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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Rennes)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행동한다”
프랑스 지역도시 렌의 ‘3.8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가다
나는 프랑스의 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Bretagne)지역을 여행하고 있다. 여행 중 얼마 전,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렌(Rennes)에서 ‘3.8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큰 규모의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브르타뉴의 중심지라지만, 렌은 프랑스에서 그리 크지 않은 중소도시이다. 더욱이 이 행사가 벌써 20년째를 맞는다는 소개 글을 보고는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이 행사들에 참여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뭔가 배울 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수도권의 한 도시에 살고 있다. 그곳은 서울에 의지해 살기도 하지만, 산업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어, 자립적인 도시의 성격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면에서는 매우 낙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술, 문화 행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름대로 행사들을 벌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실없는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여성대회는 그저 시 관계자들이 모여 찍은 기념사진을 기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을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렌에서의 여성대회는 지역들이 그이의 문화적 능력을 어떻게 고양시키며, 펼칠 것인가 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3월 1일~21일까지 20일간 이어지는 행사들
▲ 3월 8일 여성의 날 본 행사로 진행된 <여성들의 포럼>에서 나이지리아를 소개하는 부스 © 정인진
현재, 렌은 3.8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3월 1일부터 21일까지 토론과 영화상영, 공연, 전시 등 50개가 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렌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행동한다”는 표어 아래, 여성과 남성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단체들과 렌시(市)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더 앞서 나가기 위한 결의를 다지기 위해 치러진다.
특히 이번에는 성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운동단체를 소개하고,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들을 많이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기획답게 외국의 단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준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과테말라, 마야 여성들의 권리 획득’과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랍의 개혁들’과 같은 토론회가 준비되었고, 튀니지와 부르키나파소, 베트남 등의 국가의 여성 현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도 준비되었다.
3월 8일에 열린 ‘여성들의 포럼’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브아르의 여성 현실을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되고, 거기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현실이 담긴 다큐가 상영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남의 나라 사정에만 관심하는 건 아니다.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 ‘평등의 성과 철학’, ‘유럽에서의 성매매 시스템’, ‘이민여성의 자율권 획득’ 등과 같이 성평등과 관련된 유럽의 상황을 소개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회도 펼쳐진다.
무엇보다 3.8 세계 여성의 날에 즈음해, 지난 세기 프랑스 여성들이 여권신장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를 말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너무 감동적인 모습이다. 20세기 초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또 70년대 프랑스의 여성들이 낙태권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를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마저 떨린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낙태권이 인정되기 전에는 낙태를 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외국에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낙태를 도와준 사람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이 이들에게 낙태권의 획득은 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으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획득하는 출발점이 되었기에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 감동스럽다.
프랑스 여성운동의 역사와 경험을 나누는 장
▲ 여성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기자 루이즈 보댕(1877-1929)이 살았던 집을 학술 가이드가 탐방행사 참여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건물 벽에 루이즈 보댕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 정인진
한편 나는 렌이 가진 여성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행사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다. ‘렌 시내에서 70년대 여성운동을 기념할 만한 장소’와 ‘프랑스 역사를 관통해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는 장소’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행사는 지역행사로서 지역주민에게는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지역의 모습을 심어주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행사에 관심이 많아, 이 프로그램은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는 렌 탐방’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가이드를 맞은 학술 가이드 테레즈 쟈네스(Therese Jannes)는 모인 사람들에게 “선거권과 낙태권의 획득 이후, 교육, 정치, 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고 권리가 신장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그는 “이런 차별에 대항한 싸움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사를 시작했다.
한편,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당일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의 포럼”이 시내 가장 중심가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37개에 달하는 렌 지역 여성단체와 외국에서 초청된 단체들이 참여했다. 부스가 열리고 한 옆에서는 각 단체들이 중요하게 주장하는 이슈들이 소개되고 외국 여성들의 어려운 상황이 상영되는 등의 활동이 오후 내내 펼쳐졌다.
▲ <여성들의 포럼>에 참여한 ‘평화운동’(Mouvement de la Paix)이라는 단체의 부스모습 © 정인진
나는 이 행사장에 차려진 부스들을 거닐다가 한 평화운동 단체의 부스 앞에서 연세 지긋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 분을 보자, 젊은 세대부터 노년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여성주의 역사가 부러웠다. 나도 그 분처럼 늙어서도 여성주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환한 웃음이 내 미래의 모습이길 바라면서.
