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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8. 집집마다 사과가 익는 가을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프랑스에서는 10월이 되면, 포도주 시판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새로 나온 포도주 제품들이 인쇄된 카달로그들이 집집마다 배달되고, 슈퍼마켓에선 포도주 관련 특별 행사까지 개최해가며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당긴다. 브르타뉴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점마다 새로 나온 포도주 병들로 가득하다.
 
프랑스는 전국에 걸쳐 포도밭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포도주가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브르타뉴는 유명한 포도주가 없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물론, 포도주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브르타뉴의 포도주는 규모 면에서도 매우 작고 대중적으로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브르타뉴의 포도 재배와 포도주 역사
 
그러나 옛날에도 이랬던 것은 아니다. 브르타뉴 지방에도 포도밭이 있고 포도주가 만들어졌던 때가 있었다. 

▲ 렌의 한 개인주택 앞, 옛날에 포도주가 생산되었음을 알려주는 조각품이라 한다. ©정인진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 포도 재배가 지중해를 거쳐 프랑스에 자리잡게 된 것은 기원전 12세기 일이다. 초기만 해도 달달한 이 과일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즙을 짜서 발효시킨 음료에는 열광했다. 로마 식민지였던 서기 1세기에 들어, 이 덩굴식물의 재배는 식민지 끝까지 전파된다.
 
브르타뉴의 게랑드(Guerande) 근방 ‘피리악-쉬르-메르’(Piriac-sur-Mer)에서 압착기가 발견되었는데, 서기 1~3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브르타뉴에서 사과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에 들어서이고, 올리브는 이 지역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압착기는 포도주와 관련된 것이리라 추측되고 있다.
 
중세 들어 포도밭은 브르타뉴 각지로 넓혀진다. 모를레(Morlaix)에서 랑데베네(Landevennec)와 크로종(Crozon) 반도까지, 또 ‘뽕-스크로프’(Pont-Scroff)에서 ‘돌-드-브르타뉴‘(Dom-de-Bretagne)까지, 브르타뉴 전 지역에 포도가 재배되었다. 하지만 보르도나 브르고뉴 지방만큼 포도주 생산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포도주 품질이 나빠서 주로 미사를 위해 쓰였고 포도밭도 수도원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13세기부터 브르타뉴에서 포도 재배는 쇠락의 길을 밟는다.
 
17세기에 들어 프랑스에서는 브르고뉴 지방의 포도주가 이름을 떨치게 되고 보르도, 랑그독, 루시옹, 샤랑트, 발-드-루와르 같은 지역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 시기 노르망디 지방 동쪽까지 포도 재배가 넓혀진다.
 
그러다가 1880년대 ‘포도나무뿌리 진디병’(phylloxera)이 프랑스 남부를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샤랑트(Charentes)의 꼬냑 생산이 크게 줄었다. 진디물이 아직 북쪽까지 번지지 않는 틈을 타, 브르타뉴의 뤼스(Rhuys)에서는 샤랑트의 꼬냑과 경쟁할만한 증류주를, 랑스(Rance) 지역과 ‘러동’(Redon)에서는 백포도주를 생산했다. 특히 낭트(Nantes) 근방에서는 ‘그로 플랑’(Gros Plant)과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라고 이름 붙여진 주목할만한 포도주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1900년 포도나무뿌리 진디병이 브르타뉴에도 번지고, 결국 10년 뒤 포도 재배는 모두 실패하고 만다. 겨우 보존된 품종들과 미국의 포도나무에 접붙인 포도 묘목들을 가지고 프랑스 전역에서 포도 재배가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된 것은 1920년부터였다.
 
이렇게 다시 생산을 시작한 포도주가 20세기를 관통해 생산 과잉 단계까지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브르타뉴의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낭트 지역을 제외한 브르타뉴 지방의 포도 재배는 점차 사라져갔다.
 
사과주 ‘시드르’를 좋아하세요?
 

