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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5. 총게노 고아원의 아이들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졸업, 취직, 결혼 등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테두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되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자, 연애시절 얘기했습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효율보다 중요한 것 

▲ 케냐 서부 총게노 고아원 풍경  ©Abby 
 
부드러운 금빛 햇살이 잔디와 잡초가 사이좋게 함께 누운 마당을 골고루 쓰다듬는 늦은 오후, 하루 일정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인 총게노 고아원에 도착했다. 방 안에 가방을 던지자 맥이 탁 풀렸다. 사흘째 우리는 한국의 일대일 결연 후원자들에게 보낼 프로필 작성을 위해 케냐 서쪽 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진행 중이었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체로 숫기 없는 아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마주 앉아, 질문을 주고 대답을 받는 데는 인내가 필요했다. 취미, 특기, 꿈 등의 질문이 당혹스러워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했다. 영어를 못 하는 아이들의 경우 고아원 마마(mama)의 통역도 필요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스무살이 아이를 카메라 앞으로 데려가고, 장이 사진을 찍었다.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겠는지 물으면 열의 아홉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풀게 하기까지는 다시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사진을 찍는 동안 다시 마마에게 아이의 성격과 생활 모습 등에 대해 좀 더 질문했다.
 
어쩌면 일을 너무 어렵게 진행하는지도 몰랐다. Y 선교사의 말대로 표를 펼쳐 놓고 대충 고아원 마마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 넣으면, 사진을 찍겠냐 말겠냐 물을 것 없이 서라고 명령하면, 아이들 마흔 명을 취재하는 데 한나절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작은 아이들의 생각도 제한적이라, 취미와 특기로 주로 꼽히는 축구와 노래, 꿈으로 꼽히는 운전사나 경찰관 등 몇 가지 대답 외에 시간을 들인다고 새롭게 발견되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어차피 결과가 같을 일이라면, 우리는 효율보다 아이들이 이 과정에서 받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오롯이 자신에게만 주의를 집중하며 이름을 부르고, 관심 갖고 이야기를 청하는 시간은 아이들의 일상에 좀처럼 없을 터였다. 또한 어떤 좋은 목적에 쓰인다 해도 자신의 얼굴을 사진 찍을지 말지 결정할 선택권은 네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매일의 현안에 치이는 마마들 역시, 질문에 답하는 몇 초간이라도 ‘아이들’ 속의 ’노엘라’와 ‘빅터’와 ‘기드온’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릴 수 있으리라.
 
여행은 ‘공감’을 배우는 학교
 
   근데 누나, 이상해. 꼭… 아이들을 상품처럼 팔아넘기는 것 같은 기분이야.
 
헐거운 틀 위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나무 침대에 벌렁 누운 스무살이 말했다.
 
   그랬어? 왜?
   모르겠어. 애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게 마음이 불편했고… 왠지 미안했어. 다른 방법은 없나?
 
장이 웃으며 스무살을 슥슥 쓰다듬었다. 열심히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뜻으로. 일대일 후원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이야기 나누던 끝에, 스무살이 아이들의 사진을 현상해 각자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생각이네! 하고 입을 모았다. 사진을 찍히는 데 익숙할 아이들이 정작 제 사진을 가질 기회는 많지 않을 테니까.
 
스무살과의 여행 들머리에 NGO 방문을 계획한 것은 여행 내내 스쳐갈 ‘사람’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아프리카엔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가 있고 거기 사는 사자와 기린도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와는 아주 다른 모양으로 이어져온 삶이 있더라는 사실도 기억에 남았으면 했다. 끔찍한 기근과 재앙의 소식들이 좀 더 리얼한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인 듯 소비되고 마는 차가운 시대, 엄마의 후원자용 카드에서만 ‘구경’하던 어떤 아이들과 사람으로서 ‘교감’한 시간이 이십대의 의미 있는 시작이었으면 했다.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사느냐는 자신 밖의 얼마나 많은 존재와 공감하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공감의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 여행은 아주 훌륭한 학교다.

 ▲ 맨발로 한바탕 뛰고 난 스무살과 아이들     ©Abby  
  
아이들이 밖에서 나오라고 아우성을 쳤다. 첫 날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은 마음을 열자 먼저 장과 나의 긴 머리를 케냐 스타일로 촘촘히 땄다. 건네받은 축구공에 신이 나 남자아이 여자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드록바(2009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수상한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축구선수)가 된 듯이 마당을 누볐다. 스무살의 손을 잡고 밑도 끝도 없이 다함께 괴성을 지르며 마당을 몇 바퀴나 달렸다. 우월한 신체에 밤낮 뛰는 게 일상인 케냐 아이들의 체력을 열등한 한국 수험생의 체력이 당해낼 리 만무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주저앉은 스무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항복했다.
 
