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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8. 탄자니아 모시(Moshi)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탄자니아 아루샤의 한인들
 
탄자니아 아루샤(Arusha) 지역의 한인들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화장지나 비누 같은 생필품도 제대로 수급되지 않던 20년 전 탄자니아를 여행하곤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그대로 눌러 앉았다는 여걸 P 사장님. 돈에 기만당해 온 아프리카의 아픔을 절감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는 않기로 했다는 젊은 활동가 부부 우모자와 파모자. 칠 년 동안 차도 없이 혼자 한나절 길의 마사이족 마을을 찾아 다녀서인지 마사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대등한 기를 뿜는 작은 여장부 사라. 은퇴하고 이곳에 와 부모처럼 젊은 사람들을 챙기시면서도 먼저 온 그들로부터 탄자니아에 대해 배우려는 모습이 인상적인 의사 바바 장 부부.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를 꼽아 한국에서라면 친해지기 어려웠으리라 예상되지만 탄자니아에서 일구어 내신 박통 시절 류의 인간 승리 스토리는 존경스러운 인품 좋은 바바 초이 부부.
 
그 외에도 몇몇 한인 가족이 격의 없이 왕래하며 서로를 챙기고 다독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작 며칠의 만남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어도, 각개 전투하며 서로 견제하는 날 선 느낌을 받았던 나이로비 활동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 다른 공기는 객(客)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배어났다. 아루샤 사람들은 아프리카까지 넘어온 젊은 여행자들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열병을 앓은 스무살은 내내 아루샤에서 번갈아 걸려오는 안부 전화를 받더니, 돌아와서도 많은 격려를 받았다. 나이로비에서는 나이 지긋한 활동가가 장에게 “장인어른이 돈이 많은가 봐? 허 참,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안 돼.” 하는 비아냥 섞인 감탄을 몇 차례 했을 뿐이었다. 또 나이로비에선 해가 지면 대부분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 자연스레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반면 처음 만난 아루샤의 우모자 파모자 부부와는 밤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최대한 많은 한인과 현지인을 만나게 해 주고 싶어 했다. 지나는 과객에 불과한, 공들일 이유 없는 객들에게 활동과 생활의 공간을 열어 보여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만나서 기쁘고 알게 되어 감사한 사람들과 헤어진 직후는 여행의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다. 방금 떠난 그 곳에 속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해진다. 우리가 집도 절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떠도는 처지임을 절감한다. 마치 지구에 살 비빌 데라곤 우리 셋밖에 없는 것처럼 외롭다. 아루샤를 뒤로 하고 떠난 버스 속에서, 밀려드는 심정을 삭이느라 장도 나도 내내 말이 없었다. 차만 타면 잠이 드는 스무살에게 이 복잡한 마음이 전염되지 않아 다행이다. 열다섯 명이 꼭꼭 끼어 탄 시끄러운 마타투(값싼 버스 역할을 하는 작은 봉고)가 덜컹덜컹 붉은 길을 달렸다.
 
킬리만자로의 도시, 모시(Moshi)에 들어서다 

▲ 모시를 떠나는 날 얼굴을 보인 킬리만자로     © Abby 
 
두 시간 후 도착한 곳은 킬리만자로의 도시 모시(Moshi)다. 아루샤로부터 열 시간 거리 인 동쪽 끝의 수도 다레살람(Dar Es Salaam)까지 쉼 없이 움직이려던 계획을 수정해, ‘나는 상관없어!’ 하면서도 열병 끝에 아직 얼굴이 해쓱한 스무살의 컨디션을 추스를 겸 모시에서 이틀을 쉬어 가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가지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
 
‘빛나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만년설이 뒤덮인 킬리만자로의 해발 육천 미터 정상 부근엔 굶은 채 얼어 죽은 표범 한 마리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와 그 표범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고, 조용필은 그 소설에 영감을 받아 <킬리만자로의 표범>라는 곡을 발표했다.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보다는 불타는 영혼대로 살다 홀로 서슬 푸르게 죽어간 표범이 되리라, 비장미를 풍기면서.
 
