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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7. 인간세상의 원형을 상상하다 

▲  엔키카렛의 가시나무   © Abby 
 
‘엔키카렛’은 ‘가시’라는 뜻이다. ‘엔키카렛’이라는 이름의 이 울퉁불퉁한 광야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나무는, 이불을 꿰매는 바늘만큼 길고 단단한 가시를 촘촘히 박은 가지를 어수선하게 뻗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는 어디에 그 커다란 몸을 숨기는지 신기한 기린들이 때때로 우아하게 나무에 다가서고, 긴 혀를 내밀어 용케 가시 사이의 초록 이파리를 감아 먹고는 사라졌다.
 
군데군데 어른의 키만 한 붉은 산을 이룬 개미집과, 간신히 돋아나긴 했으나 땡볕과 갈증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바스라지는 키 작은 풀들이 황량했다. 일 년에 많아야 보름 비를 맞는 마른 벌판은 앞머리를 사르락 건드릴 뿐인 휘파람에도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켰다. 생명 있는 것들이 오래 숨을 부지하기 힘든 황무지다.
 
얼마나 달렸을까, 벌판의 저 앞에 여남은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인 가시덤불 울타리가 나타났다. 나뭇가지들을 촘촘히 땅에 박아 둥그렇게 뼈대를 세우고 소똥과 흙을 짓이겨 벽을 바른 후, 삿갓처럼 짚을 이워 지붕을 얹은 초가집이었다. 차에서 내려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 중앙의 큰 나무그늘 밑에선 한 무리의 여인들이 모여 앉아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가늘게 자른 가죽띠를 꼬아 장식을 만들고 있었다. 길쭉한 통을 닦아 울타리에 너느라 바쁜 여인들도 있었다. 염소젖을 보관하는 통이라고 했다. 제 어미 근처의 흙바닥을 뒹구는 아이들은 염소새끼와 매한가지였다.
 
이곳은 나이 많은 족장 어르신을 중심으로 한 쉰 명가량의 가족과, 그보다 훨씬 많은 소와 염소가 한 씨족을 이룬 작은 마사이 마을이다. 우리 셋은 기름 한 병과 식빵 다섯 줄, 비누 두 개를 선물로 마련해 한국인 여성 선교사인 사라를 따라 이 마을을 찾았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부터 고모를 찾아온 사라의 초등학생 조카 둘도 함께였다.
 
손님에게 내어준 축복과 귀한 음식

▲ 가죽 장식을 만드는 마사이 여인들     © Abby 
 
사라를 발견한 마사이 사람들이 마치 누이인 듯 사라를 살갑게 맞았다. 사라도 격의 없이 반갑게 그들의 손을 부여잡고 안부를 물었다.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지은 교실 세 칸짜리 학교에서 그녀가 마사이 부족 교사 몇 사람과 함께 살며 이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지 벌써 7년이라 했다.
 
족장님에게 인사를 드리자, 그가 우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손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축복의 표시라고 했다. 족장님의 부인들과도 차례차례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스무살의 머리에도 손을 얹지 않았던 여덟째 부인까지도 내 머리를 짚어 주신 통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목례를 하는 우리들의 인사를 축복을 청하는 제스처로 오해하고, 자신들과 생김새가 다른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마사이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키가 크고, 얼굴은 작고, 팔다리는 길고 가늘고 단단했다. 그리고 남녀를 불구하고 온 몸에 걸친 장신구는 족히 서너 근은 되어 보였는데, 예상대로 얼마나 많은 장신구를 아름답게 늘어뜨리는가가 미의 기준이라고 했다. 특히 귀의 장식이 중요해서, 무거운 장신구를 늘어뜨려 점점 커진 여인들의 귓불의 구멍 너머로는 저 건너편 풍경이 보일 지경이었다. 모두들 앞니를 두개씩 뽑은 것도 특징이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숨을 불어넣거나 물을 흘려 넣어 먹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 콜라를 마시는 족장의 손자 미카엘     © Abby 
 
젊고 건장한 청년인 족장의 손자 미카엘(가명)이 손님들을 위한 특식을 들고 나타났다. 염소 고기와 바나나를 넣어 옥수수 가루로 만든 죽 두 그릇과 땡볕에 뜨뜻하게 데워진 ‘코카콜라’다. 마사이 지팡이 끝으로 병뚜껑을 픽 따는 미카엘의 모습을 사라의 조카가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 미카엘은 병을 막고 거꾸로 기울여 탄산을 빼 가며 콜라를 마셨다.
 
