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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걷고 있을까
<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 4. 케냐의 선교사 
 

애비(Abby)와 장(Jang)-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졸업, 취직, 결혼 등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테두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되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자, 연애시절 얘기했습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아프리카엔 대형마트가 없다?
 

- 뭐야, 한국이랑 똑같잖아!
 
스무살이 말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일정을 위한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하러 ‘나꾸마트’에 들른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대형마트엔 우리도 입을 딱 벌릴 규모의 많은 물건이 깔끔히 진열되어 있었다. 꼭 한국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몇몇 물건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구하기 어려울 것을 예상하고 한국에서 미리 챙기라 일렀던 물품들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스무살의 눈에는 내심 아프리카답지 않은 이 풍경이 김새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나이로비의 나꾸마트     © Abby 

스무살은 엊그제 수능을 마치고 한국에서 나이로비로 날아온 내 이모의 둘째 아들, 외사촌 중 맏이인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태어난 외가의 막내다. ‘모두의 막내’라는 위치와 바쁜 이모 부부를 대신해 주로 아이들을 돌보셨던 외할머니의 짠한 마음, 그리고 가까이 살아 늘 만나면서도 ‘아이구 우리 아기’하며 그를 꼭 품에 안으셨던 내 엄마의 영향 때문에 나보다 한 뼘 가까이 키가 더 컸어도 그는 아직 내 의식 속 ‘아기’다.
 
- 그러네. 아프리카에 이런 모습도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장난스럽게 스무살의 목을 팔로 꽉 안으며 장이 말했다. 둘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Y선교사가 웃으며 케냐가 이웃나라 탄자니아보다 경제적으로 20년 앞서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이로비는 다른 대륙과 동아프리카를 잇는 관문이라,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활동하는 사업가, 활동가들을 위한 카페, 레스토랑, 쇼핑센터 등 생활편의시설이 다양했다. 물론 현지인이 주로 거주하는 구역은 전혀 다른 풍경일 터, 모든 시설은 외국인 구역에 밀집되어 있었다.
 
도착한 지 이틀 째, 스무살은 아직 그 ‘외국인 구역’의 풍경만을 맛보는 중이었다. 일주일간 머물며 짧은 자원봉사를 하게 된 한 기독교 단체의 본부가 나이로비에 있었다. 여덟 명 선교사의 생활공간이자 업무 공간, 때로 우리 같은 방문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역할을 겸한 2층 저택은 운동장 같은 잔디 정원까지 갖췄다. 그러니 한국보다 쾌적한 이곳에선 아직 형과 누나가 메일로 여러 번 이른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꺼낼 기회가 없다. 하여, 스무살은 한국에서의 버릇대로 다 함께 밥을 먹고 난 후 정리는 제 몫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뜨려 했다.
 
- 스무살, 형이랑 설거지하자.
- 에이 싫은데. 누나아- 형이 설거지하재!
 
얼른 안 일어나? 하는 누나의 퉁바리를 맞고서야 기지개를 켠 녀석이 장의 옆에 서서 손을 보탰다. 테이블에 흘린 물 한 점을 닦으라 하자 두루마리 휴지를 아낌없이 ‘둘둘둘둘’ 풀었다. 그리고는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스마트폰을 붙들고 방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어젯밤 녀석이 샤워를 하고 난 욕실이 온통 초토화되어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던 일이 떠올랐다. 휴. 앞으로 저 놈과 어찌 함께 다닐꼬. 우리 눈엔 그야말로 아직 ‘절반의 인간’인 한국산(産) 십대 녀석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쩌면 스무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 앞으로 저 꼰대와 어찌 함께 다닐꼬!
 
케냐 서쪽 지역 고아원 방문을 위해 떠나다

 
이튿날 아침, 스무살이 한국에서 챙겨 온 축구공들과 어제 사 둔 간식들, 그 외 필요한 물품들을 차에 실었다. Y선교사와 우리 셋이 닷새 일정으로 센터에서 운영하는 케냐 서쪽 총게노(Chongnwo), 케리초(Kericho), 키시(Kisii) 세 지역의 고아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몇 가지 보드 게임, 아이들이 볼 만한 애니메이션을 담은 컴퓨터, 한국 음식을 할 수 있는 양념류, 함께 할 몇 가지 놀이를 적은 파일을 챙겼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하게 부탁받은 임무는 한국의 일대일 결연자에게 보고할 아이들의 연간 프로필 업데이트였다. 나는 인터뷰를 하고, 장은 사진을 찍고, 스무살은 순서대로 아이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이게 이렇게 험하게 굴릴 차가 아닌데. 차가 없어서 우리 집사람이랑 아들이 어딜 가지도 못한다고.
 
