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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와 장의 아프리카 로드트립>6. 세렝게티 사파리투어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졸업, 취직, 결혼 등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테두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되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자, 연애시절 얘기했습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전사의 땅에 들어서다

▲ 한 순간, 창밖으로 매너리즘 화풍 속 인물처럼 유난히 큰 키에 작은 얼굴, 길고 가느다란 팔 다리를 한 사람이 스쳐갔다. 그들은 전사 ‘마사이’다.     © Abby 
 
길의 풍경을 바꾼 것은 사람이었다. 한 순간, 창밖으로 매너리즘 화풍 속 인물처럼 유난히 큰 키에 작은 얼굴, 길고 가느다란 팔 다리를 한 사람이 스쳐갔다. 강렬한 원색 천을 휘감은 몸의 마디마디엔 주렁주렁 여러 겹의 장신구를 걸쳤고, 허리춤엔 당장 뽑아 휘두를 수 있는 커다란 칼을 꽂았다. 몸처럼 가늘고 긴 지팡이를 휘적이며 걷는 그들은 전사 ‘마사이’다.
 
마치 다른 세계로 빨려들 듯,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한 사람, 다음엔 두 사람, 네 사람, 점점 더 많은 마사이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저 남자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대를 이어 살아 온 마사이의 땅이다.
 
그러나 2012년의 이곳은, 오래도록 이 땅을 누비며 대를 이어 온 주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케냐 남쪽과 탄자니아 북쪽’으로 일컬어진다. 그 한가운데 놓인 끝없이 너른 평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절부터 하나였을 텐데, 어느 순간 인간이 선을 긋더니 북쪽은 케냐의 ‘마사이 마라(Maasai Mara, 마사이의 마을)’, 남쪽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Serengeti, 초원의 바다)’로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그 중 세렝게티 평원을 여행하기 위해 나이로비로부터 케냐 남쪽을 지나 탄자니아의 아루샤(Arusha)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루샤는 세렝게티 사파리의 베이스캠프인 작은 시골 도시다. 강원도보다도 큰 세렝게티 초원 내에서는 개인이 운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아루샤의 여행사를 통한 사파리로만 여행이 가능하다.
 
우리끼리 가면 비용도 절약되고 훨씬 즐거울 텐데, 하고 내가 투덜대자, 장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세렝게티 한가운데서 차가 퍼져서 오도 가도 못할 걸” 하고 응수했다. 스무살은 한 술 더 떠 “그러다 사자밥이 되거나 코끼리의 습격을 받는 거지. 누나, 안녕.” 하고 언구럭을 떨었다. 알았지? 뭘 하지 말라는 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하고 짐짓 철없는 누나를 타이르며.
 
달갑지 않던 호의가 절실함으로 

▲ '초원의 바다' 세렝게티는 마사이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땅이다.     © Abby 

우리가 선택한 사파리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사파리 전용 사륜구동 지프에 먹고 잘 짐을 모두 싣고 세렝게티 초입의 거대한 분화구 응고롱고로(Ngorongoro)에서 하루, 세렝게티 초원 한가운데서 하루를 머물며 몇 차례의 게임 드라이브(차로 초원을 누비며 동물을 찾는 것)를 한다. 운전사와 요리사가 동행해 먹고 자고 움직이는 데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다고는 했지만, 이른 아침 눈 떠서부터 종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데다 야전 텐트에서 잠을 자게 되니 무엇보다 컨디션이 관건이다.
 
문제는 스무살이었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직후부터 녀석은 열이 났다. 케냐에서의 일정 내내 먹은 항생제와 해열제 덕에 좀 나아지는가 싶었건만, 아루샤까지 장시간 차를 타고 탈이 났는지 도착 후 한 눈에도 귓불이 벌겋게 익은 녀석이 몹시 추워하며 겹겹이 껴입은 긴팔 옷을 벗지 못했다. 사파리 출발 시간인 이튿날 아침까지도 상태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사파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여행사의 P 사장님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걱정하지 말고 어젯밤 스무살을 진료해 주신 한국인 의사 바바 장(Baba Jang)의 의견을 물은 후 결정하자며, 차에 탄 스무살에게 이것저것 증상을 물었다.
 
