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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도 없고 직장 번듯한데 강간범일 리가...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성폭력 그 이후의 삶(2)
※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수기를 쓴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30대 초반인 유진은 지금도 후회스럽다. 성폭력 사건에서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진술’뿐이라면, 고소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2013년 11월 이후 유진의 시간은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4년 12월, 검찰의 불기소 이유 통지문을 받고 절망했다. 유진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를 수락했다.
유진의 이야기: 순결을 지키라는 목사님 말씀
유진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았던 유진에게는 교회가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청년부 일꾼, 주일학교와 청소년부 교사, 성가대 반주, 차량 봉사까지 하며 20대 초반부터 10년간 시간과 번 돈의 대부분을 교회에 헌신했다. 유진에게 교회는 자신의 속한 사회이자, 유일한 공동체였고, 신앙 자체였다. 여행 한번 갈 시간도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고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 전반의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잡는 것을 반성폭력 운동의 가장 큰 목표로 삼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가해자를 죽이는 선택 대신 자신을 해치는 모습으로 재연되는 것도,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던 당대 문화의 결과물이다.
많은 교인들이 그러하듯, 유진에게 목사님의 말씀은 성경과 동급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신도들은 무엇에 반대하고, 무엇에 찬성하고, 또 누구에게 투표를 하느냐 하는 문제까지 목사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는다. 유진에게도 목사님의 말씀은 길이요, 진리였다.
유진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여성에게 ‘순결을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며, 여자는 남자에게 맞고 살게 되고, 사랑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자보다는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자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 2013년 여름 수련회 때는 혼전 순결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경우, 교회에 소문이 날뿐만 아니라 신도들에게 배척당하고 은혜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유진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속한 세상의 문화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청년회 일꾼으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며 자신은 목사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 소문 내줘?’ 협박에 떨었던 시간
교회 집사님의 전도로 새로 오게 된 청년이 교회에 잘 정착하도록 안내하고 세세히 챙기는 역할도 유진의 몫이었다. 청년부 간부로서 새 신도를 챙기는 것을 사명이라 여기며 성실하게 임했다. 교회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끔 밥이나 차를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 청년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련회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다는 말에, 그녀는 아무 의심 없이 그 청년의 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교회 앞 주차장에서 갑자기 그 청년은 유진의 목을 누르고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저항하는 그녀를 무력화시킨 후 폭력을 행사했다.
고통 속에서 그녀가 기억하는 선명한 목소리는 ‘교회에 소문 내고 싶어? 소문 내줘? 조용히 해!’라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이 순결을 잃으면 자결하라고 주어진 은장도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처럼, 유진의 머리엔 목사님의 말씀이 맴돌았다.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교회에서 기도를 통해 이겨내야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멍청이 같은 생각만 가득했다.
그 뒤로 2년 동안 유진은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교회에서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날마다 회개 기도를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가해자는 이후에도 교회와 직장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그녀를 괴롭혔다. 가해자는 유진과 교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에 취약한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말이다.
학교나 직장, 교회와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흔하다. 교회가 세상의 전부였던 유진이 느꼈을 고통을 우리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가해자는 유진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면서도 교회에서는 성실한 신도로 행세했다. 그녀는 가해자의 이중적인 태도가 더 두렵고 무서웠다고 한다. 가해자는 쉽게 그녀의 모든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가해자는 항상 경찰도, 검사도, 모두 자신이 힘을 쓸 수 있으니 ‘너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가해자가 결혼을 했다. 유진은 이제 더 이상의 협박은 없을 거라고,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 달리 가해자는 결혼 후에도 알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추행을 일삼았다.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순결을 잃은 자신은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다.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른 도시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고소’를 하다
신앙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제 살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 유진에 대한 진단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흔히 드러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믿음,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자비롭고 공정하며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고,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과 우울감을 동반하는 증상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깨진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진은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가해자를 고소했다. 세상이 공정하고 자비롭기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은 고소를 하고 나서 일 년의 절반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지금은 복용해야 하는 약이 더 늘어난 상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고를 한 것? 아니면 가해자를 알게 된 것? 교회에 다니게 된 것? 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성폭력 사건 이후 후회의 몫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것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검찰 조사에서 유진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가해자가 전과도 없고 직장도 멀쩡한데, 구속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강간하겠습니까?’ ‘성경험이 없는 여자는 강간을 당하면 바로 신고하는 게 상식이고 대부분 바로 고소하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문란한 여자는 성폭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같이 성경험이 없는 여자를 어떻게 성폭행할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과도 없고 직장도 멀쩡한 사람이 성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최근 이슈가 된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 윤창준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 그리고 많은 성폭력 사건들에서 가해자는 전과도 없고 직장도 멀쩡한 사람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성경험이 없는 여자는 강간을 당하면 바로 신고한다는 것도 잘못된 이야기이다. 2010년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신고율은 12%에 불과하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남들이 아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어서, 증거가 없어서, 신고를 꺼리거나 포기하게 된다.
유진은 검찰에서 자신이 받은 질문들은 가해자에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닌지, 왜 피해자인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직장도 있고 전과도 없는 피해자가 같은 교인을 무고하게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가해자에게 왜 성폭력을 저질렀냐고 물었어야 하지 않을까? 검찰 조사를 받고서 그녀가 일 년이 다 되도록 치료를 받게 된 ‘고통’은 어떻게 설명되고 해명될 수 있는 것일까.
성폭력이 트라우마를 남기는 건 사회 때문
공동체임을 강조했던 교회의 목사님은 사건이 알려지자 ‘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심지어 교인들은 같은 교인인 가해자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었다. 유진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성폭력은 범죄이고 근절되어야 하며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고 사회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는 피해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피해자의 탓을 하는 사회 때문이다.
이제 유진은 법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할 길이 없다. 가해자는 명예훼손이라며 그녀에게 민사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원고가 아닌 피고의 위치에서 길고 긴 소송을 견뎌내야 한다.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것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지 사건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에도, 성폭력 피해자들 중에는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라는 죄명으로 소송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유진에겐 2년간의 괴롭힘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앞으로 기나긴 치유의 길이 남아 있다. 나는 증거 불충분으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신의 행동은 용기 있는 것이었으며 당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세상은 좀더 공정하고 피해자에게 자비롭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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