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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주민등록법을 묻다
‘국민’으로도 ‘결혼이민자’로도 인정해주지 않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국내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재일조선인 3세 김화자씨가 한국의 주민등록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보내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의 역사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서 거주하게 된 조선인들은 일본사회에서 소수 집단으로 차등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2000년대 들어와 자이니치(在日: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동포 등으로 불린다) 3세, 4세들이 한국과 교류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김화자(33)씨는 2005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생활하면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와 결혼이민자 정책은 김씨와 같은 자이니치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다. 해외영주권이 있다는 이유로 주민번호를 발급받지 못한 채 한국에서 살면서도 ‘해외이주자’ 취급을 받으며, 또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유지해왔다는 이유로 결혼이민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전쟁의 가해국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귀화를 거부한 채 거주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해 온 자이니치들의 삶은 부단한 투쟁사였다. 그런데 국적을 지켜온 노력이 오히려 한국사회와의 교류에서는 신분이나 생활의 권리를 보장받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김화자씨는 이야기한다. 한국사회와 국내 법제도가 자이니치라는 특수한 집단의 역사와 상황을 고려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일다> www.ildaro.com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자이니치’ 3세 이야기
▲ 사진: 재일조선인 3세 김화자(33)씨는 오리지널 한국인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며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왔지만 일본식 통명을 쓰지 않고 ‘김’이라는 한국이름을 쓰면서 일본인들과 같이 일본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거의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을 몰랐지만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인식을 가지며 살았던 것 같다.
왜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자이니치는 일본인으로 귀화할 수 있지만, 나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사회에서 조선인으로서 국적을 지키면서 ‘특별영주권’을 얻어낸 것은 자이니치 1세, 2세들이 너무나 힘든 역사 속에서 쟁취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비록 일본에서 선거권은 없지만, ‘주민’으로서 (일본 국적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불편함 없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전쟁 때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직접 듣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이 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혈통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내 민족성까지 부정해야 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십 대가 되어 만난 자이니치들에게 영향을 받아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곳이 외국인노동자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생활을 도와주려고 일본어교사 자격도 땄다. 그리고 한 번은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한국으로 건너와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2007년에 본국의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한 내가, 결혼생활과 출산과 육아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기 한국은 말 그대로 내 조상의 나라 ‘조국’이었지만, 내 ‘모국’은 아니었다. 혈통주의 국가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부모님 밑에 태어나 한국 국적을 유지한 것뿐이지, 나에게는 한국어는 외국어이고 한국문화는 이문화와 같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자기 국적을 말하며 대답하지만, ‘자이니치’인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한국에 들어와서 오리지널 한국인과 어울려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인이 아니었고, 물론 일본인도 아니었고, ‘자이니치’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번호’ 없이 살 수 없는 나라, 한국에 와서
한국은 번호로 사람을 관리하는 나라다. 신분을 증명하는 번호가 없으면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해나갈 수가 없다. 일반적인 한국인이면 주민등록번호, 일반적인 외국인이면 외국인등록번호를 가지고 생활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자이니치의 경우, 당연히 외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등록을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현재 주민등록법에 따라서 해외에 영주권이 있는 사람은 주민등록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임의로 출입국관리소에 재외국민국내거소신고를 하고 ‘거소번호’를 취득하며 그 번호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 가입하고,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휴대폰을 계약하는 등 일련의 일상 활동들이 주민등록번호도, 외국인등록번호도 아닌 거소번호로는 할 수 없는 게 많아 불편함이 생긴다.
물론 특별영주권을 포기하면 한국에서 주민등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한 번 포기한 특별영주권은 다시 취득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서 사는 자이니치 대부분은 특별영주권을 유지한 채 거소번호로 생활하고 있다.
한국 국적의 자이니치와 오리지널 한국인 남편이 이룬 가족은 서류상 부부 모두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국제결혼’이 아니다. 그러나 한 쪽 부모가 자이니치이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보통 한국인끼리 이루어진 가족과는 좀 다르다.
