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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사의 슈퍼스타, 아비
<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2. 아와사(Awassa) 

 
애비(Abby)와 장(Jang)-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졸업, 취직, 결혼 등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테두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되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자, 연애시절 얘기했습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아비(Abie)를 찾아서
 
▲ 아프리카 여행 중 애비(Abby)의 모습.     © Abby
 
이른 아침부터 꼬박 일곱 시간이 걸려 아와사(Awassa)에 도착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해 남쪽의 케냐 국경 도시인 모얄레로 가는 길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딜라(Dila)를 거쳐 모얄레로 가는 1박2일 버스가 가장 편한 방법이었지만, 이름나게 아름답다는 아와사의 호숫가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다른 경로를 택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장은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들뜬 얼굴로 ‘아비(Abie)’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말했다. 기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우리를 흘낏 보더니 자리를 떴다. 너무 난데없는 소리였나. 그러나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타데스는 “내 친구 아비는 유명한 연예인이라 아와사 어디서 물어도 그를 알 것”이라 짐짓 뿌듯한 표정까지 지으며 말했었다. 아마 우리가 너무 들이덤볐나 보다. 입장을 바꿔 서울 한복판에서 “성시경 만나러 왔어요” 하면 누구나 뚱딴지로 생각할 테니.
 
장이 휴대폰을 빌려 아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 라디오 녹음 중이니 삼십분 뒤 OO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자신이 잘 아는 호텔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 그 사이에 숙소를 잡겠다 하니, 자신이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며 만류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멋진 사람이었다.
 
- 헤이 친구, 웰컴 투 에티오피아! 어디 가?
 
길에 내려놓았던 배낭을 메기가 무섭게, 모델처럼 늘씬하게 리바이스(LEVI’s) 청바지를 빼 입은 한 젊은이가 따라붙었다. 건성으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지나치려는 외국인을 그가 놓칠 리 없다. 내가 도와줄게. 노 프라블럼, 에티오피아에 왔으니 에티오피아 사람을 믿어야지. 난 아와사 출신이야.
 
- 고마워, 그런데, 내버려 둬.
 
발을 멈추고 장이 정색을 했다. 그러나 리바이스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좋아, 무슨 호텔이랬지? 어차피 나도 그 쪽으로 가는 길이야. 신경 쓰지 마, 당신들 갈 길 가. 그런데 어디서 왔어? 중국? 일본? 아아, 꼬레?
 
대꾸하지 않고 걸었다. 길이 복잡하지는 않았으나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은 호텔이라 몇 번 멈춰 길을 물어야 했다. 그 때마다 리바이스가 요란하게 가로막았다. 그럴 거 없어, 내가 알아 내가 안다구!
 
어느 모퉁이를 돌아 호텔에 도착했다. ‘아비’를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는 말에 리셉셔니스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으흠, 그럴 리가… 아하, 아비라는 이름이 흔한 것이로구나! 다시 ‘가수, 아비’라고 고쳐 말했다. 이번엔 그런 사람 모른다는 또렷한 답이 돌아왔다.
 
장과 얼굴을 마주보았다. 스물스물 의심이 올라왔다. 우리, 속았나. 장이 말했다. 혹시 그가 밤무대의 제왕이라 어둠의 세계에서 유명한 거 아닐까. 내가 답했다. 우리는 누구를 찾는 걸까. 그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러나 약속은 약속,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만나보는 수밖에. 에라, 배낭을 내려놓고 털퍽 주저앉았다. 리셉션과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리바이스가 여기 맞지? 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돈!
 
장이 기가 찬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리바이스는 말귀 어두운 아이를 대하듯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 내가 여기까지 당신들과 동행해 줬잖아. 같이 오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고 또 내가 길을 확인해 줬고 그러니까…
 
       닥치고 저.리.꺼.져!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은 나였다. 두 남자가 모두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같이 와 달랬어? 너희는 정말이지 사람을 가만히 두질 않아! 이런, 빌어먹을! 뭐가 문제야? 돈이 필요해? 경찰서로 같이 갈래?! 리바이스는 몸까지 바들바들 떨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동양인 여자에게 기가 질렸는지 경찰서가 무서웠는지 캄 다운, 잇츠 오케이, 노 프라블람, 하며 뒷걸음질을 치더니 곧 사라졌다. 지나던 남자들이 낄낄대며 휘파람을 불었다. 잘 쫓았다는 뜻일까, 그래봐야 너희는 우리 밥이라는 뜻일까.
 
