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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성’이 다수인 출판노동자의 목소리
출판노동 실태조사 결과, 생존권 문제 대응 요청 

 

[최근 출판산업 종사자의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에서 진행한 ‘출판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진희(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님이 출판노동의 현실을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1인 출판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이유는?

 

2월 4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한 2015년 출판산업기관 사업 설명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에서는 대표와 소속 분회 간부들이 피케팅을 하기 위해 사업 설명회를 찾았다. 우리가 준비해간 피켓의 문구는 단순 명료했다. 출판문화산업의 진흥은 출판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지켜질 때 가능하기 때문에, 출판노동자를 위한 정책과 사업을 마련하라는 내용이었다.

 

▲  2월 4일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업설명회  장소에서 피켓을 든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대표와 간부들.  ©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예상치 못한 불청객(?)들이 등장해 피케팅을 시작하자, 행사 담당자부터 건물 관리실 직원까지 나타나 우리를 막으려고 하면서 한때 소동이 일기도 했다. 출판계 행사에 출판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지는 것이 이토록 이례적인 일이고 참아줄 수 없는 것일까? ‘출판인’이라는 범주 안에 출판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 걸까?

 

행사장 안에서 피케팅을 진행하는 동안,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제작한 홍보 영상을 지켜보았다. 주로 진흥원이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출판인 지원 사업 덕분에 개개인의 창의적인 저작이 발굴될 수 있었고, 열정적인 1인 출판사들이 책을 출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인문학 도서를 열심히 읽은 덕분에 대형 금융기업에 취직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한 청년의 간증이 흘러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공공기관의 홍보 영상 수준은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1인 출판사들이 지금처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유에는 ‘출판산업의 고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배경이 있다. 나이 서른아홉이면 퇴직하고 자기 회사를 차려야 한다는 자조 섞인 체념은 이 바닥에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하다.

 

어디 그 뿐인가. 출판사에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들 중 다수는 출판 외주노동자로 흘러 드는데, 이 외주자들이 받는 작업비 단가는 십 년이 넘게 오를 줄을 모르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외주자들의 저렴한 작업비 덕분에 1인 출판사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직자에서 이탈한 노동자의 일부는 1인 출판사 사장이 되고, 일부는 외주자가 되어, 또 다른 먹이사슬을 생성한다.

 

상황이 이런 데도 출판노동을 둘러싼 맥락 없이 ‘1인 출판사 육성’을 사업이라고 밀고 있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출판노동자들 입장에선 곱게 보일 리 없다.

 

출판노동자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나

 

물론, 출판산업 내 노동 문제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때문만인 아니다. 2014년 출판계 10대 뉴스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민음사 부당해고 사건’과 ‘쌤앤파커스 성폭력 논란’이 이슈화되었을 때도, 한국출판인회의나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와 같은 출판계 단체들은 어떤 자성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단체들의 공통점은 출판사 사업주들이 중심이 된 조직이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서 경총이 앞장서 반성을 하지는 않으니, 출판계 경총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출판사 대표들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도서를 출간했거나 책이 많이 팔려 그 공로를 인정받을 때 그 공을 모두 가져가는 데 반해, 앞의 사건들과 같은 노동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철저히 침묵을 지키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자신들이 생산하는 상품이 국가로부터 면세 혜택을 받고, 출판단지에 입주할 당시 몇 년 간 법인세 면제 혜택까지 받았던 출판사 대표들인데 말이다.

 

피케팅을 마치고 행사장 앞에서, 함께 간 출판노조협의회 간부들은 자신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속이라고 밝힌 한 남성과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는 피케팅을 진행한 우리들을 반쯤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출판계에 대한 자신의 인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출판단지에 방문했다가 출판사 직원과 대표를 모두 만날 일이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대표가 요즘 출판 시장이 너무 어렵다며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회사가 어려우면 사장이 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옆에 있던 직원까지 함께 따라 울더라는 것이다. 사업주와 직원의 정서가 이렇게 일치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해도 적당한 창구가 없어서 답답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 말은 지금까지 출판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이 부재했던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출판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모일 창구가 없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지금껏 출판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어째서 목소리 높이지 않았을까? 출판산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지역분회)가 불과 2년여 전에야 설립되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제외하고, 다른 원인은 뭐였을까?

 

출판노동 종사자 다수가 ‘청년 세대, 여성’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편으론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지난 해 하반기 출판노조협의회에서 실시한 ‘출판노동 실태 조사’에 참여한 전체 501명의 응답자 중에서 20대와 30대가 469명으로 93.6%에 달했다. 남성은 117명(23.4%)인데 반해 여성은 384명(76.6%)으로 훨씬 비율이 높았다. 흔히 출판계는 “여초”라고 말하는데, 이번 실태 조사를 통해 출판산업의 청년 세대 여성노동자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한 셈이다.  

 

           ▲   2014년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가 진행한 출판노동 가두 홍보.  ©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지역분회로 들어오는 노동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출판산업에서 부당 해고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지 실감하게 된다.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로 문제는 시작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측의 압박으로 인해 권고 사직을 하거나 자진 퇴사하는 형태로 마무리되고 만다. 작년에 발생한 민음사나 중앙북스 사건처럼 가시화된 해고는 빙산의 일각조차 되지 못한다.

 

오죽하면 실태 조사에서 501명의 전체 응답자중 386명(77%)의 응답자가 ‘부당 해고 등 생존권 문제에 대응해달라’고 답했을까.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업계가 좁으니 재취업을 위해서라도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것이 바로 출판산업이다. 작년 하반기 출판계를 넘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쌤앤파커스 사건 역시 이러한 출판노동의 현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출판계 분위기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당연한 권리조차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위축시켜왔다. 여기에 더해, 앞서 말한 출판사 ‘사장님’들의 정서와 입장을 내면화하여 노동자의 입장에서 뭔가를 요구하고 쟁취하는 것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탓도 크다.

 

2013년 봄, 그린비출판사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사업주 측과 맞서 싸웠을 때도 노조가 너무 과잉 대응한다는 의견이 출판노동자들의 입에서 나왔을 정도다. 그 이후 앞에서 언급한 출판노동 사건들에 대응해오면서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도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변화해오긴 했지만, 출판노동자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고립되고 위축되어서 노동자로서 차별을 받아도 침묵하는 데에 익숙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노조협의회에서 올 한해 현장의 출판노동자들과 접촉면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대중 강연은 물론이고 출판도시 선전전 등을 주요 사업으로 준비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크다. 출판산업 공공기관들과 사업주 단체들에게 노동자를 위한 정책과 사업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이제는 침묵하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함께 헤쳐나갈 노동조합이 여기에 있다.

 

출판계는 젊은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곳이다. 다시 말해 출판계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개선된다는 것은, 곧 출판산업 전체의 노동 현실이 좋아진다는 말과 같다. 어떻게 하면 출판계의 젊은 여성노동자들과 더 많이 만나고, 함께 출판노동의 현실을 바꾸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함께 해나갈 출판계 여성노동자들의 참여가 절실한 순간을 우리는 지나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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