문제는 귀한 음식인 고기 스튜였다. 스튜엔 여행 중 현지 음식을 가려 본 일이 없는 나도 몇 수저 넘기기가 어려운 역한 기름 덩이가 둥둥 떠 있었다. 게다가 가축과 사람이 거의 같은 공간을 쓰는 탓에 눈과 코에 정신없이 붙는 파리가 국그릇 안이라고 없을 리 없었다. 그런 음식을 맛보았을 리 없는, 그러니 당연히 먹지 않겠다고 퉁퉁대는 초등학생 소년에게 고모 사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너 이 음식이 여기서 얼마나 귀한 건 줄 알아 이 녀석아?! 어디 주신 분들 앞에서 얼굴을 찌푸려. 이거 다 안 먹으면 고모 집에 오늘 못 가. 이 형들이랑 누나랑 여기 같이 있다가 내일 와.
 
힝, 하면서도 기특하게 꾸역꾸역 스튜를 밀어 넣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웃다가 옆의 스무살을 흘낏 보았다. 비위가 약해 우리 셋만 있었다면 안 먹겠다고 형이나 누나에게 미루었을 것이 뻔한 녀석이었지만, 차마 초딩과 도매금으로 야단맞을 수는 없는 고딩 형아의 위엄 때문인지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수저를 입에 물었다. 제대로 씹지 않은 덩어리가 지나가는 녀석의 목울대가 꿀럭 하고 크게 움직이는 순간 눈이 마주친 내가 푸욱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왜? 뭐가? 하는 표정으로 반항하면서.
 
7년 마다 돌아오는 ‘할례축제’의 소년들
 
고기와 콜라 같은 귀한 음식이 있는 것은, 마침 지금이 7년마다 돌아오는 할례축제 기간인 덕분이었다. 맨 손으로 사자를 때려잡는다는 전사 마사이 족 소년에게 할례는 용맹한 남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마사이 사람들은 칠 년에 한 번씩 사내아이들을 모아 검은 옷을 입히고 깃털로 독특한 장식을 한 채 얼마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에서 아버지, 삼촌, 형들과 함께 먹고 자도록 한다. 그리고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식을 치르는데, 마취도 없이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동안 신음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면 가차 없이 매가 날아든다.

▲ 할례를 위해 검은 옷과 깃털로 장식한 마사이 소년     © Abby

일행과 함께 소년들이 머무는 근처의 숲을 찾아갔다. 과정과 의미는 판이하지만 시술의 측면에서 정확히 같은 경험이 있는 장과 스무살은, 태연히 앞서 뛰는 소년들을 보며 ‘절대로 저렇게 다닐 수 없다!’고, 누가 뭐래지도 않았건만, 자꾸 강변했다. 마을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수풀은 가시나무 몇 그루가 겨우 뙤약볕을 가리는 그늘이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불을 피워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남자들이 반갑게 새로운 동양인 남자들을 맞았다.
 
그들은 장과 스무살을 이끌어 먹을 것을 권하기도 하고, 짧은 영어가 되는 사람을 앞세워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도 했다. 대창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워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마사이 남자들 사이의 장과 스무살을 보니, 흰 코뿔소와 검은 코뿔소가 있고 아프리카 코끼리와 아시아 코끼리가 있듯 인간도 다른 종(種)이 있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사라가 스와힐리어로 무언가를 이르자, 남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 내가 염소를 한 마리 쏘겠다고 했어요. 염소 몇 마리를 사서 이 마을 청년들에게 나 대신 돌봐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 중의 한 마리, 잡아서 같이들 먹으라고. 아이들이 왜 힘들지 않겠어요. 그리고 변화가 있을 땐 더 격려해 줘야지. 올 해에는 시술에 사용하는 도구를 수술용 메스로 바꾸기로 했어요.
 
최근까지도 할례 의식을 치르고 나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마사이 칼로 소독 없이 시술한 후의 감염이 주원인이었다. 할례의 의식은 마사이 사람들의 오랜 전통이니 존중해야 하지만, 정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더 나은 방법을 권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설득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마 마을의 어떤 원로들은 낯선 외래 도구가 할례의 정신을 훼손한다고 개탄했을 것이다. ‘양놈의 종교’를 받아들인 족장 가족이 부족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런 갈등이야말로 둘 이상의 인간이 모여 산 이래 끊이지 않은 이슈이니까.
 
