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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7. 프랑스 시민사회가 노숙인을 돕는 방법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노숙인들의 자활공동체 ‘엠마우스’에 가다
오랜만에 ‘엠마우스’(Emmaus)를 찾았다. 엠마우스는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가게와 비슷한 곳으로, 시민들이 기증한 중고물건을 매우 싼 값에 판매한다. 이곳에는 옷이나 그릇은 물론, 가구와 책, 가전제품들까지 갖추어져 있다. 엠마우스에는 가난한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필요한 것을 구한다. 나 또한 이곳을 즐겨 이용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잠깐 살더라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많고, 그것들을 모두 새것으로 사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대부분 엠마우스나 벼룩시장에서 구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엠마우스에 필요한 걸 구하기 위해서만 가는 건 아니다. 산책 삼아, 구경 삼아 가는 것도 즐겁다. 잠깐의 체류 중에도 들꽃을 꽂을 수 있는 화병과 햇볕 좋은 날 창 앞에 앉아 차를 즐길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바로 이곳에서 사왔다. 귀국할 때는 나도 이곳에 쓰던 물건들을 기증하고 돌아갈 생각이다.
▲ 렌의 있는 노숙인 자활공동체 '엠마우스' 내부. 프랑스 전역에 116개가 운영되고 있다. © 정인진
엠마우스는 ‘엠마우스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공동체는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세워졌다. 현재 프랑스에 116개가 존재하고, 이들은 기증받은 다양한 물건들을 팔아서 생활한다. 매년 약 23만톤의 물건을 수거해서 판 돈 중, 5백만 유로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 쓴다. 거의 모든 종류의 물건을 기증받아 손질해 엠마우스 판매점에서 팔고, 완전히 망가진 건 고철을 분리해서 판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노숙인들이 삶의 희망을 찾고 자활을 하는데 엠마우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짐을 맡아주고, 주소를 만들어주는 시민단체들
프랑스에도 노숙인들이 많다. 전국적으로 집 없이 호텔이나 친척, 친구들 집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약 70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13만3천 명은 인도나 다리 밑, 기차역 같은 곳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이렇게 집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엠마우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돕는 단체들이 많다.
‘맹 리브르’(L’association des Mains Libres: 자유로운 손)라는 시민단체는 주간에 노숙인들의 짐을 보관해준다. 이곳은 노숙인과 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노숙인들이 짐을 가지고 다니면 활동하기도 힘들고 일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주간에 짐을 맡아주는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이 단체가 생겼다. 나도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노숙인들이 짐을 맡길 곳이 없어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주소가 없는 이들에게 주소를 만들어 주는 ‘CASP’(le Centre d’action socilale protestans)라는 시민단체도 있다. 이 단체의 주소로 노숙인들이 우편물을 받을 수 있다. 2천5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주소를 갖고 있으며, 매일 4백통의 우편물이 온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우편물을 찾아가길 권한다. 모든 우편물은 최대 석 달 보관하고, 그래도 찾아가지 않으면 우체국을 통해 반송된다.
또 ‘거리의 집’(La maison dans la rue)이라는 쉼터도 있다. 이곳에 매일 2백여명의 노숙자들이 온다고 한다. 여기서는 커피와 같은 음료수가 무료로 제공된다. 차를 마실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집을 구하기 위해 ‘거리의 집’ 사회복지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다.
24시 무료전화, 이동식 구조활동, 응급주거센터
한편, 노숙인들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115에 전화를 할 수 있다. ‘사뮈소시알’(Samusocial)이란 단체에서는 24시간 무료 전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뮈소시알은 1993년 끄자비에 엠마누엘리(Xavier Emmanuelli)라는 이름의 의사가 창설했는데, 노숙인들을 응급 구조하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응급주거센터’(CHU: centre d’hebergement d’urgene)에 빈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준다. 그러나 주거센터 자리는 늘 턱없이 부족해서 약 7만개 정도가 더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사뮈소시알 안에는 ‘뮈로드’(muraude)라는 이동 단체도 있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운전사 3인이 한 조가 되어, 거리를 다니면서 노숙자 응급구조활동을 펼친다. 노숙인들에게 대피소로 갈 것을 권하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음료수와 덮을 거리를 제공한다.
실제로 많은 노숙인들이 자기 자리를 뜨길 원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양하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물건이나 가방을 도둑맞는 등의 나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가 머무는 자리를 마치 <자기 집>처럼 생각해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자기 자리를 떠났다가 자칫 다른 노숙자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까 봐 못 떠나기도 한다고.
‘레스토 뒤 꾀르’(les Restos du coeur)에서는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겨울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1억끼가 넘는 식사를 제공한다고 하니 그 양이 놀랍다. 특히 ‘레스토 뒤 꾀르’는 노숙인들만 아니라 가난한 가정에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음식물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먹을 거리를 살 돈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오는 가난한 가정은 대부분 한부모 가정이나 불법체류자들의 가족들로, 많은 이들이 생활을 꾸리기에 수입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시민단체들이 개인의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세금, 프랑스 정부와 유럽연합의 도움이 포함되어 있다.
트럭학교, 기차집…소외된 이를 돕는 시민의식
노숙인을 위한 많은 구조활동 가운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트럭학교’ (camion-ecole)이다.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노숙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트럭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옷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모가 일하러 가거나 구걸을 하러 간 동안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또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는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럭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트럭을 이용하여 이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읽기, 쓰기, 셈하기, 그리기 등을 다른 학교에서처럼 배울 수 있다. 또 이 어린이들이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교재와 노트, 학용품 등을 차 안에 놓고 다닐 수 있다.
▲ 노숙인 자활공동체 엠마우스. 프랑스에선 노숙인을 돕는 다양한 시민 활동을 찾아볼 수 있다. ©정인진
베르씨(Bercy)에 있는 기차집도 창의성이 돋보이는 응급주거 중 하나다. 베르씨 기차역 바로 옆에는 기차가 하나 멈춰 서 있는데, 이곳도 응급주거센터(CHU)로서 ‘CASP’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 기차에는 73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기차집은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 45분까지 머물 수 있다. 낮에는 꼭 떠나야 하며, 밤 10시 이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기차 안에 개인적인 자기 방을 제공받고, 열쇠로 잠그고 다닌다. 또 이곳에는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을 데우고 따뜻한 음료를 준비할 수 있는 공동 공간도 갖추어져 있다. 샤워도 할 수 있고, 아침도 제공된다.
프랑스의 노숙인들을 돕는 다양한 시민단체를 보면서, 선진국이란 노숙자가 없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구제하고 도울 다양한 장치와 조직을 갖고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소외된 계층을 도울 다양한 방법을 자발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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