주유소를 발견하곤 주유소 쪽 곁길로 급히 핸들을 꺾으며 Y선교사가 투덜댔다. 그는 두 달 전 서쪽 지역을 방문하다 차가 반파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팔을 스무 바늘 꿰매는 부상을 입었으나 사고의 규모를 생각하면 천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수리하러 한 번 들어간 차는 다시 나올 줄을 몰랐다. 일정을 재촉하면 언제나 ‘내일 완료’라고 말하지만 기약이 없었다. 그제까지도 오늘 출발할 수 있게 차 수리가 완료된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또다시 함흥차사, 결국 집에서 가족만 사용하는 좀 더 좋은 승용차가 이번 일정에 동원되었다. 그는 수리를 일임한 현지인 목사에게 돈을 쥐어 주면 그제야 조금 진도가 나간다고, 매사가 그런 식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그렇게 모험(?)을 감행한 보람도 없이 주유소엔 기름이 없었다. 두 번을 더 허탕치고 나서야 주유를 할 수 있었다. 옆에선 사람을 가득 채운 채 주유 중이던 봉고의 운전사와 몇몇 남자들이, 탱크 가득 기름을 넣기 위해 위험천만하게 차체를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로비를 벗어나, 거주하는 외국인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기 어려운 ‘현지인 구역’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역시 모든 것이 부족하고 허술한 이곳에선 주유소라 해서 늘 기름이 준비된 것은 아니라, 게이지가 떨어지기 전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곧잘 낭패를 당한다고 했다. 길 한복판에서 기름이 똑 떨어진 어느 외국인에게 다가온 현지인들이 강도짓을 했더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카리부! (Karibu, 환영합니다!)
     잠보! (Jambo, 안녕하세요!)
 
점심나절, 차가 어느 작은 마을 깊숙한 곳에 서니 기다리던 흑인 신사 두 명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다니엘과 작고 몸집이 있는 마이클은 센터와 협력하는 현지인 목사들이다. Y선교사는 교회를 짓기 위해 땅을 고르는 중인 부지를 살필 겸, 부지 너머 넓은 밭의 옥수수와 몇 가지 작물도 살필 겸 언제나 서쪽 지역에 가는 길엔 이 마을에 들른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 만난 형제처럼 Y선교사의 손을 꼭 잡고 집안으로 이끌었다.
 
낡은 커튼으로 문을 대신한 소박한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다니엘의 딸인 여덟 살 릴라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동생을 한 팔에 안고 바깥의 부엌으로부터 연신 그릇과 음식을 날랐다. 도우려고 일어서자 집주인 다니엘 목사가 만류했다. 자신의 풍습으론 손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면 이제 여섯 달이 되었다는 막내딸이라도 안고 있으마 하고 팔을 뻗자, 이번엔 바짝 긴장한 아기가 울먹였다. 장이 까꿍! 하고 웃어보이자 아기는 급기야 경기를 일으킬 듯 기겁하며 울기 시작했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른 우리가 아기에겐 도깨비처럼 보였을까.
 
시혜자와 수혜자, 복잡하게 뒤엉킨 인간의 마음  

▲ 카메라에 신난 스무살과 아이들     © Abby 
 
식사가 끝나고 나머지 일행이 교회 부지와 밭을 둘러보러 간 사이, 스무살은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엇을 찍나 궁금한 듯 쭈뼛대며 맴돌던 릴라에게 스무살이 제 카메라를 건네자, 순식간에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앞 다투어 저희들끼리 포즈를 잡기도 하고 스무살 옆에 서기도 하며 깔깔대는 아이들과, LCD 창으로 함께 사진을 확인한 후 잘 했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스무살의 모습을 멀리서 카메라에 담았다.
 