바람을 닮은 이들의 삶

▲ 마사이 부족의 집     © Abby 
 
마을로 돌아와 가방을 풀기 위해 소똥집에 들어섰다. 먹물에 발을 담그듯 검은 공간으로 들어가 랜턴을 켜자, 그 작은 방에 무려 열 명이 넘는 크고 작은 여인네들이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 모습에 여인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나란히 깔고 그 위에 거칠게 무두질한 소가죽을 얹은 특별한 곳이었으나, 불행히도 위아래로는 머리를 두는 쪽이 아래로 기울어졌고 좌우로는 셋이 나란히 누우면 몸을 돌릴 수조차 없이 꼭 끼었다. 여기 있다간 누가 우리를 잡아 제물로 바치기로 한들 저항도 못하겠다, 는 말은 생전 처음인 이 험난한 상황에 신경이 예민해진 스무살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슴에만 담아 두었다.
 
난감해하며 밖으로 나오는 우리를 기다리던 사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자, 그럼 나는 이만 갑니다. 잘 살아남아 보세요. 소똥집에서 자는 게 힘들겠지만 뭐, 하루니까 그죠? 말도 안통하고, 그냥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거예요. 그래도 있어 봐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시고, 벼룩 조심하고!
 
몇 시간 구경했으면 됐잖아 누나. 안 그래요 형? 하며 따라가고 싶은 표정이 역력한 스무살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기는 우리 둘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어느 세상에서처럼 손님을 전담하는 누군가의 세련된 케어가 있을 리 없었다. 특별하게 도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 중엔 이런 난감한 날도 있는 법,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생존’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장과 스무살은 다시 남자들을 따라나서고 나는 마을 중앙의 여인들과 시간을 보냈으나, 오래지 않아 마을 바깥의 앙상한 나무 그늘 아래 모인 우리 셋 다 퍼지고 말았다. 무릎에 머리를 묻고 나무에 몸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데 쉴 곳은 마땅찮은 뜨거운 벌판이어서 일까, 윙윙대며 정신을 빼는 파리 때문일까.
 
- 내가 지금 무슨 영화를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무살이 볼멘소리를 했다. 어느새 일어나 주변을 촬영하던 장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 그러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살지. 나라면 며칠도 못 살 거야.
 
아닌 게 아니라 마사이 사람들은 우리와 정말 ‘다른’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랐다. 정부가 억지로 정착촌에 밀어 넣은 요르단 페트라의 유목민 베두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비슷하게 독특한 느낌을 받았었다. 베두인들은 지어준 집을 마다하고 굳이 지붕에 올라가 잠을 청하거나, 멀리 돌사막 한가운데 집을 짓고 얼마간 그 곳에서 나귀 떼를 치곤했다. 그것이 농경민의 후예인 우리와는 다른 유목민의 분위기일까. 

▲ 염소를 안고 가는 마사이 아이     © Abby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역사라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발전이 없이 미개하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러나 막상 마사이 사람들 앞에 서자, 바람을 닮은 이들의 입장에서 세월을 붙잡아 기록하려는 욕심은 얼마나 부질없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죽으면 영혼이 바람에 실려 갔다 믿어 시신을 따로 묻지 않고 옛 집에 남겨 둔 채 떠나는 것이 마사이 족의 전통일 만큼, 유목민들은 흔적에 미련을 두지 않고 흐르며 산다. 무엇이건 제 때 움직이지 못할 만큼 쌓아두는 것을 미련한 일로 여기는 그들에겐 기록도 짐이 되리라.
 
농경 사회의 인간들이 축적하고 진보하는 것으로 세상을 움직여 왔다면, 유목 사회 인간들의 삶은 그 복잡한 얼개 속에서 변치 않는 인간과 세계의 핵심을 기억하게 하는 ‘원형’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을 흘러오며 불필요한 것들은 풍화된 삶 속에서 오롯이 지켜진 인간 사이의 신의, 하늘에 대한 경외,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과 같은 가치들. 원형의 역사를 묻는 것은 우문이 아닐까. 이미 합리포화도가 지나치게 높은 세계에서, 어떤 사람들의 과거는 신비로 남겨 두어도 좋지 않을까.
 
