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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쇠창살에 둘러싸인 ‘평화의 안식처’
아프리카 로드트립 9. 탄자니아 달에살람(Dar Es Salaam)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폴레 폴레'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으니 

▲ 모시의 럭셔리 코치 사무실   - Abby 
 
또 속았다. 모시에서 달에살람(Dar Es Salaam)으로 가는 교통편은 고급형 좌석 버스인 럭셔리 코치뿐이라더니, 터미널엔 다양한 일반 로컬 버스가 있었다. 가격은 물론 럭셔리 코치의 절반이다. 제 값을 주고 럭셔리 코치를 타는 것이니 바가지는 아니었건만, 막상 아무도 우리가 치른 가격에 티켓을 사지 않는 것을 보니 은근히 약이 올랐다. 그러나 어쩌랴. 어제의 정보가 오늘 통하지 않는 이곳은 아프리카인 것을.
 
이런 상황은 운명으로 받아야 한다. 짐짓 “오늘 우리 운명은 럭셔리 코치”라고 언구럭을 떨고 나니 그 기분도 괜찮았다. 특히 스무살은 쾌재를 불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정보를 제대로 알았다면 지독한 당신들은 당연히 로컬 버스를 택했을 텐데, 그럼 하루 종일 진짜 힘들었을 거야, 하며.
 
일곱 시 반에 칼같이 출발한다던 버스는 여덟 시가 넘도록 시동도 걸지 않았다. 비싼 버스나 싼 버스나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이긴 마찬가지, 자리를 다 채워야 떠날 셈인 것 같았다. 땅콩 한 주먹, 담배 한 개비, 캔디 한 개 등을 파는 행상들만 부지런히 버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간식을 권했다. 그래, 느긋해야지. 폴레폴레.
 
이곳에서 약속 시간 운운하며 따져 봐야 속 끓이는 사람만 손해다. 둘러보니 누구도 이 늦은 출발에 짜증내는 기색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전철 문이 닫히고 일이 분만 출발이 지체되어도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내 나라의 빨리빨리도 정상은 아니다. 달에살람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처리해야 할 시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만큼은 우리도 빨리빨리는 잊고 폴레폴레.
 
     은주구, 은주구(땅콩, 땅콩)!
 
목이 터져라 외치는 행상에게 차창 밖으로 동전을 건네고 땅콩을 한 봉지씩 받아들었다. 신문 조각으로 가늘고 길게 만 깔때기 속에 든 땅콩이 서른 알 쯤 될까. 에이, 더 많이 많이! 하고 과장되게 손짓하니 그가 씨익 웃으며 한 움큼 땅콩을 더 집었다. 그러나 우와 - 하는 한 움큼 어치의 감탄을 배신하고 깔때기 속으로 떨어진 땅콩은 두세 알 뿐이다.
 
대체로 차 시트에 머리가 닿으면 잠드는 건강체 스무살은 험한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하나 둘 흘리던 땅콩을 형에게 맡기더니 곧 잠이 들었다. 대체로 장거리를 움직일 때면 동영상 팟캐스트를 따라잡고 라디오를 듣던 장은 할 일을 잃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이목을 사로잡고 싶지 않다면 아이패드나 같은 고가의 물건은 가방에 고이 모셔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간의 일을 메모하고 책을 읽던 나도 손을 놓았다. 낡은 도로에서 쉴 새 없이 쿨럭이는 버스 안에서 뭘 읽거나 쓰다가는 십 분 만에 토악질을 할 것이 뻔했다. 아프리카 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때야말로 바깥의 세상이 말을 걸기 가장 좋은 순간이기도 하다. 자의반 타의반, 아프리카에서는 늘 안팎의 풍경을 바라보는 데만 오롯이 주의를 기울였다. 하늘. 땅. 나무의 생김새. 산봉우리가 솟은 모양. 들꽃의 빛깔. 사람들의 앉은 모양새. 지나는 버스를 바라보는 표정. 바람에 나부끼는 여염집의 빨래들. 피플 샵, 피스 그로서리, 폴리스 바 등의 재미있는 간판들. 덕분에 소소한 풍경들이 음미할 만한 ‘아프리카’로 새겨졌다.
 