그 때였다. 저 앞에 30년 전 아빠의 애마였던 ‘포니’가 생각나는 낡디 낡은 세단 한 대가 섰다.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슬로우모션 같았다. 눈이 부시게 멋졌기 때문이기보다는 눈이 부시게 멋지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몸짓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의 등장 
 
▲ 장(왼쪽)과 아비(오른쪽)     © Abby
 
차 밖으로 먼저 보인 흰 구두, 곧 이어 드러난 통 넓은 흰 바지와 그 위에 받쳐 입은 하이얀 셔츠 깃은 파란 하늘로 나빌레라. 그 위엔 광택 나는 에메랄드빛 점퍼를 걸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전체적으로는, 기역니은 춤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옛 가수가 떠오르는 왜소한 체구의 사내였다.
 
- Hey bro!
 
얼굴을 반은 가린 커다란 레이방을 벗어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우리를 발견하곤 씨익 웃으며 손목을 높이 든 채 다가왔다. 정확히는 손목을 높이 치켜들고 손은 툭 떨군 기묘한 자세였다. 그는 그 손을 푸르르르 털더니, 내리꽂는 자신의 손을 받으라는 듯 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장이 손을 마주잡자, 이번엔 그러쥔 손을 당겨 자신의 오른쪽 어깨로 장의 오른쪽 어깨를 박력 있게 부딪혔다. 수컷들의 인사로구나. 아아, 이 순간은 여행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첫인상으로 남으리라. 어디로 끌려가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은 이내, 내가 부적절한 순간에 웃음을 터뜨리는 무례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뀌었다.
 
- 반가워요, 오래 기다렸죠? 내가 몹시 바빠요. 나는 뮤지션이에요. 내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음반도 만들어요. 아, 지금 나오는 노래 들려요? 내가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예요. 재능 있는 밴드죠. 또… 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요.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고, 프로그램 진행도 맡고 있어요. 아, 아와사 홍보 대사처럼 일하기도 해요. 타데스가 두 사람처럼 아와사로 오는 손님을 부탁할 때도 있고요.
 
차에 오르자 아비가 자신을 소개했다. 땅거미가 질 시간이 가까운 늦은 오후였으므로, 서둘러 숙소에 짐을 먼저 부린 후 호숫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곧 ‘오늘 안에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아비의 차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수퍼스타는 십 미터에 한 번씩 서서 인사를 나눴다.
 
다만 사람들이 아비를 잡는 게 아니라 아비가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는 게 문제였다. 세 번에 한 번은 차에서 내려 ‘손목을 치켜들고, 손을 내리꽂고, 어깨를 부딪치는’ 사내들의 인사를 반복했다. 그러다 미처 다 닫히지 않은 차문이 누군가의 왼쪽 어깨를 박력 있게 받은 아비의 오른쪽 어깨를 쳤을 때, 그리하여 영웅본색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기 직전 두 발의 총을 어깨에 맞은 주윤발처럼 그가 휘청했을 때, 입에 머금은 물을 뿜을 뻔한 나를 막으며 장이 운전석에 앉는 아비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만난 리바이스의 이야기였다. 아비가 답했다.
 
- 참 문제예요, 그렇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닐 거예요. 다만 일이 없고, 돈이 없어서… 알다시피, 나는 아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예요. 기사도 쓰고, 노래도 하고, 방송도 하면서 젊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어요. 일자리도 많이 만들 거예요. 상황은 점차 나아질 거라 믿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그의 영향력을 아와사 사람들도 아는 걸까 하는 짓궂은 생각을 누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구호나 원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로 여행객으로 에티오피아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더 많이 가진 강한 나라들과 오랜 시간 불균형하게 맺어온 관계가 외국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유 없는 반감과 분노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도 했다. 아마 직접 지나온 자신의 그 시절로부터 나온 말이리라.
 
한편, 그 날은 에티오피아의 명절이었다. 휴일을 맞아 휴양지를 찾은 사람들로 대부분의 호텔이 만실이었다. 호텔들은 좀처럼 아비의 체면을 세워 주지 못했다. 세 번째 흥정에 실패하고 네 번째 호텔로 옮기는 길에서였다. 라디오에서 때마침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가 흘러나왔다. 아비는 핸들에 얹은 손가락을 두드리며 조금씩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다. 가창력을 뽐내기에 그만한 노래도 없었다. 곡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가슴 두근대는 두 마디가 지났다.
 
