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4. 축제의 계절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집단 노동’에 기원을 둔 브르타뉴 민속춤
브르타뉴에서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에서는 브르타뉴의 전통 민속춤과 민속 음악이 소개된다. 또 오늘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현대음악과 결합된 켈트음악이 연주되기도 한다.
▲ 캥페르(Quimper) 지역에서 열린 꼬르누아이유 축제에서 한 무용단의 거리 공연 모습. © 정인진
전통 민속 음악은 백파이프(biniou)와 봉바르드(bonbarde)라고 부르는 피리가 중심이다. 이 두 악기를 듀엣으로 연주하는 것이 브르타뉴 민속 음악의 기본인데, 여기에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바이올린이나 북, 아코디언 등이 추가된다. 이런 악단을 바가두(badadou)라고 부른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바가두가 이끄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브르타뉴의 전통 민속춤은 대체로 군무 형태를 띤다. 많은 경우 대열의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이 리듬을 이끈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젊거나 늙거나 가리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거나 사슬을 만들어 춤을 춘다.
브르타뉴 민속춤과 음악은 집단 노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로부터 농업에 기초한 브르타뉴는 대규모 집단 노동이 많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수확과 타작, 사과와 감자 수확, 사과주 짜기 등의 노동에 춤과 음악이 담겨 있다. 이런 전통 속에서 브르타뉴의 민속예술은 민중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특징이다.
도시의 ‘밤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브르타뉴 축제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도시 단위로 페스트-노츠(fest-noz)라는 밤의 축제를 들 수 있다. 이 축제는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만큼, 마을잔치 성격을 띤다. 밤 축제에서는 다양한 음악, 무용 공연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시마다 조금씩 양상이 다르지만, 주민들이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거나 사슬을 만들어 돌면서 춤을 추는 것이 공통점이다.
▲ 렌에서 열린 '밤의 축제' 한 장면. 공연을 마친 뒤 참가자들과 시민들이 어울려 브르타뉴 전통 민속춤을 추었다. ©정인진
렌에서도 7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밤 축제가 열렸다. 나는 렌의 밤 축제에 구경가기 위해 늦은 밤마다 시내에 나갔다. 각 마을의 전통 무용단과, 우체국 같은 관공서에 존재하는 바가두 악단에 이르기까지, 이 축제를 위해 준비한 공연이 펼쳐졌다. 무용의 경우, 모두 고유의 전통의상으로 차려 입어 화려함을 더했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은 무대 앞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공연을 즐기기도 하지만, 뒤편에 위치한 간이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음료수와 간식을 즐기며 잔디밭에서 담소를 나누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늦은 밤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무대와 무대 앞 공터로 나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바가두 악단들의 즉흥 연주에 맞춰, 알거나 모르거나 덥석덥석 손을 잡고 원을 넓혀가고 사슬을 늘린다.
한편, 랑발(Lamballe)이라는 도시의 밤 축제는 진수성찬(Les Regalades)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이 축제는 해마다 7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목요일 밤마다 여섯 차례 열리는데, 축제일이 되면 랑발 시내의 시장광장(la Place du Marche)은 엄청난 규모의 식당으로 변한다. 광장 가득 커다란 식탁들이 펼쳐지고 주민들이 나와 광장 둘레에 준비된 레스토랑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즐긴다.
전통 민중무용은 물론 락음악, 켈트음악, 라틴댄스까지 매우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데, 매년 ‘진수성찬’에 약 1만8천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켈트문화 축제의 하이라이트
브르타뉴의 여름 축제가 각 도시에서 열리는 밤 축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몇몇 도시에서는 세계적인 켈트문화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로리앙(Lorient)에서 열리는 ‘로리앙 켈트문화 축제’(Le Festival Interceltique de Lorient)이다.
▲ ‘로리앙 켈트문화 축제’에서 한 바가두 악단이 연주를 하며 행진하는 장면. © 정인진
이 축제는 1971년부터 열렸는데 유럽에서 중요한 축제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만 65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로리앙 축제는 켈트민족이 기반이 된 나라와 공동체들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로리앙이라는 도시에 모여, 8월 첫 주에 열흘간 개최된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걀리스인(galicien)과 아스튀리스인(asturien)까지 참여하고 있다.