- 형, 살려 줘요, 얘네, 왜, 이렇게, 뛰는 거예요? 아, 기분은, 좋아요. 근데, 더는, 못 뛰어!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에워싸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질문을 했다. 상대가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임을 감안해 마음 한 조각쯤 서랍에 숨겨 두는 처세는 아이들의 세계에 없었다. 오히려 아는 게 병이라 미안한 마음에, 상처 줄까 두려워, 배려한답시고, 갖가지 이유로 머뭇대는 것은 우리들 쪽이었다. 얼른 마음을 고쳐먹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짧다면, 더욱 사력을 다해 우리를 활짝 여는 것만이 아이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되리라.
 
갑작스레 당겨진 일정  

▲ 열 다섯명 여자 아이들의 생활 공간     © Abby
 
둘째 날, 잠자리를 아이들 방으로 옮겼다. 흙바닥에 다 떨어진 스펀지 매트리스를 깔고 두셋씩 겹쳐 자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누웠다. 벼룩과 벌레들이 옮겨 붙었으나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벼룩이 가장 좋아하는 육질인 장은 종일 가려움에 시달렸으나, 다음날 역시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잤다. 그리고 내일은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밀크티가 아침의 전부인 아이들을 뒤로 하고 마주하는 도넛 접시가, 우갈리(옥수수 가루를 뜨거운 물에 개어 만든 케냐 사람들의 주식)에 야채 스튜를 먹는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쌀밥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하루쯤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싶다고 Y 선교사에게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며, 뜻밖에도 Y 선교사는 하루 일정을 앞당겨 다음날 나이로비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말을 잊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일주일로 예정했던 일정이 출발 전 갑자기 닷새로 줄어든 바 있었다. 너무 짧지 않냐는 디렉터의 말에, 그는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째서일까 하는 의구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늦둥이 아들의 전화로 곧 해소되었다. 동행도 있는 출장에 한 번쯤은 엄하게 타이를 만한데, 그는 매번 전화기를 붙잡고 쩔쩔 맸다. 방학인데 차도 없고 아빠도 없어 심심하다고 보채는 아이와 그 아이를 어쩌지 못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집중이 안 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짧아진 일정마저 다시 하루를 당겨 떠나자는 그의 얼굴엔 응당 보일만한 망설임이나 민망함이 없었다.
 
- 아이들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네요, 한 아이가 오더니 오늘 가냐고,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어요.
 
이튿날 아침, Y 선교사가 막 세수를 마친 내게 다가오며 얘기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일찍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열네 살 소녀 유카벳을 달래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사과한 터였다. 아이는 그러면 자신이 미셔너리 Y에게 가서 부탁해도 되겠냐고 물었었다. 그러더니, 정말로 가서 물었구나. 그 말을 하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을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물었다. 예정대로 하루 더 있으면 어떨까요? 그가 말했다. 하루 더 있고 싶어요? 대답했다. 네, 선교사님 괜찮으시면 저희는 아이들과 하루 더 있고 싶은데요. 즉각 답이 날아왔다. 그러면 또 하루 더 있으라 할 걸요? 마음이 벌써 나이로비로 출발한 그는 바쁘다. 고아원 일은 자신의 영역이라 거듭 강조하고 지난 이년간 보름에 한 번씩은 찾아왔다 생색내면서도, 아이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묻는 사람이었다. 예정대로 하루만 더 함께 있어 주길 원하는 서른 명의 간절한 마음을 모두 더한들 어찌 쉰에 얻은 열 살배기 늦둥이 아들의 생떼에 비하랴.
 
“돈 고, 돈 고 투데이” 

▲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은 마음을 열자 먼저 장과 나의 긴 머리를 케냐 스타일로 촘촘히 땄다.  © Abby  
 
저 멀리 유카벳과 에다가 책가방을 맨 체 기다리다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유 돈 고 투데이? 그 눈을 마주볼 수 없어 꼭 안고 입을 떼지 못하자, 실망한 아이들이 나를 밀쳐냈다. 뒤돌아 뛰어가는 녀석들에게 “좋은 하루 보내!” 하고 소리치자,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은 안 보여주면서도 손을 흔든다. 차에 짐을 싣던 Y 선교사가 아이들을 붙잡아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허허 웃으며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아이들이 정이 깊이 들었나 봐. 울고 가네.
 
