.  © 라봉 
 

혼자 남아 살기 위해 애썼던 두 해

 

함께 살던 친구들은 각자의 또 다른 그곳으로 떠나갔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혼자 남게 된 나. 그런 내가 마음이 쓰인 친구는 나에게도 제주를 떠나 육지의 시골에서 다시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살며시 꺼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여럿이다 혼자 남는다는 게 사실 두려웠다. 하지만 아직은 제주에서 더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혼자여도 정말 괜찮은지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막상 혼자가 되니 막막하고 적적했지만 조금 가벼워진 듯도 했다. 예전보다 밭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슬 맞으며 집을 나서고 깜깜해져야 돌아왔다. 이별이나 이혼 후 일로 도피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농사에 매달렸다. 토종씨앗 채종포를 맡아 농사짓고, 콩밭에 풀을 매고, 씨감자를 쪼개어 넣고, 마늘을 수확하고.

 

볕을 등지고 앉아 꼬닥꼬닥 밭일을 하다보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다가 어느새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너도 결국은 떠나갈 것 아니냐는 동네 토박이 어른들의 시선들. 여자 혼자서 그것도 농사지으며 시골에서 못산다는 말들… 외롭고 힘들게 그렇게 혼자 살지 말고 부모형제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데, 나는 떠나온 그곳 서울보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제주가 더 살갑게 느껴졌고 이곳에 깃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갔다. 인생 전부를 놓고 보아도 도시생활은 이미 지난 30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  시골은 도시보다 개인 이동수단이 필수다  © 라봉

 

혼자가 되니 여럿일 때보다 더 절실해진 기동력. 때마침(?) 동네 삼촌네 담벼락에 잠시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이때다 싶어 중고 스쿠터를 한 대 샀다. 최대속력인 시속 60km로만 달려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란!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쓰는 게 마음이 쓰였지만 자전거에서 스쿠터로의 이동은 이주 2년 만에 획득한 이동수단의 혁명이었고, 1980년대 중반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을 때 매일 버스만 타고 다니던 엄마 아빠가 느꼈을 환희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살아보니 시골은 도시보다 개인 이동수단이 필수다. 인구밀도가 높고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도시에선 자가용 없이 버스와 지하철,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살 만하지만 시골에선 불편을 넘어 불가능할 정도다. 물론 시골에 살아도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작은 밭이나마 매일매일 가야하는 나로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여전히 큰 차의 도움이 필요할 땐 이웃들의 트럭이나 차를 이용했지만, 반경 10km 이내로 움직이는 일상에서는 ‘교통자립’이라 부를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제대로 된 이동권은 마늘밭에 다녀오다 동네 안길에서 동네 삼촌의 트럭과 충돌, 지난 1년간 두 발이 되어 준 스쿠터 폐차 후 중고 경차를 구입하고 나서야 확보되었지만 말이다.


제주의 시골살이,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

 

바쁘게 농사짓고, 그 사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도 잠시 해보고, 출고된 지 15년이 지난 중고차나마 차도 사며 조금씩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때론 혼자서도 밥맛이 좋은 게 이상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점점 함께일 때보다 먹는 것이 부실해졌고 역시 시골에선 혼자 사는 건 아니다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주변의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로 빈자리는 조금씩 채워져 갔다.

 

친척집을 빌려주신 옆집 삼촌과는 어멍(어머니)과 딸처럼, 막역한 친구처럼 서로 벗하고 보살피는 관계가 되었고, 여성농민회 언니들과는 더없이 의지하고 서로 돕고 도움 받는 사이로, 육지에서 이주해온 또래 친구들과도 일상과 정착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친밀한 이웃이 되었다. 종종 절대고독과 맞닥뜨리긴 했지만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 제주의 작은 시골마을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갔다.

 

▲  꿩을 잡아 온 머루. 까망 고양이 머루는 내 독거생활의 크나큰 벗이다.  © 라봉 
  

아, 집안 수돗가에서 주워 어릴 때부터 키운 고양이도 독거생활의 크나큰 벗이 되어주었다. 털이 까매서 붙인 이름 ‘머루’. 잘 때면 이불속으로 살그머니 기어들어와 얕은 콧소리를 내며 함께 잠이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맡에서 밥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다. 바퀴벌레나 생쥐, 참새를 종종 잡아오던 녀석이 어느 날은 꿩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밭에 다녀오니 오색 깃털이 화려한 꿩 한 마리가 마당에 죽어 있고 그 곁에 머루가 있는 게 아닌가.

 

묻어 주어야하나 잠시 고민하다 머루가 잡아온 거니 기꺼이 먹어보기로 하고 마침 집에 놀러온 친구와 함께 꿩 손질에 들어갔다. 어디선가 보고 들었던 지식들을 끌어 모아 먼저 물을 끓인 후 꿩을 넣어 털을 뽑았다.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나니 몇 분 만에 알몸의 꿩은 슈퍼마켓 진열장에 놓인 냉동 닭과 같은 모습이 됐다. 애써 손질까지 잘 마쳤지만 혹시 농약을 잘못 먹고 죽은 꿩 일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나 먹지 못하다, 몇 주 후 이번엔 머루가 잡은 것인 분명한 작은 새를 손질해 이웃 어른이 알려주신 레시피 대로 참기름에 양파와 함께 볶았다.

 

참새만한 작은 새를 놀러온 친구부부와 함께 셋이서 나누어 먹었다. 감질 나는 양이었지만 이름 모를 작은 새는 고소하고 꽤 맛있었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종종 이렇게 머루가 잡아온 것만 먹고 살아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채소는 길러먹고 고기는 잡아먹고, 바다에서 물질까지 할 수 있게 되어 해산물이나 해조류도 자급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만 조금 부지런히 놀리면 농사 외에도 달래, 냉이, 고사리, 갯방풍, 쑥, 개복숭아, 산딸기 등 철철이 자연이 거저 주는 것들을 선물처럼 받는 재미가 시골엔 있다. 바다 속 성게나 소라, 전복은 해녀들의 몫이지만 갯바위에 붙은 보말(바닷고동)만 잘 잡아도 맛난 한 끼 반찬이 되고, 고사리는 새벽잠 반납하고 부지런히 꺾기만 하면 꽤 짭짤한 수입도 올리고 일년 내내 쫄깃한 고사리도 실컷 먹을 수 있다.

 

제주의 시골도 예전만큼 인심 넘치는 곳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낭만스런 구석들이 많다.   © 라봉

 

이젠 시골도 예전만큼 인심 넘치는 곳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낭만스런 구석들이 많다. 철철이 바뀌는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대자연과의 일상적인 교감… 단, 문제는 풍경만 뜯어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목구멍이 콱 막히기는 그곳 서울이나 이곳 제주나 피차일반. 내가 꿈꾸던 방식으로 농사짓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천천히 느린 속도로 살기는, 그렇게 해서 먹고 살기는 힘들다는 답이 제주살이 5년 만에 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곳이 아닌 이곳에서 내 색깔과 속도대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너무 오늘만을 살아 다가올 내일이 불안하지는 않게 사는 방법은.

 

유독 짧았던 한해, 곳곳에 억새가 피고 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찬 전형적인 가을, 이제 곧 이곳 제주에서 맞는 스물한 번 째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찬바람이 불면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깊어지곤 했는데 올 겨울은 어떤 마음들로 가득차려나.  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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