모두 느려 터진 버스가 천천히 움직인 덕이었고, 소화할만한 속도로 풍경이 흘러간 덕이었다. 이동을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이 긴 시간은 부아가 날 만큼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효율로만 시간을 채워 눈앞의 이 세계를 놓친다면, 여행의 풍성함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 끝없이 펼쳐지는 파인애플 밭  - Abby  

출발 네 시간 후, 화장실에 가라며 버스가 섰다. 다만 휴게소가 아니라 사막 한 가운데라는 점이 달랐다. 사람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이 곳 저 곳의 덤불 뒤에 숨어 볼 일을 해결했다. 장과 스무살은 화장실을 마다하고 잠을 잤다. 하긴, 버스가 워낙 뜨거워 두 사람 모두 흥건히 땀을 흘리는 터라 소변이 마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시원하게 소변을 비우고 돌아오는 길, ‘달에살람 300km’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모시에서 총 여섯 시간이 걸린다더니, 남은 300km를 두 시간에 주파하는 것은 남은 길이 아우토반이어도 불가능하리라.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주문, 폴레폴레.
 
끝도 없는 파인애플 밭에 이어 저 멀리 바위산이 놓인 기기묘한 사막이 오래도록 펼쳐졌다. 광야엔 듬성듬성 커다란 바오밥 나무가 심겨 있었다. 아니, 누가 심은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린 씨가 제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리라.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그러다 가끔 산 속의 작은 마을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손을 흔들며 버스를 따라 달렸다. 끝도 없이 이어진 붉은 흙길 가에, 길을 건너려는 타조 두 마리가 서 있기도 했다. 마른 풀밭 저 쪽에선 가젤의 떼가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이 그 길 위에 있었다.
 
웃는 낯을 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자…

▲ 차가 서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상인들  - Abby  
 
어느덧 벌판보다는 상점과 민가가 늘어선 도로를 달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에 더해 도시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린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웃는 낯을 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나운 눈빛을 하고 버스를 노려보는 남자들도 늘어났다. 아니면 삼삼오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하릴없이 노닥거렸다. 일하는 것은 여인들이었다. 바나나 무더기를 쌓아 놓고 텅 빈 표정으로 길가 앉은 이도, 산더미 같은 빨래를 두드리는 이도.
 
검문을 위해서나 주유를 위해 간혹 차가 설 때면, 득달같이 몰려든 사람들이 장을 이루었다. 간식거리 뿐 아니라 망에 담긴 양파를 팔기도 했고, 벨트나 시계 같은 귀중품 박스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진풍경이었다.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바깥의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구애를 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버스가 오면 우르르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 헤이 치나. 헤이, 유.
 
건너편 버스로 달려간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두 남자가 펄쩍 뛰며 나를 위협했다. 우리가 네 카메라 확 낚아챌 수도 있어. 하는 위협적인 말투와 제스처다. 그러시던가, 하고 사소한 복수로 그들을 향해 찰칵, 셔터를 눌렀다.
 
해거름 즈음에야 달에살람(Dar Es Saalam)에 도착했다. 탄자니아 동쪽 끝의 이 항구 도시는 수도의 타이틀을 중부의 도도마(Dodoma)에 넘긴 후에도 여전히 탄자니아의 실질적 수도 역할을 하는 큰 도시다. “평화의 안식처”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곳에서 안식하지 않고 필요한 실무만 해결하곤 떠난다. 볼 것은 없고 사람들은 몹시 거칠다는 평가 탓이다. 우리 역시 이튿날 잠비아 행 열차만 예약한 뒤 곧바로 잔지바 행 페리를 탈 예정이었다.
 
친절하지 않은 도시에서 해가 지도록 배낭을 메고 헤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가이드북을 뒤져 도심에 있다는 YWCA 호텔로 지체 없이 움직였다. 바깥으로부터 투숙객을 보호하는 것인지 투숙객을 감시하는 것인지 모호한 태도의 무장 경비가 지키는 높은 철대문을 지나 건물로 들어섰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시멘트 건물이 교도소 같은 배낭여행자 숙소다. 쇠창살 너머의 방에 간수처럼 앉은 접수처 직원 앞에서 죄수처럼 체크인을 했다. 그녀가 창살에 가로막힌 유리창을 볼펜 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역시나 교도소에 적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여러 생활 수칙들이었다. 그 중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상대하지 마라. 너희는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귀중품은 방에 놓고 다니길 바란다. 단, 분실 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근데 정말 저렇게 위험해?
     꼭 그렇다곤 할 수 없지만, 조심은 해야지.
 
스무살의 물음에 장이 답했다. 하물며 서울도 젊은 여자들이 밤길을 조심해야 하는 도시이거늘, 가이드북도 현지에 머무는 외국인들도 하나같이 ‘각별히 조심하라’는 아프리카 도시들에 대한 경고는 일종의 선입견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여행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면 일단 조심해 나쁠 것이 없으리라. 중요한 물건들을 배낭에 나누어 깊숙이 담고 자물쇠를 채운 후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도시에 깃든 위험은 어디에서 왔을까

▲ 달에살람의 아침 -  Abby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이었음에도 인도에는 사람이 가득, 찻길에는 사나운 매너의 차들이 가득했다. 거리에 벌린 좌판에는 복권이나 가짜 시계들이 즐비했고, 인도에 면한 큰 상점들엔 울긋불긋한 중국산 싸구려 옷과 조악한 잡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헌 옷과 신발, 담요 같은 물건들을 모아 파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잘 사는 나라들에서 구호품으로 보낸 물건들이 뒷거래를 통해 시장에 풀린 것이리라 짐작했다.
 
