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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11. 타자라(TAZARA) 열차의 사람들
달에살람 도심 외곽에 위치한 타자라(TAZARA; Tanzania-Zambia Railway Authority) 기차역에 도착했다. 주차 시설도 아니고 다른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 광활한 부지 안에 덩그러니 놓인 거대한 역사(驛舍)는, 건물만 놓고 보면 주변의 풍경들과 어울리지 않는 중국 어느 지방 도시의 시부(市部)가 생각나는 모습이다. 타자라의 전 구간이 백퍼센트 중국의 자본으로 건설되었음을 온 몸으로 웅변하듯이.
▲ 달에살람의 타자라 기차역 ©Abby
타자라(TAZARA) 열차는 탄자니아 달에살람에서 출발해 남서쪽을 관통한 후 잠비아의 카피리 음포시(Kapiri Mposi)까지 향하는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철로다. 동아프리카에 독립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 공산 정권이 들어선 탄자니아의 주장으로 서구의 차관이 아닌 중국의 차관을 30년 무이자 조건으로 들여왔다. 1966년 열두 명의 중국인 연구원이 철도의 경로를 정하기 위해 9개월간 전 구간을 도보로 여행하며 탐색한 후, 1970년 공사에 착수했다. 5년간 약 5만 명의 탄자니아인과 2만 5천명의 중국인이 건설에 동원되어, 1,860킬로미터의 철도가 완성되었다.
종착지까지 48시간, 타자라(TAZARA) 열차에 오르다
한 때 많은 물자를 실어 날랐을 타자라는, 언제부턴가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는 움직이는 것이 대견한 상태라고 했다. 역사 2층에 따로 마련된 일등석 라운지에서 두 시간째 출발 지연을 기다리며, 다른 승객들과 타자라에 대해 들은 다양한 루머들을 나누었다. 마흔 여덟 시간이 걸린다곤 하지만 열 시간 연착은 기본이다. 지연의 이유 중 하나는 구간 중 지나는 여러 숲에서 야생 동물들과 사고가 나기 때문인데, 특히 코끼리와 부딪칠 땐 몇 시간 지연이 된다!
▲ 연착된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풍경 © Abby
드디어, 세 시간 만에 기차가 출발했다. 좋은 환기 시스템을 갖추고 창문은 밀폐해 놓은 최신 기차들과 달리, 오래된 기차 타자라는 온 객차의 창문을 다 활짝 열고 달렸다. 아무리 좋은 에어 컨디셔닝이라 해도 공기 좋은 아프리카 산골의 바깥바람만 할 수가 있을까.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객실로 들이쳤다.
여행 중 이동 수단의 최고를 꼽으라면 가히 ‘기차’, 특히 ‘침대칸이 있는 기차’를 말할 것이다. 워낙 땅이 작은 데다 도로도 잘 깔린 우리나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이다. 일정하게 덜컹대는 리듬 안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메모를 하고, 먹고 자고 쉬다 보면 이동의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좁은 객실에서 함께 먹고 자는 다른 승객들과 때때로 공유하는 유대감도 좋았다.
타자라의 이등칸엔 객실당 여섯 명이 탄다. 남자와 여자의 객실이 분리된 탓에 장과 스무살과 헤어져 혼자 탄 객실엔 나 외에 네 명의 승객이 있었다. 엄마처럼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명과 십대 소녀들 넷이다. ‘매리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가 가장 질문이 많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한글로 각자의 이름을 적어 주니, 좋아라 하며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거센 발음이 익숙한 사람들은 정작 ‘애비’를 발음하지 못해 나를 ‘해피’라고 불렀다. 몇 번을 고치다가 포기했다. 그래 뭐, 해피도 나쁘지 않구나.
해피가 뭐야 해피가. 개냐?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식당 객차에서 만난 스무살을, 마구 키득대는 스무살을, 반가울 새도 없이 쥐어박았다. 한국에선 언제부터 개 이름을 해피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참 좋은 이름인데!