인간의 세계에서 보면 개미의 키가 고만고만하듯 하늘의 관점에선 문명의 차이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이 세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서로의 자리와 역할을 인정하면 좋을 텐데.
 
그런 면에서 사라는 좋은 활동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7년을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이지만, 그녀는 마사이 사람들을 일방적인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경계했다. 교육이나 의료처럼 기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서구의 가치에 마사이족과 같은 소수 부족의 전통이 속절없이 편입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마사이 사람들이 사라를 좋아하는 데는 그녀로부터 받은 존중이 큰 이유가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땅거미가 지는 서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주체할 수 없이 뜨거웠던 태양이 시야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삼백육십 도로 펼쳐지는 사막의 지평선에 녹아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 사방에서 가축 떼와 목동들이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키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저마다 어린 염소를 하나씩 안은 채였다. 멀리서 물을 길어 온 여인들은 무거운 드럼통을 발로 밀며 느릿느릿 걸었다. 장의 말대로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래서 아름다웠다. 해가 뜨면 집을 나서고,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순하게 집으로 모여드는 그 다른 삶의 존재들이.
 
나를 위로한 것이 해질녘의 풍경이었다면, 스무살을 위로한 것은 밤하늘의 별이었다. 인공적인 불빛도 매연도 없는 사막의 하늘엔 쏟아질 듯 별이 많았다. 세고 또 세도 별똥별이 새로 떨어졌고, 세고 또 세면서도 스무살은 하늘을 보며 벅차하고 형이 알려주는 별자리를 그리며 즐거워했다. 오래오래 집 앞의 모닥불가에 앉아 별을 보았다.
 
황무지의 아침을 음미하며
 
저릿한 느낌에 잠이 깼다. 한 팔을 들어 몸을 더듬으니 누군가 다른 팔을, 아가인 듯한 작은 머리 하나가 내 배를 베고 있었다. 턱으로 손목의 시계 불을 켜니 다섯 시 반이다.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밖에 나와 앉아 기지개를 켰다. 크게 들이마신 숨을 따라 염소 젖내, 고깃내, 가죽내가 뒤섞인 비릿하고 노릿한 냄새가 폐를 가득 채웠으나, 그마저도 선선한 새벽 공기에 섞이니 상쾌했다. 아직 까만 벌판에 가만히 앉아 어둠이 물러가고 저 멀리 지평선으로부터 빛이 밀려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새벽별들이 빛 속으로 하나 둘 숨자 염소들이 깨어나 매애애애 소리를 내고, 소들도 잠이 깨 움머어어어 하고 새끼를 부볐다. 느리게 깨어나는 황무지의 아침을 음미하는 이 아침이, 내 생애 다시없을 호사로 벅차게 다가왔다.

▲ 아침의 짜이를 기다리는 아이들     ©Abby

농경민이든 유목민이든 역시 가장 부지런한 이들은 어머니다. 어느새 일어난 족장의 부인이 불 꺼진 화덕 속의 재를 꺼내 슥슥 그릇을 닦았다. 다른 부인은 우리 안의 염소를 끌어와 젖을 짰다. 여인이 가르쳐주는 대로 염소의 옆구리에 머리를 박은 채 꽉 찬 염소의 젖을 비워주려 했으나, 내가 짜면 염소가 아파하기만 할 뿐 한 방울의 우유도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허탕을 치는 내 모습에 아침부터 여인들이 와글와글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갈 채비를 하는 우리들에게, 족장의 부인이 방금 짠 염소젖으로 끓인 짜이를 내밀었다. 재가 둥둥 뜬 잔에 그득 담긴 짜이에 덩달아 둥둥 뜬 파리 두 마리를 건져내고, 우리 셋 다 감사하게 한 잔씩을 받아 들이켰다. 그리고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고 길을 떠났다. 우리를 따라 나온 족장님이 손가락으로 다시 한 번 방향을 가리키며 한 시간쯤 걸으면 학교가 나타난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땐 바닥에 남은 이 타이어 자국을 따라가라 하고 당부하셨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콧등 짠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부디 그의 삶, 그가 사랑하는 손자의 삶이 그들의 방식대로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드디어 문명으로 돌아간다!”며 즐거워하는 저 맑고 밝은 스무살의 삶처럼.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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