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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 논란
혐오 표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바로 오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오뎅’으로 비유해 단원고 교복을 입고 오뎅을 먹으며 ‘친구 먹었다’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린 남성(20세)이 구속됐다. ‘오뎅(어묵)’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일베의 용어다.

 

최근 일베 등에서 집단적인 혐오 표현이 확대되자 ‘혐오 표현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혐오 표현(hate speech)이란 ‘인종, 종교, 젠더,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적, 모욕적, 조롱하는, 위협하는 표현’을 뜻한다.

 

단순히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10일에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는 일베 회원인 한 고등학생(19세)에 의해 황산 테러가 발생해 참가자 두 명이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일베 회원뿐만이 아니다. 작년 11월 20일 열린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는 동성애 혐오 세력들이 인권활동가들을 에워싸고 밀쳐 넘어뜨리거나 멱살을 잡는 등 물리력을 행사했다. 

 

▲ 2014년 11월 20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동성애 혐오 세력들은 물리력을 행사했다. © 일다 
 

이렇듯 혐오 표현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폭력 행동, 즉 ‘혐오 범죄’(hate crimes)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내편의 ‘표현의 자유’만 주장할 수 있나

 

2월 6일 한양대학교 HK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사업단과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표현의 자유’의 역습: 혐오 표현할 자유도 권리인가?>라는 제목의 원탁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홍성수 교수(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는 “이전에는 표현의 자유가 주로 ‘국가 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졌다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을 기점으로 논의 지형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운을 떼며, 그 배경으로 ‘일베 현상’을 들었다.

 

일베에서 네티즌들이 주고받는 거친 얘기들이 농담의 수준을 넘어 민주화운동, 여성, 외국인, 특정 지역에 대한 집단적인 혐오 발언으로 확대되자,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에 섰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일베나 종북 운운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고 주장하게 되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무리한 주장과 근거들이 제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베 사이트 자체를 폐쇄해야 한다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 심의에 비판적이었던 기존의 입장을 바꿔서 그 심의를 통해 개별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홍성수 교수는 “정략적 이해 관계에 따라 ‘내편의 자유’는 최대화시키고 ‘상대방의 자유’는 이런저런 근거로 제약하자는, 부정적인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혐오 표현 자체가 정치적으로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와,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찬성: 혐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 막아야

 

이날 홍 교수는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한 찬반 양론의 근거를 소개했다.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측은 우선 ‘혐오 표현이 피해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해악을 가져오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공선을 붕괴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혐오 표현은 단순히 그 말을 직접 듣는 특정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형법상의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해악이 그 피해자에게 한정되는 것과는 달리, 혐오 표현은 혐오의 대상이 된 속성을 가진 ‘집단 전체’에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는 것.

 

심지어 물리적 폭력이나 제노사이드(대학살)와 같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이런 혐오 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의미도 갖는다.

 

혐오 표현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은 혐오 표현을 명백한 ‘차별 행위’로 본다.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도 ‘차별 금지’나 ‘평등의 원리’와 충돌할 때는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언어 성희롱’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 언동을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표현’에 불과할지라도 법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를 규제하고 있다. 혐오 표현 역시 권력의 문제, 차별의 문제로 본다면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 반대: 혐오의 근본 원인 해결 못하게 돼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측의 대표적인 논리는 ‘사상의 자유시장론’(marketplace of ideas)이다. 어차피 경쟁력 없는 논리는 퇴출당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고, 사회의 자정 능력을 통해 혐오 표현을 그 사회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표현도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이 현재 시점에서 즉각적이고 분명하지 않다면’(clear and present danger) 법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혐오 표현이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등 실질적인 위험을 만드는 경우에는, 폭행이나 협박 등의 범죄이므로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되지, 혐오 표현을 별도로 규제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혐오 표현의 해악이 심각하다고 해도, 그 해법이 ‘법적 규제’여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혐오 표현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해당 표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서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발언이 사회에서 발붙일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 위기나 사회적 소외로 인해 혐오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소수자 차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을 처벌하는 일에 힘이 쏠리게 되면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혐오 표현에 대한 각국의 접근 방법

 

한국도 국내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제인권규범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20조 2항은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로써 금지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혐오 표현을 범죄로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국제적인 합의는 없다.

 

홍성수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혐오 표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은 혐오 표현에 대해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도 혐오 표현을 처벌한다.

 

이중 독일의 ‘선동죄’는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라는 역사를 가진 국가로서 그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소수의 신나치의 움직임을 막고자 만들어진 법이다. ‘선동죄’ 위반 명목으로 1년에 수백 여건의 형사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수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혐오 표현도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논리에 따라 다루어져야 한다면서 사실상 ‘처벌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혐오 표현을 사회적으로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이를 규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혐오 표현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나 민사상 배상을 통해서 규제하고 있다. 또한 회사, 노조, 대학에서도 ‘표현 강령’(speech code)을 제정하여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또한 위헌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처벌이 능사 아니다

 

홍성수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혐오 표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근거 규범을 만들고, 적절하게 공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의 예외’로 보고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가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협적이고 차별적인 혐오 표현으로 인해 소수자들이 위축되고 고립되어 공론의 장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규제의 방식에 대해 홍 교수는 “유럽 국가들처럼 혐오 표현을 광범위하게 범죄화하는 것은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혐오 표현을 범죄로 보는 유럽 사회는 한국과 달리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가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사회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처럼 개인의 자유가 제약을 많이 받는 사회에서 독일과 같은 ‘선동죄’가 도입될 경우, 표현의 자유 일반이 상당히 축소될 우려가 높다.

 

홍성수 교수는 유럽에서 혐오 표현을 범죄화하는 것이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하지만 혐오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불관용이다’라는 의미라면, 한국은 ‘우리 사회는 혐오 표현뿐만 아니라 비난 받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표현은 금지한다’는 의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형사 처벌은 검찰이 기소를 하고 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한다. 유죄냐 무죄냐 단순하게, 일도양단 식의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형사 처벌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이 차별임을 분명히 하되, 그 해악의 치유는 법적 강제가 아닌 차별시정 기구의 비사법적 구제(non-judicial remedies)를 통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혐오 표현이 차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관련 사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차별시정 기구가 조사하고 조정, 화해, 시정 권고 등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형사 처벌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다룰 수 있으며, 그 구제 방법도 유연하게 제시된다는 장점이 있다.

 

홍성수 교수는 또 “차별시정 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만은 뜻하는 것은 아니며 지역 단위나 학교 내, 회사 내 등 여러 층위에서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형사 처벌 가능성을 검토해볼 만하다”라고 덧붙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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