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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세력 없는 일본 성소수자 축제!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방문기 

 

※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에 참여한 후기를 기고해주신 필자 우야 님은 퀴어문화축제 파티.이벤트 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시부야구, 동성 커플에게 ‘동반자 관계 증명서’ 발급

 

 © 출처: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공식 트위터 
 

지난 4월 25-2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Tokyo Rainbow Pride 2015. 이하 ‘도쿄 프라이드’)에 참여했다. 도쿄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일본 도쿄도(東京都) 시부야구(區)에서 동성 커플에게도 혼인과 거의 같은 관계, ‘동반자 관계 증명서’를 발급하기로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13년 청계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영화감독), 김승환(레인보우팩토리 대표) 부부가 서울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헌법 36조 1항에 대해, 혼인이 ‘양성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이 부부의 혼인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후 불복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없다.

 

일본은 헌법 24조에서 혼인이 양성의 합의에 기초해 성립한다고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지난 3월 31일 도쿄 시부야구(區) 의회는 동성 커플에게 ‘동반자 관계 증명서’를 발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부부와 똑같은 수준의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업자나 병원 등에서 ‘동반자 관계 증명서’를 소지한 동성 커플을 법적 부부와 동등하게 대하도록 하고 있으며, 가족을 대상으로 한 구영주택에 동성 커플도 입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즈비언 공개 결혼식과 함께한 신나는 축제!

 

‘도쿄 프라이드’는 하라주쿠, 시부야와 인접한 요요기 공원에서 열렸다. 공원이 너무나도 넓어서 정보를 찾아봤더니 면적이 54만㎡로, 여의도공원(23만㎡)보다 배 이상 컸다. 그곳에 큰 무대가 설치 되어있고, 행사에 참여하는 부스도 90여 개가 넘으며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행사장 입구에 쓰여 있는 “HPPPY PRIDE”의 의미처럼 사람들의 분위기는 행복, 즐거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다.
 

▲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무대 위 레즈비언 커플 결혼식. ©사진: 퀴어문화축제 홍보팀 제공 

 

도쿄 프라이드가 열리기 일주일 전인 4월 19일, 여배우 이치노세 아야카(34)와 스기모리 아카네(28)가 신주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시부야구(區)에서 ‘동반자 관계 증명서’ 발급 조례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이 커플의 결혼 소식은 일본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도쿄 프라이드에는 웨딩업체들의 지원과 부스 참여 신청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은 웨딩사진을 찍어주고 결혼식 컨설팅을 해주며, 동성 결혼과 관련된 산업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무대 행사 중에도 레즈비언 야에 씨와 렌 씨 커플의 공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 축사를 맡은 전 시부야구(區)장 구와하라 토시다케 씨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법들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소수자를 일컫는 말)의 존재를 모른 채 제정된 법이다. 법 앞의 평등을 이야기할 때, 법이 바뀌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시부야구(區)의 조례 제정은 헌법 조항을 근거로 들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거부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공개 결혼식을 진행한 ‘도쿄 프라이드’가 부러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의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부러웠다.

 

경찰차벽도, 반대 세력도 없었던 퍼레이드 행진
 

▲  8천여 명의 퍼레이드 행렬이 시부야 중심가를 돌아 3km의 거리를 행진했다.   © 출처: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공식 트위터 
 

웨딩업체 외에도 여러 기업들과 각국 대사관, 단체들이 부스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기업들이 친(親)LGBT 활동을 하는 것을 사회 공헌이라고 보고, 기업 이미지와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 중에서 트랜스젠더, 그 중에서도 FTM(female to male.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이라고 느끼고 남성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 단체와 IS(Intersexual. 간성, 자웅동체 등 특정한 성별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한국에서는 하리수 씨의 커밍아웃으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인식하지만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고, IS(Intersexual, 인터섹슈얼)에 대한 인식은 전무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FTM 커뮤니티, IS 커뮤니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4월 26일 퍼레이드! 시부야 중심가를 돌아 메이지 신궁 쪽 교차로를 지나 다시 요요기 공원으로 돌아오는 약 3km의 거리를 총 11개의 트럭과 행렬이 돌았다. 일본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퍼레이드 트럭 행렬을 통해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LGBT 직원의 직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커뮤니티 ‘LGBT Finance’ 행렬, 동성 웨딩 테마를 한 행렬, 성소수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성인지 교육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행렬, LGBT의 의료, 복지, 간호에 관심을 가진 행렬, HIV 양성반응자, FTM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행렬, 레즈비언 스마트폰 어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했다.
 

▲  다양한 분야에서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 출처: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공식 트위터 
  

퍼레이드 행렬의 규모는 약 8천여 명, 모두가 즐겁고 신나게 행진했다. 퍼레이드를 방해하는 세력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원래 걷는 걸음걸이로 편안하게 행진했다. 또, 행렬을 이탈하는 사람들도 없이 전원 끝까지 퍼레이드 행진을 마쳤다.

 

퍼레이드 행진을 하는 사람들은 거리에 있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고, 행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고 응원을 해줬다. 다시 요요기 공원으로 입장할 때는 참여자들이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며 “HAPPY PRIDE”를 외쳤다. 한 명 한 명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서로의 온기와 에너지를 나누며 이 행진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한국에서처럼 경찰이 차벽을 세워서 도로 통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퀴어 퍼레이드 행진을 막기 위한 반대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즐겁고 신나게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걸은 것뿐인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축제를 방해하는 세력은 보이지 않았다.  ©출처: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공식 트위터  

 

생명의 퍼레이드,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퍼레이드를 돌면서, 작년 서울 신촌에서 열린 제 15회 퀴어문화축제(KQCF) 퍼레이드 생각이 났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던 퍼레이드가 축제를 방해하는 혐오 세력으로 인해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되며 눈물범벅이 되어 신촌을 뛰었던 그 감정이 다시 올라왔다. 이렇게 평화롭게 행진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함께 걷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죽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에서부터 시작했고, 죽음의 퍼레이드였고, 생명의 퍼레이드였으며, 삶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퍼레이드”라고.

 

이런 퍼레이드가 지속되었기에 지금의 일본에서는 ‘동반자 관계 증명서’ 조례가 가결되고, LGBT가 일하기 좋은 환경의 직업박람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 정체성만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삶, 성소수자와 비(非)성소수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퍼레이드 행렬에 함께하다!  © 퀴어문화축제 홍보팀 제공 
 

2012년 ‘도쿄 프라이드’의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며 더 이상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행사를 중단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의 퀴어문화축제 기획단과 함께, 한 해 축제를 쉬면 다시는 재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한 회 쉬고 3년 동안 성장한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는 4월 25-26일 이틀 동안 참여 인원이 5만5천여 명이 될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도쿄 프라이드가 이렇게 성황리에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수준이 올라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에도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누구도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에 참여하며 이것이 꿈이 아니라,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곧 다가올 가까운 미래라는 것을 기대하게 됐다. 6월 13일 개최될 퀴어문화축제(KQCF) 퍼레이드에 도쿄 프라이드 기획단도 한국에 와서 트럭에 오른다. 일본의 기운이 한국에도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야

 

※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사진은 공식 트위터(@Tokyo_R_Pride/media)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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