초음파기까지 동원된 진찰 후, 해열제를 충분히 가지고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한국에서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열이 있었으니 시간 상 말라리아일 리는 없고, 열이 내리지 않는 경우 의심되는 장기의 염증도 없이 뱃속이 깨끗한 상태라 아마도 열감기일 거라는 의견이었다. 한국의 가족들은 상상할 수 없을 아프리카 여행의 몰골로 매형의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도 “괜찮다”고 우기던 녀석에겐 희소식이었다. P 사장님은 입시를 치르느라 피곤하고 긴장했던 게 이제 풀리는 것이라며 스무살을 위로했다. 아프던 사람들도 세렝게티에 도착해 좋은 기운을 받고 나면 몸도 마음도 다 낫더라는 덕담도 함께.
 
- 이럴 줄 알고 L 선교사님이 잔말 말고 도움 받으라고 하신 거였나 보다. 그치?
 
속삭이는 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같은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던 차였다.
 
나이로비의 젊은 부부 스태프가 비자 문제로 아루샤에 다녀와야 한다던 날짜가 우리와 맞아, 우리의 교통편 예약을 함께 부탁했었다. 그런데 디렉터인 L 선교사님은 그것으로 못 미더우셨던지 아루샤의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도착한 날의 잠자리, 사파리 예약까지를 부탁하고 거듭 확인하셨다. 감사하긴 했으나 난감한 일이었다. 선배의 부탁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그 젊은 목사를 번거롭게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채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의 사파리를 이용하게 되는 것도 불편했다. 해외에서 운영하는 한국인 여행사는 단지 한국말이 통한다는 이유 하나로 비싸기만 하고 서비스는 나을 게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P 사장님은 잠시의 대화만으로도 그런 편견을 머쓱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어디 P 사장님뿐이랴. 우리끼리 아루샤에 떨어졌다면 기꺼이 하룻밤 잠자리를 내준 것으로 모자라 응급 사태에 대비해 휴대폰을 빌려 준 젊은 목사 우모자와 아내 파모자 부부, 세심하게 진찰하고 처방해 주신 바바 장과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주신 사모님을 만났을 리가 없다. L 선교사님 덕에 얻은 아루샤에서의 만남과 돌봄 하나하나가, 스무살이 아픈 지금의 우리에게 매 순간 정확하고 절실하게 필요했다.
 
사파리 투어를 떠나다 

▲ 우리가 탄 사파리 차량 주변을 맴돌던 대머리 황새들     © Abby 
 
여행사 사무실에 도착해 차에 실린 물품을 점검한 후 드디어 여행길에 나섰다. 이박 삼 일간 우리를 책임져 줄 운전사 이마(Immanuel)와 요리사 프레디(Freddie), 그리고 제대 후 아프리카를 여행 중이라는 한국인 여행객 H 와 우리 셋까지 일행은 모두 여섯이다.
 
한참을 달려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풀밭에 멈춰 섰다. 나무 둥치를 잘라 둘러앉을 공간을 이 곳 저 곳 만든 피크닉 공간에는 이미 우리 같은 몇몇 사파리 차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자리를 잡은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땅에서는 못생긴 대머리 황새들이 주변을 맴돌았다. 듬성듬성한 털이 채 가리지 못한 붉은 대가리, 하이칼라처럼 목을 감싼 깃털, 어깨에 망토처럼 두른 검은 날갯죽지가 어쩐지 음흉하고 탐욕스런 속내를 숨기고 고고한 척하는 중세 유럽의 귀족처럼 생겼다. 키가 백오십 센티나 되는 녀석들은 소리 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며 긴 다리를 들어 올리다가도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면 그대로 멈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네들의 눈이 닿는 높은 하늘에서는 독수리들이 맴을 돌았다. <동물의 왕국>다운 풍경이다.
 
런치 박스를 열자 커다란 만다지(튀긴 도넛)와 주스, 닭다리, 샌드위치, 과일 등이 푸짐한 모습을 드러냈다. 감탄하는 우리에게, 이마가 프레디는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했다고 추켜세웠다. 이마도 관광을 공부했다. 이마는 십 년째, 프레디는 삼 년째 여행사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탄자니아를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 두 사람 모두 사파리 외에 다른 일을 하나 더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어림짐작으로도 우리가 낸 돈에서 비싼 외국인 국립공원 입장료를 제하고, 식재료, 기름 값, 여행사 운영비 등을 제하면 이마와 프레디가 사흘간 밤낮으로 일하고 받는 돈이 얼마 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관광객이 일정 끝에 내는 팁이 그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 촤아아아아악!
 
그 때였다. 거친 바람 한 줄기가 앞머리를 펄럭이며 눈앞을 지나갔다. 사태를 파악하는 데 일 초가 걸렸다. 닭다리를 들고 이야기하던 장의 포즈는 그대로인데 손가락 사이가 비었다. 독수리의 습격이었다. 아픈 스무살까지, 모두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들은 독수리라는 것만 겨우 알아본 높은 하늘에서 정확히 닭다리를 식별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행동을 개시하다니, 역시 아프리카의 동물이다. ‘매의 눈’이라던가 ‘독수리처럼 날렵하게’라는 말을 이렇게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줄이야!
 
