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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20. 우산을 고치며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고등어 통조림 뚜껑을 이용해 망가진 우산을 수리했다.  © 정인진 
 
우산을 직접 수리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불현듯 오래 전 우산살을 고쳐주셨던 아버지가 생각난 직후였다. 양철조각을 가위로 잘라 부러진 우산살을 감싸 쥐듯 덧대니, 어디가 망가진 부분인지 어린 나로서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고친 우산을 자랑스럽게 어머니께 보여드렸다가, 칭찬은커녕 “궁상스럽게 그게 뭐냐!”는 핀잔을 주셨고, 이에 실망한 아버지는 그 뒤로 다시는 우산을 고치지 않았다. 나 또한 어머니의 말씀이 하도 단호해, ‘우산을 고쳐 쓰는 건 무척이나 궁상스러운 짓이구나!’ 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브르타뉴에 살면서 1년 동안 우산을 무려 세 개나 망가뜨리고 나니, 변변한 우산도 없지만 새 걸 살 엄두는 더 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옛날에 우산을 고쳐주신 게 기억난 건 바로 그때였다.
 
브르타뉴에 내리는 비

 
브르타뉴에서 살게 될 거라는 소식을 프랑스의 한 친구에게 알렸을 때, 그 친구는 내게 ‘브르타뉴는 비와 바람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을 생각하면서 난 속으로 웃었다. 비라면 단연코 북부 프랑스가, 또 바람이라면 남부의 미스트랄을 능가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브르타뉴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의 말대로 브르타뉴 지역도 북부 못지 않게 비가 많이 내렸다.
 
북부 프랑스는 비의 도시다. 거기는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북부는 서안 해안성 기후로 일년 중 약 9,10개월 동안은 거의 날마다 비가 내린다. 비는 특히 겨울에 많이 내리는데,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도 습도가 높아 추위가 온 몸을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온종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다가 그치다가, 개는 듯 하다가 또 내리고, 비가 올 듯 말 듯하면서 온종일 흐리기도 해, 우산을 뺏다 넣었다, 또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귀찮을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비가 온다고 해서 당황해 하는 모습을 그곳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어디에선가 우산을 꺼내 드는 사람은 그나마 준비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걷던 발걸음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리는 비를 담담하게 맞는다.
 
북부 프랑스에서 산 지 3년이 지났을 때는 나도 그곳 주민답게 거리에서 비를 만나도, 우산을 잊고 나왔다고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더 자주는 집을 나설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을 놓고 나갔다. 다행히 모자 달린 점퍼를 입었으면 모자를 쓰기도 하고, 목도리라도 둘렀을 때는 그것으로 머리를 둘둘 감싸며 걸었다. 그 모습은 한국에서는 발견하기조차 힘든 촌스런 모습이었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런 날 외출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급한 볼 일을 제외하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꼭 붙어 있을 때가 많았다. 비가 내릴 때면 높은 부엌 창틀 위에 올라 앉아 뜰의 과일 나무들과 이웃집 키 큰 꽃나무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 브르타뉴에 내리는 비는 늘 이런 식이다. 우리 집에서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모습을 찍었다.
 
브르타뉴에도 늘 비가 내린다. 북부와 차이가 있다면, 세찬 빗줄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는 것이다. 빗줄기가 굵은 만큼, 비가 그치면 구름이 썩 물러나면서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태어나서 무지개를 이렇게 많이 보기는 이곳에서 처음이다. 초기에는 무지개가 뜰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펄쩍거리며 좋아했는데, 계속 반복되니 이제는 무지개가 떠도 그러려니 할 만큼 담담해졌다. 그만큼 이곳은 비가 그치기 무섭게 활짝 갤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언제 날이 개었나 싶게 바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하니, 갰다고 너무 좋아할 일은 아니다.
 
반대로 브르타뉴 지방에서 비를 만났을 때, 비가 완전히 그치길 기다리는 것 역시 바보 같은 짓이다. 물론, 소낙비는 잠시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 빗줄기가 잦아들면, 가던 길을 재촉하는 편이 낫다. 비가 더 굵어질 수도 있지만 곧 멈출 수도 있고, 운이 있다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구름 사이로 쨍하고 얼굴을 내미는 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 북부에서 살 때보다 이곳에서 우산을 좀더 잘 챙기는 건 나이 탓인지도 모른다. 비를 맞고 다녀도 거뜬할 만큼 건강하지 못하니 우산을 잘 챙기려고 늘 노력하지만, 그 사이 프랑스 기후를 많이 잊어버린 탓에 우산을 챙기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볕까지 좋은 날이면, 우산을 들고 나가는 걸 어김없이 잊는다. 언제든 비가 쏟아질 수 있으니 스웨터나 스카프를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산을 챙기는 일이다. 잠깐 내리다 개기도 하니, 작고 가벼운 것이 좋겠다.
 
