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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논쟁을 통해 본 다문화 갈등
독일사회 50년 노동이주의 역사와 현재② 

 
유럽 최대 이민국이 된 독일의 노동이주 역사와 정책, 이주민의 현실과 독일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기획 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결혼이주를 통해 생겨난 다문화 가족이 최근 몇 년 급증하고, 외국인노동자 정책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독일의 경험은 ‘국제이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필자 정용숙님은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독일사를 전공하고,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20세기 후반 노동자 가족의 사회사’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2011년 보훔 대학교 사회운동연구소가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사학과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헌법재판소로 간 여교사의 히잡 착용 논쟁 

© "나는 왜 히잡을 쓰는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2010년 11호 표지  

1998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문화부는 공립학교 교사 페레슈타 루딘(Fereshta Ludin)에 대해, 수업 중 히잡 벗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했다. 면직당한 루딘은 주 정부를 고소했다. 종교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개인의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주 정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수업 중에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국가의 중립성 의무와 정교 분리라는 독일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맞섰다. 주 문화부 장관이었던 아네테 샤반은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CDU) 소속이었다. “히잡 착용은 무슬림 여성의 의무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히잡을 쓰지 않는 무슬림 여성이 더 많다. 이슬람 내부의 평가로는 히잡은 오히려 ‘정치적 분리주의’다” 라고 주장했다.
 
독일 법정에서 열린 세 번 재판에서 루딘은 모두 패소했다. 그러자 이 문제를 최고 재판소인 칼스루에 연방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2003년 9월 연방헌법재판소는 8대 5로, 교사의 히잡 착용을 허용할 것인가 여부는 각 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그 누구의 손을 들어준 것도 아니었다. 독일 사회의 모든 눈과 귀가 칼스루에로 모아져 있었지만, 헌재는 정작 히잡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과 관련해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뜨거운 감자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로 되돌려 보냈다. 법적 문제로 영역을 넓힐 뻔했던 히잡 문제는 다시 정치적 문제로 되돌아왔다.
 
루딘은 히잡을 쓰고자 하는 동기를 ‘종교적 신념’과 ‘개인의 의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주 정부는 “전도사 노릇을 자처할 생각도 없고 독일 사회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에 동의한다”는 루딘의 말을 믿기 어려워했다. 사실 주 정부는 그의 “개인적” 동기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고,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를 “종교적 신념”이 아닌 “정치적 표지”로 해석했다. 루딘의 행보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라는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원칙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히잡을 쓰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인가 

 
보수적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는 달리 전통적으로 사회민주당 근거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는 이미 15명의 교사들이 아무 문제 없이 히잡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루딘은 그를 면직시킨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고집했다.
 
수년간 법정 투쟁을 하는 동안 루딘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는 좌파 성향인 교원 노조 외에도 독일 내 무슬림 조직인 밀리 괴뤼쉬(Milli Görüş; National Opinion)와 무슬림 중앙위원회가 있었다. 이 두 무슬림 조직은 9.11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샤리아(강제결혼)와 일부다처제, 신정국가(Theocracy)를 공공연히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신정국가란 무엇인가? 종교가 정치의 우위에 서는 것으로, 신의 부름을 받은 자가 종교적 원칙으로 사회를 통치하는 것이다. 현대판 신정국가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것이 바티칸과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성립된 이란 공화국이다.
 
1999년 루딘은 베를린에 있는 사립 학교인 “이슬람 학교”(Islam Kolleg)의 교사로 취직했다. 공교롭게도 이 학교는 독일 사법 당국으로부터 밀리 괴뤼쉬의 위장조직으로 찍혀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밀리 괴뤼쉬는 독일 내 최대 이슬람 조직으로 독일 연방헌법 옹호청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잠재적인 “헌법 적대 집단”으로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루딘은 “이슬람 학교”는 1995년 정부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합법적이며, 밀리 괴뤼쉬와의 연관성은 몰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던 좌파 신문들조차도 그런 공공연한 사실을 몰랐다는 해명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슈바르처 “히잡을 허용하는 건 사이비 똘레랑스”
 
루딘은 아프가니스탄의 상류층 가정 출신이다. 아버지는 장관과 외교관을 역임했으며 그 덕분에 어린 시절을 런던에서 보내기도 했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가족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아드로 이주했다. 그의 부모는 어느 날 갑자기 13살 딸이 학교에 갔다가 자신의 의지로 히잡을 쓰고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루딘은14세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1995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남편 라이문트는 원래 무슬림이 아니었지만 결혼 전 개종했다.
 
루딘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 불이익을 받으며, 운전도 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알리스 슈바르처가 전화 인터뷰로 ‘탈레반 정권에서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입장을 물었을 때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루딘은 “교사로서 공무원의 의무를 생각해서 답하기 원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프간 여성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였을까? 슈바르처는 그 밖에도 루딘이 여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독일 여성은 “불결”하며 무슬림 여성은 “정결”하다고 발언해 분노한 참가자들이 도중에 자리를 떴던 일화를 문제 삼으며, 그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독일 페미니즘의 대모인 슈바르처는 정부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에 대해 문화적 관용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는 독일 헌법에 명시된 의무교육 조항이 이슬람 가정의 여자아이들에 대해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이슬람 가정의 여학생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결혼하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억지로 터키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고, 부모의 명령으로 체육 수업을 빠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슈바르처는 1979년 이란 여행을 다녀온 후,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일관되게 비타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란 혁명 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은 이슬람 십자군의 깃발이 되었다. 그것은 분리주의의 상징이다.” 슈바르처는 아마도 무슬림 여교사의 히잡 착용 권리를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 차례는 샤리아(강제결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독일에 이주하기 전에 행해진 일부다처 결혼의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면, 독일 법정은 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히잡이나 샤리아를 허용하는 것은 “사이비 똘레랑스”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종교의 자유? 다문화 포용? 여성억압 학습? 

