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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15. 남아프리카 공화국 

애비(Abby)와 장(Jang)-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으로 서른이 되던 해 여름에 함께 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 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백인’들의 아프리카, 남아공에 들어서다
 
림포포(Limpopo) 강에 도착했다. 짐바브웨는 북쪽 잠비아와의 사이에 잠베지 강을, 남쪽 남아공과의 사이에 림포포 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하는 것처럼 짐바브웨 사람들도 “잠베지에서 림포포까지”라는 말을 쓸까? 실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베이브리지(Beit Bridge) 국경으로 발을 재촉했다.

▲ 림포포 강 위에 놓인 짐바브웨와 남아공 사이의 국경, 베이브리지를 넘는 일행들  ⓒ Abby 
 
단촐한 짐바브웨 국경 사무소와는 달리, 육군 기지처럼 생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출입국 관리소는 북새통이었다. 늘어선 줄로만 봐서는 오늘 업무 시간 안에 다 처리가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주로 부자 나라 남아공에서 일하려는 짐바브웨의 노동자들, 물건을 싣고 오가는 상인들이었다. 딱딱한 얼굴의 출입국 사무소 관리들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군인들이 때때로 거칠게 행렬을 정리하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화이트 아프리카로의 입성이었다. 여행의 어디즈음부터, 우리는 아프리카를 세 묶음으로 나누어 보곤 했다. 중동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북부의 아랍 아프리카(Arabic Africa), 키쿠유 족, 반투 족 등 흑인 부족 문화 하에서의 통치와 갈등이 주 현안인 중앙의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 그리고 대대로 살아 온 백인이 일정 비율 이상의 인구를 차지하는 남부의 화이트 아프리카(White Africa). 짐바브웨 사람들을 대할 때면 나오는 군과 관의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로부터 우리가 아프리카 속의 유럽, 아프리카 속의 백인 나라 남아공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 누나 괜찮아? 가방을 이렇게 매고 있으니까 그렇잖아 멍청아. 이리 내 놔. 그리고 죽지 마. 응?
 
스무살이 내게 부채질을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머리카락이 녹지 않을까 싶을 만큼 볕이 뜨거운 날, 임시 군용 막사처럼 세워진 사무실은 볼록렌즈라도 댄 듯 열기가 고스란히 응집되는 찜통이었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나는 티셔츠가 흥건하도록 땀을 흘리다 서서히 하얗게 질려갔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인은 무비자 한 달로 알고 있다’는 우리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관리들은 시스템 속 한국과 북한의 국가명이 불분명하다면서 자기들끼리 여권을 돌리고 이리저리 전화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혹시 용돈을 바라는 건가?
 
혼잣말처럼 장이 말했다. 절대로 안 돼. 그러느니 여기서 확 쓰러져 버릴 거야. 이를 득득 가는 나를 두고 다시 장과 스무살이 데스크에 가 설명하고 항의한 끝에 쾅쾅, 드디어 우리 여권에 차례로 스탬프 찍는 소리가 들렸다. 국경에 도착한 것은 이른 점심이었는데, 출입국 관리소를 빠져나오고 나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늦은 오후가 되었다. 상인과 노동자들이 몰리는 월초에는 열 시간 열 두 시간씩 걸리다 못해 쪼그려 앉아 밤을 지새우는 일도 다반사라니, 이 정도로 베이브리지를 건넌 것은 양반이리라.
 
국경도시 무시나(Musina)의 하룻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경도시 무시나에서 수도인 요하네스버스로 향하는 길.  풍경은 아름답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답게 길도 잘 닦여 있다.  ⓒAbby  
 
