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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신용금고’의 비법을 들려줄게요
해외에서 공생 커뮤니티 만들기, 하라 야스코씨 

 

 

<남쪽나라 항구도시 아줌마 신용금고>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하라 야스코 씨는 학교에서 ‘국제지원’ 분야를 배우고, 비정부기구의 직원으로 인도의 슬램 지역에 사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가난하고 불쌍한, 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이어야 할 텐데 웬걸,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원조에 익숙한, 센 아줌마들”이었다.

 

‘국제협력컨설턴트 커뮤니티개발 전문가’인 하라 야스코 씨(45)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기후현 사투리를 써가며 국제 지원의 현황과 과제를 알기 쉽게 풀어낸다.

 

‘선물 없이’ 인도 빈민가를 돌며 만난 여성들

 

▲ 해외에서 공생 커뮤니티를 만드는 하라 야스코 씨(45)  © 촬영: 후루토 아츠코 
 

하라 씨가 소속되어 있던 인정NPO법인 ‘무라노미라이’(‘마을의 미래’라는 뜻)는 일본 기후현 다카야마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남인도 비정부기구 측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아 설립되었기 때문에 인도와 관계가 깊다.

 

하라 씨가 파견된 현장은 인도 동해안에 있는 항구도시 비샤카바토남이었다. ‘무라노미라이’의 설립자인 와다 노부아키 씨가 현지에 도착한 하라 씨에게 가장 먼저 해준 얘기는 “빈 손으로 슬램에 다닐 것”이라는 주문이었다. 원조 프로그램이라는 ‘선물’ 없이 현지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쌓으라는 이야기였다.

 

들은 대로, 슬램 지역에 가서 우선 현황을 파악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 아줌마들이 자신보다 훨씬 능숙했다. “일이나 거주지 등에 대해 물어봐도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아요. 내가 우물쭈물 거리자 ‘당신은 뭘 줄 거야?’ 라며. 그리고 나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자 ‘바쁘니까 얼른 가라!’ 하고 매정하게 나오더라고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은 거칠고 용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봤자 가난하고,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남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하라 씨의 눈에 이윽고 ‘선진국’이 계속 안겨주는 ‘지원’에 흠뻑 빠진,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들어왔다.

 

하수도와 쓰레기 속에서 살아낸 ‘그 힘’을 동력으로

 

‘무라노미라이’에서 일한 지 3년차, 독립행정법인 국제협력기구(JICA)에 하라 씨가 제안한 ‘아줌마 신용금고’ 프로젝트 기획이 통과되었다. 하라 씨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들에게 자립과 자존감을 주리라” 벼렸다.

 

인도에는 마이크로 크레딧(소규모 융자)이 활성화되어 있어, 전국에 무려 8백만 개나 되는 그룹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비샤카파트남의 슬램에서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융자를 받을 수가 없다. 더구나 남편의 서명이 없으면 여성들은 돈을 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줌마 신용금고’는 자신의 저축액과 출자금에 따라 언제든 융자를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을 여성들 스스로 경영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 이용하기 편한 금융기관을 만듦과 동시에 일자리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조를 하는 사람도, 원조를 받는 사람도 ‘의식의 개혁’을 해야만 했다.

 

“벽을 넘으려고 제일 고생한 것은 저였는지도 몰라요” 라고, 하라 씨는 회고한다.

 

회의를 열고는 결국 자신이 주도를 해버리거나, 회의에서 나온 의견에 바로 판단을 내려버리거나, 느릿느릿한 일의 진척에 손과 입이 먼저 나서버리곤 하는 것이다. 아줌마들 편에 서서 이건 여성차별이다, 저런 인권침해다 하며 분개했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그녀들을 “아무 것도 모르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은 자기자신이었던 것.

 

‘파리와 하수도와 쓰레기 속에서 엄청난 땀을 흘리며’ 돈을 모으러 다니는 아줌마들을 따라 걸으며, 그녀들이 안고 있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힘을 실감했다.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제가 인도에서 8년 걸려 몸으로 배운 것은 ‘원조하지 않는 기술’이었습니다.”

 

우린 승패에 적용 받지 않는 ‘깍두기팀’이에요

 

3년 간 진행된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도 ‘아줌마 신용금고’는 계속 운영되고 있다. 처음에는 554명이었던 회원이 2013년에는 3천명을 넘었다.

 

아줌마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돈을 만들고, 남편과도 당당하게 논쟁하는 모습은 눈부실 정도다. “신용금고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를 붙여 남편에게 ‘재대출’을 해주는 아줌마도 있어서 본받고 싶을 정도예요.(웃음)”

 

물론,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규칙과 방침만을 전면에 내세우면, 모순덩어리인 현실은 감춰져 버리고 당사자가 가진 힘은 억압되기 일쑤다. 무엇보다 먼저 ‘속내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 역시 아줌마들에게서 배웠다.

 

“격차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쉽게 뒤집을 수 없어요. 이기고 진다는 척도로 보자면 아줌마들은 영원히 지기만 하는 팀이죠. 아줌마 신용금고는 승패의 가치관에 적용 받지 않는 ‘깍두기팀’이에요. 누구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시도죠. 그런 커뮤니티는 전세계 어디든 필요해요. 그것을 위해서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과 고민해나가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하라 야스코 씨는 최근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슬람국가(IS)의 일본인 저널리스트 납치, 살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세계의 분쟁 지역과 빈곤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힘을 보태는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고, 자신과 이어져있는 문제로 생각했으면 한다”고.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샤노 요코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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