각 지역의 참가자들은 봉바르드와 백파이프가 이끄는 바가두 악단들이 연주하는 켈트 전통음악에 맞춰 거리 행진을 하는데,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이 행진은 켈트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퍼레이드로, 3천5백명의 음악가들과 가수, 무용수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첫 일요일 아침 4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로리앙 거리에는 약 7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행진이 끝나는 무스투와르(Moustoir) 경기장에는 입장료를 낸 1만명의 관객이 들어찬다. 해마다 이 행진은 프랑스의 주요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TV로 생중계되고 있다.
이 페스티벌에서는 켈트 전통악뿐 아니라 재즈, 락으로 현대화된 음악들도 소개된다. 또 각 지방에서 우승한 팀들이 모여 바가두 결승 경연대회와 무용경연대회(War’lleur)가 열리기도 한다.
켈트 문화제는 로리앙 축제 외에도 깽페르(Quimper)에서 열리는 꼬르누아이유 축제(Le festival de Cornouaille)가 있다. 꼬르누아이유 지방은 브르타뉴의 서남부, 크로종 반도에서 깽페르를 거쳐 깽페를레에 이르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깽페르에서는 매년 7월 마지막 주에 9일동안 꼬르누아이유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1923년부터 시작해, 올해 90회를 맞았다. 여기서도 바가두, 피리 악단(pipe bands), 민속무용 등의 경연대회와 180여개 공연과 음악회들이 열린다.
전통과 저항 정신의 만남, 축제의 역사
로리앙 축제나 꼬르누아이유 축제는 옛날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20세기 이후 기획된 것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켈트민족의 유대를 강화하고 그들의 민속 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한 목적에 맞게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5월 ‘브르타뉴 축제’에서 소개된 브르타뉴 민속무용 한 장면. (렌시) © 정인진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축제 기간에 전통예술 공연만 열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축제 기간에 광장과 대로에는 각지의 장인들이 만든 다양한 생산품들과 켈트문화를 소개하는 책이나 기념품 부스가 열린다.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을 위한 먹을 거리들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다. 로리앙의 열흘 동안의 축제 기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이 다른 관광도시의 1년 관광 수입에 해당된다고 하니, 축제의 목적이 놀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다.
브르타뉴의 각 도시에서 펼쳐지는 밤 축제 또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1955년 플라우엔(Poullaouen)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밤 축제의 기원이다. 그것이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운동, 특히 반전반핵 운동과 결합하면서 한층 발전된다. 몇몇 도시의 밤 축제는 파업노동자들과 연대의 표시로 조직되었고, 또 몇몇은 디완(Diwan. 브르타뉴 언어로 교육하는 학교)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락과 팝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살짝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와서는 활기를 띠게 된다. 오늘날 밤 축제는 브르타뉴의 문화를 잘 반영한 여름 축제로서 그 지위를 굳힌 상태다. 브르타뉴의 이 밤 축제는 2012년 12월부터 유네스코(UNESCO)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최근에는 ‘브르타뉴 축제’가 기획되기도 했다. 이 축제는 올해 5년째를 맞는데,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도시들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브르타뉴인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축제를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도쿄, 뉴욕, 베이징, 브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곳곳에서 같은 기간에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매년 5월 중순 4일간 개최되는데, 브르타뉴 민족간의 유대감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기존에 존재했던 것을 계승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덧붙여 가며 그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농업에 기반한 공동체 속에서 계승되어 온 노동요와 노동춤을 광장으로 데리고 나와 서로의 연대감을 높이는 축제로 변형시켰다. 또 군무뿐이었던 민속춤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추는 춤이 덧붙여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브르타뉴의 여름 축제들은 내가 그동안 전통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마도 나는 꼭 오랜 세월 이어온 공동의 습관만이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은 늘 새롭게 해석되고 당대의 상황에 맞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전통과 문화가 시대의 물결을 타고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가는지를 이 축제들 속에서 보았다. 또 과거의 유산으로서만이 아니라, 문화는 산업이고 경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렇게 여전히 전통은 그들의 삶이 되고 있다는 것을 브르타뉴의 여름축제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정인진)
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경험으로 말하다 >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숙인들의 자활공동체 ‘엠마우스’에 가다 (0) | 2013.09.30 |
---|---|
부드러운 햇살의 도시, 활기 넘치는 반느 (0) | 2013.09.22 |
뒤뜰에 펼쳐진 식탁, 햇볕 아래 밥 먹기 (0) | 2013.09.11 |
“도움이 필요하세요?” 묻는 브르타뉴 시민들 (0) | 2013.08.31 |
알바생, 가사도우미도 유급 여름휴가 받는 프랑스 (1) | 2013.08.18 |
‘바다의 도시, 생-말로에 가봤어?’ (1) | 201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