▲ 브르타뉴의 대표 요리인 걀레뜨. 그 옆에 시드르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시드르를 이렇게 손잡이가 달린 넙적한 도자기 잔에 담아 마신다.   © 정인진 
 
포도주 대신 브르타뉴는 ‘시드르’라고 불리는 사과주가 유명하다. 이곳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사과 생산지 중 한 곳이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처럼, 브르타뉴 사람들은 시드르를 마신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시드르 없이 식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 만큼 슈퍼마켓이나 시장에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드르가 가판대마다 가득 쌓여있다.
 
브르타뉴가 사과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와 시드르 생산지는 브르타뉴 바로 옆에 위치한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이다. 브르타뉴에 사과가 들어온 것도 노르망디를 통해서였고, 그것은 중세 말의 일이다. 렌 근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과 재배와 시드르 생산은 점점 브르타뉴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러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는 렌이 속한 일에빌렌느가 프랑스에서 사과주 생산 1위 지역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특히 렌에는 앙꺄베르(encaveur)라고 불리는 특별한 직업이 있었다. 카페에 딸린 지하창고에서 시드르 통을 오르내리는 일을 했던 노동자를 일컫는다. 배가 불룩한 200리터들이 시드르 통들을 지하창고에 내리고 올리는 작업은 매우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이 일에는 투박한 나무받침대와 동아줄이 이용될 뿐이었다. 지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사과주는 더운 여름, 낮부터 저녁까지 시원하게 일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당시 이들은 주발이나 손잡이가 달린 잔에 시드르를 담아 마셨다. 지하의 노동 조건은 유리잔보다 주발을 이용해 술통에서 직접 사과주를 떠 마시는 것이 편리했다. 사람들은 밟아 다져진 땅 위에 마지막 술 방울들이 떨어지도록 잔을 흔들고, 옆 동료에게 시드르 잔을 넘겨주곤 했다.
 
이런 전통 속에서 브르타뉴 사람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손잡이가 달린 넙적한 도자기 잔에 사과주를 마신다. 발이 달린 우아한 유리 잔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너무 다른 풍경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이런 기원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나는 식당에서 본 시드르 잔이 너무 싼 값에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와서 시드르 대신 커피를 담아 마시며 혼자 기분을 내기도 했다. 

▲ 요즘 브르타뉴 시장에서는 다양한 사과를 가득 쌓아놓고 매우 싼 값에 팔고 있다.   © 정인진 
 
과거, 시드르를 만들기 위해서 고된 사과 줍기는 필수였다. 그러나 모두들 시드르 생산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과나무의 사과들을 훔쳐가지 못하게 지키면서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을 돌보곤 했다. 브르타뉴 지방에서 해마다 사과 압착기가 돌아가는 날은 마을 축제일이 되었다. 지금도 브르타뉴에서 펼쳐지는 문화예술축제에 소개되는 노래와 춤 가운데는 옛날에 사과를 줍거나 사과주를 만들면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겼던 것들이 많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시드르 생산은 거의 공업화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중요한 요소들은 원래의 품질을 잘 유지해나가고 있다. 몇몇 농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드르를 생산하기도 한다.
 
사과나무 그늘 아래
 
한편, 브르타뉴 지방은 사과주만큼이나 사과주스도 흔하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품종의 사과들이 광주리마다 가득 담겨 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과를 요즘처럼 즐겨 먹기는 처음이다. 우리 돈으로 몇 천원 정도라면 한 광주리를 살 수 있을 만큼 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 사과들이 너무 맛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과 빵이나 사과파이 같이, 사과를 주재료로 하는 요리도 자주해먹고 있다.
 
그러나 시드르의 알콜 도수가 다른 술에 비해 낮음에도 불구하고, 술이 약한 나는 아직 한 병도 사보지 못했다. 또 매번 장본 것들로 가방이 무거워, 늘 사야겠다고 마음 먹는 사과주스도 자주 마시지는 못했다. 

▲ 브르타뉴 끌뢰네 마을의 한 단독 주택.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가 익고 있다.    © 정인진 
 
사과가 유명한 만큼, 브르타뉴에는 마당에 사과나무를 키우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단독 주택의 정원에서 사과나무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흐드러지게 열매가 달린 가지들을 담장 밖으로 길게 뻗은 키 큰 사과나무를 그늘 삼아 담장 위의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그러는 사이 사과가 익고 있었다. 가을인 것이다.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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