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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 다르고, 그러므로 평등하다
지구화 시대 ‘이주’의 감수성(1) 다른 생김새
여행, 출장, 이주노동, 어학연수, 유학, 국제결혼, 이민 등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은 이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다>는 지구화 시대를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주’의 감수성을 들어봅니다. 첫 필자는 이혜원 유엔인권정책센터 인턴활동가이며,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영국 거리는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네요’
“건물과 거리가 너무 아름다워 동네를 나서는 일, 버스를 타러 집 밖에 나서는 일조차 동화 같은 나라였으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아름답지 못한 것 같다. 이전의 내게 영국은 선진국이며 크고 아름다운 국가였다. 그러나 영국보다 훨씬 작은 한국에도 없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영국은 한국보다 작은 나라 같다.”
2013년 겨울, 나의 첫 유럽 방문. 영국에서의 어학연수를 마친 뒤, 버밍험 소재의 대학에 ‘영국 어학연수 소감문’을 제출하며 적은 말이다.
사실 ‘영국은 이렇다!’라고 일반화시킬 만큼 장기간 체류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 체류 기간에 혹독하게 인종차별이나 괴롭힘을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면적으로나마 남아있는 인종차별,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나는 단지 ‘아시아인’, ‘다른 국적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움츠리고 긴장한 채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상처받은 어린 마음에 학교 측에 무례할 만큼 주관적인 소감을 써서 제출했던 것 같다.
▲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때. © 이혜원
학교와 같은 평범한 장소에서조차 인종, 종교, 출신 국가, 이주해온 정착민, 혼혈과 같은 다양하고 매력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영국 사회에 비해, 한국에서는 이런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학교를 본 적 없었기 때문에 ‘다문화’라든지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만큼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는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인권, 이주민, 다문화와 관련한 제도 장치가 잘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영국의 한 대학교 국제학생센터에서 학교에 대한 소개를 받으며 대학교 투어를 할 때였다. 내 또래거나 혹은 내가 누나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학생들은 ‘동양에서 온 초등학생’이라면서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 ‘동양인은 동안’이라는 속설과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러는 것이겠거니’ 하고 개의치 않으려 애썼다. 또, 내겐 영국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으니, 사람과 관계 맺는 일에 국적이나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으려 했다.
그때만해도 인종차별은,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흑인노예제도와 같은 옛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나를 보는 영국 학생들의 무례한 시선이 오롯이 ‘다른 생김새’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국제학생센터 측은 학교 내에 경찰이 상비하고 있으니, 복도에서 지나다니거나 학교에서 인종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하면 바로 신고하라고 항상 교육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연수를 시작하는 단계의 설렘과,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는 안일함에, 당시에는 이러한 교육이 이상하리만큼 엄격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연수 기간 동안 영국인들이 아시아인과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는다거나, 혹은 코를 막고 탄다거나, 수업 시간에 조별 과제를 함께하지 않는 등 무례한 일들을 경험했다. 다행히 나는 큰 위협을 받거나 직접적인 괴롭힘을 겪은 적은 없지만, 점심시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집에 가는 길이나 복도, 쇼핑센터 등에서 동양인 비하 발언을 듣거나 위협을 받은 이야기를 전해 듣곤 했다.
너와 나는 다르고, 넌 좀 이상해 보여
나는 전형적인 영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지냈는데, 홈 엄마는 영국에서 초등학교 교사 일을 하는 분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아들 한 명과 딸 두 명을 키우고 있었는데, 둘째 딸은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다른 지역에 있었고, 첫째 딸은 남자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동거하며 지내고 있었다.
원래 이곳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 홈 엄마의 열린 사고 때문인지, 홈 엄마는 결혼도 안 한 딸의 남자친구와 한 집에 살며 밥을 차려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나로서는 학교에서 만나는 흑인,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인, 혹은 히잡을 쓴 친구들보다도 ‘내 자식의 애인이 내 집에서 동거하는 일’이 더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홈 엄마는 저녁식사 시간에 내게 그날 배운 것과 느낀 점을 묻곤 했다. 하루는 내 친구가 집에 가는 버스의 2층에서 몇몇 흑인들로부터 위협을 받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홈스테이에 도착했을 때, 홈 엄마가 들려준 주의 사항 중 하나가 ‘2층버스에 웬만해선 타지 말라’는 이야기였던 지라, 이러한 사건을 예상했던 것인지 물어보았다.
