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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5. 햇볕 아래 밥 먹기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뜰이 있는 마을
 

▲ 브르타뉴 단독가옥 현관 앞과 뒤뜰 ©정인진
 
브르타뉴 지방의 단독주택들은 대부분 낮은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훤히 안이 들여다 보인다. 담장 없이 도로에 딱 붙어서 현관문이 있고 반대편으로 넓게 정원이 자리잡은 북부 프랑스와 달리, 브르타뉴의 집들은 낮은 울타리와 함께 작은 정원이 현관 앞에 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작은 정원에는 대부분 꽃을 가꾼다. 나무가 심어진 경우도 있지만, 너무 크지 않은 관목들을 주로 심는다.
 
그리고 반대 편, 테라스 쪽으로는 넓은 안뜰을 갖추고 있다. 그 뜰에서는 꽃을 키우거나 텃밭을 가꾼다. 큰 그늘을 만드는 키 큰 나무들과 과실수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뜰에서다.
 
우리 나라에서 콘크리트로 덮인 손바닥만한 마당의 단독 주택과 햇볕조차 잘 들지 않는 빽빽한 고층 아파트만 경험한 나로서는 이런 여유가 부러울 뿐이다. 이곳에서는 꽃들과 나무들로 우거진 남의 담장 안을 부러운 시선으로 기웃거릴 때가 많다. 지난해 만개했던 수선화가 다시 피어난 것이 반가워 혼자 웃기도 하고, 라벤다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에 취해 길을 거닐기도 한다. ‘한국에서 화단에 라벤다를 키울 수 있을 만큼 겨울이 따뜻한 곳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라벤다가 피어있는 집을 지날 때마다 한다.
 
사실 이렇게 남의 담장 너머나 기웃거리며 여기서 내가 무얼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나무들과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들을 보며 살고 있는 것만으로 그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또 이렇게 걷다 보면 천천히 사는 법도 터득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는 프랑스인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의 집 울타리 안을 기웃거리며 걷는데,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넝쿨식물의 꽃을 발견했다.
 
“어, 파씨플로르다!”
 
파씨플로르(passiflore)를 발견하고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춘 채 혼자 탄성을 질렀다.  

▲ 올해도 어김없이 한 이웃집 담장에 ‘파씨플로르’(passiflore)가 피었다.  © 정인진
 
파씨플로르를 다시 본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프랑스에서는 여름의 끝, ‘인디언 여름’(l’ete indien)이라고 부르는 요즘 같은 9월에 파씨플로르가 핀다. 파씨플로르는 열정을 뜻하는 ‘파씨옹’(passion)과 꽃을 가리키는 ‘플레르’(fleure)가 결합된 말이라니, ‘열정의 꽃’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파씨플로르는 몽쁠리에에 살던 때, 그 집 담장을 가득 덮고 있었던 넝쿨식물이다. 이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 준 사람은 주인집 할머니였다. 내가 이 넝쿨을 좋아하게 된 건 바로 할머니로부터 그 식물의 이름을 들은 다음이었고, 그때도 이 넝쿨의 꽃보다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이름 때문에 이 넝쿨식물을 좋아한다.
 
물론, 나는 파씨플로르보다 두툼하게 파씨플로르로 뒤덮인 울타리를 가진 그 집의 뜰을 더 좋아했다. 어쩜 내가 좋아했던 그 뜰 때문에 파씨플로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집의 뜰은 크지도 않았다. 나무가 심겨진 것도 아니고, 흔한 꽃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다. 그저 바닥 전체에 자잘한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커다란 야외용 식탁과 숯불구이를 할 수 있는 불판을 놓았을 뿐이다. 대신, 파씨플로르가 울타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 집 방 한 칸을 빌려 살면서 주인들과 부엌과 욕실, 거실 등 모든 시설을 함께 나눠 썼다. 식사는 각자 준비했지만, 식사 시간이 겹칠 때는 각자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함께 먹곤 했다.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봄부터 늦을 가을까지 늘 저녁식사를 뜰에 나가서 하셨다.
 
