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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과 장애인의 취업
특수교사 임용시험에 불합격 처리된 뇌병변 장애여성 
 

 

장애학생에게 유학을 권했던 담임선생님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어느 특수학교의 초등 과정 교실. 십여 명이 둘러 앉아 있던 그 교실에서는 진로 상담 중이었다. 특히 일반학교로 진학하려는 다섯 명의 학생에 대해서는 좀더 심도 있는 상담을 했는데, 장래희망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한 명씩 이야기했다.

 

‘저는 특수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처럼요.’ 하고 말했던 친구는 나처럼 소위 ‘정상적인 코스’(비장애인 아이들과 같은 나이에 입학하여 6년 만에 졸업)를 밞은 아이였다. 선생님은 그 친구한테 ‘너는 공부도 잘하고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으니,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미국으로 건너가라. 그래야 선생님이 될 수 있다.’ 하셨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몰랐던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생각은 얼마 안 돼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지금은 교육 환경이 나아졌지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엔 장애인이 일반학교에 다니는 것에 따른 부담은 온통 개인이 져야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우대’해줄 수 없으니 ‘공평’하게 학교를 다니라는 것이었다.

 

내 학교 생활은 계단과의 싸움이었고, 또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요즘엔 엘리베이터가 있는 학교도 있다지만, 30년 넘은 건물에서 생활하던 나에게 그런 학교는 ‘미국’에나 있는 것이었다. 4층에 있는 교실에 배정된 1~2학년 때 등하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1층에 있는 음악실이나 미술실에 가는 것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오래된 건물의 가파른 계단, 그것도 반짝 반짝 왁스 칠을 해놓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 역시 마찬가지. 객관식이 많아서 OMR 카드에 표시만 해도 되는 과목은 그나마 나았지만, 문장을 요구하는 주관식 시험은 글씨 쓰는 속도가 남보다 느렸던 내겐 고역이었다. 제 시간에 끝내기 위해 글씨를 조금이라도 빨리 쓰면, 선생님이 잘못 알아보고 오답으로 처리할 때도 있었다.

 

장애인의 능력과 노력은 무용지물인가

 

▲ 영국의 한 장애친화적 대학 건물.  ©일다 
 

특수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던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못 넘기고, 아버지의 해외 파견 근무를 기회 삼아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 역시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허리 수술을 이유로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외국 유학이 좀 보편화되고 있지만, 당시에 유학이란 특수한 계층만 갈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들 사이에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미국으로 간다니, 남은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만족감이 나타나 있었다. 말은 잘 안 통해도 ‘약자에 대한 배려’는 할 줄 아는 것 같다고.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친구는 명문대라 불리는 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특수교육 교사 자격증을 따 무사히 취업을 했다. 외국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또 그만큼 노력했겠지만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친구의 피땀 어린 노력은 보답 받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했을 때, 지인들은 유럽 유학을 권했다. 여기서 뼈 빠지게 고생하느니 조금 더 힘들더라도 사회적인 의식이 좀더 나은 유럽 쪽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우리 사회에서는 운이 정말 좋아야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 분야가 아닌 곳에서 장애인의 학업은 무용지물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결국 학업을 계획했던 대로 마치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만큼은 공부할 수 있었기에 내 경우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장애인들도 상당수이니까.

 

국민의 권리라는 ‘교육’도 이럴진대 ‘취업’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내가 처음 불평등을 체감했던 때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장애인들과 관련된 안 좋은 소식의 형태는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도 난 장애인에게 있어서 ‘기회의 평등’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교직에 적합하지 않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최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제기한 한 소송 때문이다. 작년 광주시 교육청이 중등특수교사 임용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1차 합격한 뇌병변 장애여성(33세)을 2차 면접에서 불합격 처리한 것에 대한 공익소송이다.

 

임용시험에 불합격한 이유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교직 수행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송 변호인에 따르면, 1차 시험과 달리 2차 시험에서 교육청은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수험생은 시험 시간 연장, 의사소통 보조 기기 사용 등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한 채 시험을 봐야 했다는 것.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규칙’ 등에는 시험 실시 기관의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희망을 만드는 법>은 광주시교육감을 상대로 특수교사 임용시험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면접에서의 차별 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나 역시 대학원 시험을 볼 때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당사자의 심경에 공감이 가고, 변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한탄이 나온다.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취업 원서도 못 내보는 장애인, 휠체어 이동이 어렵다고 필기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붙은 장애인을 일말의 미련 없이 내치는 기업들, 장애를 이유로 최저임금의 일자리만 제공하는 사회.

 

한 치의 근심도 없이 장애를 이유로 한 수많은 ‘불합격’들이 존재한다. ‘기회의 평등’마저 그 개념이 흐려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기계적 평등’만 제공하는 모진 사회에 대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나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함께 사는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기회의 평등은 기계적 평등을 뜻하는 게 아냐

 

전에 봤던 인터뷰 하나가 생각났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뇌병변 장애여성의 인터뷰 기사다. 나와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약간 어눌한 발음은 음성보조기가 충분히 보충해주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내용은, 그녀의 딸이 ‘엄만 말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강의를 해요?’ 하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음성보조기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장애로 인해 폄하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라면 저의 능력을 보기도 전에 장애를 먼저 봤겠지요’ 라고. 그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인터뷰 기사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었다.

 

한국 사회도 여러 변화를 겪고 있고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있다. 나도 그 변화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외출할 때마다 느꼈던 동정의 시선도 많이 줄어들었다. 혐오의 시선도 아주 어이없는 상황이 아니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듣곤 했던 ‘보호자는 어딨어요?’ 라는 소리도 줄어들었다. 병원에서도 전처럼 짐짝 취급하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주 조금만 더, 장애인에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꼭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들을 따라가기엔 아직 많은 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외국의 복지가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황에 맞게, 장애인들이 능력과 노력을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좀더 많이 열려야 한다는 바람이 무리한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기회의 평등’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 이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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