과거 백인들로부터 흑인들이 차별 받아온 역사를 떠올려보았을 때, 흑인이 아시아인에게 ‘찢어진 눈’을 흉내 내며 인종차별을 하는 모습이 나는 꽤 의아했다. 인종 문제에 있어서 위계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얘길 듣고 홈 엄마는 내게 대신 사과했다. ‘부끄러운 일이고, 우리는 많은 교육을 통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우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부끄러운 일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 차별을 규제하는 제도가 존재해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이야기하셨다.
영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너와 나는 다르고, 넌 좀 이상해 보여’ 라고 구분 짓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영국 어학연수는 내게 즐겁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경험과 동시에, 언어의 장벽도 아닌 ‘생김새’만으로 ‘이방인’이 된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떠날 때, 애꿎은 학교 측에 내가 경험했던 불쾌한 ‘인종차별’에 대해 나름 당찬 일침(?)을 쏘곤 귀국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쾌함은 ‘나 자신만큼은 사람의 다름을 틀림으로 보거나, 우월함이라는 위계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르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온 사람들
▲ 몽골에 갔을 때. 문화와 언어가 달랐지만, 나는 몽골어를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며 서로의 다름을 즐거워했다. © 이혜원
그런 다짐을 하고 돌아온 한국.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차별하면 안돼’, ‘다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해야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입장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 그 다름이 뭔지 일단 배워보자’ 라는 마음으로 몽골로 떠났다. 연수 목적으로 떠난 곳들과는 달리,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을 택한 건 완벽하게 ‘다름’을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몽골의 전통 유목민 집 게르에서 잠을 자고, 활을 쏘고, 말을 타고 지냈다. 전통음식 허르헉(Horqhog)에서 막 꺼낸 뜨거운 돌을 만지며,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문화를 전해 들었다. 핸드폰은 필요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나는 몽골어를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다. 문화와 언어가 달랐지만, 그 다름을 배우며 즐거워했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짧은 기간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우리가 다르긴 한 걸까?’라는 나름 근본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같은 한국인들도 사실 다 다르다. 성별도, 성격도, 개개인이 특별하기에 다 다르다. 한국인끼리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공통점과 성향을 알아가듯, 다름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오히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알아가는 건 더 유쾌하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원래 다른 우리들은 결국 평등하고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세계 휠체어 농구대회, 인천 아시안게임, 장애인 아시안게임, 국제영화제, 세계 보치아대회 등에서 통역 일을 했다. 언어의 다름은 기본이고 종교, 생김새,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지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를 통해 그 나라에 대해 배우고 엿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그들의 문화가 나와 얼마나 다른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듣고 경험하려 했다. 적어도 내게 ‘다름’을 지닌 친구들은 매력이 많은 친구들일 뿐이었다.
외국인이 출연하는 미디어 프로그램들을 보며
과감히 ‘작지만 영국만큼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은 큰 나라다’라고 말했던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더 이상 ‘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국가인 한국은,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놀랄 만큼 많은 인종을 마주하게 된다. ‘이방인’을 경험하고 ‘다름’을 매력으로 느끼고 돌아온 뒤, 한국사회 내의 변화들을 바라보며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한국에 와서 세계 휠체어농구대회, 인천아시안게임, 국제영화제, 세계 보치아대회 등에서 통역 일을 했다. ©이혜원
최근 미디어에는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다양한 인종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각종 이슈, 문화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토론하는 JTBC “비정상회담”, 외국인 남녀들이 게스트하우스에 모여 숙박을 하며 한국체험담과 나라별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었던 MBC “헬로! 이방인”이 먼저 떠오른다.