출발할 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은 좀처럼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차에 실린 알록달록한 물건들로부터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 사이로 밭에서 일하다 나온 인부 한 사람이 불룩하게 가득 찬 커다란 봉지를 트렁크에 실었다. 선교사의 몫으로 밭에서 거둔 옥수수라고 했다. 선물 치고는 좀 많다 생각하며 바라보는 내가 의식되었는지 그는 ‘아내가 부탁한 숙제’라며 웃었다.
 
- 에이, 하여간, 이 사람들은…….
 
차가 마을을 벗어나자 Y선교사가 혀를 끌끌 찼다. 밭을 둘러보는 동안 마이클 목사가 차 뒤의 축구공을 몇 개 꺼내줄 수 없는지 물었다고 했다. 다니엘 목사는 아이의 학비가 필요하다며 100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는 사람들의 뻔뻔함을 성토하고, 돈이 아니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습관도 질타했다.
 
- 내가 혼자 오갈 때는 주로 만다지(*케냐식 튀김 도넛) 하나에 밀크티로 식사를 때워요. 그런데 이렇게 가끔 밥 먹으라고 붙잡아 밥을 먹고 나면 재료값이라도 쥐어주어야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때마다 내가 아이들 용돈 하라고, 학비 하라고 돈을 쥐어 주는데도 만나면 또 돈 얘기를 하니. 끝이 없어요, 끝이.
 
그랬구나. 마가린과 치즈를 바른 샌드위치로 모자라 현지 사람들은 좀처럼 먹지 않는 쌀밥에 고기 스튜까지 내왔던 아까의 성찬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마이클 목사와 다니엘 목사가 식사 중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리에게 ‘미셔너리(선교사) Y의 훌륭함’에 대해 입을 모으던 모습, 언제나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 선교사님, 저희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저희들 먹을 것을 따로 마련하면 어떨까요? 그게 여의치 않다면 고아원에서는 아이들 식사를 함께 먹고, 저희가 나중에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불편해하는 장의 말에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 아이들 먹는 건 위생 상태도 그렇고, 먹을 게 못 됩니다. 여기 와서 아프다 해도 그게 내 책임은 아니지만, 도의적으로 신경이 쓰이지 않겠어요? 아프지 않고 사고내지 않고 조용히 있다 가 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용돈 쥐어 주어야 여기 사람들도 손님 치를 맛이 나는 겁니다.
 
어쩐지 마음이 갑갑해졌다. 돌아보니 스무살은 그새 잠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활동가들의 모습을 스무살에게 보여주게 될 지도 모르겠다. 시혜자와 수혜자가 분명하고, 군림하고 의존하는 힘의 방향이 명확한.

▲ (상/하) 인류의 요람, 케냐 서부 리프트 밸리(Rift Valley)     © Abby 
 
스치는 생각들을 끄적이려 노트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가방을 구석구석 뒤져도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센터를 나올 때 노트와 연필을 함께 챙긴 것 같은데, 마지막 순간에 두고 나온 건지 다니엘 목사의 집에 두고 나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돌아가서 찾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센터는 전화를 받지 않고, 다니엘 목사는 우리가 머문 자리 어디에도 남긴 것이 없다고 했다.

노트와 함께 지난 한두 달간의 기록을 잃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몹시 초조해졌다. 그리고 예민해진 신경 사이로 스물스물 의심이 올라왔다. 정말 없는 걸까. 혹시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이 연필과 노트를 숨긴 것은 아닐까. 알고도 어른들이 그것을 묵인하는 것은 아닐까.
 
손바닥 뒤집듯 이토록 쉬운 나 자신이 한심했다. 현지 사람들을 불신하고 폄훼하는 Y 선교사의 태도를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잃어버린 노트 한 권에 내 속에 도사린 똑같은 마음이 보란 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복잡하게 뒤엉킨 심사를 어쩌지 못하며 고개를 돌린 창밖으로 나지막한 산이 끝도 없이 넓게 펼쳐졌다.

에티오피아 남부로부터 이어지는 이 지역은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이라 불리는 광대한 열대 우림, 가장 오래된 인간의 화석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최초의 삶을 시작한 그 시절의 인간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은 이곳에서 처음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는데, 지금 이 곳의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걷고 있는 걸까. 꼬불꼬불한 산길, 가벼운 멀미에 눈을 감았다.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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