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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교육제도 이면에 깔린 제국주의 속성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11)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일다> www.ildaro.com
대학교육, 이론과 배치되는 현실은 모른 척 하라?
유치원에 발을 들인 순간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하고 여자끼리 모여 있는 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배웠을 때, 그리고 누구든 단 ‘한 가지‘ 국적만 고를 수 있다고 강요 받은 때부터, 나는 교육제도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우리에게 교육은 필요없다(We don't need no education)” 뮤직비디오 장면. 마치 수용소에서 교육을 받는 듯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사람을 단 한 가지 현실에 기반한 가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그 존재는 제한된 테두리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사회를 통제하는 집단은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진실’을 모두에게 강요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배제’라는 상처를 남긴다. 켄 로빈슨 경(Sir Ken Robinson)은 테드(TED) 강연에서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고 있으며, 창의성이란 아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항하는 최고의 무기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제한적인 교육은 대학에서도 이어진다. 사회화의 거품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진짜 인생 교육이 의미하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나는 이 차이를 대학에 다니며 멕시코에서 진행했던 현장 연구에서 여러 차례 몸소 느꼈다.
학과장의 연구팀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연구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가 인터뷰했던 토착민들에게서 배운 지식에 입각해 그 팀의 연구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자 나는 곧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실제 상황이 이론과 배치될 경우, 그 현실을 모른 척하라고 가르친다. 학계에서는 너무 흔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관례가 좋은 연구를 퇴색시키는 근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례의 흔적은 토착민과 이들의 역사와 예술을 서구의 고고학적인 ‘발견’인 양 전시하고 상업화한 박물관과 분류전시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간 동물원’ 연상시키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멕시코시티에 있는 인류학박물관은 슬프고도 한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의 위층은 소수민족 전용관이다. 이곳을 두고 미스텍 심리학자 이타 비코 크루스 로페스(Ita Bico Cruz Lopez)는 “1960년대 민족학 책자에 나오는 이론을 따른 학교 연구 프로젝트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은 멕시코 토착민들의 삶과 의식을 아무 맥락 없이 전시해놓아, 마치 인간 동물원 전시관을 연상시킨다. 전시의 이면에는 멕시코 토착민들이 ‘멸종’한 인종이거나, 자신을 대변하기 힘든 야생동물에 가까운 존재이므로 타임캡슐에 보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토착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멕시코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 인간 동물원을 연상시키는 위라리카(Wirarika) 의례의 전시물.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소장. ⓒ 레인보우 도
물론, 이 박물관에 한 손에는 코카콜라를 들고 하루 종일 TV에 빠져 드라마를 보고 있는 토착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토착민들을 이러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인 현대 멕시코의 소비 문화는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공부하는 지식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지식에 집중하는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인류학의 한 분과인 고고학은 제국주의적 탐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 대륙의 가치 높은 보물이 대부분 유럽의 박물관이나 바티칸의 지하금고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별로 놀랍지 않은 이유다.
어떤 지역이 서구의 군대나 개발에 의해 관통되고 나면, 그 지역 사람들이나 문화는 상업화되어 버린다. 그리고 소비 문화에 걸맞지 않은 비서구적인 모든 것들은 무참히 공격 당하고 배제된다. 그러나 전 세계를 통틀어 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들은, 예로부터 그 땅과 그 지역 사람들을 수호해왔다.
관광지로 전락한 의례 공간, 엘 모고테
오악사카(Oaxaca, 오아하카)에 있는 산 호세 엘 모고테(San Jose El Mogote)는 3천년 이상 된 중앙 사포텍(Zapotec)의 고고학적 장소로, 그 유명한 몬테 알반(Monte Alban) 지역보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산타 마리아 아트솜파(Santa Maria Atzompa) 출신 도예가들은 이 두 사포텍 도시의 도자기 대가들의 후손이다. 그러나 이들이 의례 공간에 출입하는 것은 현재 금지되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입맛에 맞게 재건축되고 있는 이 공간에는 건축노동자만이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례 공간의 역사를 구전(口傳)으로 이어온 지식인인 어르신들과 도예가들은 이 지역을 지켜온 사람들로서 존중 받지 못하고, 발굴 과정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정부가 민간 출입을 봉쇄하기 전에는 전통의식을 이 곳에서 빈번히 진행하곤 했다고 아트솜파 사람들은 말한다.
