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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왜 출현했고 어떻게 확대되었는가
중동 지역을 둘러싼 국제정치와 ‘이슬람국가’
납치와 살인, 그리고 살해영상 공개라는 잔혹한 수법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과격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이들은 어디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지배 지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일까. 중동정치 전문가로 알려진 사카이 게이코(56) 치바대학 교수의 기고문을 싣는다.
이라크전쟁, 시리아 내전과 IS의 세력화
올해 1월 IS(이슬람국가)라고 칭해지는 집단이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47)씨와 유카와 하루나(42)씨를 인질로 납치해 살해한 사건은 일본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중동 연구자들이나 중동 현지 사정에 밝은 저널리스트들은 일본 사회가 이제야 ‘이슬람국가’의 위험을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IS의 충격은 작년 6월 시점에 이미 세계에 퍼졌고, 국제 사회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IS의 출현이 세계를 뒤흔들게 된 계기는, 무장세력이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슬을 제압한 일이었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 거점을 구축한 ‘이슬람국가’가 이라크로 전선을 확대하고, 이로 인해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기독교와 야지드교 등 소수종교의 공동체가 참멸 위기에 직면하면서, IS의 잔혹함이 돌연 주목을 모으게 된 것.
IS의 전신은 이라크전쟁 후 미군의 폭격이 쏟아진 팔루자에서 저항운동을 전개했던 반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직은 미군의 지배나 전후 이라크 정권에 불만을 가진 이라크의 지역 사회에 알카에다(아랍어로 ‘근본’이라는 뜻.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한 이슬람 의용군이 연대한 조직에서 기원하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 무슬림 국제무장세력) 계통의 외국인 의용병이 유입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후 이라크 정부가 지역사회 재건에 전력투구하면서 2008년경 외국인 의용병들 대부분은 이라크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던 조직이 2011년 시리아 내전에서 되살아났다. 시리아에 활동 거점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시리아 국내의 반정부 세력을 흡수하며 충분한 무기와 자금을 획득한 채로 말이다.
시리아 내전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랍만 산유국이나 터키 등의 수니파 국가들과 이란, 이라크라는 시아파 국가들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등은 수니파가 주류를 점한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했다. 그것이 IS에 흡수되면서, 결과적으로 수니파가 쏟아 부은 자금이 IS를 비옥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원래 엄격한 이슬람 통치를 하고 있던 국가에서 사상적으로 ‘이슬람국가’에 동조하며 금전적 원조를 아끼지 않는 개인도 적지 않다.
▲ ‘칼리프’(caliph. 신의 사도의 대리인이라는 뜻. 이슬람 국가의 최고 권위자를 칭함)를 자처하는 ‘이슬람국가’(IS)의 리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오른쪽)와 진군하는 IS의 병사들. ©<페민> 제공
강력한 ‘이슬람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또 한 하나의 축이 바로 이라크 구체제파의 존재다. 후세인 정권 시대에 군이나 치안조직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이라크전쟁 이후 신정권으로부터 숙청되면서 반정부 측으로 흘러 들었다. 이라크의 전 군인, 전 치안관계자가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IS는 교묘한 군사 작전을 펼치며 공포감을 지레 삼아 제압 지역의 주민을 지배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이라크 정부가 실시한 국민화해 정책이 실패한 것도 구체제파의 반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마리키 정권은 2010년부터 시작된 정권 2기에 들어서면서 권력 집중을 강화했는데, 그 결과 공권력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한차례 거두어들였던 수니파 정치가를 다시 축출하는 등의 정책으로 인해 수니파 주민 사이에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면서 IS에 뛰어들 여지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외국으로부터 많은 의용병이 합류하는 이유
이처럼 이라크와 시리아의 통치가 실패한 틈새에서 IS가 출현했지만, 그 최대의 특징은 구미국가를 포함해 외국으로부터 많은 의용병이 ‘이슬람국가’에 합류한다는 점이다.
2015년 2월 중순, 미국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IS에 참가하는 외국인 병사는 2만명이 이르고, 그 중 3천4백명이 구미국가에서 유입되었다고 한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아랍권에서 유입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이 튀니지 출신이고, 그 뒤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잇는다.
구미국가 중에서는 프랑스, 러시아 출신이 많다. 러시아 출신의 경우 대부분이 체첸 출신이라고 하는데, 체첸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군의 탄압으로 자국에서 운동을 펼치지 못하고 ‘이슬람국’에 ‘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출신 용병도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다.
프랑스나 영국으로부터 유입된 병사들이 많은 배경에는, 유럽의 다문화 공생 정책의 실패가 배경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1월 7일 파리에서 발생한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지 습격 사건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에서 이슬람계 이민자가 놓인 위치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특히 유럽에선 최근에는 극우 세력에 의한 이민자 배척 운동이 고양됨에 따라 이슬람 혐오 풍조도 확산되고 있다.
작년 말 영국의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지가 영국 내 이슬람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이슬람 교도들은 같은 능력을 가진 기독교도들이나 유대교도들에 비해 취업률이 75%나 낮다고 한다.
이러한 차별 대우에 반발해 유럽을 떠나 ‘이슬람국가’에 합류하길 꿈꾸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또한 시리아 내전 하에서 시리아군이 반정부 세력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널리 알려지면서 이에 분노를 느낀 젊은이들이 시리아 반정부파에 가담하고, 결과적으로 IS에 흡수된 사례도 많다.
같은 아랍국가에서 합류하는 청년들 중에는 자국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못 이겨 ‘이슬람국가’로 도망 오는 이들도 있다. 튀니지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는 되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생활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것에 역으로 좌절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배경에 깔린 역사를 보아야 대책이 보인다
이처럼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전쟁과 시리아 내전의 대처에 실패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탄생했지만, 확대된 배경에는 구미 사회가 떠안은 이슬람 차별의 역사와 동화 정책의 실패, 그리고 중동 사회의 항시적인 사회경제적 피폐 문제 등이 있다.
바꿔 말하면, 국제정치의 맥락 안에서 중동 세계에 축적되어온 사회, 경제적 모순이 ‘이슬람국가’가 되어 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집단의 존재에 대해 무장공격만으로 대처할 수는 없다. 근본적이고 통합적으로 중동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당장은 어렵고 느리게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다가서지 않는다면 해결의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사카이 게이코 씨가 쓰고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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