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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12. 바캉스 행렬에 끼어 여행을 떠나다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미리암의 별장에 초대받다
 
북부 프랑스에 살고 있는 미리암이 바캉스 때 자기네 별장에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 미리암은 옛날 유학 시절에 세 들어 살았던 집의 주인이다. 작년에도 그녀의 별장이 있는 앙블르퇴즈(Embleuteuse)에 초대받아 며칠 지내다 왔는데, 잊지 않고 올해도 바캉스를 즐기러 오라고 초대해준 것이다.
 
바캉스 이주 행렬에 합류해 앙블르퇴즈가 있는 프랑스 최북단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 북부 해안에서는 영국의 흰 석회절벽이 멀리 어른거리며 보인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해안으로, 4km 너머가 영국이라고 한다. 

▲ 프랑스 최북단 해안에 있는 앙블르퇴즈의 마을 축제에서 만난 가장 행렬.   © 정인진 
 
마침 내가 도착한 날은 마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동네 음악, 무용 클럽 회원들이 그동안 쌓은 기량을 뽐내며 행진을 했다. 어린 꼬마부터 성인들까지 한 대열에 섞여 곤봉을 돌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진하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졌다. 젊은 남자들은 우스꽝스럽게 여장을 하고 색색의 양산을 높이 받쳐 들고 행렬을 뒤따랐다. 북부 프랑스 축제는 늘 이런 변장과 퍼레이드로 채워진다.
 
행렬에는 해안에서 보트를 운반할 때 쓰는 트랙터들도 동원되었다. 인형을 주렁주렁 매달기도 하고, 동물농장처럼 꾸미기도 한 트랙터들은 모두 어린이들을 실은 수레를 뒤에 매달고 털털거리며 행렬에 합류했다. ‘트랙터 마차’에 탄 아이들은 지나가면서 길가에 늘어선 관중들에게 물총을 쏘기도 하고, 종이로 만든 눈가루를 뿌리며 흥을 돋웠다.
 
여름이 온 것을 축하하는 북 프랑스의 이 유쾌한 마을 축제는 짜임새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툴고 허술한 광경에 더 웃음이 나왔다.
 

▲ 지난 해 여름에는 미리암의 외가친척들과 다과회를 가졌다.  © 정인진 
 
작년에는 성모승천일(8월 15일)을 끼고 앙브를퇴즈에 왔었다. 이곳에 미리암의 부모님과 외가 식구들의 별장이 있는데, 그들은 여름마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미리암의 친척들은 성모승천일 기념미사가 있던 날, 오후에 간단한 다과회를 가졌다. 나도 다과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상냥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울려 정원에서 함께 차를 나눠 마셨다. 흥이 오른 할머니들은 옛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방문 중에는 그분들을 뵙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찬바람 부는 해변에서 미리암 부부와 여름을 보내러 온 이웃들과 식사 전에 즐겨 먹는 짠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며, 저녁마다 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아페리티프’라고 부르는 과자를 이들은 식욕을 돋우기 위해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 입맛에서는 절로 밥맛을 잃게 하는 것 같다.)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생도 ‘유급 휴가’ 즐긴다
 
7월 14일은 프랑스 최대 경축일 중 하나인 ‘시민혁명’ 기념일이다. 이날 밤, 전국 각 도시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름 휴가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8월 한 달은 존재하지 않는 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7월말까지 모든 시설의 업무가 끝이 난다. 관공서와 회사의 일년 업무가 끝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학교 역시 7월이면 1년이 마무리되고, 9월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프랑스에서는 7월과 8월 사이에 모든 시민에게 5주의 바캉스가 주어진다. 주당 35시간 노동제가 법제화된 이후부터, 노동 시간을 조정할 경우에 최고 9주까지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이 여름 휴가가 ‘유급’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모두 8월 한달 동안 유급 휴가를 즐긴다. 기업체는 물론 개인이 고용한 사람에게도 휴가비를 주어야 한다.
 
유학 시절, 미리암 집에 살았던 4년 내내 나는 그녀의 세 아이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개인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조차 고용인은 여름 휴가와 휴가비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7월말이 되자 미리암은 지난 11개월 동안 내가 받은 임금을 합해, 한달 평균 금액을 계산해서 휴가비로 주고 바캉스를 떠났다. 뜻밖의 소득에 놀라는 나를 보고, 그녀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휴가비를 주는 것이 의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가사도우미나 집사 같은 이들도 그를 고용한 사람들로부터 모두 휴가와 함께 휴가비를 받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개인적으로 고용된 사람들조차 휴가비를 받아서 바캉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바캉스를 지원하는 국가와 시민들
 
여기서는 여름이 되면, 그동안의 빡빡했던 생활을 벗어나 모두 한가로운 시골이나 관광지로 휴가를 떠난다. ‘여름집’이라고 부르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도 한다. 내가 1년간 살았던 남 프랑스의 노부부 가정의 경우, 여름마다 파리의 큰아들 가족과 런던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휴가를 보내러 왔다.
 
물론,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바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휴가지를 제안해 준다. 정부는 각 가정에 직접 돈을 주기도 하고 바캉스 센터나 레저 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 다양한 정책을 편다. 

▲ 여름이 되면 아삐네 호수는 야외 수영장으로 변한다.    © 정인진 
 
이런 지원이 국가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주민들이 바캉스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렌 시도 여름휴가 기간에는 여행과 레저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7월 17일부터 8월 21일까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교통비 정도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일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해안도시 두 곳과 내륙의 한 관광도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여행할 수 있다.
 
7월이 되면 렌 외곽에 있는 ‘아삐네’(Apigne)호수는 야외 수영장으로 변한다. 멀리 휴가를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이 호수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물놀이를 즐긴다. 봄부터 날라온 모래 위에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모래사장 앞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여름에는 ‘아삐뷔스’(Apibus)라는 특별 버스까지 운행한다. 또 여름 내내 시청 앞 광장에는 일광욕을 위한 의자들이 가득 펼쳐진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역시 눈 여겨 볼만하다. 텔레비전에서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가 알프스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자원봉사자 덕분에 그곳 가정에서 방학을 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시민들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에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여름 바캉스는 여유 있는 몇몇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건 분명 아닌 것 같다.
 
휴식과 여행을 권하는 나라 
 

▲ 일광욕 의자를 놓은 렌 시청 앞 광장. 이 날은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는데, 흐린 날에도 렌 시민들은 의연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정인진  
 
프랑스의 유급 휴가는 1936년 6월 법으로 2주가 의무화된 것이 시작이다. 그것이 1956년에는 3주, 1968년에는 4주, 1982년에는 5주로 늘어났다. 이 유급 휴가 덕분에 여행, 스포츠, 레저 산업이 활성화되었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또 전국민이 여름을 즐기게 되자, 철도요금과 바캉스를 보낼 수 있는 장소 이용료가 인하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여행부(le ministere du Tourisme)가 신설되고, 대중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직들도 만들어졌다.
 
프랑스도 우리 나라처럼 도시에 사람들이 집중되고 시골이나 섬은 점점 공동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긴 유급 휴가 덕분에 여름에는 시골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텅 빈 섬들도 적어도 여름 동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국민을 좀더 쉬게 해주기 위해 고안된 이런 정책이 결국 더 큰 경기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주민들이 줄어가는 도서벽지에 새로운 방식으로 활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에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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