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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13. 짐바브웨 제2의 도시, 불라와요(Bulawayo) 
 
객실 창문 너머로부터 스미는 먼동의 빛살에 잠이 깼다. 매일 뜨고 지는 해가 이곳에선 매일 새롭다. 놓치기가 아까운 그 햇살이 인식될 때면 늘 몸을 펴고 해바라기를 하게 된다. 창 밖 저 멀리서 해가 오르나 싶더니, 십 분도 되지 않아 붉었던 지평선 부근의 빛이 노랗게 퍼져 올랐다.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된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아침 해가 솟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햇살은 붉고 부드러운 저녁노을과는 다른 정취를 자아냈다. 정말 ‘신선한’ 빛, 간밤의 긴 어둠을 지나온 만물을 신선하게 깨우는 그런 빛이었다. 하루도 소소한 사건 없이 지나가지 않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대지가 밤으로부터 깨어나는 아침을 맞이하노라면, 여행자에게도 다시금 신선한 하루만큼의 의욕이 충전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침을 즐기기에 기차의 객실은 더없이 행복한 곳이었다. 어쩌면 기차는 아프리카에서 새벽녘에 눈을 뜨고 바깥을 즐겨도 되는,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인지도 모른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가 새겨진 짐바브웨 열차 

▲빅토리아 폭포에서 불라와요까지 이용한 로디지아 열차  ⓒAbby 
 
- 짐바브웨도 낯선데 불…. 뭐? 불러오라고?
 
스무살이 까불며 말했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중앙의 내륙국 짐바브웨(Zimbabwe), 짐바브웨 제2의 도시 불라와요(Bulawayo)로 향하는 길이었다.
 
짐바브웨는 유럽으로부터 비롯된 아프리카 수탈의 일면을 잘 보여 주는 나라다. 아시아 무역을 위해 설립했던 동인도 회사처럼, 영국은 아프리카에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남아프리카 회사’를 설립했다. 남아프리카 회사의 주역은 세실 로즈(Cecil Rhodes)라는 영국 출신의 사업가로, 그는 남아공 킴벌리 지역에서 시작해 남아프리카 지역의 광산을 사실상 독점했다. 그러던 19세기 말, 현재의 짐바브웨 지역을 지배하던 마타벨레 왕조가 로즈에게 광산 채굴권을 넘기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이방인의 이름을 딴 나라 ‘로디지아(Rhodesia)’가 탄생했다. 마타벨레 왕조의 기대와는 달리, 로디지아는 정착한 영국인들과의 갈등과 전쟁을 거쳐 식민지가 되었다.
 
로즈는 대단한 사업가이자 야심가였다. 그가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위업 중 하나는 아프리카 남서쪽 끝의 케이프타운부터 북동쪽의 카이로까지를 있는 ‘케이프-카이로 철도(Cape-Cairo Railway)’였다. 그는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더욱 많이 빠르게 유럽으로 옮기는 동시에, 아름다운 대영제국의 지배력을 아프리카 전역에서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는 앵글로색슨족만이 세계를 제패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열 자격이 있는 인종이라 믿는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위대한 과업은 미완으로 끝났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불어 닥친 대공황을 영국도 피해가지 못한 데다 2차 대전 후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아프리카 민족들의 반발이 거세져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러한 거대 프로젝트를 완료할 뒷심을 발휘할 수 없었다.
 
우리가 달리는 짐바브웨 철도는 바로 그 케이프-카이로 철도의 한 구간이다. 로디지아는 이미 저물었건만, 기차는 아직도 ‘로디지아 철도(Rhodesia Railways)’라는 이름을 열차 밖에 붙인 채 달리며 세월의 풍화를 고스란히 맞았다. 열차의 10달러짜리 일등석은 낡을 대로 낡아 침대의 속살이 찢어진 시트를 비집고 나온 채 승객을 태웠고, 보수된 일 없는 철로가 노인의 쇠기침 소리를 내며 간신히 미는 열차의 속도는 가이드북이 ‘달팽이가 더 빠르다’고 조소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에 쫓길 일 없는 우리에겐 좋은 여행이었다. 차마 ‘낡디낡은’ 화장실에 갈 수는 없었으나, ‘클래식한’ 빅토리아풍의 객실이나 복도의 모습에서 식민 시대의 풍경을 짐작해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짐바브웨 달러가 기념품이 된 사연 

▲ 쇠창살로 굳게 가려진 불라와요의 상점 풍경     ⓒAbby  
 
불라와요에 도착한 것은 출근 시간을 막 지난 아침이었다. 반듯하게 가로세로로 정비되어 ‘1번가’, ‘2번가’로 이름 지어진 도심은 말끔해 보였으나 오가는 사람도 차도 많지 않아 텅 빈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거리에 즐비한 상점들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두 촘촘한 쇠창살로 쇼윈도를 막아 놓았다. 불안한 사람들의 표정이나 곱지 않은 눈빛도 느껴졌다. 최근 경제적으로 바닥을 치고 난 후의 혼란이 현재진행형이라, 짐바브웨를 여행하기 좋지 않은 나라로 소개했던 어느 정보 사이트의 소개가 떠올랐다.
 