탄자니아의 경제에 대한 짧은 토막글을 몇 차례 읽은 일이 있었다. 요지는 ‘실패’였다. 60년대 사회주의 경제를 표방한 탄자니아 정부가 실시한 계획적인 영농과 경제개발개획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계획을 실현할 달러가 부족했고, 돈이 되는 광물은 잘 사는 나라들이 쓸어갔으며, 우간다와의 전쟁 등의 인재와 자연 재해가 겹쳤다.
 
결국 최근 농촌은 자급자족형 농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렝게티나 킬리만자로처럼 조금이라도 볼거리가 있는 지역은 우르르 관광에 목을 맸다. 가장 상황이 나쁜 것은 아무런 인프라 없이 사람만 많은 ‘도시’였다. 청년 열 명 중 여섯 명이 실업자라고 했다. 그래도 관료와 부자들은 떵떵거리는 곳이 도시였고, 원하면 너는 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거대한 광고판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곳이 도시였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빈곤감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잃을 것 없는 젊은이들은 사납다. 시간과 분노가 넘치는 젊음이 택할 수 있는 돈벌이의 방법은 많지 않으리라.
 
한편, 지구상의 모든 도시는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섯 개의 대륙 위에 ‘도시’라는 거대한 세계가 보이지 않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지역과 민족을 불문하고 같은 특징과 지향을 가진, 그래서 일렬종대로 서열을 매길 수 있는 그런 세계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3세계의 나라들도 도시에서만큼은 특유의 열등감과 선망이 뒤섞인 공격적인 눈빛들이 느껴졌다. 그 중 가장 낮은 위치를 점한 아프리카의 도시는 말해 무엇 하랴. 음울하고, 위험하다. 

▲ 달에살람, 가짜 미츠비시 트럭 앞의 노점상들  - Abby 

마침내, 문을 연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했다. 레스토랑은 무척 커다랬으나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볼륨을 죽인 텔레비전 속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가 노란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점원들의 넋을 빼 놓았다. 주문할 수 있는 것은 기름과 먼지에 절은 감자튀김과 식은 닭다리뿐이었으나, 종일 땅콩과 배낭의 과자 몇 개로 속을 달랜 터라 먹을 것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했다. 케첩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더러운 테이블에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은 것도 잠시,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는지 한 점원이 가게의 테이블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서서히 우리를 조여 왔다. 다른 점원은 철벅철벅 소리 내며 바닥을 문지르던 마대를 서서히 우리 쪽으로 밀고 왔다. 그 마대가 거칠게 우리 테이블 아래를 파고든 순간, 그리하여 셋 다 번갈아 다리를 들어야 했던 순간, 식사도 끝이 났다.
 
- 잠보! (안녕!)
 
호텔로 돌아오는 길, 거리에 앉아 있던 청년 하나가 건들건들 우리를 불렀다. 두세 사람의 친구가 함께 앉아 우리의 하는 양을 지켜보는 채였다. 우리 셋 모두 대꾸 없이 지나쳤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외국인을 따라 나섰다.
 
- 이봐, 아프리카 처음이야? 어디서 왔어? 나는 탄자니아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지.
 
모시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평소라면 뭐라고 대답이라도 할 스무살이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헤이, 나랑 얘기하기 싫어? 그냥 인사나 하자는 거야. 노 프라블럼, 하쿠나 마타타!
 
그래도 대꾸하지 않고 호텔로 향하는 우리 뒤통수에 갑자기 그가 약이 바짝 오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봐, 탄자니아에 왔으면 탄자니아 사람하고 얘기를 해야지. 아프리카 사람이랑 얘기도 안 할 거면 여기는 뭐 하러 왔어?! 꺼져 버려!
 
무장 경비가 돌아온 우리를 향해 아는 체를 한다. 그의 허리춤에 꽂힌 총과 높은 담의 쇠창살이 갑자기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가 대단히 깊은 뜻을 가지고 한 얘기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을 상대하지 않을 거면 여기는 왜 왔냐는 남자의 말이 괜히 뒤통수를 당겼다. 평화는 간데없는 평화의 집 달에살람, 부디 오늘 밤은 우리에게 평화로운 쉼을 허락하기를.  (Abby)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독립미디어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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