▲ 독일 각 주 별로 교사의 히잡 착용 허용 여부. 파란색은 허용. 붉은색은 금지. 2007년 현재. ©출처 - 위키피디아 독일판 
 
독일에서 히잡 착용은 정치적 종교적 중립 의무를 지닌 공직자가 공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 학생의 히잡 착용까지 문제 삼는 프랑스에 비해서는 관용적이라 할 수 있다. 루딘의 경우 문제가 된 것은 학교에서 히잡을 썼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히잡을 쓰고 수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루딘은 교실에서 아이들하고만 있을 때는 히잡을 벗어도 되지만, 남자 어른이 교실에 들어오면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여자선생님이 남자가 들어오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나가면 벗고 하는 것이 어떻게 비치겠느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히잡 쓴 여교사의 수업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남성과 여성에 대해 왜곡된 관점을 배울 정도는 아니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았다.
 
루딘의 히잡 논쟁이 독일 사회에 던진 문제는 ‘독일 사회가 낯선 종교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였다. 이 질문에는 루딘이 히잡 착용 권리를 청구하는 동기가 오직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것뿐인가 하는 의심이 들어 있다. 또 히잡이 무슬림 여성에게 신앙의 증표로 ‘강요’되는 것이라는 서구인들의 보편적 인식도 들어 있다.
 
루딘을 지지했던 독일 교원 노조(GEW) 내부에서도 히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일치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라고 보는 입장과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입장이 나뉘었다. 오히려 무슬림 가정의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는 교사들은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아버지들과 여기서 벗어나려는 딸들의 투쟁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교원 노조가 루딘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독일 헌법은 공식적으로는 정교 분리 원칙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분리는 프랑스처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지 않다. 가령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앙이 강한 바이에른에서는 학교 교실에 십자가가 무심하게 걸려 있을 정도지만 지금껏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둘째, 교사는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고, 학생은 그 어떤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인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교사가 특정 종교나 정치적 입장을 가지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독일에서 교사의 정당 가입은 개인의 자유이며 숨길 일도 아니다. 교사의 중립성이란, 학생을 가르칠 때 개인의 종교적 정치적 의견 표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헌법에 적대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이 교사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은 교원노조 역시 확고했다. 그러나, 루딘에 대한 판결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독일 사회에 통합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히잡을 쓴 교사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경우에 성 역할에 대한 관념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면, 면직 대신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고학년에 배치하면 어떤가 하는 제안도 나왔다.
 
히잡: ‘종교냐 정치냐’ 문제를 떠나서 

©"히잡. 짧고 간편하게." 히잡 착용법에 대한 실용조언서 표지. 2006년.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히잡은 의복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외투처럼 편한 대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은 아니다. 남성을 유혹하는 머리칼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히잡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 그런데 무슬림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생긴다. 무엇으로부터의 보호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히잡 논쟁은 헌재의 판결로 끝나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히잡 착용을 둘러싼 소송은 계속 이어졌다. 터키 이주민 출신의 한 사민당 여성 의원은 “법이 루딘의 손을 들어주었더라면 댐이 무너졌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가져온 이슬람 문화 중 서구 근대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각각의 사안들이 차례차례 법정으로, 공론의 장으로 물밀 듯 들어왔을 것이다.
 
독일 사회는 아직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다문화 출신 독일인의 수가 더 늘면 언젠가는 히잡에 대한 독일 사회의 뜨악한 반응이 완화될 지도 모르겠다. 그때쯤 되면 히잡은 더 이상 종교냐 정치냐의 시비를 떠나 정말로 “개인적” 선택에 의한 의복의 일부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더욱더 다루기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게 될지도 모른다.
 
루딘이 개인적 종교적 동기로 히잡 착용 권리를 청구했는지, 그 중에 얼마만큼 정치적 동기도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어디까지가 종교이고 어디서부터가 정치인지, 그 구분에 대한 서구와 이슬람 사회의 인식 차가 분명히 있다. 애초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서구 근대의 산물이 아닌가. 아무튼 논쟁이 확대되며 히잡은 이미 정치적 맥락으로 들어왔다.
 
슈바르처가 말한 대로 히잡, 부르카, 차도르를 쓰지 않는 수백만의 무슬림 여성이 존재한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여성에게 베일 착용을 폭력과 협박으로 강요하는 않는 나라들에서 그렇다. 이슬람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히잡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꾸란에 히잡 착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부분도 없다. 히잡 계율이 만연하게 된 것은 이란이 신정국가가 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성스러운 전쟁” 자금을 지원하게 된 1979년 이후의 일이다.
 
히잡에 대한 독일 사회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제 삼자인 나는 분열적이다. 논리로는 슈바르처를 수긍하는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루딘의 입장을 이해해보고 싶은 까닭이다. 이슬람 국가 출신으로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이주민 여성들에게 뭔가 새로운 관점을 기대하고 물어봐도, “머리카락은 유혹이고 그래서 보호를 위해 가린다”는 천편일률적인 대답뿐이었다. 히잡을 쓰지 않는 이들도 “히잡을 쓸 자유”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히잡을 쓰지 않을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루딘은 히잡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무슬림 여성으로서의 의무와 존엄 외에도 “정체성”을 거론한 적이 있다. 이주를 통해 낯선 나라에 정착한 사람들에게서는 현지에 대한 철저한 동화부터 떠나온 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십수년간 외국인 여성으로 살면서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질문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어린 시절부터 낯선 문화를 떠돌았던 루딘의 개인사가 히잡에 대한 의지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용숙 / 연세대 사회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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