- 헤이 프렌, 짐바브웨 달러?
 
호텔에 짐을 풀고 점심을 위해 나선 길, 여지없이 장사하려는 남자가 따라붙었다. 짐바브웨 달러로 환전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념품으로 짐바브웨 달러를 구입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짐바브웨에서는 미국 달러가 쓰인다. 자체 통화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오랜 경제 공황 끝에 2년 통화 체계가 붕괴하였다. 환율 폭락과 물가의 폭등은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수준이었다. 2008년 환율은 1달러당 200억 짐바브웨 달러였다. 짐바브웨 정부는 하루 인출 금액을 1천억 짐바브웨 달러(미화 5달러)로 제한하고, 지폐에 유통 기한을 표시해 어느 시점 이상으로는 돈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달걀 한 개의 가격은 3천 500억 짐바브웨 달러(미화 17달러), 1조 짐바브웨 달러를 가져도 달걀 세 개를 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사실상 자국 화폐 사용 포기를 선언한 후, 휴지조각이 된 짐바브웨 달러들은 기념품으로 전락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0’이 붙은 채 실제로 사용되던 지폐는 외국인에게 좋은 기념품이다. 살펴보니 천만이나 억 단위의 달러는 흔해 묶음으로 팔리고, 단위가 올라갈수록 지폐의 가격도 올라가 1조 짐바브웨 달러는 몇십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가져볼 수 없는 고액권을 손에 넣어볼까(!) 하는 유혹도 잠시, 짐바브웨가 길에서 무언가를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는 가이드북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정력에 좋다’ 탐욕에 희생되는 국립공원의 코뿔소 

▲코뿔소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는 이안 ⓒAbby 
 
이튿날, 한 백인 남자가 호텔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반바지에 사파리 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새, 붉게 그을린 단단한 팔다리가 만약 <사파리 투어 가이드를 위한 교과서>가 있다면 모델로 가장 이상적일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토포스 국립공원(Matopos National Park)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 ‘이안(Ian)’이다.
 
마토포스는 세 가지 면에서 여행객들의 흥미를 끈다. 이 초원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는 코뿔소들, “세계의 창(World’s View)”라 이름 한 화강암 언덕 위에 놓인 세실 로즈의 무덤과 그로부터 내려다보이는 경치, 그리고 과거 2천 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산 족(부시맨)이 남긴 동굴 벽화 등의 유물들이다. 모두 유네스코가 마토포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나절 마토포스 투어는, 코뿔소를 발견하기 위해 사파리 지프를 타고 공원 내를 돌며 중간 중간 중요한 지점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재미있게도 이렇게 동물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일을 하는 이들 중 ‘코끼리 파’와 ‘코뿔소 파’가 갈리는 것을 본다. 대체로 아시아 사람들은 코끼리 파, 아프리카 사람들은 코뿔소 파인 것 같았다. 코뿔소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이안에게 “그럼 코끼리는?” 하고 묻자, “멸종위기는 무슨, 흔해 빠진 게 코끼리!”하고 일갈한다. 코끼리를 보호하려 안간힘쓰는 아시아 활동가들이 이 남자의 말을 들으면 뭐라 했을까, 장과 나만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코끼리건 코뿔소건 멸종의 이유는 공히 ‘지나친 탐욕’이다.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진공청소기처럼 코뿔소의 씨를 말리는 수요는 아시아로부터, 특히 중국에서 왔다. 코끼리 상아를 갈아 마시면, 코뿔소의 뿔을 갈아 마시면 정력에 좋다는 근거 없는 속설이 그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 뿔만 자르는 거라면 코뿔소는 살 수 있어요. 뿔도 다시 자라고요. 그러니 코뿔소 농장을 하면 될 텐데, 불법으로 잡고 죽이는 게 문제예요. 국립공원 내의 야생 동물 사냥꾼은 현장에서 사살 가능한 중범죄자인데도 소용이 없어요.
 