- 자, 이제 계획을 짜 보자.
장이 말했다. 그 저녁 우리 셋에겐 소소한 위기가 닥쳤다.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는 바람에 돈이 모자라는 거였다. 국경을 벗어날 때까지 쓰려던 케냐 돈이 예상 금액의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은 가방 깊숙이 있는 달러를 더 환전하면 될 일이지만, 사람 마음이 참 묘해서 지갑에 없는 돈은 그저 ‘없는 것’일 뿐이었다.
“환전하면 되잖아!” 하는 당연한 항의 대신 앞으로 세 끼를 해결해야 하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반짝반짝 머리를 쓰는 스무살을 보니 쿡, 웃음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스무살은 어느 새 형과 누나의 여행 스타일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삼십년 간 한 번도 바꾼 적 없어 보이는 더러운 테이블보나 조악한 조화를 아랑곳 않고, 왁자지껄한 식당칸에서의 저녁을 즐기는 것을 보니.
물건이, 없어졌어!
덜컹거리는 충격에 잠이 깼다. 마치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넘어오는 길에 탔던 버스처럼, 쿠당, 하고 크게 진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기차는 원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진동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타자라는, 노후한 철로가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했다.
이른 새벽이었다. 사람에, 사람보다 많은 짐에, 사람들이 먹던 치킨과 감자칩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느껴졌던 방은 매리스와 나와 음식의 잔해만으로 홀쭉하게 줄어 있었다. 마치 원래 일행인 것처럼 격의 없이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 나누더니, 매리스는 사실 다른 이들과 일행이 아니었나보다. 바깥사람의 눈엔 서로에 대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친화력이 늘 놀랍다.
▲ 산 속을 지나는 아침의 풍경 © Abby
고개를 들어 보니 산수화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이 창밖을 스쳐갔다. 완전히 잠이 깨지 않은 눈엔 마치 구름 속을 지나는 것 같은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높은 산 위를 지나는 것이리라. 이런 곳에다 누가 철로를 깔았을까. 아침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잠결에도 아, 참 좋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객실로 찾아온 스무살과 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는 사이 장의 카메라 가방에 손을 대는 기색이 느껴져 눈을 떠 보니 건너편 남자였다고 했다. 뭐하는 거냐는 장의 물음에 그는 살짝 열린 객실 문을 가리키며 누군가 방에 들어와 카메라 가방을 가져가려 하기에 자신이 막았다고 답했다. 가방을 살폈으나 이상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늘 카메라 가방 옆주머니에 꽂아 둔 ‘뽀뇨’가 없어졌다.
뽀뇨는 4년쯤 된 구형 아이팟터치다. 떨어뜨려 액정 한 구석이 깨진 후에도 애지중지 가지고 다닌 장의 오랜 물건이었다. 책, 라디오, TV, 일기장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역할을 하던 여행의 필수아이템이었는데. 그 안에 적어 둔 많은 기록들을 다 어떻게 할까.
- 정말 도둑질이 일어나는구나.
바보 같은 말이었지만, 절도를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충격을 가져왔다. 훔쳐가는 사람이 무슨 감각이 있어. 잃어버린 사람 책임이야, 보이지 않게 잘 간수했어야지. 하는 말을 꿀꺽 삼켰다. 어제 카메라를 떨어뜨려 렌즈 필터를 잃은 데 이어 아이팟터치를 잃은 장의 기분이 침울하게 가라앉는 게 눈에 보였다.
기차는 어느 마을을 지나는 중이었다.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항상, 저거 타고 어디 가나 하는 궁금증이 묻어난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손을 흔든다. 맹한 표정을 하고도 기계적으로 꼭 손을 흔드는 건 왜 그럴까.
-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스럽지 않아서 실망스러운 것 같아.