바람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곳 

▲ 바람 속에 서 있는 브르타뉴 여성들 (Bretagne des mille et une images 전시회) 
 
그러나 이곳에서 생활한 지 1년이 넘자, 브르타뉴에서는 우산보다 비옷이 더 요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바람 때문이다. 비가 쏟아지다가 갑자기 환하게 개고, 언제 개었나 싶게 다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와 굵은 소나기를 뿌리는 식의 변덕스러운 브르타뉴 날씨는 모두 바람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브르타뉴는 제일 먼저 바람이 닿는 곳이다.
 
브르타뉴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사정없이 몰아 부치는 비바람 속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걷다가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기어이 우산을 끄고 온통 비를 맞으며 길을 걸었다. 그때서야 ‘브르타뉴는 비와 바람의 고장’이라고 한 친구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날 그렇게 우산을 끄고 나서야 내 옆에서 우산 없이 묵묵히 비바람 속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우산을 쓴 사람보다 비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게다가 비옷을 안 입었더라도 우산을 받치기 않고 그냥 비를 맞는 것을 택하는 경우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찬 비바람 속에서 우산은 소용 없을뿐더러, 이렇게 강한 비바람을 잘 견뎌낼 우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없었다면, 이곳은 천국이었을 것이다.’ 이 말은 브르타뉴의 자연과 문화를 소개하는 한 전시회에서 읽은 구절이다. 이 말처럼 브르타뉴에는 늘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바람은 분다. 매일 밤 브르타뉴의 온 들판을 휘저어 놓는 건 바람이다. 특히 알루미늄으로 만든, 감기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는 현대식 덧창에 난 작은 구멍들 때문에, 마치 하모니카처럼 바람은 슬픈 휘파람 소리를 낸다.
 
브르타뉴에 전해 내려오는 한 전설은 그 바람의 정체를 귀뜸해주기도 한다. 깊은 숲 브로셀리앙드(Broceliande)에 사는 주술사인 메를랭(Merlin)은 그 숲의 통치자로, 악마와 한 처녀 사이에서 태어난 불멸의 존재이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과 마술, 예언에 엄청난 능력을 보였고, 아더가 왕이 되도록 도왔으며, 아더가 왕이 된 뒤에는 그의 조언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요정 비비안(Viviane)과 사랑에 빠진 메를랭은 비비안에게 자신의 비밀 능력을 조금씩 가르쳐 준다. 메를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늘 곁에 머물게 하고 싶었던 비비안은 메를랭에게 배운 대로 요술을 걸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그를 가둔다. 불멸의 존재인 메를랭은 오늘도 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감옥에 갇힌 메를랭이 울부짖는 소리가 바로 브르타뉴의 바람 소리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낮게 흐느끼는 듯한 바람소리 때문에 사람들은 메를랭의 전설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른다.
 
쓰레기봉지를 덮어쓰고 비바람을 뚫고 가던 여학생
 
한편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 눈부신 햇살의 도시인 몽쁠리에(Montpellier)에서는 여름을 제외하고 미스트랄(mistral)이 분다. 미스트랄은 지중해변에 부는 강한 바람으로, 늘 폭우를 동반한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미스트랄이 한번 불면 3,4일 이어진다. 

▲  어느 바람 부는 날,  아삐네(Apigne)호수   © 정인진 
 
이곳에 머물던 당시는 어학연수를 하던 때라, 늘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미스트랄을 뚫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피곤으로 온몸이 노곤해져 곧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꼭 덮고 있었다. 그러면 밖에서 미스트랄은 두툼한 나무 덧창을 사정없이 두드렸고, 창 밖 먼 발치에 있는 키 큰 소나무를 밑둥까지 뽑을 기세로 흔들어댔다. 휘-휘 소리를 내며 몸통째 흔들리는 그 소나무를 보면서 나는 슬픈 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산 대신 커다란 검은 쓰레기 봉지에 구멍을 내어 덮어쓰고 비바람 속을 걸어가는 여학생을 보았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는데,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자유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최초로 환기시켜 준 사람은 미스트랄 속,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브르타뉴에서 살이 부러진 우산을 태연하게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옛날 몽쁠리에에서 보았던 그 여학생을 떠올렸다. 같이 살고 있는 친구도, 멀쩡한 여분의 우산이 있는데도 완전히 못쓰게 될 때까지 살이 엉망으로 부러진 우산을 쓰고 다닐 거라고 한다. 그녀 속에서도 나는 다른 세계를 본다. 다른 곳에 내가 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내가 우산을 고치고 있다. 옛날에 아버지는 어디서 양철조각을 구했던 걸까? 나는 고등어 캔 뚜껑을 이용해 우산살을 고쳤다. 애를 쓴 것에 비해 잘 수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당한 기간 동안 쓰는데 무리는 없겠다. 나는 매우 만족스러워 혼자 웃었다. 또 감쪽같이 참 잘 고쳤다고, 옆에서 감동해주는 친구 때문에 더 으쓱해졌다.
  
그때 아버지께 칭찬을 해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정인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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