그런데 아무 느낌 없으세요? 오늘 꼭 가셔야겠어요? 하는 말을 목구멍 밑으로 꾹꾹 눌렀다. 말없이 방에 들어가 뻐근한 목울대를 달랬다. 저 노인네를 이해해야 한다.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어쨌든 그는 머물 사람이고 우리는 떠날 사람이니까. 치미는 분노를 쓸어담고 주섬주섬 남은 짐을 가방에 쓸어 담아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누군가 후다닥 건물 모퉁이로 숨는 것이 보였다. 곧 멈칫멈칫 모습을 드러낸 소녀들은 유카벳과 에다와 캐런이었다. 학교에 가다가 돌아오고 만 아이들이 머뭇대며 바짝 다가왔다. 애비, 하고 입을 뗀 유카벳이 용기를 냈다.
 
- 돈 고. 돈 고 투데이.
 
가슴이 턱 막혔다. 보드랍고 통통한 얼굴을 손으로 감싸자 아이도 나도 눈물이 터졌다. 숨을 크게 쉬고 턱 아래로 눈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후 입을 뗐다.
 
- 유카벳, 내가 말했지? 너는 정말 예뻐. 잊지 마. 내가 아는 소녀 중 가장 예뻐.
 
눈이 빨개진 유카벳이 콧구멍을 벌름대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녀석, 이미 대답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 유카벳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 미안하다. 오늘 가야 한대. 정말 미안하다. 아가, 정말 미안해.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제 얼굴에서 떼어 낸 내 손을 꾸욱 잡더니 뒤돌아 달려갔다. 마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의 술래처럼, 허물어진 저 쪽 벽에 기댄 팔에 얼굴을 묻고 으허엉 서럽게 울었다. 재미있는 놀이인 듯 달려가 저 얼굴 앞에 짠 하고 서면 좋을 텐데, 엉엉 우는 소리에 붙박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에다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웃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댓츠오케이, 애비. 해버나이스데이. 돈 워리. 땡큐 포 커밍 투 어스. 댓츠오케이. 캐런도 눈물을 뚝뚝 떨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들만도 못한 나는 웃는 척도 하지 못했다.
 
그리움과 미안함을 담은 기도  

▲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바쁜 다섯 살 아비, 임마누엘, 룻    ©Abby 
 
언니 오빠가 모두 떠난 집에, 늦게 학교에 가는 다섯 살 룻과 아비가 남았다. 이른 아침, 잠이 깨 부스스 눈 비비는 두 녀석들 위에 엎드려 부르르 간지럼을 태웠었다. 꺄아아 소리 지르며 아기들이 담요 안으로 숨었다. 닷새 만에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았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재롱을 부리면, 간신히 어른 같은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다가가 꼭 껴안으면 당황스런 눈을 하고 목석처럼 서 있었다. 그러던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괴물 흉내를 내며 스물스물 팔을 담요 안으로 넣자, 숨이 넘어가게 까르르 웃었다. 다섯 살답게.
 
   룻! 아비!
 
눈물 자국을 지우고 요란스레 아기들에게 껑충껑충 뛰어갔다. 작디작은 아이들은 아침이면 제 키보다 더 큰 낡은 가마니를 들어 그 속에 쑤셔박힌 헌 옷을 우르르 쏟았다. 그리고 그 중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골라 입었다. 사이즈가 맞는 것도, 솔기가 멀쩡한 것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룻이 골라 입은 셔츠의 어그러진 단추를 다시 잠그고, 아비의 뒤집어진 칼라 매무새를 만졌다. 그리고 팔을 내밀어 한 발짝 다가온 룻을 안았다. 그런데,
 
룻이, 내 목을 마주 안았다. 아주 꼬옥.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내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서둘러 아이들을 무릎에 앉혔다. 태연히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손을 통통 튕기면서, 작은 등에 닿은 내 가슴의 동요를 아이가 느끼지 못하도록 사이를 뗐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왔을 때 이미 사라지고 없을 우리들의 빈자리가 크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이튿날, 여섯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기억은 몸에도 스미는 법, 아이들이 일어나 얼굴을 만지작대던 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깨끗한 방이 낯설었다. 다 떨어진 더러운 스펀지 위에 주르륵 누운 아이들이 옆에 없는 것도 허전했다. 그러나 ‘침입자’인 우리에게도 그리움을 곱씹을 자격이 있을까. 이렇게 또다시 사람들의 빈 가슴을 건드리고 떠나왔다는 생각이 들 때면, 여행자는 본질적으로 침입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들어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언제나 불던 바람이 새삼 시리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다시 잠들 수가 없어 아이들 사진을 뒤적이며 프로필 자료 작성을 시작했다. 한 장의 파워포인트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한 아이 한 아이가 부디 한국의 누군가에게 가 닿을 때에도 ‘가난한 아프리카 애들’의 이야기로 소멸되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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