발굴의 혜택은 멕시코의 인류학과 역사를 담당하는 공기관인 INAH과 외국 투자자들이 독점한다. 이것이 바로 미 대륙이 약탈되는 방식이다.
▲ 산 호세 엘 모고테에서 필자 레인보우 도(오른쪽)와 도예가 아나 알라르콘(Ana Alarcon), 그녀의 남편인 후벤티노(Juventino). 고고학자들이 카메라 소지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비밀리에 찍은 사진. 그러나 이 곳은 본래 도예가들의 공간이었다. ⓒ 레인보우 도
이곳의 발굴 작업은 외국인들과 몇몇 엘리트들이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사회를 위한 지식 발굴이 아닌, 단순한 돈벌이를 위해 가장 이윤이 많이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발굴한다.
엘 모고테에서, 나이 많은 노동자인 후벤티노 씨가 고고학자들의 작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본래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내기 위해 기존에 발굴되었던 수많은 건축물과 터널을 다시 파묻어 버립니다.” 발굴 작업에서 이 지역 후손들을 배제하는 것은 둘째치고, 소위 복원이라는 것이 본래의 건축물들을 도리어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2004년부터 아트솜파에서 연구를 진행해오며, 인류학뿐만 아니라 공공보건 분야에서도 이런 식의 오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타 마리아 아트솜파 전통과 광산 오염의 실체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할 당시, 산타 마리아 아트솜파에 간 적이 있다. 독성이 강한 납 유약을 도자기에 바르는 도예가들의 윤리적 딜레마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와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근본적인 문제는 배고픔이나 이주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납 유약을 바르는 도예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문제는 1990년대에 이들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던 언론에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 인류학회 참가했을 때 나는 어떤 식으로 언론이 독성이 강한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들에게 이목을 집중시켜 더 큰 문제를 은폐하려 했는지 발표했다. 언론이 숨기고자 했던 것은 탄광 기업들이 탄광 인근 마을들을 오염시키고, 멕시코 북부 지역의 환경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납 유약을 사용하는 아트솜파의 전통과 탄광은 서로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납은 금과 은을 채굴할 때 나오는 부산물로, 채굴은 17세기 멕시코를 침략한 스페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애초에 스페인에 의해 채굴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납도 채굴되지 않았을 것이고, 도예가들 또한 납이 아닌 대체물로 유약 재료를 찾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언론이 납을 채굴하는 탄광 업체들이 아닌 도예가들에게만 비난을 돌리는 이유는, 멕시코 탄광 사업을 보호하고 국제 시장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이다.
1990년대부터 대형 붕괴 사고와 노동자들의 파업, 마을 전체 주민의 집단 소송이 잇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최대 탄광 기업인 페뇰레스(Penoles)는 2003년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로부터 독성가스 배출 통제 기술을 인정받아 ISO를 획득했다. 이제 국제 사회가 멕시코의 탄광 사업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와 기업의 결탁은, 1823년에 탄생한 멕시코공화국의 정치인들에게는 5만 년 이상 땅을 지켜온 이들이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지식 다양성을 해치는 ‘표준화’를 경계하며
서구의 교육제도는, 서구보다 역사가 오래된 지식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접근을 차단하여 인간의 발전을 파괴하고 있다. 고고학에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식의 특성은 토착민들로부터 약탈한 땅과 자원에 대한 엘리트 집단의 제국주의적 ‘권리’를 옹호한다.
지식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전략을 통해 세계화가 우리의 모든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만큼이나 위험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주 개발은행(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같은 다국적 기관들이 지지하는 정책이다. 이제 ‘자유무역’이란 곧 ‘모든 혜택이 미 기득권에게 돌아가는 중앙집권화된 국제무역’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 정책은 세계 모든 도시에서 채택되고 있으며, 제12차 세계문화유산도시기구(Organization of World Heritage Cities) 회의가 2013년에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오악사카에서 열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산 호세 모고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의 의례 공간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관광지로 전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사회의 지식 기반이 소수의 돈과 권력을 위해 소모되고 있다.
교육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표준화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지역 사회의 전통에 눈 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레인보우 도, 번역: 권이은정)
[관련 자료 링크]
* 켄 로빈슨 경 (Sir Ken Robinson) 홈페이지
* 반세계화 운동 캐나다활동가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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