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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이 자식아…욕설 듣는 일터
사회 문제로 부상한 ‘직장 내 괴롭힘’
“관리부장이 매일 뒤에서 내 컴퓨터 모니터를 감시한다. 내가 관리부장의 잘못된 이야기를 바로잡았다는 이유로 그 다음부터 항상 무시하고, 소리 지르고,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회사에 부고를 알렸는데 관리부장은 거리가 먼 곳에 굳이 알릴 필요가 있냐면서 부친상을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나에게는 전국 지역에서 오는 부고를 다 전달한다. (중략)
장례 이후에 일이 밀려서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관리부장이 내 자리에 와서는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쇼핑이나 하고 쳐 자빠져있다’고 말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나에 대한 욕을 하고 다녔는데 정말 치가 떨렸다. (…) 부서에 여직원이 3명 있는데 ‘야’, ‘너’, ‘이 자식아’가 기본 호칭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상담실 2013년 상담 사례 중에서
직장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는 어떤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성희롱을 당한 것도 아니며, 딱 집어 말할 수 있는 차별을 겪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괴롭힘 행위는 피해노동자의 자존감과 건강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못 버티게 만듦으로써 고용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노동자 16.5% ‘직장 내 괴롭힘’ 경험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위계적인 직장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괴롭힘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그 심각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작년 12월 ‘서울시 비정규직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을 내놓았다. 서울대공원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앞두고 관리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사건이 알려져, 서울시에서 이를 조사한 후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 2월 17일 방영된 KBS 1TV <시사기획 창> “인격없는 일터” © KBS
지난 2월 17일 KBS 1TV에서 방영된 “인격없는 일터”를 제작한 <시사기획 창> 탐사보도팀은 국내 처음으로 7개 업종에 종사하는 5천922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를 했다. (유효 응답자 4천589명) 제작진은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759명(16.5%)”이라고 밝혔다. “해외 연구에서 피해율이 보통 10% 초반인 것을 고려하면 1.5배 정도 높은 수치”다.
직장 내 괴롭힘에는 ‘괴롭힘’ 하면 쉽게 떠올리는 폭언이나 폭행, 따돌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상담실의 <2013년 주요상담 사례 분석자료>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을 준다거나, 능력보다 낮은 수준의 업무를 주거나, 원치 않는 업무로 갑자기 대체하거나, 업무 실행을 위해 필요한 정보로부터 누락시키는 것, 갑작스럽게 고함을 지르거나 말로 학대하는 것, 좋지 않은 소문을 낸다거나 의견을 무시하는 것 등과 같이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온갖 종류의 행위들”도 해당한다.
회사의 간접적인 해고 전략과 보복성 괴롭힘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에서 업무 지시권이나 인사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한다는 명목 하에 노동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지난 1월 17~18일에 일과건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노동자 건강권 포럼>에서 이종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접적인 해고를 회피하는 전략으로서, 또는 노동조합 활동가 등 회사에 비협조적인 노동자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는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노동자를 원거리로 발령 내거나, 사무만 보던 노동자에게 홍보 전단지 돌리는 일을 시키는 등,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노동관계법 상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산업재해를 청구할 수는 있지만, 극심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인과 관계를 입증하기 힘들다.
직장여성들이 호소하는 괴롭힘의 세 유형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을까? 민우회 여성노동상담실은 <2013년 주요상담 사례 분석자료>에서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성희롱에 대해 회사 내에서 문제 제기를 한다거나 가해자에게 행위를 중단하도록 요구했을 때, 성희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괴롭힘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장이 나를 성희롱 한 후) 사장과 말하는 횟수도 줄였고 사장이 없을 때 가서 일하고 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직원들에게 ‘내가 일하는 것이 믿음이 안 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내가 하는 일에 꼬투리를 잡고 괴롭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사장 자신을 거부한 것이 100%라고 하더라.”
가해자가 성희롱 이후 피해 노동자를 따돌리거나, 업무에 대해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거나, 동료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욕설을 퍼붓는 등의 괴롭힘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둘째는, 임신이나 출산을 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괴롭힘 행위다.
“공공기관 산하의 저축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작년에 업무에 복귀했는데 인사발령으로 괴롭혔다. 복귀한 지 두 달 만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고, 올해 다시 폐점 예상 지점으로 발령을 내렸다. 지점은 발령 후 한 달 만에 폐점되었고, 나를 전북 OO지점으로 발령 냈다. (…) 회사에서는 지극히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발령이라고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를 그만두게 하는 고의적인 술책으로 보인다.”
인사권을 악용한 위와 같은 사례 외에도, 임신한 여성노동자에게 “임신해서 불편하다, 배부른 것 보기가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거나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하지 않아 무능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 여성노동자들은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고용 상의 차별’이라고 주장하지만, 회사에서는 “당신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해서 이러는 것”이라면서 여성노동자를 배제하고 퇴사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언, 폭행이다.
“강의 동영상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하루는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졌다. 사수가 나한테 막말을 하고 쌍욕을 했다. 그런 무차별적 폭언을 그대로 다 견뎠다. 왜 이렇게 나한테 심하게 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내가 자기가 말할 때 깐죽거리고 웃어서 그랬다고 한다.”
민우회 여성노동상담실은 “여성노동자들은 성별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의한 언동, 여성비하 욕설로 정신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또한 나이 많은 여성에 대한 비하,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 ‘야’ ‘너’와 같이 무시하는 호칭, 조직적인 따돌림 등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역시 2013년에 진행한 상담 중에서 총 37 건의 폭언, 폭행 사례에 대해 분석하면서 “연령별로 보면 20세부터 50세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져 있어 여성은 나이에 상관없이 직장 내 폭언, 폭행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존엄을 침해하는 괴롭힘을 겪게 해선 안돼
▲ 마리 프랑스 이리고양 <정신적 괴롭힘, 무자비한 폭력>(1998)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도착적 폭력>으로 출판되었다.
여러 국가들에서 1990년대 들어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과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심리학자 마리 프랑스 이리고양이 1998년 <정신적 괴롭힘, 무자비한 폭력>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2002년에 노동법, 형법에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을 도입했다.
프랑스 노동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어떤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들과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전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의 훼손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반복되는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들을 겪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정신적 괴롭힘’에 관해 사용자의 예방 의무를 규정하고, 가해한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징계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또 가해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파워하라)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법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2012년 후생노동성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원탁회의’를 출범시켰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
1월 17~18일에 열린 <노동자 건강권 포럼>에서, 일본의 사회의학연구소 타무라 아키히코씨는 “일본의 개별 노동 분쟁 상담 중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특히 비정규직이나 저소득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이 높다”고 밝혔다.
이종희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어련히 참아야 하는 것, 경영 효율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근로계약이라는 것이 노동자가 인격까지 판매하는 계약은 아니다”고 말했다. 직장 역시 노동자의 존엄이 보장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이 변호사는 “개인이 느끼는 극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노동자의 인격권과 건강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인 인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법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회의학연구소 타무라 아키히코씨는 “직장 내 괴롭힘은 지시, 지도, 명령, 교육 등 업무상 필요성이라는 명목 안에 숨어있기 때문에 대응이 더 힘들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성희롱처럼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파워하라’(직장 내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이라는 뜻)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한국사회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인 문제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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