그러나 일정이 꼬여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이하 조벅)로 넘어간다면 아주 늦은 밤이 될 터였다. 우리가 거쳐 온 아프리카의 도시 치고 가이드북이 안전에 대해 경고하지 않은 경우도 없었지만, 조벅에 대해서는 반발심이 들 만큼 유난스러웠다. 강간과 강도, 살인 소식이 시간 단위로 쏟아지는 곳, 광객이 투어 버스에서 밖을 내다볼 뿐 결코 내리지 않는 곳, 밤이고 낮이고 혼자 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인 곳.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함께 정보를 검색하고 책을 읽을수록 기대감보다 긴장을 더욱 집어먹게 되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조벅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남서쪽 케이프타운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스무살의 여행 경로상 잠시라도 거쳐야 하는 도시였다. 거기에 세계사에 길이 남을 지독한 흑백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현장이었고, 혁명가 넬슨 만델라와 투투 주교의 도시였으며, 외계인 격리 구역을 다룬 영화 <디스트릭트 나인(District 9, 2009)>의 실제 배경이 된 도시일 만큼 남아공 사람들의 현재 삶 역시 가장 잘 대변하는 곳이었다. 스무살과 함께 하는 여행을 생각하며, 꼭 보아야 할 곳으로 애초부터 장과 못 박은 터였다.
 
여기서 하루 묵고 내일 떠나도록 해요. 고민 끝에 장이 말했다. 예기치 않게 숙소를 찾아 헤매게 된 오후, 국경 도시 무시나(Musina) 역시 마음 편히 쉴 곳은 아님을 걸음마다 확인한다. 환전 안 해? 환전해 어서… 그리고 내게도 돈을 좀 줘… 약에 취한 텅 빈 얼굴로 우리 앞에 손을 흐느적대던 여인네가 지나갔다. 뒤이어 치나 치나(중국인을 부르는 말)! 하는 조롱을 입에 단 일군의 젊은 남자들이 백 미터쯤 우리를 따라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길가의 행상들은 누구라도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롭고 집요하게 우리를 노려보았다.
 
숙소에 짐을 부리고 저녁 식사를 위해 나왔다. 거리에 인도인이 많이 눈에 띈다고 생각했는데, 숙소 주변의 골목을 둘러보니 셋 중 둘이 인도인 상점과 식당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인도인과 중국인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기 마련이었지만, 아프리카 끝의 이 국경 도시에까지 작은 인도인 거리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은 의외였다. 그 중 한 식당에 들어가 앉으니 주인과 종업원이 주고받는 말이 친숙하게 귀에 들어왔다. 열 개가 넘는 인도의 공용어 중 하나이자, 장과 내가 인도 꼴까따에서 보름간 발룬티어를 하며 배운 방글라데시어였다(꼴까따는 서부 벵갈 주(州)의 수도로, 인도로부터 독립한 방글라데시와 언어와 문화 등이 같다).
 
- 뚜미 발로 아초(How are you)?
        아미 발로 아치(I am fine)!
 
주문을 받으러 온 남자에게 능청스레 말을 걸자, 그가 활짝 귀에 걸린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그의 이름은 아밀(Amil),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이름을 묻고, 음식을 평하고 (물론 맛있다는 인사만), 집에 간다 내일 또 오겠다 하는 짧디 짧은 몇 마디의 모국어가 손님과 주인 사이를 급격히 좁혔다. 모자라는 말은 영어로 섞었다. 무시나 근교에서 광산 채굴이 활발하던 시절, 그러니까 그 옛날 세실 로즈의 시절부터 인도의 노동자가 이곳에 정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밀과 주인 아닐(Anil)도 처음엔 광산 일을 하다가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마음이 풀린 것은 타지에서 뜻밖의 고향 말을 들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디디(자매), 다다(형제) 하고 우리 손을 부여잡으며 환대해 준 주인들 덕에 우리들의 긴장도 이완되었다. 몇 일째 현지의 누구와도 이렇게 환담을 한 기억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스무살도 이 의외의 장면이 재미있는지 꾹 다물던 입을 열고 “나 같아도 이렇게 무서운 데서 외국인이 우리말로 말 걸어 주면 눈물 나게 반갑겠다”하며 웃었다. 거친 남아공의 도시 무시나에서, 한국인과 인도인으로서의 차이보다는 ‘이방인’으로서의 유대가 더 진하게 배어났기 때문이리라.

▲ 무시나에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작은 승합차, 콤비 버스  
 
이튿날 아침, 조벅으로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식당을 찾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로 행운을 비는 인사를 나누던 끝에, 아닐이 다른 흑인 손님들을 의식하듯 고개를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 애비, 장, 밖에 나가면 당신들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흑인들이 있을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말을 섞지 말아요. 특히 누가 무슨 제안을 해도 응하지 마세요. 바로 버스에 타요. 잘 가요. 좋은 여행하기를.
 