다시 열이 오른 ‘스무살’ 

▲ 음식을 놓고 관광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바분 원숭이     © Abby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에 도착하자, 이번엔 음식을 놓고 바분 원숭이와 실랑이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마도 등록 절차를 밟기 위해 사무실에 가면서, 바분에게 음식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러나 우리 차에 접근한 바분들의 원초적 관심은 음식보다는 기이한 포즈를 하고 있는 인간 둘에게 쏠렸다. 길게 누운 스무살과, 열을 체크하는 나다.
 
38.7도. 불행히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오한도 그대로였다. 결국 스무살과 나는 게임 드라이브를 포기하고 캠핑장에 남았다. 그 사이 체온은 40도에 가까워졌다. 조여드는 가슴으로 바바 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알리고 조언을 청하니, 일단 얼음을 구해 몸을 마사지하라고 했다. 아루샤의 P 사장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여차하면 돌아가야 했다. 녀석은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돌아갈 정도 아니라며 괜찮다며 통화하는 내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얼음을 구하기 위해 공용 부엌으로 달려갔다. 각기 자신들의 게스트를 위해 요리 중인 수십 명의 요리사들 사이로 왁자지껄한 수다와 웃음이 터졌다. 프레디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처음 눈이 마주친 남자에게 ‘나는 프레디와 왔는데 일행이 아파 얼음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가 두 말 않고 커다란 식칼로 1.5리터 페트병에 꽝꽝 얼린 얼음을 두 동강 내어 한 덩이를 건네주었다.
 
텐트로 돌아오자, 스무살이 그 새 까부라져 잠들어 있었다. 엄살이라곤 없어 어릴 때부터 ‘이 녀석이 아프다고 하면 그건 정말 많이 아픈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지금 이 녀석이 얼마나 아픈 걸까. 아프리카에선 열이 제일 무서운 법인데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이 녀석을 여기까지 끌고 와 무슨 고생을 시키는 걸까. 잘못되면 어쩌나. 울컥울컥, 쓸데없이 끼어드는 마음을 밀어내듯 얼음을 감싼 수건으로 스무살의 등을 문질렀다.
 
얼음이 손가락만해졌을 즈음, 어느 새 게임 드라이브에서 돌아온 장이 텐트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채비를 하라고 했다.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P 사장님이었다. 밤길을 달려 아루샤로 돌아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 이마에게 일러두었으니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아침에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사가 퇴근하면 어쩌나 조바심치며 서둘러 스무살을 차에 태웠다. 함께 가겠다는 장에게, 그보단 남아서 H 와 저녁 식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두가 스무살의 상태에 신경을 쓰는 하루 종일, 그저 동행이 잘못 걸린 H의 여행이 우리 때문에 이미 망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행이 아프면, 여행은 고행이 된다.
 
가로등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어두운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평범한 유목민의 오두막이 몇 채 옹기종기 모인 듯 보이는 건물이 병원이라고 했다. 간판도 아무런 표식도 없는 병원이다. 막상 병원 앞에 당도하자 우리보다 먼저 병원 앞에 진을 친 손님들이 보였다. 이마가 조용히 시동과 라이트를 껐다.
 
촌스럽게 정확한 5대5 가르마를 탄 커다란 뿔의 스타일이 모두 똑같은, 수십 마리의 버팔로 떼였다. 스무살도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었다. 오 마이 갓. 조용히 지나가 주렴. 우리는 여러분을 해칠 마음이 없단다. 제발.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스무살이 이마에게 물었다. "이마, 버팔로가 흥분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마가 대답했다. 우리 차 같은 건 가볍게 뒤집겠지. 카메라를 놓고 온 게 다행이었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번쩍, 하는 플래시에 버팔로가 놀라고, 그 다음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세렝게티의 의사
 
병원에 들어섰다. 접수실을 지나 양쪽으로 병실인 듯한 공간에 놓인 간이침대에 사람들이 주욱 누워있는 풍경은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옆에 앉아 환자를 돌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다만 침대 옆엔 링거 거치대 뿐 아니라 지팡이도 기대져 있다는 점, 환자도 보호자도 마사이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근방의 마사이 사람들을 주로 진료하는 병원이었다.
 