그놈의 정력이 뭐길래. 이안에게는 차마 말하지 않았지만, 농장을 운영할 자본력이 없는 것도 문제겠으나 그보다는 ‘양식’보다 ‘자연산’을 원하는 사람들의 탐욕이 더 문제이리라 짐작했다. 한 때 얼룩말만큼이나 많은 동물이었다는 코뿔소는, 그놈의 정력 때문에 현재 멸종위기다.
 
‘세계의 창’에 비치는 풍경은… 

▲ 국립공원의 화강암 언덕 세상의 창(World's View)으로 올라가는 이안     ⓒ Abby 
 
커다란 화강암 언덕의 꼭대기 ‘세계의 창(World’s View)’에 도착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노란 이끼가 융단처럼 끝없이 깔려있었다. 이안은 엄지 손톱만한 이끼가 끼는 데 50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역시 아프리카, 스무살이 감탄하듯 말했다. 수천 년, 수만 년의 세월이 이곳에선 마치 인간의 일생만큼이나 사사롭게 느껴진다.
 
저 멀리 굽이굽이 펼쳐진 산들의 바다가 보였다. 남아프리카 방향이라고 했다. 야심가 세실 로즈는 이곳에서 마타벨레 사람들을 규합하고, 저 산을 보며 자신의 ‘로디지아’ 제국을 영속하려는 의지를 다지고, 온 아프리카가 영국의 휘하에 들어오는 날을 꿈꾸었을까. 로즈는 생전에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은 이곳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짐바브웨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안은 자신 역시 세실 로즈 집안의 후손이라며, 모험가이자 탁월한 사업가였던 로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와 약간의 논쟁도 있었다. 이안은 로즈가 제국주의자였던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으나, 토착민들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마토포스에 기꺼이 그를 묻어준 것은 적어도 로즈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가 더욱 벌려 놓은 흑과 백의 인간 사이에 대해서도 ‘옛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더 이상 인종 차별로 말미암은 문제도 없고, 모두가 함께 짐바브웨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무래도 심정적으로 흑인들의 편을 들게 되는 우리에겐 그 태생적인 입장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밖에.
 
굶주림과 가난, 흑과 백의 차별은 ‘지금’의 일 

▲세실 로즈의 무덤가에 앉은 스무살 ⓒAbby 
 
해가 붉은빛을 길게 비추는 시간까지 숲 속을 헤맸다. 코뿔소의 똥이나 코뿔소가 몸을 문지르고 지나가거나 뿔을 갈아 댄 나무의 자국은 끝없이 나타나는데 정작 코뿔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코뿔소뿐 아니라, 숲에서도 평원에서도 몇 마리의 오릭스(orix, 초식 동물인 영양의 일종으로 하얀 얼굴과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동물이 사는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게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듯, 이안은 마치 오늘의 사파리가 허탕인 것처럼 몹시 미안해했다.
 
- 아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리고 긴 설명 끝에 이안이 말했다. 2008년 본격적으로 심화된 경제 파탄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차에, 사람들이 불법으로 마토포스 안에 들어와 야생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번엔 먹기 위해서였다. 동물을 사냥하다 사살되나 앉아서 굶어 죽으나 이판사판인 사람들이 야생 동물의 고기로 가족의 굶주림을 해결했다. 현재는 회복세이지만, 마토포스  국립공원 내의 동물 개체 수는 한때 10% 수준까지 줄었다고 했다.
 
시내로 돌아온 저녁, 시내 한 레스토랑에 들렀다. 몇 개의 스탠딩 바에 삼삼오오 둘러선 사람들이 감자튀김과 치킨 따위를 먹는 패스트푸드점이었다. 레스토랑 주인의 으름장으로 차마 들어오지는 못한 아이들이 가게 바깥에 서서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은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먹고 난 일회용 그릇을 쓰레기통에 넣는 순간, 아이들이 앞 다투어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한 그릇 제대로 된 음식을 사 주고 싶다고 하자, 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미는 어설픈 친절, 외국인의 지갑에서 나온 몇 달러 푼돈이 걷잡을 수 없는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옛 일’ 이라는 이안의 말과는 다르게 역시나 구걸하는 백인은 보이지 않았다.
 
흑인들이 점령(?)한 시내에서 묵는 우리를 몹시 염려했던 이안을 안심시키고 호텔로 돌아왔다. ‘비즈니스호텔’이지만, 선풍기조차 없는 방은 숨이 턱턱 막히게 답답했다. 모기장이 없어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결국, 스무살과 킴은 모기에 뜯기는 쪽을, 나와 장은 뜨거운 공기에 밤새 잠을 설치는 쪽을 택했다. 무덥고 텁텁한 아프리카에서의 하루는 때로 더디 지나지만, 여행은 이미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Abby)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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