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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10. 탄자니아 잔지바르(Zanzibar) 섬 
 
애비(Abby)와 장(Jang)의 아프리카 로드트립 -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1년 전 호주 케언즈에서였다. 세계에 몇 남지 않은 산호초라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를 보기 위해 스쿠버다이빙을 하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보트에 오른 지 십 분 만에 내 몸은 내가 얼마나 유난스레 뱃멀미를 하는 사람인지 일깨워주었다.

 
산호 군락지까지의 두 시간 뱃길이 지옥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배에서 내려 땅을 딛자 무릎이 훅 꺾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서까지 눈만 감으면 출렁이는 갑판에 누운 듯 메슥거림이 끼쳐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뒤척이는 머릿속에, 사람이 발 댄 땅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그렇다면 그 지반의 본질은 무엇인가 따위의 개똥철학적 사유를 불러오는 지독한 멀미였다.
 
달에살람에서 잔지바르로 향하는 뱃길

▲ 잔지바르 항구 입구의 인사 - 카리부, 잔지바르! ©Abby

굽이굽이 구십구 고개를 넘어가는 털털이 버스에서도, 폭우 속에서 꿀럭이는 비행기에서도, 나는 어지간해선 멀미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멀미약에 포함된 수면제 성분 때문에 바깥의 풍경을 놓치는 것이 아까워서였다. 그러나 달에살람에서 잔지바르(Zanzibar)섬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스무살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세계 최고의 멀미약을 털어넣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윙윙대는 배의 엔진 소리와 파도를 넘는 뱃머리의 진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이제 곧 끝나리라’를 되뇐 반수면 상태가 얼마나 지났을까, 시나브로 바깥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땀에 흠뻑 젖어 이마에 찰싹 붙은 앞머리를 느끼며 눈을 떴다. 그런데 부스스 일어나 바깥을 보니 어쩐지 풍경이 아까와 비슷하다. 이상하다, 잔지바르는 멀리서 보기에도 운치 있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했었는데. 항구는 다 똑같이 이렇게 크고 황량한 건가? 맹한 내게 장이 난감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 그게… 아마 엔진에 이상이 생겼나 봐. 반쯤 가다 말고 다시 돌아왔어.
 
오. 마이. 갓.
터질듯 실은 사람에 동물에 짐이 얼마인데, 빨리 발견하고 별다른 사고 없이 돌아와 참 다행이다!
하는 안도는 털끝만큼도 들지 않았다. 멀미약의 약효는 이미 떨어졌고, 밤잠 한 허리를 베어내 당겨와 억지로 청한 잠도 끝났고, 그렇다고 독한 멀미약을 하나 더 삼킬 수도 없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니!
 
상황을 살피러 이코노미 석으로 내려갔던 장이 올라왔다. 사람 많은 아래층은 아비규환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다시’라는 이 끔찍한 상황에 꾹 눌러들 참던 뱃멀미가 폭발했는지, 여기저기 화장실로 짐작되는 곳에서 듣기 힘든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래층에서 오장이 제대로 붙어 있을까 싶도록 토하시던 한 현지인 할아버지를 붙잡고 주머니에 넣고 있던 멀미약을 짜서 먹여드렸노라 장이 말하는 순간 나는 귀를 꾸욱 틀어막았다. 외국인에겐 무조건 2층의 VIP 좌석만을 파는 페리 회사의 배려(!)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예정 시간의 두 배인 일곱 시간 항해를 마친 뒤 잔지바르에 도착했다.
 
옛 시가지 스톤타운의 메디나를 걷다
 
멀리 보이는 항구 출입구의 <KARIBU ZANZIBAR(잔지바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완 달리, 관리들은 승객들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열병 예방 접종 카드를 내보여라, 탄자니아 스탬프를 찾아내라 하며 공연히 시간을 끌었다. 탄자니아는 내륙의 탕가니카(Tanganyika) 공화국과 잔지바르(Zanzibar) 섬이 연합한 형태의 나라로, 여전히 자치령인 잔지바르 정부가 섬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입국 심사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잔지바르의 옛 시가지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1800년대부터 쭉 돌로 세운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어 스톤 타운(Stone town)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구역은, 실은 말이 탐험이지 ‘헤맨다’는 편이 더 적절한 미로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수백 갈래의 메디나(Medina, 중동 옛 도시 특유의 미로 같은 골목길)를 배가 고파질 때까지 걸었다. 시작할 땐 언제나 자신 있게 위치를 기억했지만 곧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 셋의 의견이 모두 다른 지점이 왔다. 그러면 목소리 큰 사람이 말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 중동 특유의 커다란 나무문이 달린 벽에 잔지바르 특유의 화풍으로 그려진 '팅가팅가'가 줄지어 있다. ©Abby 
 

어디로 방향을 틀어도 상관없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돌벽의 오랜 손때가 골목의 세월을 말해 주었다. 동네 공터의 나무 아래서 게임을 즐기는 남자들의 차림새나 게임판은 수백 년 전 그대로인 듯 예스러웠다. 이곳은 분명히 아프리카이건만, 중동 특유의 단단하고 커다란 나무문과 아치 모양의 발코니가 한 집 걸러 한 집 길의 얼굴을 이뤘다. 히잡을 두른 할머니가 낑낑대며 물통을 나르는 어린 사내 녀석을 기특한 듯 어르는 정겨운 풍경도 여느 아프리카의 날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문명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골목 어귀의 아틀리에에는 강렬한 아프리카 특유의 색채로 그려진 동물과 사람의 팅가팅가(tinga tinga,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팅가팅가'는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발생한 독특한 화풍의 그림을 말한다)가 줄지어 걸려 있기도 했다. 
 
