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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양된 게 아니라 유괴된 것이었다”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12)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전쟁의 유산, 국경을 넘은 “나비부인”의 자손들

▲ 1905년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한국영화 <애니깽>(김호선 감독, 1995년) 
 
나의 고조할머니와 그녀의 두 딸은 ‘일본군 위안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1905년 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들을 예상치 못한 운명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도착한 멕시코는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된 약속 받은 땅’이 아니었다. 4년 간 노예노동을 하기로, 본인들도 모르게 계약이 체결된 유카탄의 헤네켄(애니깽) 대농장이었다.
 
나의 할머니들의 경우엔 멕시코로, 우리 가족의 경우엔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우리 이주민들은 우리가 떠나온 곳을 한 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전쟁 때문에 이주를 선택하긴 했지만 ‘만약 이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본국에 그대로 머물렀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은 늘상 우릴 따라다녔다. 이주의 경험이 대대로 이어져왔듯이, 이렇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도 대대로 이어져왔다.
 
나의 고모할머니가 오페라 <나비부인>에 출연한 것은 그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고모할머니는 자신의 가족이 멕시코로 이주하지 않고 한국에 그대로 남았더라면 겪었을 지도 모를 운명에 대해,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노래했다. 

▲ 전쟁 난민의 딸이었던 고모할머니는 전쟁을 재해석하고 이를 온몸으로 노래했다. 왼쪽 여성이 1930년대에 멕시코시티 예술궁전(Bellas Artes Palace)에서 <나비부인>을 연기한 고모할머니 마리아 리(Maria Rhi)이다.   © 레인보우 도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모두 전쟁이 낳은 결과였다. 어떤 이들은 이주민, 어떤 이들은 위안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입양인이 되었다. 이들이 기억하는 세월, 이들의 사연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미 군인에게 강간당하고 자신의 아이를 빼앗긴 일본여성의 이야기를 미화하여 그린 <나비부인>은, 전쟁으로 인해 강제로 고아가 된 손자.손녀와 생이별을 겪어야 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중일전쟁으로 생겨난 고아들을 제외하고는, 1960년대 이전에 등장한 이주아동의 첫 세대는 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서구로 보내진 22만 한국아동, 누구 책임인가
 
1952년부터 지금까지 약 15 개 서구 국가로 보내진 한국아동은 22만 명. 그 규모는 세계 1위에 달한다.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냉전 이래로 국제입양이 증가하게 된 데에는 미 군사주의와 전쟁, 한국 사회의 미혼모 차별, 신자유주의 경제와 인종차별주의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한국 출생의 입양인이자, 입양아 인권운동가 제니퍼 권-돕스(Jennifer Kwon Dobbs) 박사의 설명이다.
 
시인이자 영문학 교수이기도 한 권-돕스 씨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신의 입양 기록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모국인 한국을 찾게 되었다고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생모를 만난 박사는 자신이 ‘입양’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 어떤 고아 구조단체가 여성에게서 아이를 빼앗는단 말인가?” 당시에 그녀가 던진 질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빚어내는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권-돕스 박사는 자신이 겪은 일이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입양인이 양국 사이에서 겪은 분열을 하나의 총체적 경험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만큼은, 그녀의 경우가 흔치 않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해외 입양을 통한 영구적인 분리는, 아동을 한쪽 반구(半球)에만 가둬두고 다양한 자아를 키워낼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의 역량을 제한해버린다.
 
미혼모와 아이를 떼놓는 해외입양의 악순환
 
권-돕스 박사에 따르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입양아동의 대부분이다. 이들 중 90% 가량이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기반을 잃고 차별을 겪게 되면서, 엄마들은 사회복지제도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한국사회는 미혼모를 고아들의 쉼터로 인도한다. 그런데 쉼터에서는 미혼모가 복지 혜택을 받는 그 순간부터 자식과의 끈이 영원히 끊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미혼모가 입양을 선택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미혼모자시설들이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려진’ 아이들은 쉼터에서 입양기관으로 넘겨진다. 입양 기관의 주요 고객은 1만~3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 북반구 국가에 사는 중산층 외국인이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양부모 밑에서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 삶의 조건에 맞추어 성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입양아동은 하나의 국적만 가질 수 있다. 본래의 가족에게서 자신들을 떨어뜨려놓은 사회에 대한 고립감과 분노, 무기력을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부적응 입양아’라는 딱지가 붙는다.
 