그야말로 비장미가 넘치는 인사에, 우리는 친구의 말대로 얌전히 출발하는 시간까지 작은 콤비 버스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말하는 그 ‘위험’이 머리로는 실감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되었다.
 
요하네스버그, 모두가 ‘조심해요!’ 하고 말하는 곳
 
조벅까지의 여정은 꽤 고단했다. 워낙 먼 길이었던 데다, 차선을 넘나들며 경적을 마구 울리는 거친 운전 매너 때문이었다. 비단 운전뿐이랴. 기사는 꼬박 하룻길에 한 번 들른 휴게소에서 승객들을 향해 십 분 안에 빨리 화장실에 다녀오라 채근하더니, 정작 자신이 다른 기사들과 노닥거리느라 삼십 분을 지체했다. 그리곤 출발 안 하냐 항의하던 한 흑인 남자를 떠밀며 위협했다. 헤이, 누가 나 기다리랬어? 운전 못 해? 키 줘? 당신이 운전해, 가 버려!
 
창 밖 저 너머로 구름 기둥이 쏟아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폭우다. 아프리카에선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먹구름이 어딘가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원자 폭탄의 버섯 기둥을 연상케 하곤 했다. 조벅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우리는 아마도 저 기둥을 향해 가고 있을 터였다. 저 폭우 안, 저 폭탄 안에선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늦은 오후 조벅 시내의 파크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숙소로 향하기 전 미리 케이프타운까지의 기차를 예약하는 중에, 예약실의 사무관이 문득 생각난 듯 “밖에 나가거든 행여 버스를 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까지 위험한가요?
     그럼요. 당신들은 외국인이니까 더더욱.
     버스에 나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이런 거예요. 당신들이 타는 걸 보고 올라타는 길거리 부랑자들이 있을 거예요. 물론 따라 내리기 위해서죠. 그리고 인적이 드문 데서 덮치는 거예요. 흔한 얘기예요.
 
대화를 나누는 폼에서 지금 막 이 곳에 도착한 신출내기 티가 역력했는지, 친절하게도 그녀는 업무를 멈추고 초짜들을 택시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기사에게 행선지를 거듭 확인한 후 미리 예약한 호스텔 주인과 통화까지 연결해 주곤 무운을 빌며 사라졌다. 악명 높은 여행지에서도 늘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그 좋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몸을 낮추고 속삭인다. 조심해. 버스 타지 마. 지하철? 물론 타지 마. 조심해야 해. 위험해. 가능하면 혼자 걷지도 마. 해가 지면 혼자건 함께건 아무데도 가지 마. 언제나 가방을 조심해.
 
- 가방이 열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첫 신고식을 치렀다. 그 날 저녁 우르르 들어오는 우리 일행의 꽁무니에 대고 숙소의 매니저 페이션스가 한 말이었다. 으이구 덤벙이. 스무살의 가방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곧 그의 똑딱이 디카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짧은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순식간에 스무살이 디지털 카메라를 도난 당한 숙소 근처의 마트 거리     ⓒ Abby 
 
아프리카에서는 자주, 지독한 가난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본다.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제1 도시 조벅의 풍경은, 이곳이야말로 아프리카의 갈등과 아픔이 집약된 곳일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날카로운 쇠창살이 꽂힌 높은 벽과 고압 전류가 흐르는 펜스와 무장한 경비원들 속에 스스로를 가뒀다. 어떤 사람들은 남루한 차림새에, 증오와 조롱을 담은 눈빛 속에 갇혔다. 우리들은 정체 모를 무거운 공기 속에 갇혔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그를 맛보게 될까. 사람이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는 곳. 모두가 ‘조심해요!’ 하고 말하는 곳. 우리가 그 동안 타고 움직인 모든 것들을 '위험해요' 하고 말리는 곳. 영화 <디스트릭트 나인>의 묘사처럼,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외계인일까. (Abby)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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