그러나 언제나 그 위대한 영혼이 굽어보는 이 작은 도시에서 여행자를 기다리는 것은 굶주린 하이에나들이다. 어느 여행가가 탄자니아에서 동네 주변에 사자와 기린이 주변에 없는 것만큼 불운한 경우가 없다고 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광업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길에서 만난 외국인이 보통 사람으로 보일 리 없었다. 장과 스무살이 가이드북에 나온 몇몇 숙소를 보러 간 사이, 어느 건물 곁에 홀로 남은 나는 ‘싸고 좋은 킬리만자로 트래킹’을 갖고 있다는 아홉 명의 남자들로부터 차례차례 대시를 받았다. 그 중 일부는 팀을 이루어 일부는 내 주의를 끌고 일부는 가방을 노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적당히 산전수전을 겪은 여자, 빤히 보이는 수에 당황하거나 당하지 않는다.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은 장과 스무살이 신이 나서 돌아왔다. 무려 마사이 전사 두 사람이 입구를 지키는 곳이었다. 건물은 말끔한 데다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이나 벽을 붙잡은 담쟁이가 운치까지 풍겼고, 매트리스 멀쩡한 침대엔 숙소 이름이 자수로 놓인 깨끗한 린넨이 잘 개켜져 있었다. 아침식사까지 포함해서 한 사람당 하루에 오 달러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다만 지금 잠시 전기가 나가서 우리 방 불이 들어오지 않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나가서 바람 쐬고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체크인을 하고 옆방에 묵게 된 독일 여자 둘이 소리를 높이며 매니저에게 따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방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리고 아까 ‘잠시’ 나갔다던 전기는 그녀들이 킬리만자로 등반을 떠나기 전인 닷새 전에 이미 나간 상태였다고 했다. 해결되어 있으리라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인 거였다. 전기는 언제 들어올지 모른단다. 우리가 옆에서 항의를 거들자, 매니저는 두 손 두 발 다 든 표정으로 방을 옮겨 주었다. 그녀들의 방은 바로 수리에 들어갔다. 이렇게 바로 해결할 걸 왜 좋은 말로 하면 움직이지 않는 걸까.
 
빛나는 산은 구름 속에 숨어 버리고 

▲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길 초입의 어수선한 산골 마을     © Abby 
 
다음 날 아침, 시내가 내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시 시내 어디에서나 실컷 바라볼 수 있으리라던 산은 잔뜩 낀 구름 뒤로 숨어 버렸다. 야속하게 새하얗기만 한 하늘 저쯤이 킬리만자로의 자리이리라 상상만 해야 했다. 나흘 산행에 일인당 최소 백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 탓에 비록 등반은 엄두 내지 못하더라도, 킬리만자로 발치라도 걸어 보자는 생각에 리셉션에 물어 시내버스를 찾아 탔다.
 
버스는 바오밥 나무가 듬성듬성 심긴 벌판을 지나, 차창 안으로 후드득 후드득 나뭇가지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깊은 숲 속을 지나, 어느 오솔길 앞에 섰다. 잘 뻗은 큰 길 옆으로 마치 잘못 그은 선처럼 비어진 작은 오솔길이었다. 양 쪽으로 야자수가 우거진 이 길을 쭉 따라 가면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길이 나온다고 했다. 기사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이 자리에서 모시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고 일러 주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라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 안의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러니 킬리만자로로 가는 길을 잘 안다고도 했다. 원래는 길의 저 앞에 아름다운 킬리만자로가 보이는데 오늘은 흐려서 안타깝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말을 이었다.
 
- 누나 왜 그래? 누나가 문제야. 말 거는 사람을 왜 다 의심해? 그냥 얘기하는 걸 수도 있잖아. 

▲ 킬리만자로 발치의 오솔길을 걷는 목사 아들, 스무살, 장     © Abby 
 
예민하게 “Let me go”를 반복하며 그를 따돌리려는 나를 쏘아보며 스무살이 말했다. 내가 무례했나. 그래도 나는 어쩐지 그의 접근이 싫었다. 결국 나만 멀찍이 뒤에 떨어져 걷고 세 남자가 앞장섰다. 자꾸 끝까지 길을 안내하겠다는 그를 장이 만류했다. 마을 초입에 도착하자,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는 다른 남자들에게 다가가며 그는 선선히 ‘좋은 시간 보내!’라며 안녕을 고했다. 스무살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봤지? 그냥 호의였을 뿐이야.
 