사회는 입양아동의 뿌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본래의 가족과 재결합하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을 짓밟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속박하는 여러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자각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며 성장하는 입양인들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아직까지도 국제입양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때문”이라고 권-돕스 박사는 말한다. 휴전이 된 지 오래지만 미군과 고아원, 병원, 자선단체 등 원조기관이 세운 사회기반시설은 그대로 남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며, 한국의 복지제도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경제부국이 된 한국사회의 복지는 아직도 가난한 여성들과 그녀들이 낳은 아이를 감당해주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미군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 개입과, 전쟁 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미군과 현지 기업과의 결탁이, 전 세계적 한인 성매매 산업과 전 세계적 입양 사업의 원인이 되고 있다.
 
빈곤 국가에서 잘 나가는 ‘고아원 사업’

                          © 다큐멘터리 <사람과 힘: 캄보디아의 고아 산업>의 한 장면.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은 순진한 서구인들의 죄책감과 동정심을 이용해 입양 사업이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그려내면서, 해외 고아원 자원봉사를 고민하는 외국인들에게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Ian Birrell, 2010-11-14, 관련 링크 참고)
 
빈곤국에서는 ‘고아 보육’이 고아원 경영자들과 외국 자원봉사기관이 가장 주력하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기관에서 이뤄지는 외국인들의 자원봉사는 이윤을 취하는 또 한 가지의 방법일 뿐이다. (서구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최대 3천 달러를 내고 고아를 ‘돕는다.’) 이는 현지 교사들을 고용할 비용을 해결해주고, 동시에 입양 부모가 될 사람들의 선택을 정당화시킨다.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아원의 참상이 드러났다.
 
가나에서 생후 8개월인 고아(남)가 강간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고아원이라 불리는 곳에 있는 아이들의 90%가 실제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과, 가나에 있는 148개 고아원 중 단 8곳만이 허가 받은 곳이었음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그런데 국제관계와 해외무역을 규제하는 기구들은 빈곤 국가에서 아이들이 버려지는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아이들이 거래되는 시장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활동해 왔다.
 
새로운 입양 시장의 문을 연 ‘국제입양에 관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헤이그 협약, 1993년)’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조약이 소위 “윤리적“ 입양을 조장하고 있다고 권-돕스 박사는 주장한다.
 
‘개발’의 일환이자 다국적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고아원 사업’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안겨주는, 절대 망하지 않는 사업이다. 해당 사회에서 보았을 때는 빈곤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없애주고, 전쟁과 재해로 인해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가족들에게 정부가 지급해야 할 지원금 역시 해결해주는 손쉬운 방안이다.
 
가족과, 가족에 대한 기억까지 빼앗긴 고아들은 쉽게 학대와 인신매매, 사기, 자선 사업, 그리고 ‘뜻있는’ 연예인들의 타깃이 되곤 한다. 또한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필요로 하는 교회와 같은 종교 조직망에 걸리기도 한다. 최근 아이티 구제 캠페인이 벌어지는 동안, 사이언톨로지교는 지진 덕분에 아이티에서 고아원 두 군데를 매입했다.
 
뿌리를 찾고 우리의 가족사를 기억하라
 
전쟁이 중단되어도 군사주의와, 군사주의가 만들어내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거미줄은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간다.
 
권-돕스 박사가 강제로 한국의 생모와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보며, 나는 전쟁과 그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현재 내리는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정 개인의 성공 스토리에만 시선을 고정할 게 아니라, 거대한 사회구조가 우리 같은 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한 권-돕스 박사에게 동의한다. 사회가 견고해 보여도,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대륙 간의 창의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돕스 박사와 그녀의 생모에서부터 나와 내 고조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영향을 받은 모든 가족들의 이야기를 분석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억’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양심, 그리고 창의력은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거대한 이익집단과 사회구조를 넘어 확장된다.
 
가난한 아이들을 훔치는 것은 인류에 대한 위협이다. 아이가 살았던 마을의 기억과 유산을 앗아가고, 공동체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게 유괴된 “나비부인”의 손자.손녀들은 ‘수호자’, ‘영웅’으로 그려지는 입양된 국가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도록 세뇌 당하며 자란다.
 
망각의 거품으로 유괴된 모든 이들이 기억을 되찾고 뿌리를 찾아 나서기를 나는 희망한다. 그래야 세상이 양심적인 곳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여, 인터뷰를 통해 많은 영감을 준 제니퍼 권-돕스 박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녀는 입양인과 미혼모를 가두는 사회의 철조망을 잘라내고, 이들을 위한 길을 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레인보우 도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관련 자료 링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www.kumsn.org
미국 입양인 시민권 취득 캠페인 www.adopsource.org
다큐멘터리 <사람과 힘: 캄보디아의 고아 산업> www.youtube.com/watch?v=-hf_snNO9X8
영국 가디언: 해외 고아원 자원봉사에 관한 끔찍한 진실
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0/nov/14/orphans-cambodia-aids-holidays-madonna 
 
[번역: 권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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