이외에도 “진짜 사나이”에서 외국인이 패널로 등장하여 한국 군대를 체험하거나, “나 혼자 산다”에서 파비앙이라는 외국인이 나와서 한국인 못지않게 알뜰하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말도 잘하고 자기 의견도 잘 이야기하는, 미디어 속 이국적인 눈빛의 그들은 신기하고 멋있다. 한국인인 나보다도 더 한국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는 그들은 때론 기특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외국인들이나 샘 해밍턴 같은 몇몇 외국인 연예인들에 대해 한국인들은 별다른 편견 없이 오히려 큰 호감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을 미디어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다문화, 다인종 사회라는 것을 설명해주지만, 이 사실이 곧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는 사회 제도나 사람들의 인식, 교육의 수준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잘 각본된 미디어 밖의 지하철에서 만나는 외국인노동자, 동남아시아 계열 사람들,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 등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꽤 많은 편견을 담고 있다.
백인만 뽑는다, 몸만 흑인…우리 안의 인종주의
2013년에 KBS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한 흑인남성은 한국인들의 외국인 차별은 36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흑인들의 손을 만져본 뒤에 지저분한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손을 턴 적도 많았다고 했다.
과거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미국인(백인)과 동남아시아 외국인 두 명이 한국인에게 길을 묻는 시험을 했다. 영어가 서툰 한국인들은 백인에겐 길을 알려주면서 직접 동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어떻게든 도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외국인은 길을 찾기를 위해 한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3월에는 청담동 모 어학원에서 강사 모집에 ‘백인만 지원하라’는 공고를 내어 논란이 일었고, KBS “이웃집 찰스”에서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외국인이 시장에서 일하며 상인들의 흑인비하 발언에 상처 입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사실 ‘유색인종’이라는 말은 색을 지닌 인종을 뜻하는 용어일 텐데, 하얀색이든 검은색이든 노란색이든 모두 색의 종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백인 외의 인종을 유색인종이라고 칭하는 것은 백인우월주의의 오류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또한 유색인종으로 불리면서, 또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하고 편견의 시선을 보내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에서도 별 생각 없이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짜 사나이”에서 흑인 게스트에게,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체력이 부족한 것을 ‘몸만 흑인’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든지, “헬로! 이방인”에서 흑인이니까 더위를 잘 참을 것이라며 사우나를 체험하게 하는 등이 그 예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장면들이지만, 실상은 사람을 인종으로 구분하고 그 특성에 가두어버리는 인종주의에 해당한다.
내가 외국에서 ‘이방인’을 경험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외국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고 있자면, 한국은 인종차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소외된 곳의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2014년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나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매료되어 있었기에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역하며 그 시기를 보냈다. 앞으로 외국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기도 한 반면, 세계의 빈곤 지역을 원조하는 일 또한 하고 싶었다. 절충안으로 국제기구, 혹은 국제 원조기구로 취업을 희망하게 되었다.
NGO에 취업한다는 명확한 진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구직 과정에서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현재 인턴으로 4월 초부터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주로 유엔 부서 쪽에서 일하고 있는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다루는 인권 이슈와 국내 인권 이슈를 한주간 브리핑하는 일을 한다. 때로 기획기사를 작성하거나, 이주민여성 관련한 사업에서 작은 서류작업 등을 맡기도 한다.
▲ 국제인권 문제를 다루는 조직에 들어와보니, 나에게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 이혜원
감사하게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인턴에 대한 차별이 없다. 인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집단에 들어와서 보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고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려면, 스스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많은 자료와 신문을 읽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완치될 수 없는 병을 끌어 안고 치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가로부터의 인권 침해, 여성과 이민자에 대한 인권 침해,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일들을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마저 든다.
그럼에도 이 일에 매력을 느끼고 더 뜨겁게 차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까닭은, 내가 포기한다면 정말로 그들 곁에 아무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약자들의 곁에는 약자들만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준다면 문제 해결도 훨씬 쉬울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곳에서 일하며 본 세상은 참 불평등하고 차가우며, 세계의 소외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의 일로만 치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나도 약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것들이 있기에,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와 내가 다른 건 당연하다.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린 평등하다. 차별 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같이 목소리를 내줄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 이혜원 (유엔인권정책센터 인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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