오후 내내 다소 썰렁했던 행사장으로 저녁이 되면서 직장일을 마친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 옆에서는 곧이어 벌어질 축하 연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어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어울려 우정을 다지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 서두에서 렌시 여성의 권리 대표(Deleguee aux Droits des Femmes)인 죠슬린 부쥬아르(Jocelyne Bougeard)는 20년 전부터 해마다 함께 해온 단체들이 여전히 건재한 것을 축하했고,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함께 축하인사를 하러 나온 시장에게 렌시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더욱 애쓸 것을 약속받기도 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 나는 이 행사장을 나오며, 우리나라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인진)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프랑스 지역도시 렌의 ‘3.8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가다
나는 프랑스의 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Bretagne)지역을 여행하고 있다. 여행 중 얼마 전,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렌(Rennes)에서 ‘3.8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큰 규모의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브르타뉴의 중심지라지만, 렌은 프랑스에서 그리 크지 않은 중소도시이다. 더욱이 이 행사가 벌써 20년째를 맞는다는 소개 글을 보고는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이 행사들에 참여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뭔가 배울 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수도권의 한 도시에 살고 있다. 그곳은 서울에 의지해 살기도 하지만, 산업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어, 자립적인 도시의 성격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면에서는 매우 낙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술, 문화 행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름대로 행사들을 벌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실없는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여성대회는 그저 시 관계자들이 모여 찍은 기념사진을 기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을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렌에서의 여성대회는 지역들이 그이의 문화적 능력을 어떻게 고양시키며, 펼칠 것인가 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3월 1일~21일까지 20일간 이어지는 행사들
▲ 3월 8일 여성의 날 본 행사로 진행된 <여성들의 포럼>에서 나이지리아를 소개하는 부스 © 정인진
현재, 렌은 3.8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3월 1일부터 21일까지 토론과 영화상영, 공연, 전시 등 50개가 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렌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행동한다”는 표어 아래, 여성과 남성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단체들과 렌시(市)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더 앞서 나가기 위한 결의를 다지기 위해 치러진다.
특히 이번에는 성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운동단체를 소개하고,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들을 많이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기획답게 외국의 단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준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과테말라, 마야 여성들의 권리 획득’과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랍의 개혁들’과 같은 토론회가 준비되었고, 튀니지와 부르키나파소, 베트남 등의 국가의 여성 현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도 준비되었다.
3월 8일에 열린 ‘여성들의 포럼’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브아르의 여성 현실을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되고, 거기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현실이 담긴 다큐가 상영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남의 나라 사정에만 관심하는 건 아니다.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 ‘평등의 성과 철학’, ‘유럽에서의 성매매 시스템’, ‘이민여성의 자율권 획득’ 등과 같이 성평등과 관련된 유럽의 상황을 소개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회도 펼쳐진다.
무엇보다 3.8 세계 여성의 날에 즈음해, 지난 세기 프랑스 여성들이 여권신장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를 말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너무 감동적인 모습이다. 20세기 초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또 70년대 프랑스의 여성들이 낙태권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를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마저 떨린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낙태권이 인정되기 전에는 낙태를 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외국에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낙태를 도와준 사람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이 이들에게 낙태권의 획득은 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으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획득하는 출발점이 되었기에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 감동스럽다.
프랑스 여성운동의 역사와 경험을 나누는 장
▲ 여성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기자 루이즈 보댕(1877-1929)이 살았던 집을 학술 가이드가 탐방행사 참여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건물 벽에 루이즈 보댕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 정인진
한편 나는 렌이 가진 여성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행사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다. ‘렌 시내에서 70년대 여성운동을 기념할 만한 장소’와 ‘프랑스 역사를 관통해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는 장소’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행사는 지역행사로서 지역주민에게는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지역의 모습을 심어주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행사에 관심이 많아, 이 프로그램은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는 렌 탐방’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가이드를 맞은 학술 가이드 테레즈 쟈네스(Therese Jannes)는 모인 사람들에게 “선거권과 낙태권의 획득 이후, 교육, 정치, 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고 권리가 신장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그는 “이런 차별에 대항한 싸움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사를 시작했다.
한편,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당일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의 포럼”이 시내 가장 중심가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37개에 달하는 렌 지역 여성단체와 외국에서 초청된 단체들이 참여했다. 부스가 열리고 한 옆에서는 각 단체들이 중요하게 주장하는 이슈들이 소개되고 외국 여성들의 어려운 상황이 상영되는 등의 활동이 오후 내내 펼쳐졌다.
▲ <여성들의 포럼>에 참여한 ‘평화운동’(Mouvement de la Paix)이라는 단체의 부스모습 © 정인진
나는 이 행사장에 차려진 부스들을 거닐다가 한 평화운동 단체의 부스 앞에서 연세 지긋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 분을 보자, 젊은 세대부터 노년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여성주의 역사가 부러웠다. 나도 그 분처럼 늙어서도 여성주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환한 웃음이 내 미래의 모습이길 바라면서.
오후 내내 다소 썰렁했던 행사장으로 저녁이 되면서 직장일을 마친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 옆에서는 곧이어 벌어질 축하 연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어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어울려 우정을 다지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 서두에서 렌시 여성의 권리 대표(Deleguee aux Droits des Femmes)인 죠슬린 부쥬아르(Jocelyne Bougeard)는 20년 전부터 해마다 함께 해온 단체들이 여전히 건재한 것을 축하했고,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함께 축하인사를 하러 나온 시장에게 렌시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더욱 애쓸 것을 약속받기도 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 나는 이 행사장을 나오며, 우리나라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인진)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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