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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셧다운이 아니라 학습시간 셧다운!
학생에게도 휴식을…<아수나로>의 다섯 가지 제안 

 

[과도한 학습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현실을 지적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청소년의 삶과 권리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담은 이 기사의 필자 묵은지님은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낯섦’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 학교

 

모든 것이 낯설어야 했다. 0교시 시작 시간에 늦지 않으려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도, 가파른 등교 길을 힘겹게 오르는 것도, 턱없이 짧은 점심 시간 안에 배를 채우려 먹을 것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에 졸지 않으려 제 손으로 뺨을 찰싹 찰싹 때려가며 앉아있는 것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교문 밖을 나서는 것도.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공간에 처음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그 모든 것은 낯설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겐 낯섦을 느낄 귄리조차 없었다. 부족한 수면 시간에 하루 종일 눈 밑이 퀭해도, 급하게 먹다 체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학교는 ‘왜 아직 적응하지 못했느냐’고 도리어 나의 낯섦을 타박했으니까. 결국 신입생들 대다수는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에 순응하며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곧 그들이 처한 모든 부조리에 무심해졌다.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못했다. 그 ‘낯섦’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을 느끼며 괴로워하거나, 교실 한 구석의 이방인이 되거나,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나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탈학교를 결심해 지금은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새삼 학교 안에서 받는 고통을 해결하는데 가장 편리한 방법은 ‘학교에 있지 않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씁쓸하기도 하다. 학교 밖으로 나온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니까.

 

과잉 학습으로 채워지는 학생들의 시간

 

학교가 이렇게 끔찍한 공간이 된 이유 중 하나는, 학교가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 2010년 발표된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 ‘학생의 학습시간’ 통계  © 아수나로 제공 
 

2010년에 발표된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 ‘학생의 학습 시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의 평일 평균 학습 시간은 10시간 47분이다. 주말의 시간까지 합쳐 계산하면 학생들은 주당 약 64시간을 오로지 학습만을 위한 시간으로 쓰고 있다.

 

또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2013년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연구’에서는 일반/특목/자율고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5.5시간이었다. 이들 중 절반에 육박하는 48.4%가 평일 여가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된다고 답한 것으로 발표됐다.  

 

▲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교조에서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   © 아수나로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도 살펴보자. ‘방과후학교,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등을 강제로 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자주 있다’가 37.8%, ‘가끔 있다’가 16.1%로, 총 53.9%의 학생들이 강제 학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실태 조사들의 결과를 묶어 요약하면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학습을 위해서 소비하고 제대로 잘 수도, 쉴 수도 없으며 이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은 이를 강제적으로 하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휴식 시간이 부족한 게 게임과 스마트폰 탓?

 

사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기성 세대가 이 문제에 대해 파악한 원인과 해법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의 휴식 시간이 부족한 것은 밤 늦은 시간에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스마트폰 규제 앱을 만들어 학생들을 통제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처한 환경을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해결책이다. 학생들의 휴식 시간이 지켜지기 위해서 규제해야 할 것은 게임도, 스마트폰도 아니다. 바로 ‘과도한 학습 시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입시경쟁 교육 속에서 폭주하는 학습 시간을 사회적으로 규제하자는 운동이다. 노동 시간에 제한을 두듯이, 적절한 학습 시간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고 학생들의 시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수나로가 주장하고 있는 요구를 소개한다.

 

①  오전9시 등교 오후 3시 하교, 하루 6시간 학습!

 

‘별 보고 학교 갔다 별 보고 집에 온다’는 말은 이미 익숙한 문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학교는 학생들을 하루 온종일 한 자리에 붙잡아 놓고 학습만을 강요한다.

 

2009년 OECD 국가들의 15-24세 평균 학습 시간은 1주일에 33.92시간이었다. ‘하루 6시간 학습’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 13-14시간을 학교에 붙잡아두는 것이 이상한 일로 여겨져야 한다.

 

②  방학일수 늘리고, 수업일수 줄이고!

 

길어봤자 4주가 조금 안 되는 방학, 그조차도 보충이다 뭐다 하면 방학이 1주일이 채 넘지 않는 학교도 굉장히 많다.

 

방학은 쓸모 없는 시간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꼭 필요한 기간이다. 법에 정해진 수업일수 역시 현재의 ‘190일 이상’이 아니라 180일~185일로 줄여야 할 것이다.

 

③  보충, 야자, 학원 등 강제 학습 금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도, 하고 싶지 않은 보충 수업과 학원 수업을 듣도록 강요당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학생보다 부모나 교사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시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학생의 시간은 학생의 것이다. 학생의 의견에 반하는 강제 학습은 사라져야 한다.

 

④  야간, 주말, 휴일엔 학생들도 휴식을!

 

밤 10시가 넘어가도 온통 환하게 빛나는 학교 건물들, 주말에도 어김없이 등교하는 학생들…. 이런 풍경들은 부지런함의 상징이 아니라 슬픈 교육 현실의 상징이다. 모두가 쉬어야 할 야간, 주말, 휴일에는 학생들 역시 쉴 수 있도록 학교와 학원의 문을 닫아야 한다.

 

⑤ 과잉 학습으로 밀어 넣는 경쟁교육 개혁!

 

위의 요구들을 들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학습 시간을 줄인다고 학교를 일찍 마치게 하면 사교육이 더욱 횡행할 것이다’, ‘학습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 입시경쟁 교육, 학력 차별과 학벌 차별, 무한 경쟁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수업을 줄이고 사교육을 규제한다 해도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습 시간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경쟁 교육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목표이다.

 

청소년에게 밤과 휴일의 시간을 보장하라

 

▲  아수나로 광주 지부에서 진행한 캠페인  © 아수나로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사교육과 공교육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교육의 문제에 대해 말할 때는 ‘과도한 사교육’이 단골처럼 불려 나왔다. 그리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주된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청소년들의 삶과 학습 부담에 대해 간과한 접근이 아니었을까?

 

공교육 역시 입시경쟁 체제 속에서 학생들에게 공부할 것을 강요하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이미 너무 긴 학교 수업 시간과 수업일수를 줄이자는 주장을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야간 학습, 휴일/주말 학습을 없애서 학생들이 밤과 휴일만은 자유로운 여가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 학교, 가정, 사교육 등에서 모든 강제 학습을 없애자는 주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하루 6시간을 기준으로 학습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또한 경쟁교육 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도 담아서, 과도한 학습 시간을 유발하는 근본적 원인을 함께 개혁해나가자는 메시지 역시 전하고자 한다.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교육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인 ‘학습 시간’이라는 이슈를 통해, 학생들의 삶을 중심에 둔 교육 운동을 만들어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면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낯섦이라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설렘이라고 치환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것들에 대한 설렘. 지금의 학교는 그러한 감정들이 허용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저 공부만을 쉴 틈 없이 강요하는 학교가 아닌, 제대로 된 여유와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가슴 뛰는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꿈꾼다. 우리의 교육 운동이 학교에서의 낯섦을 허용케 하는 순간을. 그리고 상상한다. 그 공간에서의 벅찬 설렘을.   ▣ 묵은지 (아수나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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