우리 같은 가족들은 대부분 자녀에게도 일본 특별영주권을 신청한다. 한 쪽 부모가 가진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이어받게 하고 싶어서, 출생과 동시에 특별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특별영주권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주민등록을 할 수가 없다. 법적으로는 ‘자이니치’ 같은 지위에 있게 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나와 내 아이가 ‘해외이주자’?
한국의 법률 상으로는 해외에 영주권이 있는 한국 국적자는 ‘해외이주자’에 해당한다. 나도, 우리 자녀도 해외이주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나처럼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사는 자이니치가 해외이주자일까? 나는 한국에서 국외에 이주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민을 해온 사람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민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녀도 역시 해외이주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우리 같은 가족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자이니치라는 존재가 사각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국민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외국에서 온 결혼이민자나 그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받지 못한다.
한국에서 만0~2세 그리고 만5세 아이들은 그 가족의 소득에 상관없이 보육료를 지원해준다. 만3~4세도 국가소득 하위 70%이면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원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사람 대상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자임에도 우리 자녀들은 제외된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지원 등에서도 배제된다.
심지어 자녀들이 취학할 때가 돼도 취학통지서가 오지 않는다. 낯선 사회에 와서 자녀를 키우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모르는 것이 많아 일반 국민들보다 항상 늦는데, 취학통지서조차 보내주지 않으니까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면 언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법률상 해외이주자에 해당하는 나나 우리 자녀들도,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자 주민이다. 한국에서 거주를 하고, 세금도 내고, 군대에 갈 의무도 생긴다. 그런데 이웃들과 같은 거주민으로서 평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 아닐까?
다문화가족지원 배제된 ‘결혼이민자’, 자이니치
한국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생겨, 결혼을 통해 이민해온 사람들에게 언어와 문화이해 교육을 해준다. 이중 문화 속에 자라는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 보육료 지원도 있다. 피는 한국이고 국적도 한국이지만 일본사회에서 살아온 자이니치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이고 한국 문화는 이문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세한 지원을 해주는 이 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르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1. 한국 국적자 & 외국 국적자로 이루어진 가족
2. 한국 국적자 &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자로 이루어진 가족
재미교포처럼 외국 국적의 동포나 일본인으로 귀화한 자이니치라면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과거에 외국 국적을 갖고 있던 사람이 오리지널 한국인과 결혼을 하면, 역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일본에서 시집을 온 일본인들이 많은데, 그 가족들도 당연히 이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살다가 이주해 온 나와 같은 자이니치는 이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다문화가족지원을 받고 싶다고 요청할 때, 자이니치는 부자가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경제대국에서 왔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러한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결혼이민자인 일본인도 지원의 대상이 되지 않은가? 또, 돈이 많다고 해서 모어가 아닌 언어를 쉽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문화를 쉽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소득에 상관없이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반감을 품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소득에 제한을 두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이니치와 오리지널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우리 같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돈의 지원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지원이기 때문이다.
자이니치에게 특별영주권을 포기하라 할 수 있는가
나와 같은 자이니치와 오리지널 한국인이 결혼을 하면, 서류상 부부가 모두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국제결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한 결혼이 국제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살다가,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도 덜도 아니고 국제결혼을 한 가족들과 평등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길 원한다.
국제결혼을 한 가족의 자녀들이 양 부모의 국적을 모두 이어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자녀들도 자이니치와 오리지널 한국인이 갖고 있는 권리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특별영주권’과 ‘주민등록번호’를 천칭으로 달고 한 쪽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외국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 외국 국적을 유지한 채 한국에서 사는 것과 같이, 나도 일본 특별영주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일본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여전히 교류하고 있는 부모와 지인들이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주민번호를 얻기 위해 자이니치 1세, 2세들의 투쟁으로 얻은 특별영주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이니치라는 집단의 역사와 상황을 알면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민을 보내온 한국은 그 자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동포’라고 통칭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의 생태는 다양해졌고 극히 복잡해졌다. 자이니치뿐만 아니라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 많은 동포들이 세계 각지에 살아가고 있고, 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주민으로서 돌아온 동포와 그 자녀들의 상황을 한국 사회가 인식하고 섬세하게 정책을 펴주기를 바란다. (김화자)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신문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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