마을은 괴괴했다. ‘빌리의 헤어 살롱’이라고 적힌 작은 집을 지나, 먼지 앉은 잡동사니를 파는 동네 가게를 지나, 앙상한 매대를 놓고 허름한 신발과 잡화를 분류 중인 여인들을 지나, 커다란 들통 한가득 옥수수를 삶는 노인을 지났다. 한참을 걸어 깊숙이 들어가도 여기서부터가 산이라던가 하는 표지판이 나타나지 않았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사람 누구도 영어를 할 줄 몰라, 상점 주인은 킬리만자로로 가는 길을 묻는 장에게 킬리만자로 생수를 한 병 내밀었다. 아무래도 외지인이 자주 드나드는 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하고 장이 말했다. 에잉, 킬리만자로가 우리한테 곁을 안 주네, 투덜투덜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마을을 벗어나는 우리를 발견하곤, 친구들과 앉아 히히덕거리던 그가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배웅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를 따라 나섰다. 이번엔 나도 뒤서지 않고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버스 어디서 타는지 알지? 하며 보조를 맞추어 걷던 그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내게는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어. 나는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
 
나머지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신의 부름은 있으나 돈이 없어. 아주 약간의 돈이면 돼. 너희는 부자잖아. 장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젓자 그는 좀 더 노골적이고 비굴해졌다. 그럼 어떻게 점심값이라도… 오늘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너무 고프거든. 이번엔 스무살이 휘휘 손을 저었다. 마사이 마을에서 파리를 쫓던 그 짜증스런 표정으로.
 
후텁지근한 오후의 공기가 폐로 밀려들었다. 심장이 빨라졌다. 이런 빌어먹을 하이에나들. 나를 무안 준 스무살의 믿음처럼 이 남자 하나쯤은 그냥 관심이었어도 좋을 텐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빠져 나가는 관광을 하지 않겠노라 하면서도, 보고 싶은 것의 냄새도 맡아보지 못한 채 적적한 시골길을 헤매다 ‘자칭 목사 아들’의 보고 싶지 않은 구걸에 말려든 이 시간은 과연 그런 관광보다 나은 것일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함께니까 

▲ 아프리카의 황혼     © Abby 
 
돌아오는 길, 어느 새 황혼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의 노을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일렁일렁 온 하늘을 붉게 채운 해가 구름 사이로 오늘 남은 빛살을 뿌린다. 그러면 빛은 곧 셀 수 없는 결의 오렌지 빛이 되어 땅에 닿았다. 그러면 땅의 빛과 하늘의 붉고 푸른빛이 서로 번져 부드럽고 강한 보랏빛으로 함께 솟아올랐다. 그러면 하늘은 눈을 두는 데마다 가지각색의 빛을 띠었고, 노을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과 사물 역시 가지각색으로 물들었다.
 
노을은 하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눈과 마음에 다 담을 수 없는 벅찬 빛의 향연으로, 태양은 조화롭게 하늘과 땅을 어르며 저물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모습을 감춘 후에도 남은 빛은 조금 더 머물며 아쉬움을 달랜 후 사라졌다. 저 아름다운 노을은 너무 짧다. 그러면 언제 해가 떴었냐는 듯 사위가 검게 빛을 감췄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은 매일의 황혼처럼 강렬한 찰나를 선사하고, 어둠은 순식간에 내려 오래 머물렀다. 내일을 기약해야지. 내일의 해를.
 
- ‘내일의 태양은 뜬다’는 말이 여기처럼 실감나는 데가 없어. 덕분에 매일매일 엄청난 선셋(sunset)을 보잖아?

숙소 앞 꼬치 집에서 맥주병에 담긴 킬리만자로를 응시하며 괜히 서로를 다독였다. 여행 중인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다. 마음은 뒤엉키고 하늘은 안 도와주고 사람은 너무한다 싶은 날.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셋이니까. 접시에 닭고기를 놓아 줄, 잔을 채워 줄, 함께 잠들어 줄 동행이 있으니까.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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