기구한 역사가 이 독특한 풍경을 빚었다. 잔지바르 섬은 지난 수백 년간 아랍 세계와 아프리카 사이의 무역 기지였다. 동아프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인 ‘스와힐리(Swahili)’도 아랍인들이 사업의 편의를 위해 잔지바르 지역의 토착어를 정리한 데서 시작되었다. 패권에 따라 포르투갈, 페르시아, 오만, 인도, 유럽 사람들이 잔지바르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각 문화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문화가 ‘잔지바르 스타일’로 녹아들었다.
 
노예무역, 식민지… 역사를 흐르는 고난의 변주곡
 
이윽고 바닷가에 놓인 경이의 집(House of Wonder)과 술탄의 궁전에 도착했다. 두 곳 다 19세기 가장 강하게 잔지바르를 지배한 아랍 세계의 술탄이 기거하던 곳으로, 먼 바다에서도 눈에 띄는 잔지바르의 첫인상이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잔지바르와 스톤타운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잔지바르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사란 다를 것 없는 고난의 변주였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일까. 권력은 늘 바깥사람들의 몫이었다. 오래도록 무역의 중요한 한 축은 노예였다. 사백 년 동안 줄잡아 백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이 잔지바르를 거쳐 노예로 팔려갔다. 패권을 잡은 아랍인들은 바다에서 생선을 잡듯 아프리카 각지에서 노예들을 사냥해 인도양 건너 세계에 팔았다. 쇠사슬로 줄줄이 엮어 생선 박스보다 통풍이 안 되는 쪽방에 보관했다가 판매하던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관 중 상하는 상품도 있기 마련, 함부로 다뤄진 수많은 사람들이 팔려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노예무역이 종식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향신료의 섬(Spice Island) 이라고 불릴 만큼 향신료 무역이 왕성하게 벌어진 시절에도 그로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아랍 상인들에게로 돌아갔다. 자고 일어나면 한 채씩 서기 시작한 근사한 아랍 스타일의 맨션들도 토착민들의 몫은 아니었다.

▲ 잔지바르 섬의 구시가지 스톤타운의 풍경     ©Abby   
 
식민지 시절이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64년 잔지바르는 내륙의 탕가니카 공화국과 함께 탄자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탄자니아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의 영향을 받은 데다 향신료 무역도 폭락한 지금 잔지바르 사람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관광뿐이다. 그리고 2000년, 스톤타운은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는 3세계의 어떤 마을들은 껍데기만 남은 채 파괴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베트남의 호이안이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그랬으며,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도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물론 옛 세월 그대로인 거리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다채롭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삶터였을 골목의 내용은 모조리 관광객을 위한 상점으로 모습을 바뀌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꾸리기보다, 관광객에 의존한 불안정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다.
 
박물관 한 쪽을 차지한 ‘잔지바르의 현재’에 관한 글에서는 뭍에서 들어온 많이 배우고 영어도 잘하는 외지인들이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독차지하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물가가 오르고, 외지인과 현지인 간의 갈등이 늘어나고, 마약과 폭력 등 범죄의 증가도 잔지바르가 당면한 숙제라고도 했다. 길가에 누워 있는 사람들, 하릴없이 배에 앉아 바다를 응시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풍경도 그런 현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궁전의 발코니에서 바라본 인도양은 아름다웠다. 이전투구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인간에게 저 바다는 끝도 없이 막막하기만 한 인생처럼, 어떤 인간에겐 앞으로도 가열차게 정복할 미지의 세계로 느껴졌으리라. 어떤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든 한결같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저 바다의 물빛이 어쩐지 야속해서 서럽다.
 
해질녘의 해변에 셋이 줄지어 앉았다. 늦은 시간까지 해수욕을 즐기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젊은이들은 백사장을 잔디 삼아 공을 찼다. 한 무리의 다른 젊은이들은 열심히 춤을 연습 중이었다. 환호하고 박수치는 외국인 관객 세 사람을 앞에 두고 신이 난 댄서들이 선보이는 더욱더 난이도 높은 동작과 열띤 분위기가 흥을 돋우었다. 스무살이 백사장에 제 흔적을 남기겠다고 손발을 찍다 못해 얼굴을 파묻자, 춤추던 젊은이 중 하나가 동참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복자의 후예인지 노예의 후예인지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저 지금, 함께, 춤추고 공을 차고 헤엄을 쳤다. 사위를 어르며 녹아드는 인도양의 석양이 모두를 한 빛으로 물들였다. 

▲ 늦은 밤 축구삼매경에 빠진 조스코너 사람들     © Abby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스톤 타운의 동네 사랑방 ‘조스 코너(Jaws Corner)’에도 여름밤의 회합이 한창이었다.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동네의 남자들이 잔뜩 모여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탕수수즙, 멜론과 파인애플 한 슬라이스, 달콤한 빵 한 조각을 파는 갖가지 행상들도 좌판을 벌이긴 했지만 정신이 온통 경기에 빠져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느 새 그 풍경에 녹아든 또 다른 남자 스무살과 장에게, 동네의 청년 하나가 경기의 상황을 설명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만이, 평상에 둘러앉아 환호성에도 미동 없이 장기처럼 보이는 게임에 오롯이 몰두했다. 전봇대 위에 높이 매달린 동네 전화가 울리면 누군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애달픈 역사를 가진 잔지바르의 사람들이 지금 함께 사는 모습이, 왜 이렇게 좋은지 알 수 없게, 우리들의 마음을 복받치게 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좀처럼 하루가 저물어지지 않는다. 스톤타운의 묘한 매력, 그 이야기의 메디나를 헤매느라 밤이 깊어갔다.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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