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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동이주 역사와 현재① ‘손님 노동자’라 불렸던 사람들 
 
유럽 최대 이민국이 된 독일의 노동이주 역사와 정책, 이주민의 현실과 독일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기획 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결혼이주를 통해 생겨난 다문화 가족이 최근 몇 년 급증하고, 외국인노동자 정책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독일의 경험은 ‘국제이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필자 정용숙님은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독일사를 전공하고,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20세기 후반 노동자 가족의 사회사’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2011년 보훔 대학교 사회운동연구소가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사학과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경제성장기 외국인노동자 유치에 나선 서독
 
독일은 현재 유럽 최대의 이민국이다. 독일 땅에 거주하는 8천여만 명 중 약 1천5백만 명이 20세기 후반에 독일로 이주했거나, 그런 부모 또는 조부모가 있다. 그러니까 전체 주민의 1/5 정도가 이주자이거나 그 자손이라는 이야기다. 이들 중 독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절반 정도다. 국제이주 배경을 가진 주민의 비율은 슈투트가르트와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서는 40%를 넘어서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독일이 이민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이미 1980년대 말이다. 1950년대부터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가족을 초청한 이주의 결과다. 1955년 서독과 이탈리아 사이에 맺어진 노동 이주 협약으로 남부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독일 땅을 밟았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그리스와 스페인(1960), 터키(1961), 모로코(1963), 포르투갈(1964), 튀니지(1965), 유고슬라비아(1968) 등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뮌헨역에 도착한 이탈리아 노동자들. 출처-Haus der bayerischen Geschichte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기에 미국은, 동구권에 대한 방파제로 서독의 산업과 경제 재건을 적극 지원했다.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서독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이내 노동력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손님 노동자”(Gastarbeiter)로 불렸던 외국인노동자를 대대적으로 유치한다.
 
그런데 경제 부흥의 호황이 끝나며 사정이 달라졌다. 1973년 오일쇼크를 계기로 서독의 산업과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그 해 11월 노동 이주 협약은 공식 종료된다.
 
서독 정부는 당초 협약을 맺을 당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외국인노동자의 계약 기간과 작업장, 직종, 지역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도록 노동 조건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테이션 시스템’이다. 계약기간이 끝난 노동자는 계약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일단 귀국시킨 후 새로운 계약을 통해 고용하는 식으로 인력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이주가 정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원칙은 결국 유지될 수 없었다. 우선, 독일인 고용주들의 불만이 컸다. 현장에서 기껏 숙련시킨 인력을 돌려보내고 새로 직원을 받아 교육시키는 것은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체류 계획에도 변화가 생겼다. 초기에는 단기간에 돈을 모아 귀국하려는 분위기가 대세였지만, 독일 경기가 침체되며 귀국 후에 재입국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자 오히려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터키와 유고슬라비아 노동자의 경우엔, 본국의 암울한 경제 전망과 비민주적 정치 상황도 귀국을 꺼리는 이유였다. 독일 정부는 귀국 비용을 지원하면서까지 외국인노동자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체류를 원하는 노동자들을 억지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또 그 노동자들이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초청 이민’ 역시 인도적 이유로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 이주에서 가족 이주로, 고립된 커뮤니티 

 
이렇게 노동 이주가 가족 이주로 성격이 바뀌며 ‘외국인노동자’들은 ‘이주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독일 사회의 문제 집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초기에 가졌던 우호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집중되었던 외국인노동자들은 서독 경제가 다시는 예전과 같은 호황을 누리지 못하게 되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독일인의 실업률도 치솟는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배타성은 강해졌다. 그런 분위기는 외국인 적대로 이어지기 쉬웠다. 

▲ 독일연방통계청이 작성한 "다문화 도시들" 그래프. 히잡을 쓴 여성이 아이들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은 이주민에 대해 평범한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며 그들은 점점 고립되었다. 가족 단위로 살게 된 이주자들은 싼 집세와 독일인 이웃들의 배타성 때문에 옛날 노동자 주거지였던 낙후된 구역에 모여들었다. 이 곳들을 중심으로 식품점, 사교 공간, 예배당 등이 생기며 이주민 거주지는 도심 속의 고립된 섬처럼 되어갔다.
 
여기선 고국의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독일어를 몰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 공간의 고립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외부인인 독일인들의 반감을 부추기며 이민자들을 더욱더 고립시켰다. 이제는 이주민들이 독일 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사회, 소위 “대칭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이주민 거주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학군제 때문에도 독일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배울 기회가 적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읽기, 쓰기, 말하기를 포함하는 독일어 습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 “2개 국어를 하는 문맹자”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국어 습득도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니 불충분한 독일어 능력에, 사회적 취약 계층인 부모의 뒷받침은 기대할 수 없고, 직업학교 졸업장도 없이 사회로 나가면 결국 거대한 아웃사이더 집단이 되어 사회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는 독일인 사회의 우려는 근거가 없지 않았다. 이주자의 사회적 취약성이 학교를 거쳐 사회적 불평등으로 세대를 이어 재생산되는 것이다.
 
터키 이주민 가족에 대한 선입견과 갈등
 
이주민 중에서도 특히 문제 집단으로 여겨진 것은 유럽 전통의 바깥에 위치하는 터키인들이었다. 노동 이주 협약이 종료되기 전부터 이들은 이미 독일 안에 있는 외국인 중 최대 다수 집단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서부 공업 지대의 석탄, 철강, 건설, 섬유, 화학 산업 도시들에서 노동자로 정착한 후, 서서히 요식업과 소매업 계통의 자영업자로 전환하며 대도시로 진출하였다. 어느 쪽이건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들은 저임금 노동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사회 계층 가장 아래 부분으로 편입되어 일종의 도시 하층민이 되었다.
 