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다운 문화’라는 것을 만날 수 없어 때때로 실망을 하던 차였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과거에 현재를 쌓지 않고, 시간 따라 바람 따라 흐르며 살아온 유목민의 문화가 농경민의 문화가 쌓은 거대한 자본과 기록의 성에 부딪히자 부서져 버렸거나 갈 길을 잃고 막혀 버린 것일까. 수탈과 침략과 폭력의 역사가 아프리카만의 아픔은 아니건만, 아프리카는 유독 할퀴어진 자국만이 진하고 깊게 드러나 있는 느낌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아프리카다운 해답은 무얼까. 아프리카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지금의 아프리카는 그냥…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지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던 옷, 쓰던 물건, 먹던 음식, 인간의 마음이 도착하는 마지막 지점.
아프리카에서, 가난이 가장 나쁜 방식으로 사람을 병들게 한 방식을 숱하게 본다. 모든 호의는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 준 후 당연한 듯 돈을 요구했다. 하쿠나마타타(괜찮아), 싫으면 관두고! 그러다 돈 몇 푼을 위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내 주머니에 없으니 네 주머니에 있는 것을 좀 가져가는 일에도 별다른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일들에 매번 환멸을 느끼면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없다. 그 동안은 한 사람이 투덜대면 다른 둘이 추워줄 여유가 있었는데, 간밤의 일은 어쩐지 셋 모두를 낙담하게 했다. 아프니까 아프리카인가?
해피, 해피! 매리스의 ‘빅 스마일’
▲ 기차길 옆 작은 마을과 행상 아저씨 © Abby
찢어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음베야(Mbeya)에 도착했다. 음베야는 탄자니아와 잠비아의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전체 여정의 절반쯤 되는 지점, 절반의 승객이 한꺼번에 내리는 지점이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는 물결 같은 인파에 섞여 엄마와 출구로 걸어가던 두세 살짜리 꼬마였다.
아이의 엄마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 손으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다른 손으로는 가마니 하나를 감아쥐고 다시 손가락에 무언가 가득 찬 양동이 하나를 걸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비닐 가방 하나가, 등에는 목을 가누지 못해 엄마 등 밖으로 고개가 젖혀진 작은 아기가 업혀 있었다. 달래기는커녕 고개를 숙여 자신을 봐줄 수조차 없는 엄마 옆에서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그러는 찰나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거센 장대비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엄마와 두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
해피, 해피!
매리스가 문 밖에서 나를 불렀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건만, 그녀는 마치 자매와 헤어지듯 나를 꼭 껴안고 작별을 고했다. 플랫폼에 내려서고도 매리스는 해피! 해피! 하고 펄쩍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마침 엄지와 검지로 매리가 먹다 버린 도넛 봉지를 들고 뜨악해 하던 나는 얼른 손을 내리고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로 마음을 주지도 못한 저 아이는 어째서 저렇게 환한 웃음을 보여 주는 걸까. 구겨진 마음을 슥슥 펴 주는 예쁜 웃음, 우리들이 ‘해피’하게 여행하기를 기원해 주는 것만 같은 그런 웃음을.
이윽고 날이 저물고, 탄자니아와 잠비아의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의 관리들이 기차 한 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승객들을 위한 비자 수속을 해 주었다. 오랫동안 나뉘어 앉아 있던 외국인 승객들이 한 데 몰려 한두 마디씩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순식간에 열차가 왁자지껄 즐거운 파티장이 되었다. 우리 외의 유일한 한국인 승객이었던 킴과 미니를 다시 만나 아침의 일들을 맥주 한 잔에 함께 털어 넘겼다. 그래, 먹다버린 도넛 봉지 같은 사건들은 잊어 주리라.
객실엔 먹다 버린 닭뼈나 쓰레기도 있었지만, 매리스가 보여 준 빅 스마일도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은 후자일 것이다. 일상보다 진폭이 큰 행복과 불행을 넘나드는 것이, 달콤쌉쌀한 여행의 매력이다. (Abby)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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