앤때너히이로컴스을러어… 소울 넘치게 지른 그의 소리가, 그만, 석 달 열흘 독수공방한 소울처럼 갈라졌다. 그 다음은 가사를 몰랐다. 나는 손이 하얘지도록 문을 꼭 잡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무너지는 둑을 막는 심정으로 봇물 같은 웃음을 막아섰다. 보고픈 태국 소수 부족 아이들을 떠올리고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했다. 진땀이 났다.
 
“에티오피아를 좋은 나라로 기억해 줘요” 
 
▲ 아와사의 버스정류장     © Abby
 
우여곡절 끝에 방을 얻고 짐을 던졌으나, 아름다운 호수에 마음을 녹이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아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모얄레로 가는 버스 스케줄을 확인하고 티켓을 확보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매표소도 승강장도 따로 없고 먼지와 사람과 차가 한데 뒤엉킨 버스 터미널에 들어섰다. 아비가 이 사람 저 사람 관계자인 듯한 이들을 찾아 물었다. 그리고 날벼락같은 소식을 전했다.
 
모얄레 행 버스가, 없다!
 
아디스의 타데스가 확인해 주었다고 하자, 아비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모얄레로 가는 버스가 없고, 딜라로 가야 한다는 게 터미널 사람들의 답이었다. 더욱이 딜라에서 모얄레로 가는 버스는 내일 아침, 그 차를 놓치면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낭패다. 십 분 전에 숙박비를 다 지불했는데, 이십분 뒤 딜라로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는 이미 승객과 짐을 싣는 데 한창이었다. 아비는 기사에게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신신당부를 했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배낭을 다시 차에 싣는 마음이 무거웠다. 역시 사람은 집중을 해야 한다. 나이로비까지는 육로로 부지런히 이동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해 놓고 호수에 휴양지에 한 눈을 파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무엇보다 아비에게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가 짐을 꺼내는 사이 호텔 매니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숙박료를 환불받아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한 번 낸 돈을 그대로 되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비는 딜라에 가서 자려면 이 돈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눈을 찡긋했다.
 
       장, 애비.
 
터미널로 가는 길, 아비가 백미러로 흘끗 뒤를 보며 말했다.
 
       잠깐이지만 당신 부부를 만나 즐거웠어요.
 
장이 답했다.
 
- 저희도 알게 되어 기뻐요, 아비. 정말 고맙고 미안합니다. 바쁘신데.
 
       오, 천만에요. 그런데 애비는 왜 그렇게 심각해요? 그러지 말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생각하는 대로 되기 마련이에요(you will get what you think.).
 
그는 바로 딜라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우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곳에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아디스에서처럼 이번에도 만류했으나, 타데스처럼 그도 고개를 저었다.
 
       딜라에도 리바이스 같은 녀석들은 있어요. 지금 출발하면 늦은 밤에 도착할 텐데…나는 장과 애비가 안전하게 우리나라를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에티오피아를 좋은 나라로 기억해 줘요.
 
다시 버스터미널로 들어서니, 낡고 작은 봉고가 시동을 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비의 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봉고 옆에 섰다. 굴러다니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이 낡은 차가 갑자기 고급 세단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와사의 자칭 수퍼스타 아비가 그 희극적인 풍모 사이로 보여준 진심어린 환대와 깊은 생각의 폭이 스타 못지않았듯이 말이다. 인상 깊은 그와의 짧은 만남만으로도 아와사에서의 시간이 헛걸음은 아니었으리라.
 
여행자의 행운을 빌어주는 그의 포옹을 받으며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우리를 재촉하듯 부릉대는 작고 낡은 봉고에 구겨지듯 몸을 실었다. 지붕 위에 단단히 묶인 짐들에 우리 배낭을 얹으니, 차 높이가 두 배가 됐다. 부연 먼지 속에서 멀어지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하면 된다’ 류의 긍정의 힘을 긍정하지 않는 우리 가슴에 어느 새 남은 그의 말을 곱씹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얻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져야겠다. 어제오늘의 여행이 당장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더 큰 계획안에서 우리는 제 길 위에 있으니까.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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