1960년대에 피임약이 보급되면서 출산율이 단숨에 뚝 떨어진 후, 독일 사회는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이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지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과 씨름하였다. 그런데 터키 출신 이주민 가족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기록해, 독일 사회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991년 구 서독 지역 신생아의 11%가 비독일인 부모로부터 출생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터키인이었다. 당시 독일인의 합계출산율이 경제 규모의 현상 유지 수준에 못 미치는 1.3이었던 데 비해, 터키 이주민의 출산율은 그 두 배가 넘는 2.9였다. 늙어가는 독일의 인구 구조 균형을 터키인들이 맞추어 줄 수 있다는 전망과, 젊은 터키인들이 늙은 독일을 “접수”할 것이라는 인종주의 공포가 공존했다. 여기에는 터키 출신 이주민의 98%가 서구 문화 전통과는 이질적이며 오랜 상호 적대의 역사를 가진 무슬림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터키 이주민 가족에 대해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대체로 많은 아이들, 엄격한 종교, 히잡과 강제결혼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성 등이다. 그러나 이주민의 가족 문화는 일반적으로 현지인에 가까워지는 쪽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터키 이민자 가족이 독일인이나 기타 이주민 가족에 비해 좀더 특별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정도의 독특성도 그들 나름대로 현지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거친 결과다.
 
독일의 터키 이주민은 대부분 도시가 아닌 농촌 출신이다. 빈곤한 아르메니아 고원의 농촌으로부터 독일의 공업 도시로 이주했다. 따라서 농촌에서 도시로, 농업적 생활 방식에서 산업 사회의 생활 방식으로 이중 삼중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어느 터키 노동자는 서독에 도착했던 순간을 “이스탄불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3000킬로미터다. 그러나 우리는 삼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 같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터키 이민자들의 가족적 삶과 구조가 독일인들과 다른 이유를, 국가의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만 돌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젠더’의 문제, 그리고 이주민-독일인의 결혼
 
국제이주 자체가 급격한 가족 생활의 변화를 동반한다. 이주 경험을 거치며 가족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커지고, 부모 특히 가장의 ‘권위’는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국제 노동 이주 1세대는 보통 사회 하층으로 우선 편입된다. 특히 노동 협약이 아닌 가족 초청을 통해 이주해 온 여성은 본국에서 획득한 노동력이나 교육 자원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독일여성에 비해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주 2세대 여성의 경우에도, 출신 가정의 빈약한 사회 자원으로 인해 직업 교육과 학교 교육에서 독일여성이나 이주 2세대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부족한 교육 자원과 사회 자원을 매개로 다시금 사회 하층부로 배치된다.
 
독일 주류 사회는 ‘이주민의 사회 통합’을 위해 ‘젠더’ 문제에 관심을 둔다. 가족과 친족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대체로 여성인데, 이 친족 네트워크는 사회 자원이 부족한 이주자들의 사회통합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가 2000년에 발행한 <6차 가족보고서>는 외국인노동자 가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주민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보고서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다문화간 결혼에 대한 독일인과 이주민들의 태도이다. 다문화간 결혼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히 이주민에게는 주류 사회 구성원과 결혼하는 것이 주류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효율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터키 출신 이주민과 독일인의 통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터키인 쪽에서보다 독일인 쪽에서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났다. 이주민들이 독일 사회에 통합되는 것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과연 이주민들 스스로의 문화적, 종교적 이질성이나 약한 의지에 있는지 묻게 하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터키 이주민 후세대 남성들 사이에 터키에서 신붓감을 데려오려는 보수적 경향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볼 만하다. 이는 독일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사회에 ‘동화’되도록 압력을 넣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남발하는 한국 현실은 어떠한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은 한국 사회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외국인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무엇보다 결혼을 통한 국제 이주가 최근 수년간 급격히 늘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란 무엇인가? 여러 문화들이 나란히 병존하는 것이 다문화인가? 아니, 그 전에 다문화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한국의 다문화 현실은 어떤가? ‘이주민과 함께’의 정귀순 대표는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을 “다문화 없는 다문화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이 형성된 경로는 독일과는 맥락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가 어렵다. 독일 다문화 가정이 노동 이주의 결과물이라면, 한국은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 이주와 그 가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과 독일은 노동 이주의 역사, 배경, 노동시장 조건 등에서 차이점이 많다.
 
그러나 각국의 노동 이주 정책이 이주노동자를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출발했다는 점은 닮았다. 독일의 역사적 경험은 이주노동자를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되돌려 보내는 것은 사용 국가 쪽의 희망사항일 뿐, 인권 문제와 연결되면 매우 까다로운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공동체와 언어, 문화, 관습이 다른 이주민의 공존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서로가 겪게 될 어려움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 스스로,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을까?
 
독일의 사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 우리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에게서 나올 것이고, 당면 문제들에 대한 해답 역시 우리의 맥락과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경험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통찰을 위한 재료가 된다.
 
독일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사례에서 특수한 부분과 일반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국제이주민의 경험과 일상을 이해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독일 사회는 어떻게 거쳐 왔나. 이민사 연구자인 이용일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독일 이주민들의 사례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과 귀결점은 한국 사회의 ‘이민 현상’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다.”  (정용숙 / 연세대 사학과 강사)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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