영화배우 에디 머피처럼 생긴 의사가 진료실에서 우리를 맞았다. 그는 말도 에디 머피만큼이나 많고 빨라 그 간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표현을 하던 스무살을 순식간에 벙어리에 귀머거리로 만들었다. 일단 검사를 위해 대변을 받아오라는 말에 경황없이 스무살을 데리고 나가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그런 나를 멈춘 것은 스무살이었다. 누나, 기다려 봐. 이 검사를 왜 하는 거야? 열나고 아픈데 대변 검사를 해? 이상하지 않아? 물어 봐 왜 하는지.
 
아니나 다를까, 스무살의 말을 에디 머피에게 전하자 그가 말했다.
 
- 아, 그럼 하지 말까? 그냥 하는 게 좋으니까 그랬어. 좋아, 그럼 피검사만 하자고. 말라리아인지만 보는 거야.
 
실소가 나왔다. 이 사람은 정말 의사가 맞을까. 내 동생의 피를 뽑게 둬도 될까. 그런 생각을 읽은 듯 에디 머피가 덧붙였다.
 
- 참, 주사기는 걱정하지 마 가끔 관광객들도 오기 때문에 철저하게 일회용을 써. 지금 검사 담당 의사가 오고 있어, 아, 검사 담당 의사는 말야,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거야, 내가 불러서 당신들 때문에 다시 오는 거라고. 그러니까 진료가 끝나면 나를 데려다 줘야 돼. 응? 버팔로가 있으면 위험해, 아주 위험하단 말이야. 당신들 운전사를 시켜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줘.
 
그의 만담은 병원에 머무는 내내 끝이 없었다. 다행히 말라리아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매일 먹는 말라리아 치료제 한 팩과 다른 종류의 해열제를 주는 에디 머피에게 치료비를 묻자 그가 두 손을 꼭 맞잡고 속사포처럼 말했다.
 
- 생각해 봐. 내가 백 달러를 달라고 하면, 당신을 고문하자는 것밖에 더 되겠어? 그러고 싶지 않다구. 얼마야? 내가 당신에게 해 준 게 얼마큼의 가치가 있어? 생각해 보고 치료비를 주면 돼. 정해진 가격은 없어. 마음이야. 마음이 중요한 거야.
 
잠시 생각한 후 3만 실링(약 20달러)을 건넸다. 그가 열 번쯤 땡큐를 반복하는 걸 보니 충분한 사례가 된 것 같았다.
 
- 누나,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저 사람 때문에 열이 도망간 것 같아.
 
병원을 나서며 스무살이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결국 아무런 치료 행위 없이 병원 문짝을 들락였을 뿐인데 열이 삼십팔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럼 됐다. 아무려면 어떠랴, 열만 떨어진다면 밤새라도 명의(名醫) 에디 머피 만담을 경청할 판인데.
 
열병은 지나가고 

▲ 세렝게티의 좋은 기운이 우리에게 스미기를.     © Abby 

캠프로 돌아가는 길, 이마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예요? 하고 앞을 보니, 태어나 처음 보는 커다란 엉덩이 하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코끼리다! 이번엔 스무살이 앞으로 몸을 빼며 관심을 보였다. 저 녀석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자극하면 큰일 나요. 이마가 라이트를 끄며 말했다. 코끼리가 펄러억펄러억 귀를 움직이며 천천히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모양을 지켜보며, 나는 주책없게도 이 상황이 몹시 즐거워 견딜 수가 없어졌다. 일몰 후와 일출 전에 엄격히 금지된 게임 드라이브가, 지금 우리에게만 주어진 게 아닌가! 밤의 초원에선 이런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 스무살, 이건 너를 위한 나이트 사파리 특집이야! 게임 드라이브 못 갔어도 빅 파이브(버팔로, 사자, 코뿔소, 코끼리, 표범)를 두 개나 봤잖아. 형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동물 못 봤을 걸?
 
녀석이 피식피식 웃으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캠프로 돌아왔다. 촘촘히 박힌 별들만 반짝일 뿐, 텐트의 모든 사람이 잠들었을만한 깊은 밤이었다. 그러나 프렌들리한 우리의 요리사 프레디는 늦게 돌아올 우리를 위해, 테이블 위의 초를 끄지 않고 밝혀 두었다. 점심과는 달리 조금이나마 음식을 넘기는 스무살을 보니, 열병이 거의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긴 하루가 지났다. 오늘 놓친 평원을 내일 더욱 만끽할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푹 자도록 스무살의 침낭을 꽁꽁 여미고 담요를 다시 덮었다. P 사장님의 말대로 세렝게티의 좋은 기운이 우리에게 스미기를!   (A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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