몽쁠리에는 햇볕이 좋기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많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자주 뒤뜰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식사에 자주 초대해주셨는데, 노르망디 출신의 할머니 요리 솜씨는 참으로 훌륭했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집에서 구운 맛있는 케이크들과 풍미 있는 맛과 향기의 소스로 어우러진 샐러드와 요리들을 맛볼 수 있었다.
 
요리가 할머니의 몫이었다면, 바베큐는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포도나무 가지들을 이용해 바베큐를 구웠다. 포도나무가 타는 냄새도 좋았지만, 포도나무에 구운 생선이나 고기는 정말 맛이 좋았다. 그렇게 식사를 초대 받은 날은 물론, 각자 자기가 준비한 요리로 식사를 할 때에도 할아버지는 내게 로제(rose)라고 불리는 분홍빛 포도주를 한 잔씩 권하셨다. 

▲ 살며시 들여다 본 단독주택 뒤뜰, 비에 젖지 않도록 평소엔 식탁의자를 살짝 기울여 놓는다. © 정인진 
 
그러나 뜰에서의 식사는 북부 프랑스 ‘릴’(Lille)로 이사하면서 잊어버렸다. 살던 집에 테라스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날씨가 춥고 비가 자주 오는 만큼 북부 프랑스에서는 남부처럼 뜰에서 밥을 먹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를 떠난 뒤, 9년만에 다시 가 본 ‘릴’의 집도 그 사이 부엌 바깥에 테라스를 만들고 식탁을 내놓았다. 2층에 위치한 이 테라스는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까지 만들어서 정원을 드나들기 아주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릴’에 다시 갔을 때는 가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 낮에조차 밖에서는 차 한잔을 마시지 못했고, 더 많은 날은 부엌 창 너머로 테라스 위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봐야 했다.
 
지난 해 북부 해변 마을 앙블로퇴즈에서 역시, 뜰에서 차와 케이크를 나누며 다과회를 가졌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려, 서둘러 먹던 접시들을 들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와야 했다.
 
아파트 발코니에 놓인 식탁
 
그리고 다시 요즘, 나는 이곳 브르타뉴에서 뒤뜰에 펼쳐진 식탁을 본다. 브르타뉴의 단독 주택들도 뒤뜰에 식탁을 갖춰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이곳은 비도 자주 오는 만큼, 날씨에 상관 없이 원할 때마다 테라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유리 시설을 갖춘 집들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단독 가옥뿐만 아니라 아파트조차 발코니에 식탁을 차린 경우가 정말 많다.
 
프랑스도 우리 나라처럼 단독 주택이 점점 줄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채우고 있는 만큼, 식사를 할 수 있는 뜰을 갖는다는 건 이곳에서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아파트 베란다에서라도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실내에 시설을 잘 갖춘 식탁을 놓고, 밖에서 그것도 발코니에서 식사하는 풍경은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모습이다. 

▲ 렌의 한 아파트 풍경, 대부분 가정에서 발코니에 식탁을 내놓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정인진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산책길에 아파트 발코니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또 우리 아파트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좁고 어두운 발코니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늦은 밤까지 식사를 즐기는 이웃도 있다. 브르타뉴도 북부 프랑스처럼 비가 자주 오고 날씨가 추워서 발코니나 뒤뜰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조금이라도 햇볕이 좋으면 이곳 사람들도 밖에서 식사를 하려고 애쓴다.
 
얼마 전 궂은 날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해가 반짝 나자, 함께 살고 있는 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창가로 식탁을 끌고 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햇볕이 눈부신 창가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평수가 작은 우리 아파트는 한 뼘도 안 되는 발코니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발코니에 나가 식사를 할 수는 없고 그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밖에서 식사하는 느낌만 즐길 뿐이었는데도 기분이 정말 좋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왜 이토록 밖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물론, 한국에서라면 아파트 발코니에서 밥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름에는 너무 뜨겁고 겨울에는 너무 추우니, 식사 장소로는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맑은 날을 즐기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뜰이 있는 집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뜰이 있는 집에 사는 걸 꿈꾼다. 한국에서 뜰이 있는 집을 갖는다는 게 아파트 발코니에서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루기 힘든 소원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소원이 아니라 기도인지도 모르겠다.  ▣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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